17년 경력의 우편집배원 남윤희 씨

줄곧 / 당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 그래서 내가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 하는지를 / 당신이 알았으면 했습니다 / 그 그리움의 내 마음이/ 그대로 당신에게 전해졌으면 했습니다 / 이 글을 다 읽어 내려갈 때쯤이면 / 당신은 춥지 않을 겁니다 / 되려 가슴 깊은 곳에 머물러/ 몇 날 며칠을 두고두고 / 그리움 되어 남을 겁니다. /
-이준호 『겨울 편지』中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한다. 인연의 소중함이야 예나 지금이나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마음을 전하는 방법은 과거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제 사람들은 손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리지 않고 항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는 언제든 들을 수 있고, 편지를 써서 보내자마자 상대방은 바로 그 내용을 확인할 수도 있다. 디지털 시대의 혜택이라면 큰 혜택인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써 내려간 편지를 받아보면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져 온다. 어쩌면 그 편지 안에서 그리움과 기다림의 시간, 정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도 우리 마음의 저 깊은 곳에서는 과거의 향수를 잊지 않았다.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바쁜 일상
하루 종일 뛰어 다니며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전해 주던 우편집배원. 핸드폰과 인터넷 대중화로 편지를 보내는 이들이 현저히 줄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바쁘다. 광화문 우체국에서 17년째 우편집배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남윤희(48) 씨. 남씨의 하루는 새벽 5시부터 시작한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다 보니 출근하기 전에 할 일이 많다. “이제는 5시에 일어나는 게 몸에 배서 아침에 출근하지 않아도 그 시간이 되면 눈이 떠져요.”아침 8시가 출근시간이지만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면 집배원들의 70-80%는 출근을 한다. 밤 사이 도착한 우편물들을 구분하고 정리해서 가지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남씨는 출근하자마자 잠시 커피 한 잔 마시는 여유를 가진 후 전날 끝내지 못했던 것들을 포함하여 그날 보낼 보통 우편물들을 가지고 나가기 전에 미리 챙겨 놓고 등기우편물을 분류한다. 과거에 비해 우편물이 많이 줄었을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남씨는 “전화도 그렇고 인터넷 전자 메일도 그렇고 모두 중요하긴 하지만 정성들여 편지를 쓰면 받는 사람은 그것만큼 감동적인 게 없잖아요. 가슴이 답답한 것을 글로 쓰면 너무 너무 좋고 정도 살아나요”라며 “요즘 사람들은 너무 광고성 우편물에 투자해요. 우편물이 줄었다고 해서 실제로 우편물 양이 줄어든 것은 아니에요. 백화점이나 자동차 회사 등 다량으로 우편물을 발송하는데 그 양이 엄청나요. 오히려 과거보다는 우편물이 더 많아지고 부피도 더 커졌어요”라고 말한다. 하루에 남씨가 배달해야 하는 우편물은 행낭자루 두 자루와 소포자루 하나로 70-80kg에 달한다. 자그마한 몸에서 어떻게 그런 기운이 솟아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우편물 배달은 보통 오후 3시면 끝이 나지만 우편집배원은 배달 후에도 한가하지 않다. 우편집배원의 일은 우편물 배달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우편물 배달을 끝내고 오면 오후 3시가 되는데, 늦어도 3시 30분에는 끝내고 오려고 해요. 우체국에 돌아오면 다른 사람들과 공동 작업을 해야 하는데 늦게 들어오면 다른 사람들한테 그만큼 피해가 될 수 있잖아요.”

배달하며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많이 느껴
남윤희씨가 담당하는 구역은 종로 6가와 동대문시장 쪽이다. 과거 창신동 쪽방촌을 담당할 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그곳은 정말 어려우신 분들이 많아요. 독거노인들도 많으셔서 대낮에도 컴컴한 곳을 들어가면, 집배원을 하고 있는 저도 어렵지만 ‘아, 이렇게까지 정말 어렵게 사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절뚝거리며 파지를 주우러 다니시는 노인분들을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몰라요”라며 “경로당에 가도 이제는 (돈이)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은 차이가 있대요. 있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들끼리만 어울리기 때문에 없는 사람들은 경로당에도 잘 안 가게 된대요. 그래서 한 번씩 우편물을 배달하러 찾아가면 저를 친구 반기듯이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어요. 어머니뻘 되시는 분들이지만 제가 ‘언니 언니’하면서 친구처럼 지내요.” 17년 경력의 우편집배원이다 보니 담당구역은 훤히 꿰뚫고 있다는 남씨. 간혹 잘못된 주소가 적힌 우편물도 있지만 그간의 경력을 무시할 수 없는지라 주소가 조금 잘못 되어도 대충 받는 사람을 짐작할 수 있어 우편물을 찾아줄 정도다.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많이 느끼게 된다는 남씨. 우편물을 배달하러 다니다 보면 고생한다면서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에 점심 역시 배달을 하는 와중에 간단하게 때우는 일이 많은 남씨를 위해 점심을 대접하는 사람들도 많단다. “오늘은 우편물을 배달하러 갔더니 그곳 사장님이 점심을 미리 주문해놓고 같이 먹자고 하시기도 했어요. 오늘 여자 넷이서 비지찌개를 같이 먹었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다들 사장님이신데 즐겁게 먹고 허심탄회하게 얘기도 하고 같은 나이 또래면 늙어가는 얘기도 하고 그래요.” 담당하는 곳이 재래식 시장이다 보니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것을 보면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는 남씨. “좋은 분들이 너무 많은데 경기가 좀 살아나서 그분들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대통령도 새로 바뀌었으니 이제 좀 괜찮아지겠죠.”

여자이기 때문에 단점보다 장점 더 많아
현재 광화문 우체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우편집배원은 총 124명, 그 중에서 여자는 남씨를 포함해 단 2명이다. 남씨가 처음 배달을 나갔을 때 사람들은 남씨가 여자라는 이유로 많이 경계를 했다고 한다. “저 여자가 과연 해낼까 하는데 계속 하다 보니 이제는 믿음이 생기셨나 봐요. 오늘도 배달하는데 ‘우체부 이리 와 쌍화차나 한잔 해’라고 하시는데 너무 바빠서 안 먹으려고 했더니 계속 먹고 가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리곤 점원에게 ‘우체부가 먹고 싶어 할 땐 언제든지 드려. 계산은 내가 할 테니’하셨는데 정말 감동이었어요. 근데 그런 경우가 정말 많아요. 제일 애쓰시는 분이라고 하시면서. 그러니 제가 안 웃고 살 수가 있나요.” 17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근무를 하다 보니 이제는 우편물을 배달하다 보면 사람 얼굴만 봐도 어떤 사람이다 하는 감이 온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이해심이 많고 마음이 넓고 포용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부딪힐 일이 별로 없어요.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드신 분들에 비해 원리원칙대로 이기주의적인 부분도 있지요. 주위 사람들 말 들어보면 인터넷에 띄우기도 한대요. 전 어디가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기 때문에 아직까지 사람들이랑 그렇게 부딪히는 일이 없어요. 오히려 사람들이 너무 너무 잘해줘서 고맙기만 해요.” 작은 몸집에 엄청난 양과 무게의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이 여자로서는 힘이 들 법도 한데 남씨는 절대 여자이기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최근 택배와 소포가 많이 늘어나 부피가 커져 특히 김치나 배추 등은 20kg 이상 나가기도 한다. 때문에 고층으로 배달을 하게 될 경우 배달이 힘들 수밖에 없다. “소포를 배달할 때 힘에 부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경우는 굳이 여자라서 힘들다고만 할 수 없는 게, 남자분들도 많이 힘들잖아요. 뭐든지 열심히만 하면 여자든 남자든 성별로 인해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지 않겠어요? 전 오히려 여자이기 때문에 좋은 점이 많아요. 물론 남자 우편집배원들도 잘 하시지만 아무래도 좀 무뚝뚝하시잖아요. 제가 남자 집배원들보다는 무표정하지 않고 잘 웃고 잘 떠들고 인사도 잘 하고 말도 잘 붙이고 가족처럼 붙임성이 좋아서 주민들이 친근감을 느끼고 저한테 잘 해주시는 것 같아요.” 업무가 워낙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동료들과 대화할 시간조차 없다. “같은 층에서 근무한다고 해도 다들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에 사실 친하게 말을 건네거나 할 정도의 짬도 나지 않아요. 일이 워낙에 힘들다 보니 퇴근하고 다들 술 한 잔씩 하면서 말할 때 외에는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해요.” 우편집배원은 명절 때 가장 바쁘다. 지난 추석 무렵에만 2kg이 빠졌다는 남씨. 추석 즈음에는 배달을 나갔다가 3시에 우체국에 돌아오면 또다시 배달물들이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다시 우편물을 싣고 배달을 나가야 한다. “추석에는 쌀, 과일 등 시골에서 수확한 수확물들이 많이 올라와요. 오히려 연말에는 연하장이 많이 줄어서 추석보다는 덜 바빠요. 추석 때는 보통 두 번씩 배달을 나가게 되는데 그렇게 배달을 나가면 보통 밤 10시가 넘어서 들어오는데 심지어 12시 넘어서 들어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가족은 든든한 지원군이자 버팀목
30대 초반에 시작한 우편집배원이 벌써 17년째다. 당시 집안 사정으로 인해 일을 구하던 남씨는 신문에 난 모집공고를 보고 광화문우체국에 지원하여 시험을 치르고 우편집배원이 되었다. 남씨의 든든한 버팀목은 남편과 아이들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커준 아이들이 고맙다는 남씨. 남씨의 아들은 현재 군대에 있고 맏딸은 간호대학을 나와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어릴 때 방황도 했다는 남씨의 딸. 방황하던 딸을 보면서도 잔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는 남씨는 “엄마가 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애들도 비뚤어진 길을 가겠나 싶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연히 군대 간 아들의 서랍에서 200만원이 넘는 돈이 들어 있는 통장을 발견했다는 남씨. 아들이 휴가 나왔을 때 슬쩍 물어봤단다. 아들은 어릴 적 힘들었던 집안 형편으로 인해 속상해 하는 남씨의 모습을 보며 ‘우리 엄마가 정말 강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에 그 후부터 돈을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단다. 이제는 남씨에게 “나중에 엄마같은 여자랑 결혼할 거라고. 얼굴도 예쁘지 돈도 잘 벌지”라고 웃으며 말한단다. 남편은 언제나 남씨의 편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남편을 믿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남편 흉을 많이 보곤 해요. 우리 남편이 항상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내 울타리 같은 존재에요. 항상 내 편이 되어 주고 날 사랑하며 너무 잘해줘요. 충청도 남자라 표현은 잘 못하지만 남편의 그 마음을 느낄 수가 있어요. 남편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나만 있으면 좋대요”라고 말하는 남씨에게서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강한 애정이 묻어난다. “지금까지는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근데 작년에 아들이 군대에 가서 하는 말이‘엄마 이제 우리 위해서 살지 마세요. 나 때문에 돈 번다는 생각하지 마세요. 이제 우리 다 컸어요. 옛날엔 엄마가 엄청 커 보였는데 우리 엄마 이제 많이 늙었네’였어요. 이제부터 내 생활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자신의 삶에 만족을 하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행복은 결코 절망하는 이들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행복은 남씨처럼 노력하는 자에게 다가오고, 갈망하는 자에게 찾아온다. “지금은 일 하는 그 자체가 즐거워요. 주위 사람들에게는 말도 못하게 고맙죠.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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