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음식 생활 진단

우리나라에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있는 요즘, 한국인의 식생활에도 서구식 식습관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는 암 질병의 발병률을 보면 알 수가 있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지난해 암환자 분석결과를 보면 건강보험에 가입된 신규 암환자는 2000년 10만여명에서 지난해 13만여명으로 1.29배 늘었고, 전립선암은 15.4%, 유방암은 9.6% 늘었다. 반면 자궁경부암은 2.7%, 난소암은 1% 줄었다. 전문가들은 암환자가 늘어난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이 서구식 식습관을 꼽는다.
소위 말해‘웰빙’열풍이 대한민국에 돌풍을 일으킨 지 10년이 됐고, 많은 사람들이 참살이를 위한 음식을 골라먹고,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하며, 잘 살기 위한 여가생활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사람들은 과거보다 병에 대한 지식이 더욱 풍부해져 그에 따른 대비와 예방책도 전보다 더 튼튼히 하고, 과거보다 의학의 발달로 인해 평균수명의 연장과 각종 불치병을 극복하는 사례도 나타난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감지해 볼 때 암환자의 수는 보다 줄어들어야 할 것 같고, 각종 성인병의 발병률도 점차 낮아져야 할 것 같은데 결과는 그렇지 못하다. 이것이 비단 서구식 식습관으로 점철된 한국인의 식생활 변화 때문일까. 육류 위주의 서구식 식생활에 위협을 느끼고 채식주의자들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고, 친환경 유기농 식자재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에서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인터넷의 발달은 수십만 미식가 양성을 돕고, 맛을 향한 사람들의 열정 또한 점차 높아지고 있지 않나. 바쁘고 빠르게 사는 것이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좋지 않다 하여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요가나 명상의 세계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즐겨먹던 음식과 우리 고유의 김치나 청국장 등의 가치도 점차 높아지고 있으며, 이는 세계로 수출돼 그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꾸준히 복잡해지는 세상과 치열해지는 우리의 삶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가 서구식 식습관 보다 더한 복병은 아닐까.


- 어린 생명도 병들게 한 생활양식
- 식생활에도 교육이 필요, 급식 프로젝트 슬로푸드 운동
- 먹는 것에 목숨 거는 사람들
- 세계 식품시장 장악한 유기농



< 한국인의 식생활 - 100만 미식가 시대 >
먹는 것에 목숨 거는 사람들
“음식은 시간과 돈과 열정을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은 단순히 삶을 연명하기 위한 섭취의 행위가 아니다.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우리의 몸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며, 인간의 정신을 움직이는 행위다. 아무리 몸에 좋다는 음식도 맛이 없으면 자주 찾지 않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건강을 해치니 멀리하는 것은 동물이 아닌 인간이기에 가능한 절차다. 음식은 인간에게 무한한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존재임에 틀림없지만 그 즐거움에는 몇 가지 위험을 감수하거나 조건이 따른다.


▲ 닭고기는 고단백 식품으로 맛과 영양이 풍부하여 체내의 부족한 양기를 북돋아주기에 충분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인 삼계탕 외에도 보신탕이나 추어탕, 장어, 민어 등 보양식의 종류는 다양하다.
복날이 돌아오면 제 시간에 먹기 위해 예약까지 해가며 챙겨먹는 김대리. 때가 되면 몸의 원기 충전을 위해 보양음식들을 찾아다닌다. 서울 구석구석의 유명한 보양식 전문점은 물론이고 독특하고 희귀한 보양음식을 수소문해 시도하기도 한다. 복날에 대한 한국인들의 음식 강박관념은 오랜 전통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조상들의 건강을 지키는 지혜와 민간신앙이 겹쳐 각종 명절과 복날에는 특별한 음식들을 먹기 위해 사람들은 분주해진다. 그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 여름에 찾아오는 삼복. 절기에 맞춰 한여름에 뜨거운 음식을 먹음으로써 몸을 보신하는 풍습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먹거리 문화로 자리 잡았다. 여름은 외부 기온은 매우 높으나 우리의 몸 안은 상대적으로 차가워져 있어 몸 안의 찬 기운을 없애기 위해 복날에 삼계탕과 같은 따뜻한 음식을 찾는다. 여름철 차가워진 내부 장기를 따뜻하게 해 제 기능을 찾도록 돕기 때문이다. 여름철 복날에 먹는 음식으로 삼계탕은 단연 일등메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삼복 더위에 체력 소모가 크고 입맛도 잃게 되기 쉽다. 따라서 소화도 잘 되면서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먹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닭고기는 고단백 식품으로 맛과 영양이 풍부하여 체내의 부족한 양기를 북돋아주기에 충분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인 삼계탕 외에도 보신탕이나 추어탕, 장어, 민어 등 보양식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러나 보신탕이나 삼계탕은 땀 흘리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자주 찾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견해도 있다. '먹기 싫은 음식이 병을 고친다'의 저자 임락경 목사는"용광로 주변에서 일하는 이들이나 건축을 하는 이들, 도로를 공사하는 이들처럼 땀을 많이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은 삼복더위에 개고기, 닭고기로 몸보신을 해야 하지만, 사무실에서 찬공기 쐬고 땀 흘려 일하지 않는 이들은 복날 무리하게 보신하면 병이 난다"고 말했다. 최근 아는 사람이 찾아가 먹는다는 민어탕도 복날 보양음식 대열에 끼어들었다. 예로부터 삼복더위에 민어찜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개장국은 삼품이라고 했단다. 그러나 민어는 귀해졌고, 값도 비싸 대중적이지 못하다. 회나 매운탕으로 복날에 많이 찾고 저냐나 포, 구이나 국, 조림도 맛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명한 보양식집을 찾아가는 데에 감수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1~2시간'이라고 답한 사람이 42.1%로 집계됐다. 보양식을 찾는 이유로는 '건강에 좋을 것 같아서', '음식 맛이 좋아서', '연례행사 차원에서', '실제 보신 효과가 있어서', '주변에서 권해서' 등으로 다양했다. 어떤 이유에서건 특별한 날, 특별한 음식을 위한 사람들의 열정은 높이 살만 하다.


외식문화를 움직이는 미식가의 위력
▲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과 블로그와 미니홈페이지를 통한 1인 미디어 체계가 들어서면서 국내 미식가들은 더욱 분주해졌다. 특별히 카페나 동호회를 통하지 않고서도 친구들과 모여 맛집을 탐방하고 자세한 묘사와 사진까지 덧붙여 정보를 널리 알린다.
20대 중반의 최모(25)양은 친구들과 약속을 잡으면 약속 장소 일대의 맛집을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기왕이면 분위기도 좋고, 가격도 좋고, 맛도 있는 장소에서 친구들과의 오붓한 시간을 즐기고 싶기에 그녀에게 인터넷 검색사이트를 통한 맛집 검색은 이제 필수 코스가 됐다. 검색을 하다보면 사람들은 자세한 설명과 함께 친절하게 사진까지 전시해 놓고, 추천메뉴와 비추천메뉴를 설정해 놓기도 해 간단하게 메모를 하거나 기억하고 있다가 주문시 써먹기도 한다. 검색이 아니더라도 최씨는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고, 음식을 맛보는 것이 하나의 취미가 되어버렸다. 우연히 한 음식점에서 먹어본 음식이 입맛에 맞고 괜찮았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을 하기도 하고, 지인들을 데리고 다시 찾기도 하는 등 맛있게 음식을 즐기는 데에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녀에게 좋은 음식이란 무조건 맛으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편안한 자세와 컨디션으로 즐길 수 있는 음식 종류가 있고, 불편한 자세와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가 아니더라도 즐길 수 있는 음식 종류가 있기에 음식의 맛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분위기다. 어디서 무엇을 먹는 것이 그녀에게는 어떤 일을 하고, 얼마를 버는 것만큼이나 인생의 중요한 가치관이다. 최씨는“아무데서나 가서, 아무거나 먹자는 사람이 가장 싫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좋은 곳에서 멋진 식사를 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최씨와 같은 사람이 종종 있다. 이들을 정의하는 말로‘미식가’나‘식도락’이 있다. 음식의 맛에 치중하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나며, 음식 자체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현재 우리나라 외식업계의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지난 2001년에 개설된 다음카페'미식가 천국'은 최근 가입회원이 100,000만 명을 넘었다. PC통신 서비스가 시작됐을 때부터 온라인 동호회 활동이 활발해 지면서 가장 큰 성장을 한 것이 바로 식도락 동호회다. 전국 구석구석에 있는 맛집을 찾아다니며 맛을 평가하고, 서비스를 체험하고, 마음이 맞고 입맛이 맞는 사람들끼리 친분을 쌓아가는 식도락 동호회는 현재 그 가입자수만 100만여명에 달하고, 실제 활발히 활동하는 인구는 약 20만 명 정도다. 2000년이 지나면서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과 블로그와 미니홈페이지를 통한 1인 미디어 체계가 들어서면서 국내 미식가들은 더욱 분주해졌다. 특별히 카페나 동호회를 통하지 않고서도 친구들과 모여 맛집을 탐방하고 자세한 묘사와 사진까지 덧붙여 정보를 널리 알린다. 이렇게 양산되는 음식점에 대한 무수한 정보들은 포털사이트와 각종 게시판을 통해 주인도 예상치 못한 최고의 광고 효과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그 어떤 고발성 기사보다 가혹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고개들은 맛 뿐만 아니라 내부 인테리어, 청결도, 종업원의 친절도 등 다양한 항목에 대한 평점을 매기기도 하고, 방문을 적극 추천하는가 하면, 최악의 악담을 늘어놓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제는 미식가들의 활발한 활동이 식당이나 업주들에게 오히려 장애물이 되고 필요악의 존재로 인식되기까지 이르렀다. 강남의 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서모(46)씨는“불친절하게 고객을 맞거나 식당이 지저분할 경우, 비판 내용이 바로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오르내리게 되고 이는 곧 매출로 이어지고 있다”며 과도한 고객들의 관리에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고객들의 이 같은 반응과 관심이 업주들에게 자극이 되어 질 좋은 서비스로 개선되고 최고의 맛을 위한 노력이 더해지기도 하기에 서로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 미식가들의 예민하고 전문적인 시각이 우리나라 음식문화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충분한 역할이 될 수 있다.



고기를 거부하는 치열한 식습관
▲ 채식주의자들은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음식을 먹는 자리에서 가장 곤란을 겪는다. 사회구성원으로서, 가족구성원으로서 채식주의자들이 부딪히는 편견과 불편이 이들에게 가장 큰 난관이다.
먹는 것에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역시 치열한 식사 문화를 구사하는 이들이 있다. 육류를 거부하고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지닌 채식주의자. 최근 유기농 야채 및 친환경 농산물 시장이 넓어지는 데는 점차 늘고 있는 채식주의자들의 활약이 크다. 본래 채식주의는 종교적, 금욕적, 영양학적 이유로 시작되었는데 채소나 과일, 곡물과 견과류만을 먹는 것을 말한다. 인도의 대부분의 채식주의자는 고대 지중해 지역 사람들처럼 달걀도 먹지 않지만, 채식주의 중에서도 우유나 유제품은 먹는 사람도 있다. 서양에는 채식주의가 보편화되어 있어서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단이나 음식이 따로 마련될 만큼 사회적인 배려가 자리 잡았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채식주의가 널리 퍼져 있지 않다. 최근들어 금욕적인 이유나 종교적인 이유에서 보다는 육류 위주의 식생활에서 오는 각종 성인병 유발이나 암질환 등에 대한 위험성 때문에 건강을 생각해 채식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는 특히 채식위주의 식습관이 권유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에도 채식 전문식당과 유기농 식품 전문점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버섯요리 전문점, 새싹비빔밥 등을 판매하는 야채 위주의 식단이 어느 새 외식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가정의 식탁에도 그린 컬러의 혁명이 불고 있어 맵고 짠 음식이 사라지고 싱겁고 담백한 음식이 가족의 건강 지킴이로 등장했다.
실제로 과거에는 서구인에 비해 동양인에게 대장암의 발병률이 매우 낮았으나 최근 들어 동양인에게서 대장암 발병률이 증가하고 있다. 학자들은 육류 위주의 서구인들에 비해 동양인들은 쌀을 주식으로 하고 채식 위주의 식단을 가지고 있었는데, 쌀의 소비량은 계속 감소하고 있고, 반면 육류의 소비량은 증가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제시하며 서구식 육류 식습관이 대장암 발병 증가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채식에 대한 영양학적 의견은 학자들마다 분분하지만 실제 채식주의자들의 식생활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채식주의자들은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음식을 먹는 자리에서 가장 곤란을 겪는다. 사회구성원으로서, 가족구성원으로서 채식주의자들이 부딪히는 편견과 불편이 이들에게 가장 큰 난관이다. 3년째 채식을 하고 있는 주부 윤모(37)씨는 "아직도 우리같은 채식인들이 가족들과 다함께 갈 수 있는 식당들은 그리 많지 않고, 무엇을 시킬 때마다 이거 빼달라, 저거 빼달라고 하는 요구사항을 말하면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도 견뎌내야 한다"며 먹는다는 행위 이외에 또 다른 스트레스들에 대해 하소연했다. 그러나 채식주의자들의 한결같은 생각은 채식을 함으로서 신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과 생명체에 대한 존중의식을 가질 수 있어 불편한 식생활이지만 행복하게 투쟁을 한다.

미 매사추세츠주 터프츠대의 영양유전체학 연구소장인 호세 오르도바스 박사는 만인을 위한 건강 식생활 정보가 각광받는 시대는 곧 끝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적포도주가 밀크쉐이크보다 혈관 동맥에 유익하다고 해도 누구에게나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몸에 좋다는 브로콜리를 먹어야 할 사람이 있고, 더 많이 먹어야 할 사람도 있다는 얘기다. 그는 유전자에 따라서 어떤 음식은 몸을 보호하는 유전자의 활동을 강화하기도 하지만 반면 또 다른 음식은 그것을 억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어떤 사람들은 출근길에 도넛의 유혹에 거의 매일 넘어가면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건강한 것처럼 고지방 또는 저지방 음식, 와인, 소금, 심지어 운동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제각기 반응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이는 비단 과학적인 실험과 이론에 의해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영양소를 듬뿍 담고 있는 음식을 챙겨먹는다고 해서 인간이 질병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음식을 먹을 때의 마음과 자세나, 음식과 내 몸의 궁합 또한 올바른 식생활과 건강한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는 말이 있듯이 병을 키우는 것은 어쩌면 과도한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건강에 대한 강박관념과 음식에 대한 불신이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낳아 우리의 몸과 삶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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