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된 식생활 교육 활발히 진행돼

지난 2006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국가별 평균 인간수명에 대한 통계를 살펴보면, 세계 149개국 중 일본이 남녀 평균 82세로 1위를 기록했고, 우리나라는 77세로 2위, 중국은 72세로 60위에 랭크됐다. 인간의 수명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만, 대부분 그 나라의 경제수준과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이 세계 최장수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가장 기본이 되는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과 연구, 그리고 국가적인 정책과 비전이 확실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일본에서는‘식육’이란 새로운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쉽게 말해 먹을거리에 대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04년‘식육기본법’이 국회에 제출된 이후, 2005년 6월부터 시행된 이 법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일본이 국민의 건강과 함께 점차 사라져가는 가정에서의 식생활을 장려하기 위해 시작한‘식생활 지침’에 그 모태를 두고 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이와 같은 교육은 건강문제 뿐만 아니라, 인성교육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새로운 학문연구 및 산업분야로까지 부상하고 있다.

와카야마 급식 프로젝트
지난 2005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보도된 서귀포 부실 도시락 사건과 군산 건빵 도시락 사건은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사건이 발생하자 담당자들은 해임되고 부실 도시락은 즉시 질 좋은 도시락으로 교체되었지만, 급식에 관한 총체적인 부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가정의 식사를 대신하는 학교급식 문제는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관련 업계의 철저한 위생관리가 필수적이다. 이에 일본 와카야마현에서 진행된 급식 프로젝트는 학교급식의 새로운 변화를 일궈낸 훌륭한 대안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 1995년 일본 와카야마현의 나가마을에서는‘유기농마을 만들기 선언’을 내세우며 농가와 관청, 농업위원회, 농협, 그리고 농업개량보급센터가 협력하여‘유기농업을 목표로 하는 마을 만들기’계획에 착수한 이래, 그 프로그램의 성과 중 하나로 2002년 4월부터 지역 농가로 구성된‘유기농업 실천그룹’의 채소와 과일을 학교급식에 공급하게 되었다. <미래를 사는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더 많은 아이들에게‘먹을거리’의 소중함을 알리고, 먹을거리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를 모으고자 기획된 것이다. 프로젝트라 하여 거창한 내용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관계자들이 모여서 논의한 것은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먹일 것인가이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것을, 더 안전한 먹을거리를 줄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이 그 출발점인 것이다. 특히, 직접 급식에 쓰이는 재료를 재배하는 농부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먹는 것과 나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살아있는 교육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급식을 맛있게 요리해주는 조리사가 음식이 준비되는 과정에 대해, 그리고 급식의 영양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영양사는 식이섬유나 비타민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 이에 나테초등학교에서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직접 농사를 짓게 하는 농업 체험을 실시함으로써, 자연을 접하고 농업의 소중함도 알게 하는 일석이조의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지금 일본에서 진행 중인‘식육’, 즉 먹을거리에 대한 교육은 일본에서 사라져가는 가정의 회복을 위한 새로운 움직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제주도교육청에서 친환경 우리 농산물 학교급식 시범실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아이들의 급식에 안전한 우리 농산물을 사용해 식중독도 줄이고 우리 농촌도 살리자는 운동이 진행 중인 것이다.

이탈리아 슬로푸드 운동
지난 2004년 11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영화 <슈퍼사이즈미>는 영화감독이 직접 패스트푸드의 폐단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세계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시작한 30일간의 흥미진진한 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감독은 몸무게가 1주일 만에 무려 5킬로가 늘고 무기력과 우울증까지 느끼는 등, 패스트푸드의 폐단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무모한 도전을 통해 진지한 일침을 가한 감독의 실험은 한창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진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산업문명의 이름하에 전개된 우리 세기는 처음으로 기계의 발명이 이루어졌고, 이후 기계를 생활모델로 삼고 있다.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었으며, 우리의 습관을 망가뜨리며 우리 가정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우리로 하여금 패스트푸드를 먹도록 하는 빠른 생활, 즉 음흉한 바이러스가 우리 모두를 굴복시키고 있다. 우리의 방어는 슬로푸드 식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역요리의 맛과 향을 다시 발견하고, 품위를 낮추는 패스트푸드를 추방해야 한다. 지금 유일하면서도 진정한, 진취적인 해답은 슬로푸드이다.” 1989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는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모여 미각의 발전과 음식 관련 정보의 국제적인 교환, 즐거운 식생활의 권리와 보호를 위한 국제운동 전개, 산업 문명에 따른 식생활 양식 파괴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슬로푸드 선언’을 채택했다. 1986년부터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슬로푸드 운동’은 소멸 위기에 처한 전통적인 음식을 지키며 품질 좋은 재료를 제공함으로써 소생산자를 보호하고, 어린아이와 소비자들에게 미각이 무엇인가를 교육하는 데 있다. 특히, 미국의 세계적인 햄버거 체인인 맥도널드의 패스트푸드에 반대해 일어난 운동으로, 맥도널드가 이탈리아 로마에 진출해 전통음식을 위협하자 미각의 즐거움, 전통음식 보전 등의 기치를 내걸고 식생활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 몇 년 만에 국제적인 음식 및 와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슬로푸드 운동은 탈지역화된 농업에 반대하고 지역농업을 중시한다. 슬로푸드 운동이 지역 농업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지역농산물이어야 소비자가 그것을 알고, 또 음식을 알고 먹을 때 먹는 즐거움이 커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는 슬로푸드 이념을 실천하는 사람을 발굴하고, 그들의 공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슬로푸드 시상대회’를 개최해 5개 분야로 나누어 수상자를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50개국에서 7만여 명의 유료회원이 참가하는 등,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최근 광우병이나 유전자 조작 식품 등에 현안이 되면서 점차 회원 가입이 늘어나고 있고, 미국으로의 슬로푸드 운동 확산이 주목할 만한 점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본부와 개별국가에 있는 지부단위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탈리아 브라에 있는 슬로푸드 운동본부는 그 철학과 이념을 확산시키기 위해 행사와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행사 중 주요한 것은 포도주 컨벤션, 미각의 전당, 슬로푸드 시상대회 등이 있고, 장기 프로젝트로는 미각의 방주, 포도의 유전자 조작 반대 운동, 미각교육 등이 있다.

슬로푸드에서 슬로라이프로
슬로푸드 운동은 음식과 함께 우리의 생활양식을 바꿈으로써, 여유 있는 삶을 지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슬로푸드 운동은 천연 염색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슬로클로스, 황토와 나무로 집을 짓는 슬로하우징, 자신들이 사는 도시를 편안하고 삶의 기쁨을 누리는 곳으로 만들자는 슬로시티 등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즉, 현대 사회에서는‘느림’의 자연 상태로 돌아가려는‘백워드 슬로(backward slow)’운동이 힘을 얻고 있다. ‘슬로시티’운동은 1999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그레베인 키안티 시가 세계를 향해‘느리게 살자’고 호소한 데서 비롯됐다. 이 지역 주민들은 지금도 하루 3시간의 낮잠과 해질 무렵의 산책을 즐기며 달콤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동안 11개 국가 97개 도시가 슬로시티 국제 연맹에 가입했다. 회원국에 가입하려면 자연 문화유산이 풍부함은 물론, 그 흔한 대형마트와 편의점, 네온사인, 도심의 자동차도 없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최근 전남 담양군 창평면, 장흥군 유치면, 신안군 증도면, 완도군 청산면 4곳이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현대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음식을 풍족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음식의 경우 이전에 비해 영양과 칼로리 면에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속도를 강조하는 바쁜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데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사실상 힘든 일이다. 이로 인해 냉동식품과 패스트푸드에 대한 의존이 급격하게 늘고 있으며, 시간에 쫓겨 급하게 음식을 먹다보니 먹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건강에 좋으면서 먹는 즐거움까지 얻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식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식습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현대의 음식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식혁명과 슬로푸드 운동 등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시사점을 적극 활용하여 보다 풍요롭고 안전한 먹을거리의 생산과 함께 즐거운 식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현대의 음식체계에 대한 시급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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