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論] 국보 1호, 숭례문이 사라졌다

『남대문. 국보 1호. 서울특별시 남대문로 4가 소재. 원명 숭례문(崇禮門). 1395년(태조 4년) 성곽의 축성과 동시에 기공하여 1398년(태조 7년) 2월에 낙성되었다. 현재의 건축은 1447년(세종 29년)에 개축한 것으로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건물 중에서 가장 오랜 것이다』(새국사사전, 남대문). 이런 문화적 의의를 지닌 숭례문이 2월10일 오후 8시 50분쯤 발화하여 다음날 새벽 01시 56분, 2층 누각 전체 및 1층 누각 대부분을 태우고 붕괴되었다. 화재의 원인이 방화라니 국민들의 마음은 더욱 어처구니없고 참담한 심정이다. 숭례문 주변에 공원을 조성한 후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개방(2005년 5월 27일)하여 보다 친숙한 문화 공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번 문화재 소실(消失)은 시중에 떠도는 모두가 “공범이며 주범이며 종범이다”라는 말이 옳다.
100년 만에 개방된 숭례문이 3년도 채 못 넘기고 사라져버린 것은 문화재 개방의 정치적 업적주의와 인기몰이식 정책의 결과이다. 서울시가 숭례문의 관리책임을 지고 국가로부터 예산을 받아서 집행하고 실제 운영은 중구청이 담당하고 있다. 물론, 문화재청은 이를 총 관리 감독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문제는, 서울시나 중구청이 숭례문을 개방을 하고 나서 왜 공무원이나 경찰이 직접 관리하지 않고, 사설경비업체에게 모든 것을 맡겼느냐는 것이다. 국보1호인 숭례문 경비를 위해 사설경비업체에 한 달에 30만원 정도 지불하고 있었으며 최근에는 KT텔레캅에서 무료로 5년 간 경비업무를 해주기로 해서 바뀌었다고 한다. 국고낭비를 줄이고자 노력한 점은 갸륵하지만 CCTV도 없었고, 순찰도 밤에 기껏 한 번 정도 있었다. 우리나라 국보1호가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었다니 정부와 국회는 문화재보존과 관리실태를 도대체 알고 나 있었는지 개탄스럽다. 더 가관인 것은 여야 정치권에서는 “내 탓 네 탓” 하면서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 역시 2월 11일 브리핑 중“노 대통령이 봉화마을에 쓴 관심의 10분의 1만이라도 문화재 관리에 관심을 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비꼬기도 했다. “숭례문 개방의 공로는 이명박, 화재책임은 노무현”이라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논리이다. 왜야하면 숭례문 화재의 책임의 근원은 개방 당시 서울시장인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이었기 때문이다. 문화재를 단순한 전시행정으로 생각하고 보안이나 화재예방은 소홀히 한 채 대책 없이 개방한 것이 원인의 단초가 아닌가. 문화재 개방에 앞서 모든 관리기능을 사전예방적인 차원에서 철저하게 준비를 했어야만 했다. 정치권의 공방전은 문화재관리의 본질적인 책임을 느끼고 반성하는 자세가 아니라 4월 총선을 의식하고 숭례문 화재에 대한 여론의 향방에만 오로지 촉각을 세우는 듯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전체의 문화의식의 결여가 문화재 소실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1993년에 한국이 고속철도 기종으로 프랑스의 TGV (KTX)를 채택하면, 고속철도 기술이전은 물론 직지심경을 반환하겠다고 공식적인 석상에서 약속하였으나 (미테랑 대통령), 채택 이후 직지심경 반환은 고사하고 “영구임대를 하자”는 황당한 소리를 한 적이 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직지심경이 한국의 국보급 유산임은 분명하나 한국은 이 문화재를 보존하고 지킬 능력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한국인이라며 마땅히 자존심 상하는 말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대한민국의 문화재관리 현황을 살펴보면 프랑스루브르박물관처럼 유형문화재를 습도, 온도, 빛, 복원기술력, 문화적 관심을 가지고 철저하게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 아닌가. 이 정도의 문화재관리를 못할 정도로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각종 개발 정책과 경제우선주의의 시대적 패러다임에 눌려있었다. “죽은 사람의 유물보다 산 사람의 생계가 중요하다” “당장 먹고사는 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논리로 우리 국민들 대다수의 의식수준이 물질우선주의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숭례문 소실의 형이상학적 책임은 바로 우리 국민 각자에게 있다. 물신주의(物神主義)보다는 인간 중심의 내적 가치가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근본이 되어야 함을 교훈으로 삼아야 하겠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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