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尹 창립, 종합격투기 대중화에 앞장서고 싶어

지난 2004년, 씨름 천하장사 최홍만 선수의 K-1 진출 선언 이후 한국 스포츠 선수들의 MMA(종합격투기) 진출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5년 4월, 윤동식 선수는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DSE가 운영하는 MMA 브랜드 PRIDE로의 진출을 선언했다. 이는 그가 유도선수생활을 청산하고 마사회의 코치로 완전히 전업한 지 근 1년여만의 일이었다.


한때 유도계의 천재로 불리었던 윤동식 선수, 1993년부터 1995년까지 국제대회 47연승이라는 기록과 함께 유도의 종주국 일본에서 선정한 유도 50걸에 선정된 전기영 선수와의 상대전적에서도 11승 9패로 앞선 선수가 바로 그다. 2003년 말, 그랜드슬래머 이원희 선수가 48연승으로 갱신하기 전까지 10여 년간 결코 깨지지 않았던 윤동식 선수의 47연승 기록, 게다가 47연승 모두 효과 한 번 내주지 않는 말 그대로 완벽한 승리였다.

유도는 지금의 나를 만든 밑거름
1995년 세계선수권대회, 그러나 윤동식 선수는 세계선수권대회 진출을 앞두고 발목 인대 쪽에 부상을 당하게 되었음에도 불구, 이를 숨기고 출전을 강행해 되레 경기 도중에 팔이 골절되는 부상까지 당하고 만다. 우승 후보 0순위에서 빈손으로 돌아오게 된 그는 절치부심 다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그 당시 그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전기영 선수가 증량으로 -78kg급을 떠나고, 윤동식 선수의 관건은 올림픽 메달 색이라고 다들 입을 모았지만 아쉽게도 그는 애틀랜타 출전권을 놓치고 말았다.
전기영 선수가 -78kg급을 떠났지만 곧이어 조인철이라는 강력한 신예가 등장해 윤동식 선수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조인철 선수와의 대결에서 번번이 판정패하고 만다. 당시 한국 유도계의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용인대 파벌의 입김이 윤동식 선수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득점이 장내 주심의 판단과 선언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유도에서 심판의 판정은 절대적이었기에 윤동식 선수의 올림픽 진출이 좌절된 이유도 여기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윤동식 선수가 아시아권에선 드문‘그라운드형 유도가’가 된 사연도 판정의 이견이 없는 굳히기나 관절기로 승리해 파벌의 벽을 넘고자 선택한 자구책이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한편, 윤동식 선수와 라이벌이었던 전기영과 조인철은 선수생활을 마치고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어 지도자나 교육자의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나 윤동식 선수는 마사회 코치이면서 때론 선수로, 중년의 나이인 서른이 넘도록 현역에 남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선발전, 그는 같은 마사회 소속의 후배인 유성연 선수와 결승에서 만나 이미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패자부활전을 통해 결승에 진출한 선수는 재경기를 해야만 한다는 규정 때문에 5분 한판인 경기를 재경기, 연장까지 합쳐 17분을 싸우고 결국 대표선발권을 후배에게 내주고 만다. 그리고 2001년, 난생 처음 잡은 세계선수권에선 1라운드에서 자신의 천적인 크레이토르 선수를 한판으로 제압했지만 대회 우승자인 프랑스의 몽파브콘 선수에게 4강전에서 덜미를 잡혀 동메달로 만족해야했다. 은퇴를 선언하고 마사회 코치로 활동하던 2003년에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꿈꾸며 다시 한 번 올림픽 대표선발전에 도전했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윤동식 선수는 결국 후배 선수들에게 밀려 일찌감치 대표선발전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새로운 도전, 쉽지만은 않았다
“한국 스포츠 유도계 체제가 나이가 들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줘야하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그러나 난 운동을 더 하고 싶었다. 그 찰나에 종합격투기를 접하게 되었고, 나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일본 유도출신 선수들이 무대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것을 보고 여기에서 갈팡질팡할 바에는 차라리 저런 큰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유도 원로들이 많이 말렸던 것도 사실이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고 나면 그런 걱정들도 자연스레 없어질 거라 생각했다.”
2005년 4월, 윤동식 선수의 PRIDE 진출과 관련한 공식기자회견이 열리고 난 뒤 그의 데뷔전은 4월 23일 PRIDE 미들급 그랑프리 1회전으로 결정됐다. MMA 무대에 처음 진출하는 윤동식 선수에게 겨우 한 달 남짓 남은 데뷔전은 무모한 일이라 할 정도로 충분히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다. 특히 데뷔전에서 그와 맞붙게 된 첫 상대는 일본 MMA의 상징적인 존재로 불리었던 사쿠라바 카즈시 선수, 이런 백전노장에게 이제 막 유도에서 MMA로 전향을 결심한 지 한 달이 지난 윤동식 선수와 경기를 주선한 것은 명백히 주최 측의 불공평한 처사라고 볼 수 있었다. 결국 윤동식 선수는 일본 청중들의 야유 속에서 데뷔전의 쓴 맛을 봐야만 했고, 당시 국내 팬들의 반응도 결코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 뒤로 윤동식 선수는 두 번째 경기를 갖기까지 반년에 가까운 공백기를 가졌다. 당시 그는 MMA에 대한 이해와 준비 부족을 느끼고 데뷔전의 첫 상대였던 사쿠라바 카즈시 선수가 소속된 일본의 다카다 도장으로 옮겨 강도 높은 훈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5년 10월, 윤동식 선수와 맞붙게 될 두 번째 선수가 결정됐다. 상대는 타키모토 마코토 선수, 당시 윤동식 선수와 마찬가지로 MMA에 대한 적응이 부족했던 선수로 이번 시합은 윤동식 선수가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대 선수의 노골적인 반칙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편파적인 판정으로 인해 이번에도 윤동식 선수는 다시 한 번 패배의 쓴 맛을 봐야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전했는데 강한 상대가 주어진다는 이유로 포기해버리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조금의 배려를 해줬다면 하는 주최 측에 대한 섭섭함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후 윤동식 선수는 PRIDE에서 가진 네 번째 경기까지 매번 강력한 상대와 맞붙게 되었지만, 점차 나아지는 그의 실력을 본 관계자들과 팬들의 반응은 조금씩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진정한 시작은 지금부터다
2007년, 윤동식 선수는 재정난에 시달리던 PRIDE를 떠나 K-1의 MMA 브랜드인 K-1 히어로즈로의 이적을 단행한다. 그리고 이적 발표와 함께 그의 데뷔전 상대도 발표되었다. 히어로즈 라이트 헤비급 초대 그랑프리 준우승자이면서 영국의 Cage Rage 현 챔피언인 멜빈만 호프 선수, 윤동식 선수의 히어로즈 데뷔전부터 막강한 선수가 지목된 점에 팬들은 또 한 번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데뷔전이 있던 2007년 6월, 치열한 접전 끝에 윤동식 선수는 자신의 주특기인 암바로 멜빈 마누프를 꺾고 모든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첫 승을 거두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그동안 프라이드에서 줄곧 4연패를 하다가 K-1에서 약한 선수를 만나 승리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는데 절대 아니다. 프라이드에서 4연패를 겪긴 했지만 경기의 내용이나 상대 면에서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섯 번째 시합은 어떤 경기에 참가하더라도 준비가 되어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이후 윤동식 선수는 젤그 갈레시치, 파비오 실바 선수를 물리치며 3연승을 이어갔고, K-1 히어로즈 라이트헤비급에서 확실히 자신의 입지를 넓혀나가고 있다. 유도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특히 그라운드 기술에 강한 것 같다는 그는 그라운드 기술 같은 경우 배우고 익히려면 상당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에서 20년간 해온 유도의 몫을 톡톡히 본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윤동식 선수는 선수들과 뜻을 모아 팀 尹을 창립하여 종합격투기 대중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훈련 차 미국과 일본을 돌아다니다보면 일반 대중들이 종합격투기를 참 많이 좋아하고, 그래서 그만큼 대중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종합격투기의 인기가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대중화되어 있지 못하고,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그 수준이 아직 못 미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 종합격투기 선수들이 많이 나와야할 것이고 연습장도 많이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종합격투기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종합격투기는 말 그대로 종합이기 때문에 복싱, 유도 등 모든 것을 배워야한다고 말하는 윤동식 선수는 결코 쉽게 볼 곳이 아니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자신이 어떤 하나의 강한 베이스를 갖고 와서 시작하더라도, 꼭 다른 약한 것으로 무너지게 되어있다. 인생을 걸고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는 종합격투기 선수들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며 어려워하지 말고 많이들 배우러 오셨으면 좋겠다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노장이라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경기에 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강한 포부를 밝힌 윤동식 선수, 그의 말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목표에 갈증을 느낄 수 있는 진정으로 강한 선수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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