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슈 - 2008 삼성경영쇄신안 종합분석>

악명 높은 삼성의 복잡한 기업 구조 대개편
지배구조의 투명성 강화와 경영효율성 제고

삼성 이건희 회장이 1987년 취임한 지 20여년 만에 퇴진하고,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도 고객총괄책임자(CCO) 자리에서 물러나 일단 해외현장 경험을 더 쌓는 방향으로 백의종군한다. 하지만 재계와 삼성 안팎에서는 이 회장에서 이 전무로 이어지는 경영권 상속&#8228;승계 구도의 근간은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4월 22일 발표된 삼성의 경영쇄신안은 이건희 회장의 완전 퇴진 등 그동안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강도 높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는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각 경제단체들은 공식적으로“삼성이 국민으로부터 더 큰 신뢰를 얻고, 경제계 전반에 투명경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정착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하지만 많은 기업인들은‘컨트롤 타워’를 잃은 삼성의 앞날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처럼 쇄신안에 대한 재계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삼성이 과거의 유산을 떨치고 국민경제에 더 큰 기여를 해주기를 바란다는 희망만큼은 다르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공식논평을 통해“경제계는 삼성그룹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이건희 회장의 경영 일선퇴진과 전략기획실의 폐지 등을 담고 있는 삼성그룹의 쇄신안이 국민의 정서를 고려한 고뇌의 결단이라고 생각하며 충격을 금할 수 없다”고 전했다.“그런 만큼 이제는 삼성과 관련된 추가적 의혹이나 더 이상의 사회적 논쟁을 지양하길 바란다”고 밝힌 전경련은“삼성이 새로운 경영체제하에서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국민적 성원과 지지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대한상공회의소는 공식 논평을 통해“이번 쇄신안이 삼성이 국민으로부터 더 큰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기업의 투명경영과 사회적 책임을 한 단계 진전시키는 것은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 아직도 남아있는 잘못된 관행과 의식을 바로잡는 중요한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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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허물은 모두 제가 떠안고 가겠다”
삼성은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고 특검에서 조세포탈로 문제가 된 이 회장의 차명계좌(재산)는 실명전환을 거쳐 누락된 세금 납부 후, 개인 이익이 아닌 사회 등의 유익한 일에 쓰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전략기획실 해체에 맞물려 이학수 부회장과 전략기획실 산하 전략지원팀장을 맡고 있는 김인주 사장은 잔무처리를 마친 뒤, 일체의 직을 사임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삼성은 또한 은행업 진출을 하지 않기로 하고, 대신 비(非)은행 금융업종 육성에 주력하기로 했다. 삼성은 그러나 지주회사 전환은 당장 20조원이 필요하고,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위협받는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순환출자 해소 문제는 순환출자의 핵심 고리 가운데 하나인 삼성카드 보유 에버랜드 주식(25.64%)을 4~5년 내 매각하는 등 계속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 지난 몇 달 간 고심 끝에 퇴진을 결정했다고 밝힌 이 회장은 앞으로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과 등기이사, 문화재단 이사장 등 삼성과 관련한 일체의 직에서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회장의 이런 단안에 따라 그의 부인 홍라희씨도 리움미술관 관장과 문화재단 이사직에서 물러나고,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역시 고객총괄책임자(CCO)에서 사임한 뒤, 열악한 해외사업장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현장을 체험하고 시장개척 업무를 하는 데 매진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삼성은 이 회장의 퇴임 후 삼성을 대외적으로 대표할 인물로 삼성생명 이수빈 회장을 지명하고, 앞으로 계열사 간 업무 협의와 조정을 맡게 될 사장단회의(사장단협의회)를 실무 지원하기로 했다. 대외적으로 삼성그룹의 창구와 대변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행정서비스를 전담하는 업무지원실을 임원 2~3명 정도로 꾸려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설치키로 한 것이다. 삼성은 쇄신안 가운데 전략기획실 해체와 사임 등 가능한 부문은 6월말까지 법적 절차와 실무 준비를 거쳐 완료한 뒤, 7월 1일부터 차질 없이 시행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삼성은 투자와 고용 등 비즈니스 현안을 다뤄나가면서 새로운 경영체제를 신속하게 재정비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 사진 1. 이건희 前 삼성그룹 회장이 삼성그룹 경영쇄신안을 발표하며 그룹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실질적인 자기 쇄신 vs 일시적인 기피 수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를 골자로 한 삼성그룹의 경영쇄신안을 놓고 정치권은 엇갈리게 반응했다.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 등 주요 정당은 삼성이 실질적인 자기쇄신을 통해 명실상부한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변모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삼성이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통해 국민적 신뢰를 회복해야만 한다”며“세계 초일류기업의 위상에 걸맞게 더 큰 변화와 혁신으로 국민과 국가경제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만시지탄이지만 경영쇄신 의지를 확인한다”며“경영권 승계나 불법 로비의혹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이 여전히 남은 만큼 진정성 있고, 실질적인 자기쇄신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국민적 지탄을 일시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돼서는 안 된다”며“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실질적인 경영쇄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반면에 진보정파들을 중심으로 한 군소정당들은 일시적 눈가림이라고 폄하하며, 경영권 세습을 보다 근원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선진당 김창수 대변인은“자칫 삼성에 쏠린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벗어나기 위한 일시적 기피수단이거나, 이미 기소된 삼성 가족들의 면피용 제스처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며“삼성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왕적 지배구조와 재벌 2, 3세의 승계방식을 탈피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적합한 근본적인 전환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박승흡 대변인은“경영권의 직접적 세습을 과도적 세습으로 바꾼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며“이번 쇄신안에는 암암리에 황제식 경영권 세습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고 비판했다. 또한“경영능력에 한계를 보였으며 지분도 없는 이재용 전무가 불법적 경영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진보신당 노회찬 공동상임대표는 서면브리핑에서“이번 쇄신안은 일시적 눈가림”이라며“이재용 전무는 백의종군(白衣從軍)이 아니라 백의퇴군(白衣退軍)해야 하며, 삼성 비자금 사태의 재발을 막는 길은 삼성재벌 해체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심상정 공동대표는“이건희 회장은 아들에게 경영권을 세습시키려는 야심을 버리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삼성을 국민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창조한국당 김지혜 부대변인 역시“진정한 경영쇄신안이라고는 볼 수 없다”면서“그러나 이번 쇄신안으로 그동안의 그릇된 재벌문화가 성숙한 공동체 문화로 거듭나고 우리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건강한 첫걸음이 되길 기대한다”고 논평을 통해 밝혔다.

▲ 사진 3. 삼성특검의 최종 수사결과 발표 후,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왼쪽)과 박원석 협동사무처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진정한 지배구조 혁신을 위한 계기 마련
경제개혁연대는 이번 경영쇄신안에 대해“비록 세간에서 예상했던 것보다는 일부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으나,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건희 회장일가의 과거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의 온당한 이행과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실질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특히“삼성에버랜드 등의 불법행위를 통해 얻은 이재용 씨의 부당이득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고,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생명,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그룹의 핵심 출자구조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한 경제개혁연대는“현재 예정되어 있는 이명박 정부의 보험업법 개정에 따라 금산분리 원칙이 대폭 완화된 보험지주회사를 통해 기존의 지배·승계구도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근본적 혁신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고 전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특검 수사는 삼성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밝힌 경제개혁연대는“삼성의 쇄신안이 불리한 사회 여론을 달래고 이건희 회장의 실형을 피하기 위한 미봉책에 그칠 것이 아니라, 삼성그룹의 진정한 지배구조 혁신을 위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참여연대 또한 삼성 불법행위의 핵심원인이 되는 이재용 씨 경영권 승계 중단에 관한 언급이 없는 점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실질적 방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은 미흡한 점이라 평가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번 경영쇄신안에서“전근대적인 황제경영체제에서 비롯된 왜곡된 기업지배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본다”며, 삼성그룹의 경영 쇄신방안으로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번 쇄신안이 국민들의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전략기획실의 폐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삼성그룹의 얽히고설킨 후진적인 지배구조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분명한 의지와 청사진이 제시되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경실련은 특히“앞으로 삼성을 계열사별 독립경영체제로 변화시키든가 아니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겠다든지 하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이에 의거하여 순환출자나 상호출자를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제시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지난 2006년 2월에도 삼성그룹은 불법대선자금 제공 및 이재용씨로의 편법상속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8000억원 사회 환원과 함께 구조본 축소, 계열사별 독립경영 강화를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얼마 전 종료된 삼성 특검은 이 약속들이 당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국면전환용 발언이었음을 증명해주었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이번 발표 또한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유야무야될 가능성에 여전히 놓여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삼성은 과거 LG와 SK가 했던 것처럼, 선진적인 지배구조로 변화될 수 있도록 결단하여야 한다. 이것만이 삼성이라는 기업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이는 것이며,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지속적 성장을 보장하게 될 것이다. 글로벌 삼성. 이제는 그 세계적 위상에 걸맞게 황제경영의 폐해에서 벗어나 경영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전근대적 지배구조를 혁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NP

▲ 사진 4.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의 핵심 인물인 이재용 前 삼성전자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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