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에 따른‘거짓말’탐구
인간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 연구가 폴 에크만 교수는 사람들이 사소한 거짓말부터 거대한 속임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거짓말을 평균적으로 8분에 한 번씩 하루에 200번이나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조지 서번은“거짓말은 제2의 천성”이라고까지 말한다. 매사추세츠대학교 심리학과의 로버트 펠드먼 교수 역시“거짓말은 어떤 면에서는 사회적 재능”이라고 말한다. 만하임대학의 사회심리학자이자 거짓말 연구가인 마크 안드레 라인하르트는“거짓말은 사회의 공동생활을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일본의 심리학 권위자 시부야 쇼조는 저서<비기너 심리학>에서 사람은 누구나 때와 장소를 적당히 가려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거짓말에는 사기나 위증처럼 남을 속이려는 의도가 명확히 담긴 것도 있지만,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한 아부나 애교 섞인 거짓말도 있다”며“결국 상황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여기서 다룰 거짓말은 그러한 거짓말(직장동료의“나 오늘 어때?”질문에 마음속으로는‘어제보다 별로인데’라고 생각하면서도“예쁘다”고 말해주는, 혹은 배탈이 났을 때 맞선남에게‘설사가 급하다’고 말하지 않고“손 좀 씻고 오겠다”고 말해주는 그러한)이 아니라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혹은 습관적인 병적 거짓말이다.
리플리 효과
들통 난 거짓말들
1996년 미 대선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을 만든‘신군주론’의 저자 딕 모리스는 클린턴의 부인 힐러리 상원의원을 이렇게 평했다.‘끊임없이 거짓말을 만들어서 자기를 창조해내는, 근본적으로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그는“힐러리는 부모가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영국의 힐러리 경을 본떠 이름을 지었다고 했지만 힐러리 경이 그 산을 등정한 것은 힐러리가 태어난 지 5년 지난 1953년이었다”며 2004년<역사다시 쓰기>란 책을 통해 힐러리의 거짓말을 폭로했다.
인도의 성자(聖者) 마하트마 간디. 그가 부인이 아닌 젊은 여성들과 함께 벌거벗고 잠을 자던 습관은 그의 상징‘비폭력 저항과 인도 독립운동’에 묻혔다. 한때 누군가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자 그는‘브라마차리아’라는 자신의 정화서약을 시험하는 방식이라고 둘러댔다. 매력적인 젊은 여성과 같이 밤을 지내면서 성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행동뿐 아니라 정신에서도 서약을 지켰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2007년 국내 언론을 뜨겁게 달군 신정아 씨의 거짓말 행각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를 중퇴, 미국으로 건너가 캔자스대에서 학사학위와 경영학석사를 받았고, 예일대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 신정아 씨의 얘기가 모두 거짓으로 들통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조사를 받으면서도 신정아 씨는 여전히‘나는 예일대 박사’,‘변양균씨는 동지적 관계’라고 주장했다. 2011년 자전적인 책을 쓴 뒤 TV에 출연해서도 역시 자신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강력 부인한 신정아 씨. 신 씨 사건 후 KBS<굿모닝 팝스>이지영 씨, 만화가 이현세 씨, 영화감독 심형래 씨 등 유명인들의 학력 위조와 관련한 폭로와 고백이 잇따랐다.
작년 케이블 프로그램<슈퍼스타K 2>의 본선 진출자 중 한 명이었던 김그림은 임무수행 과정에서 과욕을 부리고 심사위원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모습이 방송돼‘국민 밉상’이 됐다. 이후에도 김그림은 시종일관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다 결국 본선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이루의 아이를 임신했다가 낙태했다고 주장한 작사가 최희진은 태진아-이루 부자와 진실공방을 벌였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동정어린 시선을 받았지만, 결국 최희진은 자신의 주장을 몇 번씩이나 연거푸 뒤집으며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여준 끝에, 결국 네티즌들로부터 많은 질타와 함께 정신 상담을 권유받기까지 했다.
약 4억 원 상당의 명품으로 치장하고 Mnet의<텐트 인 더 시티>에 출연해‘4억 명품녀’라는 별명을 얻은 김경아 씨는 국세청의 조사와 방송사와의 진실공방을 거치며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김 씨가 방송에서 말했던 보석이나 자동차 등도 본인의 것이 아니며, 이혼 경력도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김 씨는 이런 사실들을 인정하지 않고 방송사와 전 남편, 통신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원정도박 의혹을 받으며, 동시에 잇따른 방송 불참으로 물의를 빚었던 신정환은 자신의 팬카페에‘카지노에 간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 관광의 목적이었으며, 뎅기열에 감염돼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현지 취재 결과 이는 명백한 거짓으로 드러났고, 현지 주민들의 도박 장면 목격담도 이어졌다. 신정환은 결국 지금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정신의학에 따른 거짓말
병적 거짓말, 원인은 무엇일까
정신의학전문의 찰스 포드는 자신의 저서<마음을 읽는 거짓말의 심리학>에서“병적 거짓말 증세가 있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육체적ㆍ성적 학대를 당했거나 문제 가정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높다”며“이들은 또한 충동적인 행동을 많이 하고 자존감이 낮으며 난독증 같은 대뇌기능 장애 증상을 보인다”고 말한다. 병적 거짓말은 통상적으로 여러 가지 인격적 문제가 있을 경우 발생한다. 대표적으로‘경계성 인격장애자’에게 잘 나타나는 증상인데,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경우에도 양심의 가책이 없어 거짓말 증상이 나타난다.‘경계성 인격장애’란 아침에는 평온한 상태로 지내다가도 저녁이 되면 자살충동을 느낄 정도로 극단적인 감정의 기복을 보이는 등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이는 질환이다. 또한 병적 거짓말은 스키마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은 성장 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하며 자신이나 세상과 미래를 보는 가치관의 총합인‘스키마’가 형성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서적 욕구가 결핍, 혹은 과잉 충족될 경우 여러 종류의 스키마가 잠재의식 속에 자리 잡는다. 그러한 스키마가 만드는 왜곡된 해석은 불안ㆍ분노ㆍ수치심ㆍ공포 등 부정적 감정을 만들어내고, 그러한 감정에서 회피하기 위해 다른 스키마가 개발된다. 자기과시ㆍ허풍ㆍ허세 등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니체는“가장 흔한 거짓말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데는 욕심, 소망 성취, 가학적 충동, 자존심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분명한 것은 거짓말은 결국 자기기만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심리학 권위자 시부야 쇼조는 저서<거짓말 심리학>에서 병적 허언증이 히스테릭한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나타나며 이런 사람은 대개 허영심이 강해서 자신을 남에게 그럴싸하게 보이려 한다고 말한다. 다른 저서<상대의 심리를 읽는 기술>에서는 이런 사람들은 자기 현시욕이 강해 남들한테 주목받지 못하면 견딜 수가 없어 실제 이상으로 허세를 부린다고 말한다. 시부야 쇼조는“우리 주위에는 이런 사람이 상당수 있는데, 이 경향이 극단적이 되면‘연기성 인격 장애’라고 불리는 정신질환이 된다”고 말했다.
병적 거짓말의 치료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김원 교수는“거짓말에 중독된 사람에게는 거짓말이 쌓은 자긍심과 자존감은 모래성에 불과하고, 그 모래성은 금세 소멸한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는 동시에 전문가의 심리치료와 가족 등 주변인들의 지지가 필요하다”며“그가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스로가 자신이 부족한 부분에만 집착하다보면 스스로가 지닌 것들을 전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돌아보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비현실적인 백일몽을 꾸게 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자신이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가장 잘 알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거나 회피하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을 편안한 마음으로 찬찬히 살펴보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한 정신과 전문의는 충고했다. <NP>
*공상허언증인 사람들의 특징
① 자신의 세계는 완벽하다.
보통 사람들이 공상허언증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첫 반응은 ‘이 사람, 왜 이리 잘난 척해?’일 것이다. 의심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완벽하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감탄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포장한다. 이들은 남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흥미를 느끼는 것을 보며 기쁨을 느낀다. 그래서 계속 거짓말을 만들어낸다.
② 이상이 높고 욕망이 강하다.
공상허언증 환자 중에는 의외로 꽤 괜찮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높은 이상은 현재의 위치까지 오르게 된 원동력이 됐지만 허언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남들에게 자신을 과장되게 표현하면서 자신의 삶은 완벽해진다고 믿는다. 또 무의식중에라도 자신이 품고 있던 욕망을 사실인 양 말하며 만족감을 얻는다.
③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이 없다.
또 하나의 특징은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이 말을 만들어내는 원인에는 남을 해하기보다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죄책감이 없으니 어떤 거짓말도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④ 평소에도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조울증 환자도 공상허언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조울증 환자는 기분이 좋아 붕 떠있을 때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한다. 그 와중에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제 기분에 말을 내뱉다 보니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게 된다.
⑤ 자신의 말에 토를 달면 화를 낸다.
공상허언증 환자들은 본인이 말한 내용에 대해 추궁을 당하면 반사적으로 화를 낸다. 깨어져선 안 되는 자신의 비밀이 드러나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공격적 방어 형태를 취한다. <출처:레이디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