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적 충동을 통해 “깨끗하고 좋은 기운(氣韻) 전하고파”

미술에서 추상화(抽象畵)는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작품으로 와 닿기도 한다. 각종 색채가 여기저기 어우러진 형태는 짐짓 한눈에 봐서는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작가가 그를 통해 말하고 싶어 하는, 보여주고 싶어 하는 어떤 ‘분위기’가 있다. 안복순 화백의 작품들은 기운을 품고 있을까.

모친께 물려받은 미술… ‘맑은 기운’ 품다

   ▲ 안복순 화백
이제는 미술계의 어른이 된 안복순 화백은 어머님의 영향으로 어릴적부터 그림을 그렸고 17세의 이른 나이에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 홍익대학교에 들어가 22살에 대학원까지 마쳤다. 굉장히 빠른 속도다. “그만큼 작품 활동을 해나가기 위한 열망이 컸다”고 말하는 안 화백은 어렸을 때 “그저 만화가 재미있어서” 미술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만화책을 베껴 그리기도 하면서” 그림에 열중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집에서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한 그가 이 같은 꿈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어머니’라는 존재였다. 안 화백의 어머니는 자수와 서예 등에 주예가 깊었다. 이른 살이 넘은 나이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간 모친(母親)은 74세 때 미술에 “감사하다”라는 표현을 썼다. “작품 활동과 미술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지” 감사해하던 어머니의 마음을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맞는 말씀”이라고 고개를 끄덕인 안 화백은 “미술을 계속 하다 보니 점점 내 고집이 생긴다”며 “한 길만을 고집하는 이것이 아집이라면 아집(我執)”이라고도 표현했다. 이런 그가 그려내는 작품과 그 속에서 표현해내려는 세계 역시 어머니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과 전시회를 열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알려온 안 화백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추상(抽象)’에 대해 말하다

 
안 화백이 그려낸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처음에는 기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안 화백 스스로도 자신의 작품을 “특이하다”고 표현했다.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초기에는 구상(具象)을 하다가 스스로 맞지 않다고 느껴 추상화를 그리게 된 그는 요즘 인사동에서 그림을 그리는 청년들을 보면 안타까운 점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그림을 모르는 사람들이 추상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문을 연 그는 “기본적으로 추상은 아주 어려운 경지에 다다랐을 때에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강조한다. ‘아무렇게나’ 그려대는 것이 추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부산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그는 보다 왕성한 작품 활동을 위해 교수직에서 내려왔다. 젊은 작가들이 요즘 흔히 말하는 ‘느낌’대로 그리는 그림에 조금은‘깊이’가 더해졌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누구나 태초에 태어나 자라면서 아프기도 하고, 치유를 받기도 하며‘인간사(人間事)’그대로를 경험해가는 우리네 삶을 ‘생성(生成)’이라는 화두로 작품 속에 표현해내온 안 화백은 “발화(發花)하여 태어나서 움직이는 모든 것이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전 어머니와 함께 산(山) 속 절에 자주 다녔던 안 화백은 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 열심히 ‘갈구(渴求)’하는 광경을 보았다. 자식 걱정, 남편 걱정, 돈 걱정, 건강 걱정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세상의 어려움을 겪지 않는 사람이란 없었다. 하지만 안 화백은 이미 젊은 나이에 “내 힘으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젠가 아파서 쓰러진 뒤 저승의 문턱까지 경험하고 나니 더욱 그런 내 신념에 확신이 섰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생성’과 ‘발아’,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어머니와 함께 산에 다녀오고 나면 산의 신선하고 좋은 기운이 충전되어 “그렇게 일이 잘될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그는 작품 활동을 해오는 내내 ‘생성(生成)’이라는 커다란 맥을 바탕으로 집약된 표현예술을 선보여 왔다. 생성이라는 커다란 근원 속에 ‘발아’라는 주제를 가지고 우주의 생성, 꽃나무 둥 자연의 생성에서부터 음악의 첫 음, 한 민족의 태동, 종교의 태동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전개하면서 작가 자신의 마음과 눈으로 읽고 표현한 것들을 그려내왔다. “혼돈 속에 돌출하고자 하는 잠재적인 그 무엇”을 그려내기 위해 만물의 근원에 대한 접촉 의지를 추상(抽象)으로 표현해온 그는 우주와 자연, 생명체, 종족, 종교, 음악 등을 포함한“ 모든 일체만상의 생성원리를 붙잡고 있는 핵심”과 근원적 충동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기를 바랐다. 선입견이나 어떠한 주관적, 집합적 개입 없이 문자 그대로 ‘순수(純粹)’한 상태 그대로 그어지고 칠해지는 과정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태초의 진동”을 진솔하게 옮겨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었다. 동시에 안 화백은 “자기 몫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것은 바로 “남을 위한 삶”이라 말한다. 언제나 ‘다른 이의 편’에 서는 삶이야말로 자기 책임을 다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배움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할 줄 알며, 섣불리 상처가 되는 말과 행동을 내뱉지 않음으로써 하루하루 ‘맑은’ 기운을 유지하는 삶, 바로 그것이 그가 그려내는 작품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였다. 오는 10월 안산 예술회관에서 2일부터 15일까지 안산아트페어를 앞둔 안 화백의 작품들은 11월 1일부터 15일까지 개인전을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12월에는 15일부터 올해의 마지막 날인 31일까지는 LA에서도 전시회를 가진다. 쉼 없이 왕성한 활동을 해나가면서도 ‘맑은’ 기운을 놓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으로 우리 삶에 긍정적인 메시지와 기운을 전해주는 ‘참된’ 예술의 경지(境地)를 만난 듯했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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