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공의 72변신 은 현대판 멀티 페르소나(Persona)
신화의 재해석, 도술에서 디지털 아바타의 시대로
돌에서 태어난 이단아, 현대인의 초상이 되다
[시사뉴스피플=차홍규 객원 편집위원] 정년퇴임 후 다시 찾은 북경 베이징의 거리, 그리고 칭화대 재직시절 미술대학의 실기실에서 학생들의 작업을 지도하다 보면 작품의 소재로 유독 자주 마주치는 형상이 있다. 그 것은 바로 원숭이 왕, 손오공(孫悟空)이다. 수천 년 전 명대 소설 『서유기』의 주인공이 21세기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여전히 가장 강력한 문화적 아이콘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손오공이 가진 '72변(變)'의 도술이 단순한 신화적 상상력을 넘어, 현대인이 겪고 있는 '다중 정체성(Multi-Persona)'의 고대적 예언이라고 분석한다.
손오공은 고정된 실체가 없는 존재다. 그는 화과산(花果山) 바위에서 태어난 자연의 산물이자, 도를 닦아 신선이 된 수행자이며, 천계를 어지럽힌 반역자(제천대성/齐天大圣=孙悟空)이자, 부처의 제자가 되어 불경을 구하러 가는 구도자다. 이 극단적인 정체성의 변화는 오늘날 낮에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밤에는 유튜버나 게이머로, SNS 공간에서는 또 다른 자아로 살아가는 우리 시대 '하이브리드 인간'들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72변의 도술, '가면'을 쓰는 현대인의 생존 전략
손오공의 가장 큰 무기는 여의봉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자신을 바꿀 수 있는 72가지 변신술이다. 유교적 위계질서가 엄격했던 고대 중국에서 이러한 '변신'은 질서를 교란하는 위험한 능력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하이브리드 아티스트의 시각에서 볼 때, 변신은 환경에 적응하고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고도의 생존 전략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수많은 디지털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익명의 커뮤니티(Community)에서는 날 선 비판가가 되고, 비즈니스 네트워크에서는 유능한 전문가가 되며, 인스타그램에서는 행복한 미식가가 된다. 손오공이 머리카락 한 줌을 뽑아 수천 마리의 분신을 만들어내듯,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수십 개의 계정을 생성하며 자아를 분산시킨다. 칭화대의 젊은 수재들이 손오공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들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과 분열을 손오공이라는 신화적 인물이 '능력'으로 정당화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여의봉과 스마트폰, 시공간을 확장하는 도구
손오공의 여의금고봉은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하여 귓속에 넣었다가도 하늘을 찌를 듯 키울 수 있다. 이는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확장하려는 욕망의 투사다. 현대인에게 이 여의봉은 바로 '스마트폰'이다. 우리는 주머니 속의 작은 기기를 통해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듣고, 가상 세계의 영토를 확장하며, 방대한 데이터를 조작한다.
필자가 중국을 넘나들며 목격한 중국의 디지털 전환은 손오공의 근두운(筋斗云)보다 빨랐다. 물리적 거리를 무너뜨리는 네트워크의 힘은 손오공이 한 번의 재주넘기로 10만 8천리를 날아가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인문학적 질문이 발생한다. 도구의 확장이 자아의 성숙을 보장하는가? 손오공이 긴 여정을 통해 결국 '투전승불(斗转乘佛/싸움으로 세상을 이끄는 부처)'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했듯이, 우리의 디지털 확장 역시 단순한 기술적 과시를 넘어 내면의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
금고아(緊箍兒), 연결된 사회의 보이지 않는 구속
손오공의 머리에 씌워진 금고아는 그를 통제하는 유일한 장치다. 제멋대로인 자아를 다스리기 위한 방편이었으나, 현대적 관점에서 이는 '데이터의 감옥' 혹은 '사회적 시선'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는 자유롭게 변신하고 소통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알고리즘과 평판 조회라는 보이지 않는 금고아에 묶여 있다. 중국의 사회 신용 시스템이나 한국의 SNS 평판 문화는 현대판 '긴고주(长鼓柱/금고아를 조이는 주문)'와 같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다중 정체성은 결국 진정한 자아를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다. 필자는 예술을 통해 이 금고아를 '구속'이 아닌 '균형'의 도구로 재해석하고자 한다. 진정한 하이브리드 인간은 여러 가면을 쓰되, 그 중심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 철학이라는 축을 세워야 한다.
파편화된 자아를 통합하는 하이브리드 미학
손오공의 여정은 결국 흩어졌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이다. 72가지로 변신하던 그는 결국 '나'라는 본질로 돌아온다. 현대의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 현상 역시 자아의 분열이 아니라, 자아의 풍요로운 확장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필자가 한중 간 문화 활동을 하며 강조하는 '하이브리드' 정신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예술가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교수로서의 정체성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손오공의 변신술처럼 유연하게 어우러질 때 비로소 창조적인 에너지가 발생한다. 칭화대 교수 시절 제자들에게 늘 당부했던 말이 있다. "손오공처럼 천변만화(千变万化)하되, 너의 중심에 있는 돌처럼 단단한 본질은 잊지 마라."였다. 디지털 시대의 우리는 모두 손오공이다. 수많은 플랫폼 위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그 모든 모습이 결국 나라는 큰 바다로 모이는 강줄기임을 깨달아야 한다.
현대, 다시 손오공을 소환하는 이유
우리는 왜 다시 중국의 고전 신화에 주목해야 하는가. 그것은 신화 속에 미래 문명의 암호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손오공의 72변은 디지털 아바타(Avatar)와 메타버스(Metaverse)의 원형이며, 그의 여의봉은 초연결 사회의 상징이다. 대륙의 암호를 푸는 세 번째 열쇠는 '유연한 정체성'이다.
과거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변모시키면서도, 인류 보편의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손오공의 정신이야말로 한중 공영의 비전을 세우는 데 가장 필요한 인문학적 토대다. 우리는 이제 각자의 여의봉을 들고, 자신만의 72변을 통해 새로운 문명의 지도를 그려나가야 한다. 손오공이 서천취경(西天取经)을 통해 불법을 얻었듯, 우리도 이 혼란스러운 디지털 변신의 끝에서 진정한 인간다움이라는 진리를 얻게 될 것이다.
글쓴이 차홍규
시사뉴스피플 편집위원, 한중미술협회 회장
북경 칭화대 미대 교수 정년퇴임, 한국조형예술원 석좌교수
중국 료녕성 선양시 인민정부 해외이사, 미얀마 JIS/GGU 대학 석좌교수
중국 하북미술대, 선양도시대학 영구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