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왜 스마트폰을 좋아했을까?
유교 질서와 디지털 네트워크의 기묘한 공생
2,50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기기(奇器)와의 조우
[시사뉴스피플=차홍규 객원 편집위원] 정년퇴임 후 오랜만에 다시 찾은 칭화대 교정에서 아침을 맞이하니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칭화대는 후진타오 전 주석과 시진핑 현 주석을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리정다오와 양전닝 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길러낸 명실상부한 중국 최고의 지성 전당이다. 중국의 정치와 산업을 이끄는 이 엔진실 안에는 수천 년을 이어온 수재들의 학풍과 손안의 최첨단 스마트폰이 조금의 이질감도 없이 공존하고 있었다.
흔히들 디지털 기술이 전통을 파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륙의 사정은 다르다. 오히려 공자가 설계한 2,500년 전의 ‘유교적 질서’라는 거대한 하드웨어 위에, 스마트폰이라는 최신 소프트웨어가 완벽하게 이식된 형국이다. 만약 성인 공자가 오늘날 베이징의 지하철역에 서 있다면, 그는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예(禮)’와 ‘인(仁)’이 비로소 디지털이라는 무한한 그릇을 만났다고 판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적 위계에서 데이터의 위계로: 사회 신용 시스템의 본질
공자 사상의 핵심인 ‘예(禮)’는 사회적 위계와 질서를 유지하는 도덕적 규범이다. 과거에는 이 규범이 ‘군자’라는 특정 계층의 수양과 평판에 의존했다면, 현대 중국은 이를 스마트폰 기반의 ‘사회 신용 시스템(Social Credit System)’으로 자동화했다.
중국인의 스마트폰 속에는 개인의 도덕성이 실시간 수치로 흐른다. 교통법규를 준수하는지, 부모님께 효도를 다 하는지,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는지가 방대한 빅데이터로 수집되어 점수화된다. 점수가 높은 이는 ‘현대판 사대부’로서 공항 대기실 우선 이용이나 금리 우대 등 실질적인 예우를 받는다. 반대로 점수가 낮은 이는 ‘소인배’로 분류되어 사회적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이는 공자가 그토록 갈구했던 ‘도덕적 긴장감이 흐르는 사회’를 디지털 기술로 구현한 것이다. 스마트폰은 이제 개인의 양심을 비추는 거울이자, 사회적 위계를 결정하는 현대판 과거(科舉) 시험장이 되었다.
꽌시(關係)의 디지털 영토 확장과 '디지털 효(孝)'
중국 사회의 강력한 엔진인 ‘꽌시’는 이제 ‘위챗(WeChat)’이라는 거대한 디지털 사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자는 가족의 유대가 국가 유지의 근본이라고 보았다. 위챗은 이 가족적 유대를 14억 전체로 확장하는 도구가 되었다. 명절마다 오가는 디지털 ‘홍바오(红包, 세뱃돈)’는 단순한 금전 거래가 아니다. 그것은 정(情)과 의리(義)라는 보이지 않는 끈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의식이다.
필자가 목격한 대륙의 스마트폰은 차가운 기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멀리 떨어진 자식이 고향의 부모에게 실시간으로 얼굴을 보여주는 ‘효(孝)의 전령’이었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仁)의 매개체’였다. 개인주의가 극심해지는 서구의 디지털 문화와 달리, 중국의 스마트폰은 오히려 집단주의적 유대를 더욱 촘촘하게 옥죄고 연결한다. 공자는 스마트폰을 통해 14억 인구가 하나의 거대한 ‘디지털 가족’으로 묶이는 모습에서, 자신이 꿈꿨던 대동(大同) 사회의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지식의 독점에서 데이터의 공유로: '학(學)'의 민주화
유교는 철저한 학습의 종교다. 『논어』의 첫 문장은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로 시작한다. 고대 중국에서 학습은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으며 문자는 곧 권력이었다. 스마트폰은 이 지식의 권력을 민족과 계층을 넘어 민주화했다. 칭화대의 최고급 강의부터 소수민족의 민속학 자료까지 대륙의 모든 지식이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데이터의 형태로 흐른다.
중국인들은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도 스마트폰을 통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고 학습한다. 그들에게 학습은 출세의 수단이자 자아를 수양하는 유교적 습속이다. 스마트폰은 군자가 지켜야 할 ‘예’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가시화하는 디지털 감시자가 되었다. 공자가 그토록 강조했던 외부적 규율로서의 ‘예’가, 기술이라는 옷을 입고 완벽하게 구현된 셈이다.
전통과 첨단이 빚어낸 하이브리드 문명
중국이 보여주는 디지털 전환의 속도는 세계를 경악하게 한다. 하지만 그 속도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방향’이다. 그들은 서구의 문명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오래된 인문학적 유전자를 최첨단 기술 속에 녹여내고 있다. 칭화대 교정에서 본 그 낯설고도 익숙한 풍경은 결국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전통을 어떤 기술적 그릇에 담아내고 있는가? 공자가 스마트폰을 좋아했을 것이라는 가설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이 인간의 도덕과 관계를 돕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유교적 이상향의 현대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대륙의 암호를 푸는 첫 번째 열쇠는 바로 이것이다. 기술의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이면에서 요동치는 5,000년 전통의 박동을 읽어내는 것. 스마트폰은 이제 대륙의 인문학을 나르는 가장 현대적인 수레가 되었다.
글쓴이 차홍규
시사뉴스피플 편집위원, 한중미술협회 회장
북경 칭화대 미대 교수 정년퇴임, 한국조형예술원 석좌교수
중국 료녕성 선양시 인민정부 해외이사, 미얀마 JIS/GGU 대학 석좌교수
중국 하북미술대, 선양도시대학 영구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