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건물들이 하늘을 에워싸고 있는 회색도시 광화문. 이곳의 답답함에서 벗어나 젊음과 낭만이 숨 쉬는 공간 대학로에 갔다. 뮤지컬 <메노포즈>의 두 주인공 배우 전수경과 홍지민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약속된 만남이었지만, 길을 걸으면서 두 배우와 나눌 이야기를 상상하며 나의 머릿속은 쉴 새 없이 두근거렸다.

▲ 지난 9월 8일부터 종로 연강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메노포즈>의 한 장면
많은 이들이 영화를 즐겨보지만, 답답한 스크린 속을 들여다보는 것을 넘어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을 직접 보고, 배우들과 공감을 느낀다는 것은 정말 굉장한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영화가 재미있어도 무대예술이 전해주는 그만의 매력을 대신할 수 없다. 특히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춤과 노래, 드라마가 동시에 펼쳐지는 뮤지컬은 관객에게 좀 더 흥분된 감동과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그리고 살아있는 열정의 무대를 보여주는 배우들은 관객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며, 또한 관객들은 눈부신 빛을 발하는 그들로 인해 미끄러지듯 공연 속으로 푹 빠져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무대 한 장면을 위해, 동작 하나, 하나와 대사 한 마디가 얼마나 많은 수정과 연습을 오가며 지금의 완성된 공연을 볼 수 있는지. 이것은 달이 각각 공전과 자전을 하기 때문에 지구에서는 항상 달의 한 쪽 면만이 보이는 것과 같다. 달 뒷면에는 운석이 떨어진 흔적이 앞면보다 훨씬 많다. 상처를 숨기면서도 계속 빛을 내는 것이다. 뮤지컬 배우들 역시 화려한 무대 뒤에는 말 못할 긴장과 고통, 끝없는 노력이 있기에 관객들은 더 멋지고 훌륭한 무대를 볼 수 있게 된다.

너와 나, 우리도 언젠가는 겪게 되는 그 이야기

오는 11월 12일까지 종로 연강홀에서 펼쳐지는 뮤지컬 <메노포즈>는 폐경(menopause)을 맞은 중년의 여성을 소재로 했다. 전 세계 대다수 여성들이 50살을 전후해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폐경은 폐경기증후군이라는 각종 증상에 시달린다. 얼굴이 갑자기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려 잠이 잘 오지 않으며, 잦은 건망증과 주름살로 괴로워한다. 무릎 관절도 아프고, 허리와 어깨도 아프다. 뮤지컬 <메노포즈>는 이런 중년 여성들의 고민을 유쾌하고 코믹하게 담았다. 우아해 보이려고 무던히 애쓰는 한물간 연속극 배우, 성공했지만 건망증과 외로움으로 상실감에 빠진 전문직 여성, 전형적인 전업 주부, 채식주의를 꿈꾸는 히피 스타일의 주부 등 각기 다른 상황과 성격의 네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처음 만난 백화점 속옷 세일 행사장에서 우연히 검정 레이스 브래지어를 놓고 옥신각신 한다. 그러다 한두 명씩 자신들이 직면한 사실을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점잖고 헌신적이었던 이들 여성들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녀들은 바로 폐경기를 겪고 있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뮤지컬 <메노포즈>는 이 네 명의 주인공을 통해 폐경기를 어떻게 축복의 시간으로 바꿀 수 있으며, 또 어떻게 해야 인생의 후반부를 더 활기차고 생산적이며 의미 있게 채울 수 있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주 타깃은 40~50대 중년 여성이며, 60~80년대 월드팝송 온리유, YMCA 등을 개사해 중년의 향수어린 감수성을 건드린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어머니와 딸, 아내와 남편 등이 함께 봄으로써 중년 여성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1세대 전수경, 내 삶의 동력은 On Stage

▲ 뮤지컬 <메노포즈>에서 전문직 여성을 연기하는 전수경
왠지 모를 도도함과 색다름이 묻어나는 뮤지컬 배우 전수경. 스키니즈 진에 티셔츠, 샌들에 화장기 없는 얼굴까지. 조금은 무거운 표정과 가라앉은 목소리였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굉장히 솔직했으며, 뛰어난 언어적 감각을 가진 그녀만의 카리스마에 나는 점점 침몰된 기분이었다. 전수경은 결코 예쁜 외모를 가진 배우는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자신감과 당당함, 즉 자신의 일을 사랑할 줄 아는 그녀였다. 당시 맡았던 커리어우먼 역에 다시 캐스팅 된 그녀는 “뮤지컬 <메노포즈>를 작년에 이어 올해 다시 하게 됐는데, 후배들의 추천이 가장 컸어요. 다들 정말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공연에서는 저를 제외하고는 출연자가 모두 바뀌었어요. 40대 여배우가 대부분이었던 초연 때보다 평균적으로 연령대가 훨씬 젊어졌죠.” 소재가 중년의 폐경기 인만큼 그녀도 혹시 공감하는 것이 있냐는 물음에 “건망증이요!”하고 반사적으로 대답한다. 요즘 들어 건망증이 부쩍 심해져 손에 들고 있는 물건도 어디인지 몰라 찾게 된다는 것이다. 뮤지컬 1세대 배우이기도 한 전수경은 그동안 뮤지컬 캣츠, 넌센스, 라이프, 렌트, 시카고, 키스미케이트, 갬블러, 맘마미아 등 그 작품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무대에 섰으며, 한국뮤지컬계의 흥행보증수표이자 최고의 여배우다. “5~6년 전만해도 공연장 잡기가 참 쉽지 않았어요. 큰 공연장은 일주일 이상 대관해주지 않을 정도였죠. 지금은 뮤지컬 시장이 큰 호황을 누리게 된 걸 그 누구보다 기쁘게 생각해요.” 하지만 질적인 성장보다 양적인 성장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뭔지 궁금했다. “다 기억에 남지만, 아무래도 높은 객석점유율과 인기로 사랑을 한 몸에 받은 뮤지컬 <맘마미아>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언젠가는 조승우나 박건형과 꼭 공연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이 보였다. 생각만으로도 신나고 설레어 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체력이 뒷받침해주는 한 브라운관이나 스크린 보다는 뮤지컬 무대에 계속 서고 싶다는 그녀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공부를 좀 더 많이 해서 연출을 할 생각이에요”라고 말한다. 자신의 일을 즐기는 깊고 유려한 뮤지컬 배우 전수경. 그녀를 볼수록 이야기할수록 마음을 선명하게 하는 설득력이 익숙하게 다가온다.

언제나 유쾌 상쾌한 그녀, 홍지민

▲ 마찬가지로 전문직 여성을 연기하는 뮤지컬 배우 홍지민
그녀를 로즈마리라고 표현하고 싶다. 상쾌하고 자꾸자꾸 맡고 싶은 향기를 가득 안은 채, 파란 잎들 하나, 하나에 향기를 머금은 로즈마리. 처음엔 단지 그녀가 전 작품에서 보여준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홍지민과의 짧은 만남은 어느새 긴 수다로 바뀌면서 그녀의 스스럼없는 유쾌한 성격에 반해 버렸다. 전수경과 같이 전문직 여성을 연기하는 홍지민은 최근 뮤지컬 <브루클린>에서‘파라다이스’역으로 파워 넘치는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으며, 영화 <잘살아보세>에서도 조연으로 출연해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서울예술단 뮤지컬 단원시절 이후 전수경과 공연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라고 이야기하는 그녀는 그동안 같은 작품을 너무나 함께 하고 싶었다고 한다. 중년 여성의 연기를 하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의 홍지민은 “그래서 완숙하게 보이고자 저는 다른 배우들과 다르게 사투리로 연기해요. 그리고 엄마와 시어머니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고 얘기하면서 제 역할에 더 집중하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예전 그녀의 엄마가 그때 왜 그랬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3~4월에 공연했던 뮤지컬 <행진! 와이키키브라더스>에서 유일하게 자신만이 원 캐스트였고, 나머지 배우들 모두가 더블 캐스팅으로 진행되어 유난히 힘들었다는 홍지민은 “더블 캐스팅 같은 경우엔 공연이 없는 날에는 쉴 수 있지만, 저처럼 원 캐스트는 하루라도 빠짐없이 무대에 서야 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 무척 힘이 들죠. 연습 때도 일일이 다 돌아가면서 호흡을 맞추다 보니 도중에 쉴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이상적인 캐스팅에 대해 물어보자, 전수경은 원 캐스팅이라고 답하는 반면에 그녀는 더블 캐스팅도 재미있고 나름대로 좋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앞으로 해 보고 싶은 캐릭터와 한 무대에서 공연해보고 싶은 선배 배우들이 너무 많다는 홍지민은 “제가 결혼한 이후로 살이 많이 쪘는데, 기회만 된다면 <지킬앤하이드>의 루시나 <시카고>의 록시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어떤 분들이 보면 좋은 공연인지 물어보았다. “중년의 여성들은 꼭 봐야하고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 혼자 오지 마시고, 남편과 아이들과 손잡고 오세요! 젊은 여성들도 다가오는 세대를 준비하며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결국엔 모든 분들이 다 보셔야 하는 공연이죠.” 연습실에서 본 홍지민의 사투리 연기는 편안한 일상처럼 친근했다. 그리고 그녀의 매력은 이야기하는 웃음 속에 푸릇푸릇하게 묻어나온다.

뮤지컬 배우 전수경과 홍지민은 이제껏 만나온 그 누구들에게 느낄 수 없었던 삶의 에너지와 친밀한 정겨움이 한가위 보름달마냥 풍성하게 와 닿았다. 이런 게 바로 두 배우의 호흡과 무대경험, 그로부터 생성되는 시너지가 아니겠나 싶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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