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으로 재탄생하다

"세상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결국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때가 되면 바람이 불고, 곡식 또한 여물게 돼 있는 게 자연의 섭리 아닌가 말이다." 손 전지사가 모처럼 은근한 자신감을 토로했다. 그는 아울러‘대통령은 역사의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드는 것이지, 정치인 개인의 인기나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피력했다.

윤양래 기자 tuksyom@

▲ 충북 보은군의 탄광에서
요즘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서 손 전지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 나고 있다. 예전의 지배적 시각은‘손학규, 사람은 좋은데 뜨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박 전대표나 이 전시장처럼 지역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중적 지명도도 크게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손 전지사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2~3%대에 불과했다. 박전대표나 이 전시장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 들어선 경천동지할 일이 일어 나고 있다. 박-이 캠프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자들뿐 아니라 중소기업 경영인, 국회 보좌관 등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연일 손 전지사가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일반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최근 손 전지사 지지율이‘마의 5%’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평가도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크게‘친박’과‘친이’ 진영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아직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의원들도 소장파를 비롯해 상당수 있다. 이들이 손 전지사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20여명의 의원들이 손학규의 민생대장정에 동참했고, 홍준표 의원 같은 중진도 공공연히 손학규 지지입장을 밝히고 있다. 언론의 움직임 역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모 보수 메이저신문의 경우 아예 기자 한명이 손 전지사의 민심대장정을 동행 취재하다시피 하고 있으며 또 모 TV방송은 1백일 대장정이 끝날 때 방영할 목적으로 역시 손 전지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손학규를 유력한 대권후보 중 하나로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언론들도 손 전지사에 대해 더없이 '호의적 기사'들을 싣고 있으며, 그때마다 텁수룩한 수염의 손학규 이미지는 국민들의 뇌리에 강열하게 인상지워 지고 있다.

부드러운 이미지 속의 강인함

초등학교 때는 나이 들어 늦게 입학한 불량스런 급우들과 얻어 터져가며 싸움을 하였고, 중.고 시절에는 트럼펫 주자였으나 연극에 빠진 적도 있으며 경기고교 2학년 때는 소주 한 병과 라면땅 한 봉지를 들고 한 달에 한 번 북악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보며‘수처작주(隨處作主)’즉‘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라는 선어(禪語)를 외쳤다고 한다. 그는 이에 대해 “지도자는 국민을 주인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그 사람들이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것이 민주적 리더십이다.”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고3 때 한일협정 반대시위에 뛰어들었던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 입학 후 거듭된 무기정학, 수배, 투옥 등을 겪으며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살았으며 무기정학 기간에는 탄광 막장에서, 졸업한 뒤에는 구로공단 등에서 밑바닥 인생으로 노동운동과 빈민운동을 했다. 박대통령의 서거 후 출감한 그는 1981년‘서울의 봄’에 민주화의 과실(果實)을 거부하고 돌연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후 개혁 지향의 교수로 서강대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그는 93년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3선을 기록하였다. 1994년 햇병아리 초선의원 시절에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독대를 신청하여“김현철씨가 정치에서 손을 떼고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건의를 하여 YS를 흥분케 만든 용기를 보였으며,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시 광명시의 현역 국회의원인 여당의 총재권한대행이던 쓴소리 조세형 후보를 꺾는 이변을 기록하기도 했다.

저평가의 이유

손 전지사는 경기도지사 재임시절 자신의 낮은 지지율에 대해‘언론 탓’을 한 적이 있다.“서울시장과 경기지사를 대하는 언론 태도가 하늘과 땅 차이다. 서울시장이 무슨 일을 하면 중앙지와 방송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그러나 경기지사가 무슨 일은 하면 지방지나 지역주재기자가 다루고, 그러면 신문 한 귀퉁이나 방송 끝부분을 차지할 뿐이다.”그로서는 할만한 불평이었다. 아무래도 경기지사보다는 서울시장에 언론 관심이 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재임 시‘언론 핸디캡’ 극복 방안을 찾지 못했던 그는 지사직에서 물러난 뒤 해법을 스스로 찾았다.‘민심 대장정’이 바로 그것이다. 2002년 6월 경기지사 취임 이후 외자유치를 위해 지구를 4바퀴 돌았다. 외자 유치액은 14조원.“우직하게 일한다.”는 평가를 들으며 경기도민들에게 높은 행정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여론지지율이 뜨질 않았다. 그를 아는 유권자들도“대통령이 되면 잘 할 사람인데…”라고 아쉬워한다. 왜일까? 정치지도자로서 장점만큼이나 많다는 그의 약점을 살펴본다. 그를 잘 아는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그는 장점을 두루 갖춘 양질의 정치인이지만 정치적 DNA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혼란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매가 토끼를 낚아채듯 핵심을 집어내고 촌철살인의 몇마디 정치언어로 대중의 심금을 흔드는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손학규’라는 물건을 파는 마케팅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내 경쟁자인 이명박도 그에 대해 비슷한 얘기를 했다.“손 지사가 경기도 외자유치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지만 국민에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장점을 유권자들에게 팔아먹을 줄 모른다는 의미였다. 이같은 그의 특성은 대중에 던지는 정치적 메시지 부족, 정치적 동지를 모으는 결속력 부족, 큰 흐름을 읽어내는 정치적 감각 부족 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정치권 얘기다. 경기지사가 된 이후 손 지사가 여론의 관심을 제대로 끌었던 것은 수도권 기업유치 문제로 이해찬 총리와 한판 붙었을 때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시는 여론지지도도 약간 올랐다. 전여옥의원은‘손 지사는 여전한 대학교수’라고 촌평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손 지사가 수시로 변해야 하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지식인의 이미지에 가깝다는 뜻이지만, 뒤집어 말하면 학자출신 정치인의 한계를 지적하는 말이다. 손 지사 측이 자체적으로 손 지사에 대한 이미지 분석 작업을 한 결과‘손 지사는 진지하나 대중의 관심을 효과적으로 끌어내지 못한다.’, ‘대중적 말투로 표현하는 것이 취약하다.’,‘대중은 개성을 선호하지만 그는 합리성을 중시한다.’는 등의 약점이 있는 것으로 정리됐다. 이는 그가 대중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약한‘범생이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말로도 설명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손 지사는 네트워크(학맥·인맥)에서 가장 앞서고 실적(도지사로서의)도 좋지만 주가(지지도)는 늘 제자리 걸음”이라고 손 지사의 취약점을 비유적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좋은 조건을 갖추고도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범생이 증후군은 손 지사가 만약 최고 정치지도자가 됐을 경우 국정의 위기상황을 제대로 읽고 긴급 대처하는 능력의 부족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손 전지사는 재임 시 가끔 튀는 빨간색 재킷을 입고 행사장에 나타났다. 수원‘박지성길’개통식엔 빨간색 재킷에 노타이 차림으로 참석했고,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특강에도 이 옷을 입은 채 강연했다. 한 측근은“손 지사가‘붉은 악마’의 색을 벤치마킹해 자신의 단점으로 지적돼온‘무채색’, ‘범생이’ 이미지를 탈피해보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또한 그는 중요한 결정 앞에서 우유부단한 성격을 보일 때가 가끔 있었다. 한 쪽으로 결정하면 이를 밀어붙이지 못하고 자꾸 다른 쪽을 돌아다 보는 학자출신의 특성이기도 하다. 대미정책과 햇볕정책에 대한 그의 입장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는 보수성향인 한나라당 의원으로서는 앞장 서 현 정권의 햇볕정책을 지지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폐지와 대체입법을 주장

해 젊은 층의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에 찬성하고 효순·미순 사건이 있었을 때 김민기 콘서트에 주한미군을 초청하는 등 친미적인 태도도 보여 보는 국민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받았다. 행정복합도시 건설에 있어서도 분명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처음에는 행정도시 문제에 반대 입장을 보였다가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런 손 지사에 대해‘과천지키기 범시민연대’는“경기도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그에게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는‘창과 방패’, 첫 단추를 잘 꿰라는 의미의 단추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손 지사 측은“우리는 찬성 입장을 분명히 했다.”며“손 지사가 직접 나서 행정도시안에 반대하는 도의원들을 설득해 도 의회에서 채택하려 했던 행정도시 반대 결의안을 37 대 41로 부결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그는 다른 경쟁자들과 비교할 때 매니어 그룹이 적다는 평가가 많다. 이는 대인관계에서 언제나‘8부 능선’을 넘지 않는 그의 스타일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 어느 단계까지는 친해지지만 마음을 완전히 열지 않는 차가운 면이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손 지사는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사선을 함께 넘을 혈맹이라는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고 했다. 이런 성격 때문인지 그에게는 그 흔한‘팬 클럽’이 아직 없다. 맺고 끊는 과단성이 부족한 손 지사의 성격은 사람을 기용하는 인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는 것이 손 지사 주변의 얘기이다. 한 측근은“손 지사가 잔 정에 이끌려 사람을 쓰다보니 오히려 인재를 데려다 쓰지 못하는 결점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능력있는 사람을 골라 적재적소에 써야 하는데 인정에 이끌려 냉정하게 인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우량주인가

몇 년 전 마산 어시장 수해현장. 정치인들 의례 그렇듯이 사진 몇 장 찍고 갈 줄 알았는데. 손전지사가 리어카 끌며 이틀 동안 오물치우며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상인들이 놀랐다고 한다. 그 후 어시장 상인들 그의 열렬한 후원자가 되었다. 최근의 수해피해 현장에서도 다른 정치인들 뒷짐 지고 시찰하는 동안 그는 자원봉사자들과 흙투성이가 되도록 성실히 땀흘렸다. 경기도 지사시절에도 외국항공사 직원이‘crazy schedule' 이라며 고개를 저을 정도의 투자유치 강행군을 했다. 정치부 기자들에 의해 가장 신사적인 정치인으로 뽑힌 적도 있다. 경기도 지사시절 대만으로 갈 뻔한 LG필립스 LCD 공장을 치열한 경합 끝에 유치했다. 싱가포르를 막판에 제치고 3M투자를 유치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많이 세웠다. 지구를 10바퀴 도는 강행군으로 외자 유치 14조원, 외국 첨단기업 115개를 유치했다. 하루에 100억원씩 외화를 번 셈이다. 2005년 전국에 신규 일자리 30만개 중에 17만개가 경기도이며 그 중 8만개가 외국계이다. 일본의 어느 기업인은‘손학규가 자꾸 귀찮게 찾아 와서 투자했다.’고 전했다. 미국 최고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델파이의 회장은‘미국에는 그런 정치가가 없다. 한국에는 행운이다.’ 라고 극찬했다. CEO 감각만 놓고 보면 현재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정치인 중에 가장 낫지 않나 싶다. 이러한 CEO적인 감각이 전문가 집단, 오피니언 리더들이 그를 한국의 지도자감 1위로 뽑는 이유이다. 보수언론들도 그의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투철한 지사시절의 뛰어난 경제업적에 대해 크게 호감을 표시하고 있다. 반대로 진보언론들은 민주화 운동경력과 다원주의에 대한 이해,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지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앙숙관계인 보수, 진보 언론들이 모두 그에 대해서 호의적이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의 색깔은‘개혁적 우파’노선이라 보수, 진보 어느 쪽과도 크게 충돌하지 않는다. 10 여년에 걸친 민주화, 산업화 세력의 갈등을 끝내고 국민들을 단합시켜 경제발전에 전력투구할 수 있는 적임자이다. 이러한 능력 면에서는 분명히 박 전대표나 이 전시장보다 더 낫다.  뚜렷한 업적이나 경험이 없는 박전대표나 설화가 잦고'불도저식 밀어붙이기'이미지의 이 전시장에 비하면 그래도 합리적이란 평가를 받으며 능력도 인정받는 손 전지사가 대통령감으로서는 훨씬 안정적이다. 선거란 한 달 아니 일주일에도 판세가 바뀌는 법이다. 2002년 대선 당시 여론조사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보인 이회창 전총재가 노무현 후보에게 진다고 누가 예측이나 했는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이 이겼듯이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 선거이다.‘민심 대장정’을 놓고 말들이 많다.‘정치적인 쇼’라느니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니 별짓을 다 한다느니... 그러나 얼마나 이색적이고 참신한가. 여지껏 그 어떤 정치인이 서민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 열심히 메모해 가며 그들의 얘기를 귀담아들은 들은 적이 있으며 자신을 한껏 낮추어 서민들과 함께 호흡한 적이 있는가 말이다. 이러한 점만으로도 신선하다. 그의 저의는 차치하고 이러한 그의 모습은 과거 그의 모습을 반추해 보면 전혀 어색하지 않다. 100일 대장정을 끝낸 후의 손학규가 저평가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우량주의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전략을 얻게 될 지는 미지수이나 일단 민심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감으로 해서 많은 것을 느꼈을 그가 짜게 될 대선전략이 기대된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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