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 것 자체가 복수였던 정순왕후와 김별아 작가의 만남
그리고 기자와 소설 <영영 이별 영이별>의 작가 김별아와의 만남

영이별 다리.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이 정순왕후와 눈물로 헤어져야 했던 애절한 사연이 담긴 다리.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더 이상 그를 쫓을 수 없음에 눈물지을 수밖에 없었던 정순왕후의 아픔이 서려있는 그 곳에서 시작되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버린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남아, 오래도록 살아남아 그가 미처 느끼지 못한 세상을 느끼고 가려는 듯 처절하게 살아남았던 한 여인의 뜨거움이 그 다리에 녹아 있다.

임보연 기자

아직 완전히 복원되지 않은 청계천의 영이별 다리는 그 모습이 심란했다. 아직 황폐하기만 한 그 장소가 전하는 분위기가 심란하다는 것이다. 그 위에서 남편의 마지막 가는 뒷모습을 보았을 정순왕후 송씨의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까지 먹먹해진다. 지난 2003년부터 공사가 진행되어 올해 9월 말 완공 예정인 청계천 복원사업. 이것은 600역사를 지닌 우리 서울의 문화와 역사를 되살리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이러한 취지 하에 복원된 청계천 다리를 소재로 씌여진 11편의 장편소설 맑은내 소설선이 선보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이 바로 김별아 작가의 <영영 이별 영이별>이다. 이 소설은 영이별 다리 혹은 영영 건널 다리라는 의미를 가진 영도교를 소재로 하여 쓴 소설이다. 사뭇 전작인 <미실>과는 다른 느낌의 소설을 내놓은 소설가 김별아와의 만남을 가져보았다.
그녀와의 만남이 이루어진 오후의 시간은 그녀를 닮아 있었다. 자신의 속내를 거리낌없이 표출해낼 수 있는 그런 밝음이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다음주 출국을 앞두고 송별회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겨우 여유가 생긴 시간을 인터뷰에 할애해 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웃음 띤 얼굴에서 작가적 우울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캐나다에 간다기에 단순한 여행이거나 소설구상을 위한 취재이겠거니 하고 물었더니 아이의 유학을 뒤따라 2년 동안 나가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창 출국준비로 바쁘다는 이야기. 그렇다고 해봐야 송별회를 빙자한 술자리라며 웃는다.              
그렇다면 외국에 나가서 집필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냐는 물음에 그녀는 우선은 쉬려고 떠나는 의미가 크다고 했다. 하긴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김별아 작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써내고 있었다. 스스로 말하기를 일중독 증세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중간 중간에 동화도 쓰고(실제로 제작년부터 4권의 동화를 냈다). 불안을 이기는 방법으로 일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다른 에너지를 바깥으로 표출할 여력이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달려오다 보니 계속해서 고갈되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고. 그래서 인생이 너무 불쌍해서 쉬게 해줄 생각으로 캐나다로 간단다. 그러다 뜬금없이 고향이 강릉이라는 말을 꺼냈다. 뭔가 아련한 눈빛으로 강릉의 얘기를 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강릉은 온통이 바다고 산맥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어릴 때에는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 꿈이었다. 탈출하는 것이. 그러나 막상 넘어보니 여전히 좁았다. 서른을 넘으면 무언가 안정된 기분을 맛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불안정하다. 해결되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고 이렇게 대책이 없을 수가라는 생각이 들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김별아 작가는 떠난다. 아마도 떠나있는 2년 동안 원고지에 손을 안 댈 것 같지만은 않은 사람이었다.
서점에 쌓여져 있는 이번 소설<영영 이별 영이별>의 안쪽에는 김별아 작가의 사인이 들어있다. 아무래도 글씨체가 직접 한 것 같아서 물었더니 자필사인이란다. 출국일정 때문에 사인회를 할 시간도 없고 해서 천권 넘는 책에 미리 사인을 했다고 한다. 말이 천권이지 똑같은 글자를 천 번 넘게 쓰려면 힘도 들었을거다.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노가다란다.

<미실>로 주목받은 작가의 정순왕후는 어떤 모습이었나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보았을테지만 숫자들이 역순으로 진행되고 있다. 49에서 0으로 말이다.“죽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49일 동안 완전히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과의 사이에서 떠돈다는 그 시기를 염두한 것이다. 49제를 지낸다는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니까. 사실 역사적인 사실이 빈약해서 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 쓰여진 단 한줄의 문장으로 써야 했으니 말이다. 정종이 죽고 난 후 남긴 기록이 전부이며 사실이 아닌 전설이라는 측면에서 기록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정순왕후와 단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미실>을 탈고한 후 세종에 대한 책을 쓰면서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료를 살피던 중 단종과 정순왕후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18살에 과부가 되어 65년을 독수공방하다 82세의 나이로 죽어간 정순왕후. 역사에서 사라지기까지 엄청난 장수를 한 여인이다. 꼭대기에서 바닥까지의 모든 삶을 경험한 65년 동안의 삶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홀로 살아가는 동안 여섯 명의 왕이 거쳐갔고 그 사이 여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나가고 싶었다는 것이다.
“국민일보의 기자가 말하더라. 사랑의 힘으로 65년을 산 것이 아니라 이별의 힘으로 살았다. 이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녀의 이야기에 따르면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는 것 자체가 복수가 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18세에 과부가 되어 자식도 없이 살아간 한 여성의 삶이란 조선시대에서는 최악의 삶인 셈이다. 주변 사람들이 생각했을 것이다. 얘가 왜 사나, 혹은 자결은 안 하나. 그래도 살아남았다. 생과 사라는 것은 누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사는 것은 본능이다.
그녀가 본격적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전작<미실>에서였다. 그 작품으로 2005년 제1회 세계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미실은 화랑세기 속에 소개되는 인물로 신라 진흥왕 시기를 중심으로 대원신통 혈맥의 일원으로 태어나 계보를 그려야 이해가 될 정도의 3대에 걸쳐 왕과 귀족을 성적 능력으로 굴복시키면서 이상적인 판단과 능력으로 한 시기를 풍미했던 여성이다. 역사 속의 두 여인, 미실과 <영영 이별 영이별>의 정순왕후, 어떻게 다르고 어느 점에서 통하는 인물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극과 극이다. 시대 자체가 너무 다르니까. 조선은 그야말로 남성중심의 세계였다. 여성 인물이 변변치 못한 시기였다. 이름을 날린 여성이라고 하면 기생이거나 왕후이거나 그 정도였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들에게는 참으로 가혹한 시기였다. 반면에 미실이 살았던 시기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움이 있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이 시대적으로 용인되었던 시기니 말이다. 공통점이라고 하면 여성으로서의 생명력 정도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펴보면 힘이 들 때 도와주는 것은 여성들이었다. 내쳐진 사람을 드러내 놓고 도와줄 수는 없었을테지만 몰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사람들은 여성이었다. 어찌보면 여성들이 무지랭이로 억압당하면서 살아오기는 했지만 그 안에 그녀들 나름대로의 삶이 있었다. 용기 있는 여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시대가 유지되는 것이다.”

나는 페미니즘 모른다
그렇다면 김별아 작가는 두 여인 중 어느 모습을 더 닮아 있을까. 이 한마디의 물음에 여성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봇물이 쏟아지듯 쉼 없이 흘러나온다. 물론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미실을 더 추구할 것이다. 김 작가의 독자들 중에 미실처럼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인식은 변하고 시회는 따라와 주지 못하고 그 사이에서 갈등은 생성되고 여자들은 고민한다. 여성들이 자기 자신을 긍정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전한다. 자신 역시 아이 엄마로써의 역할과 소설을 쓰는 작업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고 했다. 전통적인 주부의 일과 일하는 여성 사이에서의 갈등,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왜 차별을 받아야 하는가의 문제들도 있고 말이다. 김 작가에게는 육아문제로 일하지 못한 3년이라는 기간이 있었다. 하지만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밑바닥, 소외계층의 기분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쓴 책 중에‘밑바닥에서 치켜 올려보면 세상이 낫낫하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타인에 대한 동정, 연민, 이해가 넓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더 여성들의 능력이 높아지고 있다. 사실 아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걱정은 된다. 착하고 예쁜 남자가 되라고 말한다.(웃음) 미래사회 참 재미있어질 것 같다.”
이쯤에서 김 작가에게 하나 물어야겠다. 페미니즘에 대해서.(사실 개인적으로 이 질문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난 페미니즘 잘 모른다. 사실 <미실>이라는 소설의 경우 페미니스트들에게 극과 극의 반응을 얻었다. 비판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하기를 그래봤자 결국은 sex를 통해서 남성권력에 편입하려는 것 아니냐라는 반응이었다. 사실 권력에 대한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기회가 허용되지 않았을 뿐이다. 남성권력, 여성권력을 논하기 전에 말이다.”
하지만 사회는 계속 변하고 있다. 김 작가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 여기자를 만나면 남자 같았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다는 것이다. 꾸미는 것도 잘하고 여자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당당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이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경우들이 많다. 김 작가의 경우도 <미실>이 이미 영화판권이 팔렸고 <영영 이별 영이별>의경우도 서울시에서 주최하여 영상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일본에서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는 작품이 소설과 영화로 동시에 선보이지 않았던가.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 한국 문학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움직임이라고 이야기한다. 항상 무엇을 써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오고 있다는 그녀는 예전에는 독자를 고려하고 소설을 쓰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더 이상 독자를 이끌거나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김별아 작가는 엽기와 황폐한 성문화를 다루고 있는 것에 대하여 지리멸렬함을 느끼곤 한다. 더 이상 자극적이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이러한 여러 고민의 과정에서 역사는 그녀에게 또 다른 상상력을 자극하게 했다. 스스로 현실에서 이야기를 찾지 못한다면 역사에서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사실 이번 소설을 쓰면서 그녀는 상상력의 부재라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그리고 본 기자는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 자신이 주인공의 생각이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를 꺼려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물었다.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정사를 훼손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옳은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한겨례 신문에서는 상상력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던 것 같다. 있는 사실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했다. 아마도 다음 소설에서는 이러한 굴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광수의 소설에서 표현한 단종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었다. 유약하기 그지없는 사람으로 표현되었다. 김동인의 소설에서는 수양대군이 무능한 단종을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실 작가가 이야기를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단종은 아주 똑똑한 인물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시간에 대한 고민에 빠진 요즘
김별아 작가가 요즘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시간’이다. 그래서 역사에 눈을 돌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당히 현실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나이가 들어가면서 운명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짜여진 판 안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사실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갈등을 풀어나가는 것에 대한 의지를 잃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그녀다.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알면 글 못 쓴다. 그냥 착하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이야기한다. 스스로를 편하게 두지 못하고 괴롭히고 비관하고 우울해하는 사람이란다. 절대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속단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용, 균형이라는 어감의 단어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보았던 그녀의 밝은 이미지는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붓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단 말인가.
사람들이 청계천을 보면서 잠깐이라도 옛날의 그 장소를 떠올렸으면 좋겠단다. 사람들의 삶이 결국은 역사이고 그 장소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지금은 죽어서 없다. 스쳐지나간 역사를 생각하면 조금은 여유로워지거나 조금은 슬퍼지거나 일상을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김별아 작가는 작가라는 직업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떠도는 영혼과 대화하는 것이라고. <영영 이별 영이별>을 쓰면서는 자신은 정순왕후와 대화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원고를 쓰고 있으면 그런 기운을 느낀다고) 실제로 현재 기생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동료작가는 글을 쓰고 있을 때 자꾸만 늙은 기생이 기웃거리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단다. 그래서 무섭다고 하는데 김별아 작가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8월의 더운 낮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기자를 위한 납량특집이었나?(웃음)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오랜 시간의 응축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 우리가 보는 하나의 단어 안에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을까 생각하니 쉽게 읽을 것은 아니구나 싶다. 2년 뒤 김별아 작가는 한국에 돌아온다. 머릿속에 늘 소설 두, 세권의 이야기들이 들어있지 않으면 소설가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 미실, 정순왕후 그리고 다음은 과연 누구의 이야기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을까 벌써 궁금해진다.
점점 잊어가는 것에 익숙해져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정순왕후의 모습을 보려고 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하여 과학적인 분석과 호르몬의 형성 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이 때 과연 정순왕후는 어떤 특이한 사람이었기에 그 긴 세월을 기다릴 수 있었을까 궁금증이 인다. 사랑도 시간도 주체 못할 만큼 가벼워진 사람들에 대하여 그녀의 영혼은 안타까워하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행여 사랑에 대하여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면 혹은 잊혀짐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기자 역시 사랑에 대한 또 다른 정의를 내려야할 고비를 이번 인터뷰에서 맞이하였으니 말이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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