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하고는 동업하지 말거라.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모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오빠라고 부르는 여자 아이들을 많이 만들어 놓거라. 그 중에 하나 둘은 안 그랬다면 말도 붙이기 어려울 만큼 예쁜 아가씨로 자랄 것이다. 좋은 글을 만나거든 반드시 추천을 하거라. 너도 행복하고 세상도 행복해진다”의 내용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삶의 지혜’라는 글의 일부분으로, 아버지라는 존재는 ‘나’라는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준다.

신성아 기자

아버지와 아들은 어떤 관계인가? 전통적으로 우리에게는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는 말에서 그 관계를 짚어볼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에게는 친(親)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親의 의미 속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담겨 있는 것이다. 부자유친은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으로써 대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존경하고 공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이화여대 법학과 오수근 교수는 이대에서 최우수 교수로 선정돼 법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의 아들 오석원은 뮤지컬 배우로 지금 세계적인 뮤지컬 아이다 연습에 한 창이다. 오수근, 오석원 부자(夫子)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의 아버지와 아들은 어떤 모습인지, 또 어떠한 관계 맺기가 올바른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한다면
父 3남 1녀 중 막내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86년 인하대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한 이래 계속 학교에만 있습니다. 2000년부터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주로 회사법과 상법을 가르치고 있고요.
子 2남 중 장남이에요. 올해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지 1년째로 그동안 블러드 브라더스, 갬블러, 노트르담의 꼽추에 출연했어요. 요즘은 뮤지컬 아이다 공연 준비로 바쁘게 지내요.

왜 교수와 뮤지컬 배우가 됐나요?
父 석원이 같은 경우는 내적인 확신이 있어서 그 길을 선택하게 됐는데, 정말 그것은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경우는 공부를 잘해서 법대에 갔고, 법학을 하면서 확신은 없었지만 굉장히 좋은 일로 알고 열심히 했습니다. 교수생활을 시작한지 10년 정도 됐을 때 그제야 확신이 들었습니다.
자 숭실대 중어중문학과를 다니다 진로 때문에 많은 방황을 했어요. 공부도 안하고 밤 문화에 빠져 지내니까 부모님이 어학을 목적으로 영국으로 보냈죠.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서 그것을 배우려고 갔던 건데, 취미생활로 뮤지컬 공연을 보러 다니다가 공연을 보면서 나도 저만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귀국해서 1년 동안 뮤지컬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춤, 연기, 노래 등을 배웠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후회나 회의는 없을 거 같아요.

서로에 대한 장단점을 이야기한다면
父 석원이는 집중력이 정말 강합니다. 집중력이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완성도에 있어서도 높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단점이라면 본인이 좋고 싫음이 너무나 뚜렷한 것이죠.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좋은 상황과 아닌 상황 등 말입니다.
子 장점이 많으신데, 그 중에서도 아버지는 진짜 일벌레에요. 나쁜 의미의 일벌레가 아니라, 일이나 모든 부분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고 내 자신과 내 것을 사랑하는 분이라는 거죠. 이것은 이기적인 것과는 달라요. 단점은 동전의 양면처럼, 아버지의 장점이 단점도 될 수 있는 거 같아요. 예전에는 역할 체인지가 잘 안 되서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건강이 안 좋으셨는데 요즘은 컨트롤을 잘 하시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부자지간이니 닮은 점이 있을 텐데요. 서로의 어떤 모습을 보고 느끼시는지
子 예전에는 사석에서 말할 때의 아버지 말투가 싫었어요. 근데 내가 친구들과 대화할 때 스스로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어디선가 많이 듣던 썰렁한 이야기인데, 생각해보니까 바로 아버지가 했던 이야기를 내가 친구들에게 그대로 하고 있는 거 에요. 특히 어느새 말투까지 닮아 있다는 것. 또 흡인력이 강해서 남들과 2시간 이상만 이야기해도 아버지처럼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 버려요.

서로 바쁜 사회생활로 함께하는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父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데, 석원이 같은 경우는 공연 때문에 밤늦게 까지 있다 들어옵니다. 내가 잠자는 시간에 귀가하고, 기상하는 시간에 자고 있는 석원이와 처음에는 서로 균형이 맞지 않아 갈등이 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습하고 있는 석원이를 찾아갔을 때, 왜 배우가 늦게 들어오고,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연습실을 찾아가 함께 야참을 먹기도 하고, 공연이 있을 때는 자주 보러 가는데, 내가 너무 자주 가서 극단 식구들이 공연 관계자쯤으로 생각한 적도 있죠.
子 공연준비나 연습 때에는 거의 가족과 식사를 못해요. 하루에 한 번 얼굴 보는 것도 어려운걸요. 작년 데뷔 직전 봄쯤에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아예 한 달에 한 번 날을 정해 가족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어요. 그렇게 몇 달을 하다, 제가 데뷔를 하면서 바쁘다보니 지금은 못 지키고 있고요. 데뷔 작품인 블러드 브라더스에서 주인공을 맡았는데, 아버지가 공연기간동안 반 이상을 보실 정도로 저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주셨어요. 요즘은 부모님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만약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父 교육을 받기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아마도 목수나 요리사가 됐을 것 같습니다.
子 아버지는 정말 손재주가 좋으세요. 특히 요리를 잘 하시죠. 저는 아마 옷 장사를 했을 것 같아요. 처음에 영국에 간 이유도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서였고, 관심이 무척 많거든요.
父 석원이는 정말 디자인의 능력이 타고났어요. 초등학교 때 홍콩 마카오에서 시계를 직접 고른 적이 있는데 남다른 감각에 깜짝 놀랐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父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그 꿈이 뭔지 알아야 하죠. 대부부의 사람들은 자기의 꿈을 잘 모릅니다. 자기 꿈을 위해 몸을 던질 수 있다는 젊은이를 보면 ‘행복하구나!’라고 느낍니다. 그 꿈이 구체적이지 않아도 좋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도 중요하지만, 시간을 써야 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주위 사람의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子 식상하지만 용기, 결단력 그리고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인내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적어도 10년 이상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을 해봐야 되지만, 그 기간을 버티기에는 힘들 수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더 힘들지도 모르죠. 자신의 꿈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 위해, 시작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꿈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야 되지 않을까요?

앞으로 또 다른 꿈이 있다면 무엇이고, 각자가 생각하는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父 장기 프로젝트가 있는데, 미술관을 짓고 싶습니다. 그림을 좋아하고, 젊은 작가들을 많이 도와주고 싶거든요.
子 아버지는 정말 그림 광이에요. 지금 집에 걸지 못한 그림이 얼마나 많은지. 저는 옷 장사를 해 보고 싶어요. 솔직히 지금 조금씩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또 하나 생겼다는 게 정말 신나요. 아버지가 하시는 미술관 옆에 옷 가게를 차려야죠. 미술관 옆 옷 가게. 하하하...
父 부모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상태에서 자녀를 교육하지는 않습니다. 부모의 역할은 실제로 알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면서 아는 것입니다. 학생들과 면담을 해보면 부모로부터 상처받은 아이들이 많습니다. 인정받지 않아도 자식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소중합니다. 과거에 가족관계가 더 좋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가족이 함께 살면서 부모 노릇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과는 다른 것 같아요. 그리고 사달라고 사주는 경제적,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子 개인적으로 내 삶의 원동력은 가족과 신앙이에요. 이런 말이 있어요. ‘다 너의 원수가 되도 남는 것은 가족뿐이다’라는. 그래서 기댈 수 있는 거구요. 누구한테나 가족이 소중하겠지만 실질적으로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가족이에요. 가족이 제 공연을 보러오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서 더 잘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는 부모와 대화가 필요해요. 일방적인 게 아닌 쌍방적인 대화 말에요. 부모님을 친구나 애인으로 생각하면서 대화를 하면 어느새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 있을걸요. 다가가서 이야기하는 것은 나의 몫이고, 들어줄 준비가 하는 것은 부모의 몫이죠. 오수근이라는 인격체, 사람, 아들이지만 오석원이라는 또 다른 인격체로 생각하면 더 대화가 쉬워져요. 한 마디로 이런 거죠. 계급장 떼고 이야기하는 거. 그 계급장을 뗀다고 해서 계급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시종일관 푸근한 미소, 부드러운 말투의 오수근 교수님과 솔직하고 재치 있는 뮤지컬 배우 오석원은 부자라는 단어보다 친구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그런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었다. 많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부드럽지 못한 이유는 관계를 위한 서로의 수고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참아주고 기다려주며 이해하는 것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좋은 관계를 위한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잔에는 눈물이 반이다’라는 말처럼 아버지의 겉모습이 아닌 내적인 모습까지 볼 수 있는 부자사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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