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피플=이남진 기자] 미국과 러시아가 치열하게 겨뤘던 ‘냉전(冷戰․Cold War)’의 종식 이후 또다시 냉랭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시리아 알레포(Aleppo)에 대한 시리아와 러시아 연합군의 맹공(猛攻)에 대해 미국은 ‘야만적’ 행동이라고 비난하며 ‘전쟁 범죄’라고 경고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워싱턴과 모스크바 간 기류가 심상치 않음을 표출했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가 대화 보다는 강요(diktat)를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리아 전쟁을 둘러싸고 미․러 간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거친 레토릭과 상호 비방이 난무한 가운데, 양국은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참극의 궁극적 종결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함을 깨닫고 있다고 영국 BBC뉴스가 보도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 계기와 이에 대한 각계의 시각을 바탕으로 차기 미국 정부가 감당해야 할 과제를 파헤쳐봤다. (본기사는 월간지 시사뉴스피플 11월호에 실렸습니다.)

美 대선정국에 ‘시리아 전쟁’…냉랭한 분위기

‘새로운 냉전’의 그림자가 엄습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고 있는 것이다. 시리아 전쟁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힘겨루기’다. 그 전략적인 의도가 어떻든지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전쟁이 지루하게 지속되는 것이 미국과 러시아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분명한 것은 기본적인 수준의 상호 신뢰와 이해 없이는 그 어떤 대화도 오고갈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시리아 알레포에 대한 폭격을 멈추지 않는 러시아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에 대한 추가 제재로 대응에 나섰다. 이에 앞서 러시아는 발트해(海) 연안 칼리닌그라드에 독일을 위협할 핵미사일을 배치하고 미국 본토를 위협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실험도 단행했다. 러시아의 위협에 미국은 내년부터 나토(NATO) 회원국이자 러시아 인접 발트 국가인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와 폴란드 등에 미군 병력 4000여명을 배치할 예정이다.

1990년 미․러 냉전이 종식되고 새로운 번영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 지금과 같이 두 국가가 ‘발톱’을 내밀며 대결한 적은 없었다. 러시아가 미국과 양강(兩强) 구도에서 한 걸음 물러선 이후, 속으로 삭였던 앙갚음이 표출된 것일 수도 있다. 과거 화려했던 시절의 향수를 갈망하고 희구(希求)하는 것도 신기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궁영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러시아로서는 완전한 서방성을 갖추게 된다면 석유수출국정도의 국가로 전락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며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서의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완전 서구화 상태를 늦추거나 보류하는 게 국가 이익을 위해 좋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리아 전쟁과 관련, 영국 인디펜던트지(紙)는 “최근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은 20세기 냉전 때처럼 극한 대립 양상은 아니지만 상대를 견제하는 새로운 형태의 냉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브라이언 카툴리스 미국 진보센터 연구원은 “미·러 관계가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냉전’은 통상 두 초강대국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대립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군사력과 경제력, 영향력 측면에서 미국에 견줄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과 끊임없이 맞서는 러시아의 행보에 대해 전문가들은 각종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미․러의 최근 시리아 전쟁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 내년 1월 미국의 새 대통령 취임 이전에 확고하게 시리아를 지배하기 원하는 러시아가 정권 말 절묘한 타이밍을 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는 미국 대선정국에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내전에 쏠렸던 국제적 관심을 시리아로 돌려냈다는 평가다.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은 러시아의 전통적 우방이다. 러시아는 시리아에 유일한 해외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러시아가 ‘러시아판 패트리엇’이라고 불리는 S400 지대공 미사일을 시리아에 배치한 것도 러시아가 시리아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보여준다. 러시아는 알아사드 대통령의 제안으로 지난해 반군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다. 이는 군사적으로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면서도 미국의 대(對) 테러전에 동참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에 비해 정권 말기의 어수선한 미국은 이미 이라크전에서도 혹독한 대가를 치른 만큼 시리아 전쟁 초기에 직접적 군사 개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후 이슬람 국가(IS)의 득세가 우려되자 알레포 지역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지만 정부군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았다. 실제 시리아 반군은 온건파로부터 테러집단으로 규정된 이슬람국가(IS), 쿠르드족 민병대 등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이다.

러시아, 트럼프 지지?…힐러리 측 해킹 사건 

일각에선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해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를 밀고 있다는 의혹도 미·러 갈등의 한 요소라고 분석한다. 지난 6월 해커 ‘구시퍼 2.0’은 미 민주당 전국위원회(DNC)를 해킹한 민감한 파일을 위키리크스(Wikileaks)를 통해 공개했다. 미 중앙정보국(CIA)는 해킹 방법을 미뤄 러시아의 소행으로 지목했다. 러시아로서는 ‘고립주의’적 성향을 지닌 트럼프의 당선이 유리하다 게 힐러리 클린턴 캠프 측 주장이다.

시리아 전쟁 해법을 위해 런던을 찾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현 상황에 대해 “최대의 인도주의적 재앙”이라며 “러시아는 이 전쟁이 정치적 해결 없이 끝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은 이날 유럽, 중동 국가 관계자들과 회의를 한 뒤 연 브리핑에서 러시아를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시리아 사태에 관한 추가 제재를 고려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도 “인간애에 반하는 범죄가 알레포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다”며 “제네바의 협상 테이블로 돌아가야 한다”고 러시아에 촉구했다.

 

 

서방 국가들은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폭력적 탄압과 관련된 인물과 기업·기관에 대해 거래 금지, 여행 제한 등 제재와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형국이다. 영국의 은행 냇웨스트뱅크는 러시아 국영방송인 RT의 영국 내 계좌들을 동결한 바 있다. 마르가리타 시모니안 RT 편집국장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그들이(냇웨스트 뱅크) 영국에 있는 우리 계좌들 전부를 동결했다. 이 결정은 돌이킬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언론의 자유를…”이라고 호소했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은 “러시아의 시리아 군사 개입에 대한 책임을 묻는 압박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럽의 일부국가는 제재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등 내부적 분열 조짐도 일고 있다. EU 차원의 제재를 위해서는 전 회원국 동의가 필요하지만, 프랑스나 헝가리 등 일부 회원국이 제재에 회의적이거나 신중론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방과의 갈등에서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의 핑계가 우크라이나든 시리아든, 목적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를 억누르려는 것”이라며 “그 목적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방의 제재가 “역효과를 낳을 뿐”이라며 정치적 해결을 위해서는 타협이 필요하지만, 미국이 그럴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푸틴은 역공세를 펼치고 있다.

미국의 ‘욕심’ vs 러시아의 ‘보복’

이런 상황이 벌어지기까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누구를 탓해야 하나. 러시아와 미국 등 서방국가가 러시아와 새로운 방식의 협력관계를 구축하지 못하게 된 이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이 너무 거만하고 둔감하게 행동할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러시아가 옛 소비예트 연방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뉴 콜드 워(New Cold War)’, 새로운 냉전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된 이유는 뭘까.

전 미 중앙정보국(CIA) 관료 출신의 조지타운대 폴 필러 교수는 “사태의 시초는 서방에서 제공했다”고 말했다.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를 소비에트 공산국가에서 탈바꿈한 나라라는 점을 인정해주지 않았다”며 “러시아를 새로운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환영해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필러 교수는 “서방국들은 되레 러시아를 구(舊) 소련의 계승 국으로 여기고 불신의 관점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원죄(原罪)’에 대한 인식은 서방국가들로 하여금 나토(NATO)의 확장에 대한 욕구를 분출하게 했고, 폴란드, 체코공화국, 헝가리 등 오랜 기간 러시아의 통치에 저항했던 국가들에 대한 나토의 세력 범위 확대를 촉발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토는 이들 발트 해(海) 연안 3국의 흡수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구소련 소속 영토에 대해 끊임없이 간여하면서 상황이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치닫게 된 측면이 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세력으로 흡수되길 원치 않았다. 간단히 말하자면 러시아는 냉전의 종식 이후 러시아는 불공평하게 처우를 받고 있다고 인식하도록 서방이 자초한 면도 있다. 같은 맥락으로 미 뉴욕대 스티븐 코언 명예 교수는 “미국 주요 언론들이 푸틴을 단순히 무법자, 깡패로 묘사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이 같은 상황을 초래한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고찰은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시각은 서방국가들의 일반적 견해와는 차이가 있다. 서방은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보복정책’이라는 측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즉 푸틴 대통령은 소련의 붕괴를 ‘20세기 지정학적 재앙’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싱크탱크에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새로운 러시아에 대한 서구의 대응이 초기부터 전략적 실수(strategic errors)를 범했다고 보는 측과, 러시아가 그루지야, 시리아, 우크라이나 등에 대해 보다 강한 태도로 나서고 있다는 보는 측 사이의 격론이다.

전 영국 비밀정보국(MI6) 국장이었던 존 소이어스 경은 최근 BBC 인터뷰에서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와 올바른 전략적 관계를 수립하는 데 충분한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며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분명한 상호 이해관계가 구축됐다면 시리아, 우크라이나, 북한 등에 대한 문제에 서로 갈등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오바마 미국 정부가 단호한 외교정책을 펼치면서 러시아에 잘못된 시그널을 보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슈퍼파워(super power․패권국)’로서의 입지는 줄어들어가는 가운데 중국이 급부상한 상황에서 이런 미국의 강경한 태도가 러시아의 신경을 건드렸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남궁영 교수는 “러시아 입장에서 시리아와 크림반도 문제는 사활이 달린 핵심이익과 연계가 된 것이기 때문에 마초적 성향의 푸틴이 과감하게 나간 측면이 있다”며 “미국의 패권적 지위가 확고할 땐 쉽지 않았던 행동이지만, 현재 미국은 힘이 약해져 러시아와 우호협력 관계인 중국과 경쟁하고 있다는 점도 러시아 자신감의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지지 등에 업은 푸틴, 미국 대응은?

이유야 어떻든 시리아 전쟁을 둘러싸고 새로운 냉전의 차가운 기류가 감돈다. 이번엔 이데올로기나 핵무기 경쟁이 아니다. 폴 필러 교수는 “구소련의 중심이었던 러시아와 슈퍼파워 미국 간의 영향력에 대한 경쟁”이라고 규정했다. 러시아로선 미국의 정권교체기와 맞물려 당분간 운신의 폭이 넓은 편이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 차기 대통령이 자리 잡기 전에 분쟁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뻗치려는 과감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루지야와 러시아의 전쟁이 벌어졌던 지난 2008년 미 조지 W 부시 정부 말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위기상태로 치달았다. 부시 정부의 러시아 외교정책은 갈등에 부딪쳤고 결국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해 ‘리셋(reset)’이라는 명언을 남기며 새롭게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클린턴의 대처도 크게 나아진 게 없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 모스크바의 여론 조사 기관인 레베다 센터가 지난 5월 러시아인 2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러시아 사람의 72%가 ‘미국은 러시아 국민에게 잠재적인 적국이자 전 세계적 악의 근원’으로 지목했다. 러시아인 대다수가 미국을 적대시하는 시각을 갖고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다.

대결의 중심이 된 알레포는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군의 집중 공습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늘고 있다. 유럽연합(EU) 외무장관들은 룩셈부르크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알레포에서의 무차별 공격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병원과 의료 인력, 학교 및 인프라 시설 등에 대한 고의적 공격과 통폭탄, 집속탄, 화학무기 등의 사용은 (시리아) 내전의 재앙적 악화를 초래하고 있으며, 이는 전쟁범죄로 간주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시리아 사태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온힘을 다해 재차 긴급히 요청한다”며 “민간인들이 피신할 시간만이라도 보장할 수 있도록 즉각 전쟁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이 같은 호소에도 냉전 이후 20여년 만에 최악인 미·러 관계는 당장은 쉽게 회복되기 힘들 전망이다. 푸틴이 러시아 국민들의 든든한 지지를 등에 업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러시아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서방국가들의 경제재재 여파로 –3.7%로 곤두박질 쳤지만 푸틴이 이끄는 통합러시아당은 최근 총선에서 전체 하원(두마) 의석의 76%를 석권했다. 푸틴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무려 82%에 이른다. ‘자존심’ 상한 러시아인들이 푸틴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푸틴의 러시아로선 대외정책을 갑자기 바꿀 이유를 찾기 힘들다.

그만큼 미국 새 정부는 러시아를 대하기가 껄끄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남궁영 교수는 “미국과 러시아 서로가 국제적 이해가 상충되고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동맹도 적도 없다”며 “차기 미 정부가 상대적으로 열세에 몰려 중국과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한다면, 국익을 위해 러시아에 우호적 손길을 뻗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존 소이어스 경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미국 대통령에게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매우 막중한 책임이 부여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지금보다 더 우호적이거나 냉랭한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다”라며 “러시아에 대한 전략적 이해를 바탕으로 유럽과 러시아, 미국 등과 세계 평화를 위한 탄탄한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시사뉴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