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투쟁이 부른 부족간의 정치 분쟁

‘우간다’, 삶과 죽음의 구분이 없는 땅


왜 아프리카에는 지금까지도 분쟁의 고통이 식을 줄 모를까? 그래서 기회와 모험의 땅이라고 불려지는 것일까. 우간다 난민촌에선 지금도 매달 1000여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숨지고 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잃어버린 어린 소년, 소녀들의 삶은 언제쯤 되찾을 수 있을까.


르완다와 더불어 아프리카의 진주라 불리는 곳이 또 있다. 바로 ‘우간다’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아프리카의 독립국은 이집트, 에티오피아, 라이베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불과하였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가 독립할 당시 아프리카 대륙은 유럽의 7개국(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프랑스,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에 의해 분할되어 있었다. 유럽의 아프리카 분할은 각국의 식민, 교역 또는 탐험 활동의 실적에 따라 이루어졌다. 종족과 문화가 무시된 채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를 갖는 여러 종족이 한 영토에 묶여 나라를 이룸으로써 국가로서의 통합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던 것이다. 어느 한 종족이 정권을 장악하면 다른 종족이 반발하여 곧 내전에 휩싸이기도 했다. 아프리카를 비극의 대륙으로 몰고 간 종족 분쟁에는 비아프라 내전, 에티오피아 내전, 우간다 내전, 소말리아 내전, 르완다 내전, 앙골라 내전 등이 있다. 서사하라 영유권 분쟁, 에리트레아 독립 운동, 에티오피아 분쟁 등 수많은 아프리카의 지역 분쟁이 이러한 식민지 유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내전이 발생하고 있다.
 
분쟁의 역사적 요인

우간다 내전은 1962년 독립과 함께 정부의 형태 및 대통령의 권한 등 권력 쟁취를 둘러싸고 악화된 부족간 정쟁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였다. 우간다는 1894년 영국의 보호령이 되어 1962년 독립할 때까지 영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1961년 우간다는 영국의 자치령이 되어 1961년 3월1일 첫 선거를 실시하여 키와누카(Kiwanuka)가 이끄는 민주당이 승리하여 첫 수상에 취임하였고, 영연방의 일원이 되었다. 한편 1962년 10월 독립 이후 정부의 구성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제,' '느슨한 연방제,' '부족을 중심으로 한 지역 왕국' 등을 주장하는 그룹이 각각 대두되면서 의견이 대립되었다. 우간다에 첫 정치적 불안정이 등장한 것은 1966년 오보테 수상이 헌법을 중지시키고 정부의 권력을 통합하고 대통령과 부통령을 축출하면서이다. 오보테는 1967년 9월 신 헌법을 선포하고 공화제를 선언하였으며, 대통령의 권한을 일층 강화하는 한편 부족 왕국들을 폐지시켰다.

연이은 군사 쿠데타로 정권은 계속 바뀌고

1971년 1월25일 오보테는 이디아민(Amin)이 이끄는 군사쿠데타로 축출되었다. 아민은 자신이 대통령임을 선포하였고 아민은 의회를 해산하고 자신이 절대권력을 쥘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였다. 아민이 통치한 8년 동안 경제는 피폐되었으며, 사회는 분열되었고, 극심한 인권유린이 자행되었다. 특히 아민이 주로 탄압한 부족은 오보테와 그 추종자들의 출신 부족이며, 군부에서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아콜리(Acholi)족과 랑기(Langi)족이었다. 1978년 국제사법재판소는 아민의 집권 기간 동안 적어도 10만명이상의 우간다인들이 테러로 살해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일부 국제인권관련 기관들은 30만명이상이 살해된 것으로 보고 있다. 1978년 탄자니아군은 우간다 망명 세력인 우간다민족해방전선(UNLF)의 도움으로 탄자니아 영토로 침입한 아민의 우간다군과 리비아 지원군을 격퇴하였다. 1979년 4월 11일 탄자니아의 지원을 받은 UNLF는 수도 캄팔라를 비롯한 전 국토를 장악하였고, 아민은 8년간의 반인도적인 독재권력에서 쫓겨나 망명하였다. 아민이 축출된 이후 우간다민족해방전선(UNLF)은 잠정정부를 구성하였고, 룰(Lule)을 대통령으로 추대하였다. 그들은 내각제를 채택하고 준의회의 성격을 띤 국가자문위원회(NCC)를 설치하였다. 룰 대통령과 NCC는 각 정파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하려 하였다. 그러나 1979년 대통령의 위상과 권력을 놓고 각 정파간의 의견 충돌이 심화되었고, NCC는 룰 대통령을 해임하고, 비나이사(Binaisa)를 새 대통령으로 추대하였다. 그러나 잠정정부 내에서 대통령의 위상과 관련한 각 정파간의 권력 투쟁이 또다시 지속됨에 따라 1980년 5월 비나이사도 축출되었다.

이후 우간다는 무완가(Muwanga)를 위원장으로 하는 군사위원회가 실질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 12월에 치루어진 선거에서 전직 대통령인 오보테(Obote)가 이끄는 UPC가 재집권에 성공하여 오보테가 대통령에, 무완가 군사위원회 위원장이 부통령에 취임하였다. 한편 총선에서 패배한 오보테의 정적인 우간다애국운동(UPN)은 본거지를 케냐의 나이로비로 옮기고, 오보테 타도를 목표로 요웨리무세베니국민저항군(NRA)을 조직하여 게릴라전을 개시했다. 오보테는 반란을 기도한 반정부 NRA와의 대결자세를 강화하고 전국적인 토벌작전을 강행해 이들을 무력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도 캄팔라 북부의 루웨로 지역 등 주요 지역이 파괴되었고, 일반 주민들을 포함하여 약 20만명이 사망하는 등 오보테 정권은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을 자행함으로써 국내는 물론 국제적적인 비난을 받았다. 악랄한 인권탄압으로 국민들의 원망을 산 오보테 정권은, 1985년 7월 27일 아콜리족이 중심이 되어 실행된 군부 쿠데타에 의해 결국 붕괴되었다. 쿠데타를 지휘한 오켈로(Loara-Okello) 준장이 정권을 장악하였으며, 오보테는 이웃국인 잠비아로 피신하였다. 신 군사정권은 전 국방군사령관인 오켈로 장군을 국가 수반으로 추대하고 반군 조직인 NRA와 협상을 개시하여 인권신장, 종족간 경쟁 종식, 자유공정 선거 추진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러나 오켈로 군사정권은 1985년 가을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케냐의 모이 대통령의 중재하에서 정전 및 연립정부 구성 등에 관해 협상한 것을 NRA가 일방적으로 파기하자 대규모 살상과 파괴를 자행하였다. 그리고 그해 말 양측은 정전에 합의하였으나, 불만이 가시지 않은 NRA측은 지속적으로 전투를 전개하여 1986년 1월에는 수도 캄팔라를 점령하고 전 국토를 장악함으로서 오케로 대통령은 이웃 수단으로 도망하였다.

안정속에서도 불안한 새로운 정권

▲ 무세베니 현 대통령
오케로를 축출하고 새로이 정권을 잡은 NRA의 지도자 무세베니(Museveni)무세베니는 대통령취임 후 국민저항평의회(NRC)를 조직하고, NRA의 상위 조직체인 국민저항운동(NRM)의 일당체제를 구축하였다. 무세베니와 여당인 NRM은 인권 상황의 대폭적인 개선, 언론 자유 등을 통한 민주화, IMF와 세계은행 등과의 협의를 거친 경제개혁 등을 실시하였다. 또한 무세베니 대통령은 민주화를 위해 새로운 헌법을 도입하기로 하였고, 이에 따라 1995년 7월 자유선거를 통해 제헌의원들이 선출되어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였고, 동년 10월8일 정식 선포하였다. 신헌법에는 2000년까지 5년간 정당의 정치운동을 제한하는 '한시적 규정'이 도입되어, 2000년에 국민투표를 실시해 다당제를 도입하는 여부를 결정한다는 조항이었다. 1996년 5월 우간다 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대통령 및 의회의 직접선거에서 대승한 무세베니 대통령이 이끄는 국민저항운동(NRM) 정권은, 1997년에는 정권의 기반을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또한 부패 추방을 위해 검찰 및 사법제도의 개혁에 착수하는 동시에 무세베니 대통령은 사회주의 게릴라에서 경제 부흥을 위한 자본주의 전도사로 변신하였다. 그러나 무세베니 대통령은 집권 이후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5개의 반군 조직과 대치하고 있다. 그 중 LRA는 조직화 된 최대 반군으로 수단을 거점으로 게릴라전을 실시하고 있으며 가장 많이 납치와 민간인을 살해하고 있고. 우간다 북부지역에 자국의 독립국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북서부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우간다국가구원전선Ⅱ(UNRFⅡ)와 축출된 아민의 고향으로 현재에도 아민을 추종하고 있는 서부나일지역전선(WNBF), 콩고민주공화국(자이레)를 거점으로 하며 수단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 원리주의그룹인 동맹민주군(ADF), Remo 대령이 지휘하는 前우간다국군(FUNA) 등이 대표적인 반군 그룹이다.

▲ 반군에게 납치되는 것이 두려워 밤마다 교회나 병원 마당으로 모여드는 수천명의 아이들
반군 세력들은 현 우간다 정권을 위협할 만한 세력은 아니나 주변국에 거점을 두고 국경지역에서 살인, 납치 등 인권을 유린하는 등 동 지역에서의 불안을 계속 야기하고 있다. 이들은 간헐적인 게릴라전을 통해 어린 소년, 소녀들을 납치해 게릴라 및 위안부로 이용하기도 한다.  인접국 수단은 지속적으로 LRA, UNRFⅡ, ADF 등에 대해 무기 및 위성장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우간다 정부는 이렇게 수단이 반군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1995년 4월22일 국교를 수립하였고, 외교력을 동원해 수단 정부에게 LRA 반군 지원을 중지하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무세베니 대통령은 각기 다른지역에서 주변국의 지원을 받는 반군세력들의 계속된 도전을 받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소탕작전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만일 현재 진행중인 무세베니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반군 토벌작전이 확대되어 장기화될 경우 반군 세력을 지원하고 있는 수단과 콩고민주공화국 등 주변국과의 분쟁으로도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 우간다는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분쟁이 국제사회 및 지역사회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은 크다. 수단, 케냐, 탄자니아, 르완다, 자이르 등 아프리카의 최대 분쟁국가들로 둘러싸인 우간다에서 분쟁이 또다시 확대될 경우 이웃나라에서 진행중인 분쟁과 휩싸여 대규모의 국제전으로 비화되어 대규모 살상과 난민 발생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이 다분히 존재한다.

또하나의 전쟁

우간다의 북부지방 아이들에게 삶은 또 하나의 전쟁이다. 인간이 만든 지옥. 내전과 납치, 살인, 기아와 에이즈로 뒤범벅된 검은 대륙의 땅,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삶과 죽음은 구별되지 않는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 현(現) 대통령인 무세베니(Yoweri Museveni)가 집권한 1986년부터 반군들의 게릴라전은 계속되어왔다. 밤마다 반군들은 마을에 들어와 아이들을 납치하고, 사람들을 죽인다.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이다. 현재 반군들에 의해 우간다 북부에서 납치된 아이들만도 수 만 여명이 넘는다. 소년들은 끌려가 총을 잡고, 소녀들은 밤마다 반군들에게 지옥 같은 강간을 당하기 일쑤다. 이렇게 반군에 납치됐다 강간당해 아이를 낳고 돌아온 애 띤 소녀들(15~19세)을 이곳에선 차일드 마더(Child Mother)라고 부른다. 밤이 되면 아이들은 납치를 피해 담요 한 장만을 들고 시내로 모인다. 한 두 시간씩 걸리는 거리를 매일 밤 걸어 와 잠을 자고, 아침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나이트 코뮤터(Night Commuter밤의 피신자)’들의 지친 생활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20년째 내전이 계속되는 곳 우간다! 꿈을 품고 살아가야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그곳은 삶의 터전이 아닌 ‘지옥’과도 같은 곳이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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