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 결코 단순화할 수 없는 이야기

부천에 가면 족보와 성씨에 관련하여 우리나라 최대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이 있다. 이른바 족보도서관이라 일컬어지는 그곳에는 지금도 꾸준히 자료 수집을 게을리하지 않은 결과 현재 약 2만 여권의 책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구석진 곳의 오래된 책에서부터 최근에 수집된 자료들을 정리해 놓은 책까지 우리나라 성씨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도 극히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으니 우리가 평생을 달고 살아가는 그 성씨의 굴레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굴레들이 얽혀있는 것일까?

깊게 파고들어갈수록 헷갈리는 이야기들
족보,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는 그다지 흥미가 되지 못하는 소재이지만 예상 외로 그 안에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부천 족보 도서관의 김원준 관장님을 만나 성씨이야기, 그 중에서도 희귀성씨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어보고자 했다.
그러나 막상 다른 가문의 이야기를 제 삼자의 입을 통하여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타인에게는 흥미거리의 화제가 될 수 있으나 그 가문의 사람들에게는 민감한 사안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몇몇 성씨에 대하여는 이니셜로 표기를 하게 될 것이다.
우선 충주를 본관으로 하고 있는 충주의 P성씨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한 희귀성씨에 속하고 있다. 그런데 그 1대 조상이 과연 누구인지 정확하게 밝힐 방법이 현재로는 없다는 것. 다만 여러 가지 문서와 상황들을 종합하여 유추해보면 다음의 세 가지 정황을 세워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 성씨가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한 희귀 성씨이지만 일본에서는 국성이라고 일컬을 만큼 흔한 성씨 중의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그 첫 번째로 유추한 이야기가 바로 일제 침략시기에 우리나라로 들어온 일본 사람과의 연관성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침략기가 끝나고 우리나라에 잔류한 일본인들이 차마 자신들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는 못하고 P씨라는 조선인으로 귀화하여 살기 시작하여 그 가문이 시작되지 않았을까하는 것이다. 혹은 일본인들이 여염집 여자들을 범하여 아이를 낳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두 번째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들, 일본의 국성격인 P씨를 자신의 아이에게 부여한 것이 바로 그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희귀 성씨로 되는 경우 그 경로가 특이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명 비슷한 수와 조건에서 시작하였으나 그 인구의 증가가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데에는 과연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인지 뚜렷하게 밝힐 수는 없다는 것이 김관장의 이야기이다.
그 예로 제주도의 세 개의 성씨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 삼성혈이라는 세 개의 구멍에서 고을라, 양을아, 부을라 라는 세분의 신인이 나타나 세운 것이 제주도, 즉 탐라국인 것이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이 탐라국의 시조가 되는 셈이다. 현재 고씨는 3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며 양씨는 10~20만 명, 그리고 부씨는 1만~3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보고 있다. 같은 시간의 역사인 2천 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부씨만이 자손을 많이 퍼뜨리지 못했던 것일까. 왜 어느 한 성씨만이 수적 열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분명 그 안에는 우리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만은 힘든 부분이 내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희귀하다는 것은 성씨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본관의 경우도 희귀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275개의 성씨 중에서 약 20대의 성씨를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에게‘그런 성씨도 있었어?’라는 반응을 얻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잠깐 희귀 본관이라는 것에 대해서 잠깐 언급해보고자 한다. 경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를 살펴보면 경주 김씨, 이씨 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조씨의 경우 희귀성씨는 아니지만 경주 조씨의 경우는 그 수가 적어 본관이 희귀한 경우로 분류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희귀성씨 중의 희귀성씨
단 한 명이 존재하는 성씨가 있다
전체 인구수가 만 명이 되지 않는 성씨들을 모아놓은 자료를 보면 그 중 가장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성씨가 바로 청주 도씨이다. 그리고 도씨의 경우 모두 14개의 다른 본관이 존재하며 파주 도씨는 현재 단 한 가구만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장 희귀한 성씨는 어떤 성씨일까? 단 한명씩 존재하는 다음의 성씨는 초희귀 성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해 수(水)씨, 평주 연(燕)씨가 바로 전국에 단 한명씩 존재하는 성씨라는 것이다. 만일 이들 성씨를 가진 사람이 여성일 경우 이 성씨들은 우리 성씨의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될 운명에 놓인 것이다.
성씨에 역시 상당한 수적인 변동이 있다. 예전에는 전란이 있을 때 그 수가 현격히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경저적인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그 수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그렇다면 오늘 날 새로운 성씨가 생겨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생성되는 성씨를 귀화 성씨 정도로만 예상했었는데, 그 외에도 우리는 새로운 성씨를 만나볼 수 있는 경로가 있다. 안타까운 경우이지만 부모를 잘 모르는 아이의 경우 새로운 성씨를 부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고아원 원장의 성씨를 따르기도 하였지만 그 아이를 1세대로 하여 새로운 성씨와 본관을 지정하여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호주제의 폐지나 동성동본 결혼의 허용 등 성씨와 관련된 여러 가지 가치관들이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족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변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은‘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부모에게서 이어 받은 피의 농도는 흐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진리가 존재한다.

여기서 잠깐!
성씨와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
하나. 파평 윤씨는 잉어를 먹지 않는다
경기도 파평에 있는 파평산 기슭에 용연이라는 연못이 있다. 어느 날 이 용연에 난데없이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서리면서 천둥과 벼락이 쳤다.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사흘이 되던 날, 윤온이라는 할머니가 연못 한가운데 금으로 만든 궤적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금궤를 건져 열어보니 한 아이가 금빛 광채 속에 누워있었다. 금궤 속에서 나온 아이의 어깨 위에는 붉은 사마귀가 돋아 있고 양쪽 겨드랑이에는 81개의 잉어 비늘이 나 있었으며 또 발에는 황홀한 빛을 내는 7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 윤온 할머니는 이 아이를 거두어서 길렀으며 할머니의 성을 따서 윤씨가 되었다.
잉어에 대한 윤씨 일가의 이야기는 윤신달의 5대손인 윤관의 일대기에서도 나온다. 윤관이 함흥 선덕진 광포에서 전쟁 중에 거란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여 강가에 이르렀을 때 잉어떼의 도움으로 무사히 강을 건너 탈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장군의 뒤를 쫓던 적군이 강가에 이르자 윤관 장군에게 다리를 만들어주었던 잉어떼는 어느 틈에 흩어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파평 윤씨는 잉어의 자손이며 또한 선조에게 도움을 준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잉어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 S씨의 성씨가 생겨난 유래
밭에서 일하던 여인을 두 남자가 겁탈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여인은 한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의 성이 바로 S씨이다. 이는 밭(田)에서 겁탈한 두 남자가 도망간 방향을 삐침으로 표시한 글자가 바로 이 S씨가 된 것이다.

그동안의 짧은 연재를 통하여 희귀성씨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왔다. 이를 통하여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한 부류의 인생들을 만나보았다. 과연 희귀성씨라고 분류하여 그네들의 생을 들여다보려는 시도가 섣부르지는 않았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으며 섣부르게 타인의 인생과 그 윗대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려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반성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 그들의 이야기를 대할 때에는 최선을 다해 듣고 옮기고 생각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희귀성씨의 범위를 규정지을 잣대도 기준도 뚜렷하지 않지만 독자들이 그들 성씨가 가지는 또 다른 의미의 소수라는 양적인 범위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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