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와 더불어 은은한 추억의 Ing
해는 이미 모습을 감춘 지 오래인 11월의 어느 저녁, 가수 권진원을 만났다. 엷은 미소를 띠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그녀의 목소리는 천성적으로 다정한 억양을 띠고 있어 마치 미풍처럼 가벼웠다.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권진원에 대해 한 겹 벗겨내니 그녀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았다. 낯설고도 익숙한 만남 속에 수줍은 듯 띄엄띄엄 대화하는 사이, 어느새 우리의 대화는 무르익어가고, 또 그녀에게 동화되기 시작하면서 시간은 한없이 유쾌하게 흘러갔다.
마흔 살의 청아한 목소리로 삶을 위로하다

#. She's real
스치듯 찾아와서 떠나지 않고 늘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고, 소란피우며 요란하게 다가 왔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훌쩍 떠나가는 사람이 있다. 두드러지는 존재, 으뜸인 존재가 될 필요는 없다. 오래 보아도 물리지 않는 느낌, 늘 친근하고 스스럼없는 상대. 5년 만에 돌아온 가수 권진원이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한다. “5년 동안 여행을 다니며 책도 많이 읽었어요. 개인적으로 박완서 선생님의 책을 참 좋아하는데, 가장 최근에는「그 남자네 집」을 읽었죠. 많은 분들은 제가 그저 쉰 걸로만 아시는데, 현재 경희대 대학원에 다니면서 음악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었고, 또 같은 대학 포스트모던학과 겸임교수직도 맡고 있어요. 항상 음악 안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거죠. 대학원에서 새롭고 다양한 음악을 배우는데, 정말 공부할 게 너무 많아요. 처음에는 대학원 진학에 대한 그 선택이 조금은 두려웠는데, 지금은 잘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대학원에서 리얼 뮤직, 즉 연주와 함께 노래를 하는 법을 배우고, 컴퓨터 음악도 배우는데, 편곡작업에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요. 몰랐던 음악세계를 알아갈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
#. Kwoon JinWon Tree
타이틀곡 ‘나무’는 피아노의 영롱한 울림에 바이올린의 절제된 숨소리와 콘트라베이스의 속삭임이 어우러져 클래식과 재즈를 더했음에도 더욱 투명하고 순수한 느낌이다. 이 노래의 특징은 정확한 박자를 요하는 메트로놈 없이 녹음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5집의 음악적 방향은 기타 대신 피아노로서 울림이 큰 피아노 앞에 클래식하게 그녀가 앉아 있다. “비록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제 노래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려질지 너무 궁금해요. 다른 음악인에 비해 느린 걸음으로 온 20년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적어도 2년에 한 번씩을 음반을 내야 한다는 룰이 있었는데, 어느 날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좀 여유 있게 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 인생의 새로운 2장이 펼쳐진다는 느낌으로 곡을 쓰고, 가다듬고, 리코딩과 편곡을 하다 보니 그 전에 비해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타이틀곡과 앨범명 모두 <나무>인데, 나무처럼 순수하고 고요하게 오랜 시간과 많은 이야기를 감싸 안을 수 있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과거에는 리드미컬하고 소프트한 노래들이 많은 반면, 이번에는 음악적 색깔이 조금 달라졌는데, 그 대표 격이 나무였어요. 그래서 타이틀곡을 나무로 정한 거 에요.”
#. She's music
권진원의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비록 단순한 악기와 리듬에 짜여 져 있지만 좀처럼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그 단순한 리듬의 포스는 너무도 강력해 저절로 흥얼거리게 만드는 맹독성의 중독 증세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창작이다 보니 경험과 간접 만남을 통해 음악에 대한 많은 영감을 얻고 있어요. 조용한 밤 시간대에 정리를 하거나, 우리 집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한강 변이 나오는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산책을 해요. 그러다 노랫말이 떠오르기도 하죠. 80년대의 음악활동은 지금까지도 저에게 값지고 의미 있는 시간이에요. 늘 제가 강조하는데, 힘겨운 세상에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예술을 해야겠다는 거 에요. 저는 대중음악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쉬운 길이 될지 어려운 길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 음악은 예술성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 하에 사람을 위한 노래라고 정의하고 싶네요.”
# Change

#. I will
오는 12월 29일 대학로 동덕여대예술센터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게 될 권진원은 너무 소비적이고 자극적인 국내 대중음악 현실을 벗어나 장미꽃의 깊은 훈향 같은 진한 감동의 무대를 계획하고 있다. 그리하여 마음 한편이 점점 허전해가는 한 해의 마지막 길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음악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6집은 지난 5년 동안 음악적으로 좀 더 정돈을 했고, 담담한 것 같지만 감정의 변화가 짙게 깔린 섬세한 변화의 앨범이에요. 제가 음악을 처음 시작했던 그때와 같을 순 없겠지만, 음악에 대한 첫 희열은 그대로 간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음악은 늘 제게 새로움 속에 또 다른 형태의 감흥으로 다가오죠. 마지막으로, 제가 사인할 때 항상 ‘맑고 깊고 넓게’라는 말을 함께 적는데, 슬프고 힘겨운 이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맑고 깊고 넓게 살아가는 음악인이 될 게요.” NP
신성아 기자
shinbi@inewspeopl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