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숨을 불어 넣어, 언어는 살아 움직이고

우리가 시를 읽는 것은 바로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류는 열망에 휩싸여 있다. 의학, 법률, 금용 이런 건 모두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시, 낭만, 사랑 아름다움은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걸까? 그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이해인 수녀의 시와 글을 읽으면 자연과 사물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언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며, 삶에 대한 작은 겸손을 배우게 된다. 그녀는 그동안 많은 시집과 산문집을 냈는데,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두레박」,「기쁨이 열리는 창」,「작은 위로」,「눈꽃아가」등 제목의 깊이만큼이나 책 속에서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리고 한 문장, 한 문장 읽어 내릴 때 마다 성숙하면서도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우리의 눈을 따뜻한 기운으로 채워준다. 커다란 진리가 숨어 있는 것도 아닌데, 주변에서 지나치기 쉬운 모든 것들을 하나, 하나 소중하게 끌어내 이해인 수녀의 표정 위 반목의 세월만큼이나 마음을 비집고, 그녀만의 햇살이 우리들 가슴에 들어온다. 그런 이해인 수녀가 이번에는 두 권의 책을 나란히 내놓았다. 편지글 모음집 「사랑은 외로운 투쟁」(마음산책)과 시문집「풀꽃단상」(분도출판사)이다. 두 권 모두 삶에 대한 겸손과 감사,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담아 여리지만 강하고, 절망하지만 한 손에 움켜 쥔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글로써 미소를 건네며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작지만 가장 큰 마음의 기록들

▲ 편지글 모음집 「사랑은 외로운 투쟁」(마음산책)과 시문집「풀꽃단상」(분도출판사)의 책을 내놓은 이해인 수녀는 두 권 모두 삶에 대한 겸손과 감사,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담았다.
이해인 수녀의 글방은 편지로 가득하다. 편지로 집을 지어도 될 정도이며, 사람들은 ‘향기 나는 우체국’ 또는 ‘편지로 가득한 집’이라 부른다. 가까운 친인척과 지인들은 물론 전국에서, 감옥에서 이해인 수녀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수많은 편지가 사랑과 기쁨, 슬픔과 위로, 축하와 감사의 이야기를 담고 해인글방에 찾아든다. 그리고는 그녀의 답장과 사랑의 소식을 가득 실은 편지는 해인글방을 떠나 위로와 용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큰 선물이 되어준다. 여행을 할 때도 색연필, 편지지, 스티커 등의 편지 재료들을 늘 갖고 다닌다는 그녀는 “편지를 손으로 쓰는 일은 소중한 사랑의 일이에요”라고 말한다. 이해인 수녀에게 편지는 일상의 작은 것에 기쁨과 감사를 발견하는 법과 잠시 웃을 수 있는 행복을 전하는 기도이자 사랑의 도구인 것이다. 편지보다는 이메일을 쓰는 요즘의 시대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 직접 쓰는 편지와 그 편지를 받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편지를 꺼내 읽어보고, 웃고, 기억하고, 추억하면서...「사랑은 외로운 투쟁」은 이해인 수녀가 자신과 수녀원의 생활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지난 10여 년간 보낸 편지를 월별로 정리해 엮은 책이다. 해인 수녀가 매일 마주하고 느끼는 수녀원은 흰나비가 행복하게 날아다니고, 기도소리와 웃음소리가 가득한 공간이다. 그녀는 이 책에 인디언 달력처럼 일 년 열두 달에 고운 별명을 붙였다. 하늘 빛 희망을 가슴에 키우는 달(1월), 마음의 밭을 겸손하게 가꾸는 달(4월),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파도로 달려가는 달(7월), 죽음과 이별을 묵상하는 순례자가 되는 달(11월), 오직 감사만으로 선물의 집을 짓는 달(12월) 등 전형성을 탈피한 독특한 감성이다. 이런 열두 달의 이름을 어디에서 그 영감을 얻었는지 궁금했다. “평소에 이름 짓는데 관심이 많아요. 지금까지 우리 수녀원의 이름, 독자들이 부탁한 모임의 이름, 가게 이름, 아기 이름도 많이 지었답니다.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저에게 달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막 설레고 좋아서 성당에 앉아 기도하며 메모지에 적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중간에 고치지도 않고 단숨에 적혀지더라고요. 출판사 편집진들에게 고치고 싶으면 고쳐도 된다고 했는데, 다행히 그대로 두었어요. 가톨릭에서 이끄는 매월의 기도지향과 매달을 살아가는 제 자신의 개인적인 기도지향을 맞물려 묵상하다 보니 그러한 표현들이 절로 나왔어요. 어느 달은 너무 딱딱하지 않게 하느라 시적인 감수성을 가미시키도 했고요.” 그녀다운 발상이다. 혹시 이번 책에서 미처 전하지 못한 편지나 자신의 이야기가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사랑은 외로운 투쟁」의 편지들은 비록 편지일지라도 아주 공적인 글들이에요. 많은 분량의 문인과 독자, 친지들의 편지들을 보관하고 있는데, 지금도 어쩌다 읽으면 매우 생생하고 감동적인 문학자료 이죠. 특히, 감옥에서 보낸 사형수나 무기수의 글들은 더욱 그러해요. 오늘은 13년 만에 출소하여 <야생초 편지>라는 좋은 책을 펴낸 황대권님의 감옥에서 보낸 수십 통의 글들을 찾아 읽었는데, 아주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일기나 편지를 저도 많이 써왔지만, 세상에서의 이러한 기록에는 한계가 있듯이, 사실은 다 공개하지 않은 마음의 기록이 더 많다고 봐요.”

짚은 풀 향기에 모든 이의 마음을 물들이다

첫 산문집「두레박」을 낸 이후 20년 만에 분도출판사에서 발간된「풀꽃단상」은 수도원의 일상과 자연, 기도 안에서의 명상, 함께 사는 이들과의 만남 등을 소재로 쓴 시문집이며, 모두 여섯 묶음 가운데 두 묶음은 산문이고 나머지는 시다. 제목만 보면 순간 강렬한 풀꽃 향기가 나는 이 책은 조가비, 꽃골무, 고양이, 뜨개질 등 이 세상의 작고 하찮은 모든 것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이해인 수녀의 섬세하고 따뜻한 심성이 영롱한 빛을 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이해인 수녀는 나태주 시인의 시‘풀꽃’을 되뇌면서 “이 시를 외우노라면 내 마음에도 연녹색 풀물이 들고 평화가 찾아온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풀꽃을 대하듯이 내 마음속으로 말하리라”고 다짐한다. 풀꽃 반지, 풀꽃 향기, 풀꽃 사랑, 풀꽃 노래…하고 적어 가다가 문득‘ 풀꽃 같은 삶’에서 자신의 눈길이 멈춰진다는 이해인 수녀는 풀꽃 같은 평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의 강인함을 이야기한다. “「풀꽃단상」이 전작들과 비해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송년시와 기도시, 교황요한 바오로 2세와 아동문학가 정채봉, 사형수들, 태풍 매미와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 희생자 등을 위한 추모시가 함께 실려 있다는 거 에요.” 그녀는 6장 ‘슬픈 편지’에 이렇게 적어놓았다.“이제는 부디 하늘나라에서 오래 오래 행복하십시오.” 이웃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한 이해인 수녀의 지극한 이 기도가 그들의 가슴을 쓸어내며 눈물을 쏟게 만들 것만 같다.

명징한 자연의 언어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저 산은, 저 하늘은, 저 구름은, 저 초원은....자연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 말을 알아듣지 못 한다는 게 우리의 불행일 뿐이다. 구름과 하늘, 새와 수평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파도와 눈 등 이해인 수녀의 시에는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사색과 묵상을 통해 깨달은 자연과 일상에 대한「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에서 이해인 수녀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꽃이 향기로 말을 건넨다고 하였다. 다만 많은 사람들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할 뿐, 꽃은 향기로, 바다는 파도 소리로, 바람은 우리의 살갗을 간질이는 등 언제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진실 된 가슴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가르침과 지혜이며, 잃어버린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연은 경이로움의 원천이며 행복과 지혜로 가는 가장 간단하고 소박한 길이다. 더불어 이해는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고, 마음의 평화는 행복으로 이끈다. 그리고 행복은 대화하는 것이다. 그녀는 자연에게 반갑게 인사를 할 줄 알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묻는다. 한 단어로 그녀의 작품세계를 모두 말 할 수 없겠지만 굳이 몇 개의 단어를 조합해 자연과, 순수, 평화로움을 표현한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창, 별, 꽃, 구름, 섬, 바다, 하늘, 노을, 기도, 어머니, 항아리, 이별, 죽음, 순명, 고독, 순결, 그리고 설렘과 고마움 등의 단어들이 문득 떠오르네요”라고 이해인 수녀는 대답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과의 교감이 더 깊어지는 그녀의 시어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를지 몰라도 젊은 날에 비해 표현들이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변했어요. 초기에는 무턱대고 쏟아내던 제 개인의 감정들이 이제는 좀 더 절제하려는 흔적이 여기 저기 보이거든요. 이번에 나온「사랑은 외로운 투쟁」은 제목부터가 왠지 저의 분위기와 잘 안 어울리는 것 같다는 말을 듣기도 해요. 그래서 더 좋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살아갈수록 삶 자체가 한 편의 시

“집안의 내력인지 나이 보다는 음성이 훨씬 젊다고들 하세요. 스스로 말하기에 쑥스럽지만, 실은 어렸을 때부터 고운 음성이란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성우나 아나운서를 막연히 꿈꾸어 보기도 했지요.(호호)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요? 취미는 시 읽기 정도이고요. 좋아하는 사물은 기도할 때 밝히는 온갖 모양의 고운 초들, 색연필, 메모지를 포함한 문구류 등과 조가비, 솔방울, 나뭇잎 같은 것들이요. 저 자신을 하늘과 땅 사이의 ‘흰구름 천사’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착각도 하면서 즐겁게 매일을 살아가고 있답니다.” 여러 권을 책을 냈지만, 작가라는 수식어가 여전히 낯설게 느껴진다는 이해인 수녀는 1968년 5월 23일을 가장 잊지 못한다. 그날은 바로 수도자로서 그녀가 첫 서원한 날이다. 이어 1976년 2월 2일 종신서원한 날을 가장 뜻 깊은 축성의 날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문학적으로는 아마도 첫 시집「민들레의 영토」가 태어나 제게로 왔던 그 날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그 떨림과 부끄러움으로 울었던 1976년 2월의 어느 날이었죠.” 작가라는 말 대신 수녀시인, 시인수녀라는 말이 더 소박한 정겨움을 느낀다는 이해인 수녀는 “살아갈수록 수도자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시라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하며, 까만 눈동자에 눈물 같은 반짝임이 가득 번진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12월을 맞이해 성탄과 송년에 대한 메시지를 부탁했다. 그녀는 자신의 시‘송년 엽서’를 들려주며 말을 맺었다. “(중략).......눈길은 고요하게/마음은 뜨겁게/아름다운 삶을/오늘이 마지막인 듯이/충실히 살다 보면/첫새벽의 기쁨이/새해에도 항상/우리 길을 밝혀주겠지요?”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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