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얼마 안 있으면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맞는다. 고향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고속도로를 가득 메우고, 집집마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차례 상을 차리느라 분주할 것이다. 우리의 명절에는 저마다 고유의 음식과 놀이가 있듯이, 세계 여러 나라에도 특색 있는 명절이 있기 마련이다.

신성아 기자

추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우리의 큰 명절로 일 년 동안 기른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보낸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서 속담 중에‘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말도 생겼다. 세계적으로도 수확의 계절인 이맘때면 한국의 추석과 같은 명절을 쇠거나 기념행사가 열린다. 세계의 행사는 우리의 추석과 이름은 다르지만 수확, 감사, 조상, 가족, 휴식 등 그 의미는 비슷하다.

우리나라 추석의 유래와 풍습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다른 말로 한가위라고도 부르는데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이다. 즉 8월 15일인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길쌈'이란 실을 짜는 일을 말한다. 신라 유리왕은 길쌈 장려를 위해 6부의 부녀자들에게 내기를 시켰다. 우선 6부의 모든 부녀자들을 두 패로 나누고 궁중의 왕녀 두 사람을 뽑아 두 패를 각각 거느리게 한 다음 해마다 7월부터 한 달 동안 베를 짜게 하고 8월 보름이 되면 어느 편이 더 많이 짰는지를 심판하였다. 유리왕과 왕비를 비롯한 궁중의 관리들이 나와 유리왕이 판결을 내리면 이긴 편에서는 환성을 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진편에서는 그 동안 별미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편을 대접하였다. 맛있는 송편, 기름에 지진 고기, 전 등 갖가지 별식과 밤, 대추, 머루, 다래, 배 등이 푸짐하게 마련되면 양편은 모두 둥그런 원을 그리며 둘러앉아 함께 먹으며 노래와 춤을 즐겼다. ‘가배’라는 말은 후에 ‘가위’라는 말로 변했다. 서라벌에서는 이 날 8월 15일을 가배라 일컬었는데 이것이 ‘한가위’라는 신라의 큰 명절이 되어 계속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새로 나온 과일과 곡식으로 차례 상을 차려 드려 한 해에 거둬들인 것을 보고들이고, 아침을 먹은 후 조상의 산소에 성묘를 하러간다. 우리의 명절인 추석은 즐겁고 신나는 날인 동시에 그런 즐거움을 얻은 것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은 날이기도 하다. 추석에 조상의 무덤에 가서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 주는데 이를 벌초라 한다. 옛날 조상의 묘를 풍수설에 의하여 명당에 쓰기 위하여 몇 십리 먼 곳에까지 가서 쓰는 수가 많았고, 또 묘를 쓴 다음 이사를 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묘가 집 근처가 아니라 먼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추석을 맞이하여서는 반드시 벌초를 하는 것이 자손의 효성의 표시와 도리로 여겼다. 한가위 때에 성묘를 와서 벌초를 안했으면 보기에도 흉할 뿐만 아 니라 불효의 자손을 두었거나 임자 없는 묘라 해서 남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추석 전날 밤에 전라남도 진도에서는 머슴아이들이 밭에 가서 벌거벗고 고랑을 기어 다니는 풍속이 있다. 밭둑에다 음식을 차려놓고 토지신을 위하는 일도 있는데, 이렇게 하면 밭곡식이 풍년들어 많은 수확을 올릴 뿐 아니라 아이들의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건강하여진다고 믿고 있다. 일종의 농업주술과 건강을 축원하는 행위이다. 경상남도 지방에서는 8월에 들어 창문을 바르지 않는데, 특히 추석을 전후해서 문을 바르지 않는다. 여름철에는 문이 찢어져 있으면 바람이 들어와서 시원하기 때문에 그냥 두었다가 7월에는 일단 창호지로 문을 바른다. 그러나 8월 달에 들어와서는 찢어진 문구멍을 새로 바르는 것이 금기로 되어 있다. 금기를 어기면 도적을 맞는 일이 생기고 집안에 우환이 들끓게 된다고 전한다. 그래서 찬바람이 들어와도 그냥 두었다가 9월에 들어서야 문을 바른다. 추석을 전후해서 잘 익은 벼, 수수, 조 등 곡식의 이삭을 한 줌 베어다가 묶어 기둥이나 대문 위에 걸어 두는데 이것을‘올게심니’라고 한다. 올게심니를 할 때에는 주찬(酒饌)을 차려 이웃을 청해서 주연을 베푸는 수도 있다. 올게심니한 곡식은 다음해에 씨로 쓰거나 떡을 해서 사당에 천신하거나 터주에 올렸다가 먹는다. 올게심니를 하는 것은 다음해에 풍년이 들게 해달라는 기원의 뜻이다.

추석날 놀이와 음식
추석 무렵은 좋은 계절이고 풍요를 자랑하는 때이기에 마음이 유쾌하고 한가해서 여러 놀이를 한다. 사람들이 모여서 농악을 치고 노래와 춤이 어울리게 된다. 추석날의 대표적인 놀이로는 강강술래와 줄다리기, 씨름, 거북놀이, 소멕이놀이, 원놀이, 북놀이, 반보기 등 지방마다 다양하게 전해져 내려온다. 먼저, 거북놀이는 두 사람이 둥근 멍석을 쓰고 앉아 머리와 꼬리를 만들어 거북이 시늉을 하고 느린 걸음으로 움직인다. 사람들이 거북이를 앞세우고 큰 집을 찾아가“바다에서 거북이가 왔는데 목이 마르다”면서 음식을 청하고 들어가면 주인은 음식을 내어 일행을 대접한다. 이때에 얻은 음식을 가난해서 추석음식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일도 있어 협동과 공생의식을 보이기도 한다. 소멕이놀이는 추석날 차례를 마치고 난 뒤 알맞은 시간에 놀이가 진행된다. 멍석 안에 두 사람이 들어가 소의 형상으로 꾸며 그 소를 끌고 농악대와 마을 사람들이 그 마을에서 가장 부농집이나 그 해에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사람의 집으로 찾아간다. 대문 앞에서‘소가 배가 고프고 구정물을 먹고 싶어 왔으니 달라’고 외치면 주인이 나와서 일행을 맞이하고 술과 떡, 찬을 차려 대접한다. 거북놀이와 비슷하지만 개인이나 가정의 복락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이 놀이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들어있고, 중부지방에서 널리 퍼져 있으며 황해도 일부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원놀이는 훈장이 없는 사이에 학동들에 의해서 행해진다. 글을 잘하고 재치 있는 사람을 뽑아 원님으로 하고, 학동 중에서 소송을 하는 사람과 소송을 당하는 사람으로 나누어 원님이 판관이 되어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는 놀이로 오늘날의 모의재판과 같은 것이다. 옛날에는 과거에 급제해서 관원이 되면 판관으로서 민원을 처리하고 백성을 다스려야 했기 때문에 사리를 따져서 정(正)과 사(邪)를 구분할 줄을 알아야 하는데, 그 예행연습을 원놀이에서 미리 하였던 것이다. 시집간 여자들은 마음대로 친정에 가기 어려웠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추석이 지난 다음 서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끼리 날짜와 장소를 미리 정해서 서로 즐기는 음식을 장만하여 만나서 한나절 동안 회포를 푸는 것이 바로 반보기이다. 중간에서 만나 회포를 다 풀지 못하고 반만 풀었다는 뜻으로 반보기라고 했다. 추석은 시기적으로 곡식과 과일 등이 풍성한 때이므로 이즈음에는 여러 가지 계절 음식이 있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 제찬을 준비하는데, 설날의 제찬과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추수의 계절이라 햇곡식으로 밥과 떡, 술을 만든다. 철이 늦은 해에는 미리 밭벼를 심었다가 제미로 쓰는 일도 있다. 이렇게 햅쌀로 밥을 지으면 맛이 좋고 기름기가 있으며, 떡도 맛이 좋다. 추석의 대표적인 절식으로는 송편을 빼놓을 수가 없다. 송편 속에는 콩, 팥, 밤, 대추 등을 넣는데, 모두 햇것으로 한다. 또 임신한 여자가 태중의 아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궁금할 때에는 송편 속에 바늘이나 솔잎을 가로 넣고 찐 다음 한쪽을 깨물어서 바늘의 귀 쪽이나 솔잎의 붙은 곳을 깨물면 딸을 낳고 바늘의 뾰족한 곳이나 솔잎의 끝 쪽을 깨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이를 점치기도 했다. 특히 올벼로 만든 송편은 올벼 송편이라 부른다. 추석의 차례 상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것이 바로 술이다. 추석 술은 백주(白酒)라고 하는데, 햅쌀로 빚었기 때문에 신도주(新稻酒)라고도 한다. 추석 때는 추수를 앞 둔 시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풍족해진다. 사람들의 인심 또한 후해서 추석 때에는 서로 술대접을 하는 수가 흔하다. 또 이때의 가장 넉넉한 안주로 황계(黃鷄)를 들 수 있는데, 봄에 알을 깬 병아리를 길러 서 추석 때가 되면 잡아먹기에 알맞게 자란 닭을 말한다. 숙주나물과 토란국도 추석의 절식이다.

북한의 추석
민속명절을 인정하지 않던 북한이 88년 추석을, 89년에는 설날과 한식, 단오를 민속명절로 지정했다. 그 전까지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양식에 어긋나는 봉건주의의 잔재라고 하여 추석이라는 명절 자체가 배격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추석은 민족의 대이동으로 4대 명절 중 가장 성대하게 벌어지는 남한과 비교했을 때 그다지 큰 명절은 아니다. 민속명절과 사회주의 명절로 크게 나뉘는 북한에서는 민속명절보다 사회주의 명절에 더 많은 행사가 있으며, 민속명절 중에서도 가장 성대하게 지내는 것은 설날이다. 북한의 추석에는 차례지내기 외에 기타의 행사를 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북한 당국은 모든 시내버스가 공동묘지를 경유하게 함으로써 성묘의 편의를 돕는다. 북한엔‘려행증’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을 벗어날 때엔 반드시 소지해야 하는 증명서다. 여행증 없이는 도와 도 사이는 물론 같은 도내에서도 여행을 하기 힘들다. 이 증명서 없이 다니다가 안전부(남한의 경찰) 검열에 걸리면 형사 처분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추석 때만은 여행증 검사를 하지 않는다. 남북한 간 가장 큰 차이점은 북한에서는 추석음식을 각 가족이 만들어 성묘할 장소로 모인다는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주로 여성들이 하지만 장남의 집에서 모두 마련하지는 않는 것은 남한과 대조적이다. 각자의 집에서 명절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배경에는 여의치 않은 북한의 경제적 사정이 배어 있다. 추석 음식이라야 아주 잘 차린 수준이 한두 그릇의 쌀밥과 떡, 돼지고기 한 근, 서너 알의 사과와 계란, 두부 콩나물 따위가 전부이기는 하지만, 가난한 생활에서도 추석날 성묘를 하지 않으면 죄를 짓고 벌을 받는다고 여기며 열심히 성묘를 하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이다. 남한과 북한의 추석이 다른 점도 많고 비슷한 점도 많지만 동일한 것은 조상들에게 정성을 다해 차례를 모시고,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서로 만나 화목을 다진다는 점이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다음 가는 큰 축제일인 추수감사절은 1620년에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도착한 필그림 청교도들에게서 비롯되었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정착한 것에 감사의 표시를 신에게 하기 시작하면서 추수감사절이라는 날을 지정하게 된 것이다. 추수감사절이 오늘날과 같이 11월 넷째 목요일로 자리 잡은 것은 여성지 편집자였던 세라 조세파 헤일의 힘이 컸다. 보스턴의‘레이디스 매거진’과 필라델피아‘가디스 레이디스 북’의 편집자였던 헤일은 15만 명의 독자에게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자고 호소했다. 그는 주지사, 성직자, 신문 편집인, 대통령에게 수백 통의 호소 편지를 보냈다. 남북전쟁 중이었던 1863년 9월,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던 게티즈버그 전투 이후 헤일은 감동적이며 애국적인 사설을 잡지에 게재했다.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북군이 승리하여 국민의 사기가 앙양되고 여기에 헤일의 사설이 상승 작용을 하여 1863년 10월3일,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전국적인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선포했다. 1939년 루즈벨트 대통령이 크리스마스 쇼핑 일수를 증가시켜야 한다는 상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추수감사절을 11월 셋째 목요일로 한 주일 앞당겼으나 국민들은 종전대로 마지막 목요일에 축제를 지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1941년, 마침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추수감사절을 11월 넷째 목요일로 환원시켜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다.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추수감사절은 가장 미국다운 명절이다. 이 날, 미국의 민속촌격인 플리머스에서는 청교도들의 추수감사절을 재현하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인 보스턴 코먼에서 점등식을 한다. 거리 곳곳에서는 유명한 캐릭터 인형들과 악대와 가장행렬이 이어진다. 이런 행렬 끝에는 으레 어린이들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빌딩 사이로 하늘에 거대한 배 모양 풍선을 띄우거나 불꽃놀이를 벌이고 고층 빌딩에서는 색종이를 뿌려 명절을 축하한다. 마을마다 주민들이 소규모 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하고 마을 운동장에서는 풋볼 시합이 벌어지기도 한다. 추수감사절은 가족과 함께 지내는 명절이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미국에서도 추수감사절이면 너나 할 것 없이 가족을 찾는다. 저녁이면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도 모여서 신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찬양하며 미국 민요‘갓 블레스 아메리카(God bless America)’를 부른다. 이날에는 가정마다 추수감사절 음식인 칠면조 요리와 호박 파이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칠면조 고기를 먹는 풍습은 첫 추수 감사절 때 새 사냥을 갔던 사람이 칠면조를 잡아와 먹기 시작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오늘날에도 일부 지방에서는 이날 식탁에 5개의 옥수수를 올려놓는데, 이는 청교도들이 식량난으로 고생할 때 한 사람의 하루 식량으로 배당되었던 옥수수 5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각 가정의 부모는 첫 추수 감사절이 지켜지기까지 고생했던 그들 선조들의 수고를 설명해 주며 자녀들과 함께 그 옥수수를 먹는다. 또한 이날 먹는 음식은 넉넉해야 한다고 믿고, 보통의 가정에서 가족들은 3번 이상 식사를 하며, 접시를 깨끗이 비우는 것을 예의로 지킨다. 추수감사절인 목요일부터 다음 일요일까지 4일간 미국인들은 연휴를 즐긴다. 오늘날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이 가장 화려하게 개최되는 곳은 뉴욕이다. 브로드웨이의 센트럴파크 모퉁이에서 34번가의 메이시스 백화점에 이르는 도로에 대규모 축제 행렬이 지나간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미국 각 주에서 보내온 아름다운 수레 행렬로 유명 연예인들이 수레에 탑승하여 이 축제를 더욱 빛낸다. 힘찬 행진곡으로 지축을 울리며 앞으로 브라스 밴드가 나가고 하늘에는 고무공으로 만든 미키마우스 같은 커다란 조형물들이 많이 떠 있어 더욱 축제 분위기를 고취시킨다.

중국의 추석 중추절
중국의 3대 명절 중의 하나가 추석이다. 우리는 보통 한가위 혹은 추석이라고 하지만 중국인들은 중추절 또는 중치우지에라고 부른다. 음력 7, 8, 9월이 일 년 중 가을에 해당하고 그중에서 8월이 중간이며, 또 8월 중에는 15일이 그 중간이다. 바로 이 음력 8월 15일이 가을철의 한 가운데다 하여 중추절이라고 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 날, 달을 감상하고 월병을 먹는 풍속이 있다. 중추절은 이미 이천 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고대의 황제는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항상 8월 밤에 달을 향해 음악을 연주하고 제사를 지냈는데, 이후 점점 민간에서 달구경하는 풍속이 생기게 된 것이다. 중추절의 전통음식인 월병은 원형의 모양으로 ‘모임’을 상징하며 집안 식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으면 하는 염원을 나타낸다. 중추절에 월병을 먹는 전통은 몇 가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중국 원나라 때의 일이다. 통치자의 폭정으로 말미암아 서민들의 불만의 소리가 높아가고 곳곳에서 봉기를 일으키고자 하는 반항의 세력들이 커지고 있을 때, 당시 황제는 봉기가 일어날 것을 두려워했다. 황제는 자신과 통치의 안위를 위해 민간에 사사로이 철기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부엌에서 사용하는 음식용 칼만 예외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농민 봉기를 주도하던 장사성은 중추절에 작은 종이에 봉기 시간을 적어 월병 안에 넣어 선물인양 각 농민들의 집에 보냈다. 월병을 받은 농민들은 월병 속 쪽지에 적힌 시간대로 집안의 부엌칼을 들고 봉기에 가담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8월 15일에 월병을 먹는 풍습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월병의 제작도 갈수록 정교해져서 월병 위에 옥토끼가 절구질하고, 달에 사는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 연못에 비치는 달 등의 장식모양이 새겨졌다. 오늘날의 월병은 더욱더 다양해져서 보기 좋고 맛도 좋으며, 각 지방마다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다. 광동의 월병은 항상 고기, 설탕, 기름, 호두, 건포도들 함께 버무려 속을 빚는데, 맛과 향이 입에 맞아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다. 이때는 시내 상점마다 각종 월병 선물세트가 가득하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을'둥글다'고 표현하여 달도 둥글고, 월병도 둥글며, 모인 가족들도 둥글게 둘러앉는다. 주로 가족의 단결과 화목을 도모하고, 가족 친지들 간에는 선물을 주고받기도 한다. 선물로는 한약, 건강식품, 겨울옷 등이 인기다. 만일 친지들과 함께 있을 수 없을 때는, 이 날 밤, 같은 시각 달을 바라보며 그리워하는 감정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대다수 중국 사람들은 보름달을 좋아하며, 이는 둥근 달이 친한 가족이나 친구의 모임과 생활의 행복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중추절에는 중국 각지에서 대규모의 경축행사가 벌어지는데 제일 대표적인 것이 등회(燈會)이다. 우리와는 다르게 고향을 찾는 귀성행렬 같은 것이 없으며, 또한 공휴일이 아니다.

독일의 추수감사제‘옥토버 페스트’
독일의‘추수감사제‘는 지역별 축제 형식으로 열린다. 포도 감자 밀 맥주 호프 등 특산품이 생산되는 각 지역에서는 여름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한 해 농사에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동네축제를 연다. 포도가 많이 나는 독일 라인 강과 마인 강, 모젤 강 일대에는 7∼10월 에 각종 포도축제들이 열린다. 이중 모젤와인 산지에 있는 베른카스텔-쿠에스(9월 상순), 라인프팔츠 와인산지인 바트 뒤르크하임(9월 중순)과 노이슈타트(10월상순)의 포도주 축제는 고전의상을 입은 사람들의 행렬에다 규모도 커서 독일 각지로부터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가을이 되면 독일에서는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료인 맥주로 일 년 농사를 축하하는 축제를 벌인다.‘옥토버 페스트’가 바로 그것이다. 원래는 10월에 열려 이 같은 이름이 붙었으나 요즘은 9월에 열린다. 1810년 10월 17일 바이에른의 국왕인 빌헬름 1세는 테레제 왕비와 결혼했다. 이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뮌헨의 한 풀밭에서 기병대는 말 경주를 하고 주민들은 왕의 천막을 세워 충성과 존경을 표했다. 이에 대한 답례로 왕이 열어준 주민 축제가 옥토버 페스트이다.  그 후 이 축제는 농민 단체 주관으로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띠며 매년 열리게 됐다. 9월 셋째 주 토요일 낮 12시에 뮌헨 시장이 말 경주를 하던 풀밭에서 맥주의 첫잔을 드는 것으로 축제는 시작되며 10월 첫째 주 일요일까지 계속된다. 축제가 열리는 곳마다 맥주 통을 싣고 가는 마차 행렬과 마을 고유의 의상을 볼 수 있다. 요즘은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뮌헨의 맥주 회사들이 지은 맥주홀에서 독일 특유의 맥주와 축제를 즐기기도 한다. 매년 11월 11일 11시 11분부터 시작해서 이듬해 3월초까지 계속되는 독일의 3대 사육제라는 쾰른, 마인츠, 뒤셀도르프의 사육제는 대부분 매주 토요일에 열리며 가장무도회, 맥주 및 포도주 시음회, 토속음식 시식회, 각 종 복장의 시가행진 등으로 이어진다.

뉴질랜드의 노동절(Labour Day)
뉴질랜드에서는 매년 10월 마지막 주 월요일을 '노동절(Labour Day)'라 하여 기념하고 있다. 한 세기 전, 처음 노동절을 정할 때는 10월 28일이었으나, 연휴로 즐기기 위해 요즘은 10월 네 번째 월요일로 다시 정해서 기념하고 있다. 법정 공휴일로 정해지기 전부터 노동자와 중소 상인 단체에서는 매년 운동 경기와 퍼레이드를 벌였다. 봄철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가족과 함께 피크닉을 즐기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뉴질랜드인에게 있어서의 노동절은 한 세기 동안 생활 속에 함께 한 즐거운 기념일이다. 뉴질랜드 국민들은 노동절이 돌아 올 때마다 남다른 자부심을 가진다. 의미 있는 노동 운동의 시발이 뉴질랜드 노동자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루 8시간근무제를 쟁취하기 위한 뉴질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은 세계적으로도 처음이라는 주장이다. 이 노동절의 유래를 보면, 1890년 10월28일이 뉴질랜드 최초의 공식 노동절로 기록된 날이다. 노동절은 하루 8시간 노동이라는 노동자들의 성과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다. 8시간 근무제도는 웰링턴의 목수 Samuel Parnell이 1840년 세계최초로 일궈낸 쾌거다. 1890년에 거행된 최초 노동절 기념행사는 대성공이었다. 뉴질랜드 주요도시에서 노동조합 회원들과 많은 지지자들이 거리를 메우며 기념행진을 벌였고, 공무원들도 이날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휴가를 허락받았다. Parnell도 기념행진에 참여하였으며 행사 뒤 수주 후 유명을 달리했다. 그 후 매년 노동절 때마다 오클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더니든 등 전국 도시 곳곳에서 노동자들과 가족들은 다양한 색채로 현란한 장식을 하고 퍼레이드를 벌였다. 또 이를 기념하는 스포츠 행사도 뒤따랐다. 그 후 1899년‘노동절법’이 제정돼 노동절이 공휴일로 지정됐고, 이어 1910년에는 10월 마지막 주 월요일로 바뀌었다. 세계1차 대전이 끝난 후 노동절의 본래 의미도 쇠퇴해 갔고, 주40시간 근무제가 평준화된 요즘 노동절은 그냥 평범한 휴일로 자리매김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여러 명절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조상들의 풍속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수확의 풍족함과 상업성보다는 멀리 떨어져 지내는 가족과의 만남에 기쁨을 두고 바쁜 일상에서의 일시적인 휴가를 즐기는 것은 명절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명절을 통하여 사회의 강박감 및 긴장감에서 일시 해방될 수 있길 바라며, 또 퇴색해가는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의미 있는 날이 되길 바란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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