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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부시정권좌불안석 적과의 동침

9·11 테러이후, 부시는 16개월간 전례 없는 60%이상의 지지율을 이어갔다. 그를 바탕으로 이라크침공과 대통령 중임선거에서도 승리의 축배를 들었다. 그러나 일련의 사태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패권주의식 부시 행정부의 정략은 금방 그 밑천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라크문제는 더 큰 수렁으로 빠져들었고, 미군의 인권유린은 반미감정을 극대화시켰다. 그리고 결국 부작용은 부시행정부의 연방 상·하원선거 패배를 불러왔다.

 

이번 미 중간선거 결과는 부시의 참패로 끝났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연방하원과 상원모두에서 과반수의석을 차지, 1994년 이래 12년만에 상, 하원 모두를 탈환했다. 부시의 가장 큰 패배원인은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미국 내 여론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민심을 받들어 이라크정책을 수정하라는 민주당의 요구에 무시로 일관했다는 점과. 또한 일방적인 대북강경책 또한 변수로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선거는 그런 오만하고 독단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이었다고 미국 언론들은 평가하고 있다.

미중간선거 공화당참패

   
연방 상·하원투표결과를 확인한 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선거는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의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며 하원은 물론 상원에서도 민주당의 훌륭한 성과를 인정하고 민심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후속조처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경질했고 그것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입술을 꽉 다물어 고뇌에 찬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신과 함께 지난 6년 동안 테러와의 전쟁을 실무 지휘한 그를 등 떠밀어 내보내는데 대한 회환으로 비춰졌다. 그도 그럴 것이 부시는 중간선거 직전까지도 럼즈펠드는 자신과 함께 임기를 다할 것이라고 천명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숨 쉬는 모든 것에 세금을 부과하고 숨쉬기를 멈추면 그 자식들까지 찾아 과세하려 한다며 선거일 직전까지도 민주당을 몰아 부치던 그였었다. 그러나 과거의 고집스런 모습과 달리 부시는 선거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민주당 후보들이 훌륭한 선거 캠페인을 벌인 것을 칭찬하며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그는 또 이라크 전쟁과 관련, 필요한 조정과 민주당과 협력 할 뜻을 밝혀 정적인 민주당을 존중하려는 모습이 역역했다. 하지만 회견도중 딕 체니 부통령의 사임을 묻는 질문에서는 선거 패배에 마음이 아팠는지 체니 부통령은 2009년1월까지 임기를 다 할 것이라며 신경질 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부시는 민주당의 ‘펠로시’ 원내 대표와 하원 총무인 ‘스테니 호이여’ 의원을 백악관 점심에 초대해 매우 우호적인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그는 분명 흔들리고 있음이 확실하다.


독불장군 ‘럼즈펠드’ 도중하차의 의미


선거에 패배한 부시는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자진사퇴형식으로 경질했다. 부시가 럼즈펠드를 전격경질 한 것은 연방의회중간선거에서의 상·하원 동시패배로 나타난 국민들의 민심을 수용하고 대외정책의 수정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부시는 신임 국방장관지명자가“차후 이라크에서 미국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떻게 그 목표를 달성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신선한 시각을 제공 할 것”이라고 말해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조기철군 등, 대 이라크정책의 변화를 예고했다. 이것은 백악관이 이라크 상황 등에 대해 필요한 조정, 새로운 시각, 국가안보문제에 대한 초당적 접근등을 민주당과 공통의 입장을 갖고 추구 할 것임을 밝힌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부시행정부는 앞으로 남은 2년을 의회를 모두 장악한 민주당과 동침하면서 그들과 이해와 협력을 통해 국정을 운영해나갈 수밖에 없다. 국방장관의 교체는 그가 주도해온 한미작통권 이양문제, 주한미군재조정, 북 핵 대응에서도 경우에 따라 일부재조정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럼즈펠드 장관이 전격 경질된 가장 큰 배경의 본질은 이라크 문제 때문인 것으로 부시가 기자회견에
   
서 이라크 정책에 대해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전쟁 수행 방식에는 앞으로 크든 작든 모종의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경질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대표적인 네오콘(신보수주의 그룹)으로 공격적인 성향의소유자로 유명했다. 출입기자에게 단호하게 당신이 틀렸다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기자회견에서 손으로 떨어지는 단두대 칼날 흉내를 내며 그건 복잡한 문제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는 부시 행정부에서 6년 가까이 국방장관을 지냈고 부시 대통령과 함께 9.11 테러도 겪었다.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지휘하며 부시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다. 두 차례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매번 부시 대통령이 붙잡았다. 결국 이라크전이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패인으로 지목되면서 그를 일으켜 세워준 이라크전쟁이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앞당긴 저승사자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AP 통신은 럼즈펠드에 대해 이라크 전쟁의 가장 최근 희생자라고 보도했다. 이라크 전쟁을 주도하는 등 강경일변도노선을 걸어 온 럼즈펠드, 그의 퇴진은 네오콘(신보수주의 그룹)의 입지축소를 알리는 동시에 네오뎀(Neo-Democrat:보수성향 민주당원)세력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일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네오뎀은 민주당내‘신우파’혹은‘중도파로 분류되는 세력으로 이라크전 반대 등 대외정책에 있어서는 전통 민주당과 궤를 같이하지만 낙태 및 인간배아줄기세포연구반대와 총기소지찬성 등에는 일부 공화당과 노선을 같이하는 게 특징이다. 부시 행정부 내 대표적인 네오콘 인사로는 딕 체니 부통령을 포함, 폴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 존 볼턴 유엔 주재 대사 등이 포진해있다. 럼즈펠드는 프린스턴대를 졸업해 1969년 닉슨 대통령 보좌관으로 백악관에 입성했다. 1962년 30세 때 일리노이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뒤 내리 4선에 성공했고 포드 정부시절인 1975년 43세로 미 역사상 최연소 국방장관으로 발탁돼 부시정부와 더불어 국방장관을 두 번 지낸 인물이다. 화려했던 과거와 달리 앞으로 그의 앞날은 험난해 보인다.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 문제를 다뤄온 변호사들은 럼즈펠드에 대한 법적 조치 가능성을 거론했다. 마이클 래트너 헌법권리센터(CCR) 소장은“럼즈펠드가 미국의 수감자 고문프로그램의 입안자 중 한명으로 이제 장관직에서 사임했기 때문에 면책특권이 박탈된다.”라고 말해 그의 앞날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했다.

신임 미 국방장관의 한반도관은

미 국방장관에 새로이 임명된 인물은 로버트 게이츠 전 중앙정보국(CIA)국장이다. 게이츠는 많은 면에서 도널드 럼즈펠드 전 장관과 대조되는 인물이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도 두 사람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럼즈펠드가 레슬러라면 게이츠는 등산가에 비유하며 실용주의자이고 사려 깊으며 말하기보다 듣기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부시 미 대통령의 국면 전환용 카드로 적합하다는 분석이다. 게이츠를 15년 전 CIA 국장에 지명한 사람은 부시대통령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었다. 게이츠는 CIA에 들어간 뒤 국가 안보회의(NSC), 국가안보국(NSA)에서 26년간 일한 정보통이다. 1993년 CIA 국장에서 퇴임해 최근에는 드러나지 않게 부시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비판해왔다. 지난 6개월간은 제임스 베이커 전 미 국무장관이 이끄는 이라크 스터디 그룹의 멤버로 이라크 정책을 연구해 왔다. 이 때문에 게이츠가 국방장관으로 있는 동안 이라크 정책이 적잖이 수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의 성급한 전망을 의식한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이 선거에 패했다고 해서 미군이 이라크

   
를 조기철군 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대답은 노(NO)라고 말했다. 결국 게이츠의 첫 임무는 효과적인 이라크 전략구상이 될 것이란 것이 미국언론의 추론이다. 공화당이 선거에서 패하자 럼즈펠드 전 장관의 고압적 자세를 불평해 온 미 국방부 관리들은 게이츠에 대해 호평을 내놓았다. 럼즈펠드는 오만하고 거친 싸움꾼이지만 게이츠는 훨씬 덜 호전적이고 유화적이라는 덕담이었다. 혹평을 한사람도 있다. CIA시절 그의 부하였던 멜빈 굿맨은, 그는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며 좀스러운 관리자일 뿐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캔자스에서 자동차 부품 도매업을 하는 부모에서 태어난 게이츠는 윌리엄 앤 메리 대학을 거쳐 인디애나대 대학원에서 석사를, 조지타운대에서 러시아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CIA 요원으로 입문한 건 인디애나 대학원 시절이다. 이후 NSC와NSA를 오가며 정보요원으로서 경력을 쌓았으며 1987년 레이건 대통령 당시 CIA 국장에 지명됐었으나 그가 이란 콘트라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점을 상원이 문제 삼으면서 지명이 철회됐었다. 하지만 1991년 조지부시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그 해 11월 48세 나이로 국장에 취임함으로써 게이츠는 사상 최연소 CIA국장이자 말단에서 시작해 수장에 오른 첫 인물로 기록됐다. 그렇다면 신임 미 국방장관인 로버트 게이츠의 한반도 정책관은 어떤 것일까. 그는 90년대 초부터 북한의 미사일 핵무장을 경고했었다. 김정일 정권에 대해 매우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게이츠는 92년 CIA국장재직당시 미 하원 국제 관계위원회에 출석, 북한이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핵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고 보고했고 당시 북한이 핵무기를 갖기까지 짧게는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고 경고한바있다. 게이츠는 94년 북한의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한 TV와의인터뷰에서 김일성이 심장마비가 아니라 다른 사유로 숨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는 2001년 대학 학장으로 재직 중일 때도 북한을 포용인가 대치인가를 주제로 놓고 세미나를 개최했을 정도로 우리의 햇볕 정책에 대해 관심이 많기로 정평이 나있다. 남북간인도적교류는 늘어났지만 남한은주고 북한은 받기만을 고집한다고 평했고 군사적 측면에 대해선, 북한은 전혀 바뀐것이 없다고 단언할 정도였다.

라이벌‘럼즈펠드’와 ‘라이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낙마하면서 미 국무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가 드디어 날개를 활짝 펼치게 됐다. 대화와 협상이 본업인 국무장관과 군부의 총체적인 행사를 담당하는 국방장관의 갈등은 드문 일이 아니다. 강한 개성과 고집을 가진 럼즈펠드 장관은 특히 콜린 파월, 콘돌리자 라이스 두 국무장관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이스 장관은 흑인이자 여성이다. 워싱턴의 흑진주라 불릴 만큼 백인과 남성이 지배한 미국사회에서 소수종족과 유색인종의 한계는 물론 성적차별까지 극복해낸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부시 대통령이‘콘디’라는 애칭으로 부를 만큼 가족 같은 측근으로 소문나 있지만 럼즈펠드 장관만큼은 꺾을 수 없었다. 럼즈펠드는 취임 이래 지금껏 국무부의 고유영역인 외교분야까지 사실상 주무르며 미국의 일방주의 강경노선을 주도해왔다. 이 때문에 융통성 있는 정책을 추진해온 라이스 장관과 번번이 맞부딪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기 공화당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되는 라이스 장관에게 럼즈펠드 장관 퇴진은 맞수의 퇴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번에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국민들에게 거부당한 네오콘식 일방주의와 거리를 둔 라이스식 노선을 선보일 기회를 잡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망한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라이스 장관이 대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게다가 새로이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로버트 게이츠 전 CIA 국장은 라이스 장관과 20년 전부터 호흡을 맞춰왔던 절친한 사이다. 게이츠 전 국장의 취임은 걸림돌이 제거된 라이스 장관에게는 분명 기분 좋은 새로운 정치파트너를 만난 셈이고 보면 앞으로 그녀의 정치운명에 호재가 될 것으로 관측통들은 내다보고 있다.

미 대북정책 변화 오나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전격 교체되면서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무시로 일관해온 부시행정부 내 대북강경파 라인의 근본적인 대북정책이 달라질까 여부다. 빌 클린턴 1기 행정부 시절인 1994년 이래, 미 상ㆍ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클린턴의 대북 포용정책을 강하게 견제했듯이 이제는 민주당이 부시 행정부의 변화를 압박할 것이다. 민주당은 북미 간 적극적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문해왔다. 네오콘에 둘러싸여 있는 부시 대통령이 대북 무시정책을 쉽사리 바꿀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기로 했고 공화당의 중진의원들까지 북미 직접대화를 주문하고 있는 만큼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은 흔들릴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북한문제의 초점을 흐리지 말고 핵 문제에 우선순위를 둔 초당적 정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지금까지 대북정책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총괄 지휘해왔다. 다만 럼즈펠드 장관이 네오콘의 중심축이었기 때문에 그가 떠남으로인해 백악관 내 강경 일변도의 대북 정책은 약간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나오고 있다. 딕체니 부통령을 포함한 이들은 국무부를 중심으로 한 대북협상론을 제기할 때마다 치열한 내부논쟁을 벌이며 대북압박론을 펴온 선봉장들이었다. 부시의 첫 번째 파트너였던 콜린파월 전 국무장관도 행정부 내부에서 대북협상론을 펴다 이들의 힘에 밀려 퇴출됐었다. 강경파들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핵무기 포기의지에 회의적 시각을 갖고 있으며 북한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펴왔다. 따라서 부시대통령이 럼즈펠드장관의 사표를 받으면서 국가안보문제에서 민주당과 공통의 입장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요구해온 민주당의 지적을 대북정책에 반영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또 여론의 강한 비난대상이 되어온 체니 부통령 역시 네오콘그룹의 전반적 퇴조 속에 사실상 앞으로 2년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 그 힘이 현저히 약화되면서 부시 행정부 내 비둘기파(강경파의 견제세력)가 득세할 것이라는 시각도 지배적이다. 다시 말해 민주당이 연방 상하 의원을 장악함으로써 부시 행정부에 대해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부시대통령은 최근 입법화된 국방수권법의 조항에 따라 곧 대북정책 조정관을 임명, 대북정책 전반에 걸쳐 재검토에 들어갈 것으로 본다. 일각에선 아버지 부시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냈던 제임스 베이커 같은 거물을 지명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한반도와 동북아문제를 담당하는 상원외교위원장과 하원국제관계위원장에는 미·북간 직접대화를 주장해온 민주당 조지프바이든 과, 톰랜토스의원이 각각 유력한 것도 주목된다. 랜토스의원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극적인 변화가 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북한을 악의축으로 보는 부시대통령의 시각은 그의 종교적 신념과도 맞닿아있고 민주당도 북한을 보는 근본적인 시각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또 북한과의 직접협상도 6자회담의 틀 내라는 전제하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골격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전망이다. 한반도 국방정책실무자인 리처드 롤리스 아태담당부차관보도 국방부의 조직개편과 함께 아태담당차관보로 승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이번선거결과가 외교문제에 관한한 북한과 이란보다는 이라크전에 있다고 볼때 미국일각에서는 북한과 이란이 미국의 단호한 의지가 약화되는 것이 핵확산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선거기간 중 민주당후보 지원의 선두에 섰던 빈 클린턴 전 대통령은 중간선거 결과를 미국인들이 경직된 이념정치를 거부한 것이라며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부시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차단하고 북한을 고립시키려 한것은 잘못된 정책방향이며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미리 규정해놓고 한잔하자고 초대한 것 자체가 부시의 잘못된 근본적인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은 세계의 관심과 식량 에너지 같은 필수품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며 대화채널만 열리면 북한 핵문제는 얼마든지 해결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부시, 선거패배로 대한군사정책방향은

   
새로운 미 국방장관의 교체로 주한 미군 감축 및 재배치, 전시작전 통제권 단독 행사 문제, 전략적 유연성 등 미국의 대한군사 정책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의회를 석권하고 럼즈펠드가 바뀌었지만 미국의 한반도 군사정책 또한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럼즈펠드 전 장관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정책 중 전 세계 주둔 미군을 재편하는 GPR(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계획과 전략적 유연성, 전작권 이양, 이라크 파병 등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오는 2008년까지 1만2천5백여명의 주한미군이 감축되고 한강 이북의 미국기지들이 평택기지로 옮겨 갈 예정이다. 때문에 주한미국의 전략적 유연성과 전작권, GPR과 군사변환 등의 기본 골격이 바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전작권 이행 문제는 어차피 차기 정부의 몫인데 또 전작권 조기 이양추진과 한미 동맹 불협화음이 럼즈펠드 한사람에 의해 죄지 우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한미국 재편이나 전작권 이양등은 이미 되돌리기에는 진도가 너무 많이 나가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면 기본 골격엔 변화가 없겠지만 각론과 과정에 있어선 다소 융통성이 생길 수는 있다. 미 측이 전작권 이양 시기를 한국 측이 희망하는 2012년으로 받아 주되 방위비 분담금을 비롯한 비용추가 부담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이 장악한 미 의회와 미국 내 여론을 활용할 수 있는 지혜와 대미 군사 외교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이 이라크 주둔 미군 조기 철군을 추진할 경우 국내에서도 이라크에 파병돼있는 한국군 자이툰 부대의 철수 요구가 더욱 거세 질것은 자명한 일이다.

부시정부의 고민과 당면과제 

2차대전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원칙은 현실주의다. ‘국가의 동인은 이념이나 윤리가 아니라 경제·군사적 우위와 안전을 취하는 데 있다’는 현실주의는 효과적이라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부시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을 주도했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은 기독교적 선악관에 서서 ‘불량국가’와의 대결정책만을 폈다. 미국 전통 외교노선에서의 일탈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라크전 등을 두고 “미국인은 원래 실용적인 국민인데 최근 몇 해 뿌려진 이념의 씨앗이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를 비판한 것이다. 부시와 함께 등장한 네오콘 앞에 침묵했던 공화당의 현실주의 세력들은 올여름부터 이라크전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럼스펠드 경질은 그가 대변했던 네오콘의 퇴조와 현실주의를 근본으로한 외교주의자들의 복귀를 의미한다. 현실주의자들은 지금 이라크문제에 대한 정책대안을 모색하고 목소리를 구체화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결과는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함으로 그 의미는 분명해 졌다. 미 국민들은 막대한 예산과 인명 피해의 대가를 치르면서도 좀처럼 이라크전쟁의 해법을 찾지 못하는 부시 대통령과 부패, 성 추문에 휩싸인 집권당 공화당에 대해 단호하게 ‘노’라고 심판했다. 그렇지 않아도 역대대통령 중 지지도면에서 최하위권을 헤매고 있는 부시는 여소야대 의회구도 아래서 주요정책을 수정하라는 강한 압력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공화당의 독주를 바탕으로 추구해온 일방주의 대외정책에 제동이 걸릴 것이고 대테러전 등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미 국민들은 911테러로 상당한 자존심이 상했었다. 빈 라덴이 이끄는 중동의 한 단체가 미국 심장부를 발칵 뒤집어놓았으니 그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예전 레이건 시대처럼 세계최강국의 면모를 되찾길 원했고, 세계의 패권주의를 부르짖는 네오콘과 국민들의 지지 속에 부시는 이라크침공을 강행했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의 하나로 부시는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가질 수 있었고 전쟁 내내 부시는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과 이라크는 애초부터 적수간의대결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전쟁이란 말 대신 이라크침공이란 말을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이다. 부시는 이라크침공으로 승리의 축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지나면서 난제에 부닥쳤다. 전쟁당시 미군들이 저지른 포로학대와 그치지 않는 이라크의 항전, 또 전쟁의 이유가 평화보다는 중동지역의 석유자원을 둘러싼 패권쟁탈이라는 속내가 국제사회의 비난을 불러오자 부시는 강력한 미국재건이라는 말 대신 고개숙인 미국을 만들었고 이에 미 국민은 부시를 외면한 것이다. 여전히 부시의 정책이 윤리나 정의 보단 명분과 권력에 더 집착하는 우를 범한다면 2년후에 있을 대선에서 미국민들은 부시에게 영원히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 부시는 과연 어떤 카드를 빼들을까. 부시는 이제 남은 임기동안 심각한 레임덕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만은 확실하다. 부시는 흔들리고 있다.NP

임석빈 편집주간  similan@inewspeop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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