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잣대로 아이를 판단하지 말라

갓 태어난 아기는 세상의 모든 걱정과 고민이 없이 마냥 행복해 보이기만 한다. 백지처럼 순수한 상태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모습과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느끼며 성장한다. 아이가 언제까지나 아이로 남아 있을 수는 없듯이, 아이들은 성장하기 위해, 또 어른이 되기 위해 그 본연의 순수함을 잃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시대의 꿈과 희망이라 일컬어지는 아이들. 어른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항상 웃음과 행복으로 가득 찬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판단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중·고등학생의 문화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른의 모습들을 그대로 축소시켜 놓은 듯한 이들의 행동에 어른들은 급작스레 허를 찔렸고 더 이상 이들을‘아직은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라는 생각을 버려야만 했다. 그렇다면 초등학생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열 살 남짓한 아주 작은 어린 아이들이 세상의 추악한 일들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마냥 순수하기만 하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는가. 그것은 어쩌면 단순히 우리 어른들의 바램일 뿐인 것은 아닐까.

아이답지 않은 아이들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희망이라는 아이들. 어른들이 보기에는 한없이 어리고 한없이 순수해만 보이는 그들은 어른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미 어른이 되어 버렸다. 흔히들 요즘 어린 아이들은 아이답지 않다는 말을 한다. 요즘 아이들이 아이 같지 않다는 그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과연 ‘어린이다운’, ‘아이다운’행동이란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몇 살에는 이러 저러한 행동을 하며, 몇 살에는 이런 저런 행동을 한다’ 라는 성장 정도에 따른 일반적인 기대 행동들을 두고 어린이다운, 혹은 아이다운 행동들을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어린이다운’행동 혹은 ‘아이 같은’ 행동들은 어린 아이들의 기준에서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 대한, 어른들이 만들어 낸 하나의 이미지이며 환상이자 착각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다양하고 폭넓은 정보 매체가 형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당연히 정보의 부족으로 세상 물정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즐길 수 있던 놀이 수준은 고작 ‘나가서 뛰어놀기’정도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미디어와 기술의 발달로 아이들은 보다 다양한 문화와 정보를 접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일단은 과거의 아이들과 차별성을 두고 요즘의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최근 초등학생들의 도덕성과 폭력성의 수위가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인터넷에 초등학생 키스장면이라는 사진이 떠돌아 논란의 대상이 되었기도 했다. 초등학생이 연출하고 있는 키스 장면이 담긴 사진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 졌다. 같은 또래인 경우는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 놓으며 같이 공감을 했으며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이에 대하여 무차별적인 비난을 가했다. 초등학생 키스는 미성년자들의 성의 현재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다. 언제까지나 어릴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초등학생들이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린 아이로서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한국사회조사연구소가 지난해 전국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자 34.4%, 여자 28.8%가 ‘특별히 사귀는 이성친구가 있다’고 응답했다.

‘어른 아이’가 되어 버린 아이들

▲ 인터넷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초등학생의 키스장면을 찍은 사진
개봉구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L양은 얼마 전 동갑내기 남자친구와 커플링을 맞췄다. 사귄지 22일 되는 ‘투투데이’를 맞아 서로 조금씩 용돈을 모아 산 것이다. L양은 남자친구와 사귀는 것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생님, 가족들에게 당당하게 ‘우리 사귀어요’ 라고 자랑하며 다닌다. L양 뿐 아니라 요즘 많은 초등학생들은 꽃으로 이성친구의 마음을 잡으려거나 TV의 짝짓기 프로그램의 흉내를 내며 구애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사귄지 100일째 되는 날은 물론이고 발렌타인데이, 빼빼로데이 등 각종 기념일을 꼬박꼬박 챙긴다. 질투에 가슴 아파하기도 하고 짝사랑에 설레기도 하며 삼각관계에 괴로워하는 등, 아이들은 여느 어른들의 연애방식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사랑을 한다. 초등학생들의 이성교제가 자연스러워지면서 서로 포옹한다든가 입맞춤을 하는 등 성적인 접촉을 하는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인 P씨는 “지난해 5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아이들끼리 ‘뽀뽀놀이’라는 것을 해 놀란 적이 있다”고 했다. 아이들끼리 ‘나 어제는 누구랑 뽀뽀했고, 오늘은 누구랑 할 거다’라면서 서로 자랑하더라는 것이다. 6학년 담임인 K씨는 “소풍 가는 날 버스 안에서 우연히 남자아이들이 쑥덕거리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우리 반에서 어떤 여자아이가 가장 섹시하냐’,‘누구랑 키스하고 싶냐’등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어 끼어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한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H씨는 “4∼6학년에서는 종종 ‘누구랑 누구랑 어제 키스했다더라’는 소문이 학교 안에 퍼지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기도의 한 경찰서 안에 만화책을 읽으며 키득거릴 것 같이 평범한 초등학생 6학년 아이들 두 명이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 두 아이는 인터넷에서 포르노물을 즐겨 보다 동성애자들이 성교하는 장면을 그대로 따라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여자와 함께 해보기로 합의, 집밖으로 나와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를 위협해 성폭행을 했다고 한다. 길 가다가 졸지에 봉변을 당한 소녀는 심한 충격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어린 ‘성폭행범들’은 죄의식도 없었다. 그저 인터넷에서 본 것을 호기심에 한번 해봤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지난 해 충청도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은 어른들의 생각과 아이들의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고 있다. 평소 음란사이트를 보아 성적 호기심이 충만한 6학년 여학생 A양은 친구 B양에게 그림까지 그려가며 성행위를 설명한 후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방과 후 남학생 6명과 함께 학교 교실에 설치된 컴퓨터로 음란 사이트를 본 후 게임으로 뽑힌 남학생 한명과 A양은 교내 차고와 학교 앞 폐가에서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행위를 시도했다. A양의 친구 B양은 C군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A양을 성추행하라고 강요를 하기도 했다. A양은 “음란메일이 와서 접속한 후 매일 3시간씩 음란물을 접촉했고, 계속 보니 한번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A양의 가족들은 “학교측이 컴퓨터 관리를 엉망으로 해 아이들이 음란물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결과 발생한 사건”이라고 주장했지만 충북교육청 관계자는 “인터넷 게임을 한 아이들이 호기심에서 완전한 성행위가 아닌 성적 접촉을 한 것일 뿐”이라며 사건의 의미를 축소 해석했다.

아이를 ‘아이’로 보는 것이 문제

서울가정법원 소년자원보호자협의회의 청소년 성문화 설문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4.24% 정도가 성관계를 경험했고 성관계를 경험한 17.3%의 초중고 학생 가운데 10%가 초등학생 때 이미 첫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 아이들이 접할 수 있었던 대중 매체는 TV나 책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절의 아이들은 만화 영화를 보고 위인전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런 것들은 모두 수많은 ‘양서’와 ‘악서’중에 그들의 부모님이 허락한 것들로 아이들에게 해가 될 만한 내용이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어린이들은 다르다. 인터넷에 접속하기만 하면 간단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금지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즉, 과거에 가능했던 어른의 ‘양서 골라주기’가 더 이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읽어서는 안 되는 글이나 동영상을 접한 어린이들은 깊은 사고 없이 그것들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들은 또 다른 일탈 수단을 인터넷으로부터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음란물을 보다 중독된 학생 가운데는 아예 직접 사이트를 운영하며 제작자로 변신, 돈까지 버는 초등학생들도 있다. 인터넷 음란물 운영자의 20%는 중고생이며 이들 중 초등학생의 수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일본 서양에서 만든 포르노 동영상은 물론 여자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을 채팅으로 설득해, 캡처한 누드나 벗은 사진까지 올려 수천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음란화상채팅 등을 조심해야 할 이유는 이곳이 새로운 우범지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가정법원 소년자원보호자협의회가 전국 초등학교 5학년~고교3학년 학생 2072명과 재판 계류 중이거나 교정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비행청소년 2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화상채팅 경험자 957명 중 절반이 넘는 409명이 성관계를 요구하는 제의를 하거나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초등학교 가출소녀들이 화상채팅으로 만난 성인남자들의 꾐에 빠져 성폭행을 당하거나 성매매에 빠져들기도 한다. 한 초등학교의 교사 J씨는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제일 모르는 것 같다”고 말한다. 말썽을 일으켜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면 “착하고 순진한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다”고 펄펄 뛰면서“혹시 자주 학교에 가지 않아 우리 애를 미워하는 거 아니냐며 오히려 화를 내는 어머니도 있어 답답하다”고 한다. J씨는 “요즘 애들은 유치원에 다니면서부터 한글은 물론 영어, 중국어까지 다 배워 학교 공부에 흥미를 못 느끼고 또 4학년만 되어도 특목고 대비 학원에 다니는 등 스트레스가 많은데 어린이다운 놀이를 즐길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학교에서 담배 피거나 음란물을 본 학생들을 나무라면 ‘우리 엄마는 너무 순진해서 쇼크를 받으니 절대 알리지 말라’고 한다”며 허탈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라

한양대학교 소아정신과 안동현 박사는 “성 음란물이 인터넷 매체를 통해 우리 주변에 일상화 되어 있다. 특히 정서적으로 불안하거나 감독이 부족하고 취약한 환경의 아이들이 성 음란물을 접하면 일탈할 수 있는 위험성이 가장 높다”고 말한다. 한편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초등학생 사이 성 현상을‘성관계’로 파악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슴을 놀리거나 치마를 들추는 행위 등이 성폭력이라고 인식되는 상황에서 초등학생의 성문제를 “단순히 ‘놀이’로 인식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구성애의 아우성 초등학생 게시판에는 ‘손이 묶이고 강제로 옷을 벗기는’ 성폭행을 당하고도 성폭력이냐고 묻는 학생들이 있다. 성교육 전문기관에 의하면 초등학교 고학년은 ‘성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말한다. 중학생만 되어도 학교에서 성교육을 시키는데, 초등학교의 경우 아주 형식적으로 교육을 시키거나 아예 시키지 않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아이들은 쏟아져 나오는 불건전한 성적 자극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모르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폭력이 무엇인지, 성관계가 무엇인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올바른 성교육이다. 아우성의 구성애 소장은 “성교육은 생식기 모양 등 성지식 교육이 아니라 심성교육이 깔려야 한다. 문화적 이유로 아이들이 뜻도 모르고 한 일의 책임은 사회에 있다. 연령을 막론하고 아이들에게 가해자 개념을 사용하는데, 문제 아이는 어른들의 애정과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고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껏 어른들은 아이를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지 않고 어른의 눈높이에서 어른의 잣대로 아이를 판단해왔다. 그리고 어른들보다 더 잔혹한 폭력을 일삼거나, 음란물에 중독되었거나, 흡연까지 하는 어린 문제아들에 대하여 어른들은 여전히 “어리니까”, “설마”하며 이들을 무시하거나 덮어두었다. 그 사이 아이들의 가슴과 영혼은 새까맣게 멍들어 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어른이 생각하는 ‘아이’는 지금의 우리 아이의 모습이 아닌, 과거의 허상이며 환상일 뿐이다. 이제 우리의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어른의 잣대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그리고 지금, ‘아이’가 어른들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서 있는지, 그리고 그 아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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