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 박사 김오차를 찾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급한 일과 소중한 일 사이에서 갈등한다. 소중하지는 않지만, 시급한 일 그리고 시급하지는 않지만, 소중한 일. 이 둘 중에 매번 선택을 당하는 쪽은 소중하지는 않지만, 시급한 일이다. 그래서 프랭클린 플래너에는‘사람들은 소중하지는 않지만, 시급한 일을 하느라고, 정작 시급하지는 않지만 소중한 일은 하지 못한다.’라고 쓰여 있다. 살면서, 소중한 일과 시급한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은 늘 숙제로 남아 있다.

인생은 늘 선택을 강요하고, 그 선택의 갈등은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그 선택이 나중에 어떤 후회를 불러와도, 최선의 선택이었다면 깨끗이 잊어버리는 게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지혜일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이 많은 이들을 이롭게 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그 때 그 선택이야말로, 삶에 있어서 최고의 순간이라고 칭송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오차는 그런 최고의 순간을 겪었다. 자신을 평생 교육의 전문가, 지역사회 선봉자,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시급하면서도 소중한 것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학생들을 큰 인물로 자랄 수 있게 했다. 또 우리 사회의 갈등과 미움, 전쟁과 폭력, 차별과 소외,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차별적 파괴 등을 되돌아보며 지역사회 선봉자로서‘나눔의 아름다움’을 선택했다. 그리고 디지로그 시대의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14년 동안 교육의 신념을 실천해 오고 있다. 세일학원의 김오차 이사장을 만나보자.

김오차의 자수성가

▲ 김오차 이사장
김오차 이사장은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다. 동산이 있고, 그 곳에서는 뻐꾸기가 울고, 봄이면 진달래가 피고, 앞으로는 시냇물 소리가 잔잔한 그런 시골 마을이 그 고향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시골에도 시대적 상흔은 가난으로 남아 있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사회는 좌와 우 사이에서 갈등하고, 한국전쟁을 전후 한 어려운 시기에 그는 5남 1녀 중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3살 되던 해에 아버지는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큰 형은 한국전쟁 때 잃은 아픔을 겪어야 했다. 가족의 부양은 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인내와 희망을 심어주실 수 강인한 분이셨다. 이런 집안 환경 때문에 그는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후,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그의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했고, 시골중학교에 입학시켜주었다. 그에게 있어 중학교 진학은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하다. 학습여건도 열악하고, 동급생끼리 나이차이도 많이 났지만, 그에게 많은 도움과 용기를 주었다.

인생의 전환기를 맞다


그는 중학교를 마치고 3등 완행열차에 올라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올라가야 성공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 간절해졌다. 어머니의 반대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며 주경야독의 생활을 했다. 그 힘겨운 시절, 문학은 고된 생활을 잊게 해주는 벗이었다. 당시 국어 선생님이셨던 이우재 박사의 소설 강의는 소년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대학은 그의 현실에서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그는 경제적인 사정으로 인해 대학을 휴학하고 중계동의 한 천막학교 야학에서 자원봉사 강의를 하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 3개월 동안 봉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뛰어들었지만, 야학활동을 3년이나 하게 되었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그는 그 곳에서 많은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3년간의 천막학교 생활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야간대학원에 진학해 교육학을 전공하고 평생교육에 대한 학위를 준비하게 된다. 그 때 그 경험이 지금의 세일학원을 있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일 것이다. 그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기회가 공평하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부러 강북을 택했다고 한다.

동북부 제일의 세일학원


그는 1993년 서울 동북부지역에 세일학원을 세우게 된다. 세일학원은 북부지역 입시교육의 메카로 불린다. 김 이사장은 교사가 학원의 주체가 되어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통해 학생들의 실력향상 뿐 아니라 인성교육도 책임지는 진정한 교육의 터전이 되기를 꿈꾼다. 최첨단의 교육시설을 갖추고 있고, 생활지도와 성적 관리를 철저하게 관리한다. 또 96년에는 (주)도서출판 세일을 설립했고, 중계동에 180평 규모의 세일문구를 세워 북부지역의 교육 활성화를 통해 지역의 교육봉사에도 힘쓰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북부지역 교육의 발전과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다양한 장학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세일학원을 모태로 세일 장학재단과 서울 북부 꿈나무 후원회를 구성하여 장학 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은 어린 시절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한 스승의 모습이 아름다울 때 후학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실감하면서“큰 스승이 큰 인물을 만든다.”라는 교육 신념 아래, 그 스스로가 큰 스승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는 학문이란 끊임없이 배우는 것이고, 그 배운 것을 강단에서 듣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현재 사회복지 사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가 대학원 학위 논문으로“한국의 노인교육 정책에 관한 분석적 연구”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노인복지 사업으로 노인 사회 복지 시설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평생 교육 전문가. 지역 사회 선봉자, 문학을 사랑하는 그가 있는 한 우리나라 교육의 큰 스승은 이미 존재하는 셈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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