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업! 지방시대] 동해 대게산업
| 전국 최대 어획량으로 승승장구… 어민도 살고 바다도 사는 상생산업 |
| 다리가 대나무처럼 생겨 붙은 이름, 대게. 경북 울진과 영덕의 대게산업은 도로의 발달과 함께 지역성장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예로부터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이 지역의 울진대게는 자체 브랜드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특히 거대한 수중 암초 왕돌초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울진 지역은 어족자원을 보호하려는 어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더해져 시너지 효과를 낳고 있다.
바다에서 떠오른 아침 해가 위판장을 비추고 뒤집어놓은 게들의 저마다 버둥거리는 모습이 도열한 병사들의 창처럼 햇살을 부순다. 열 마리씩 열을 지은 게들 앞에는 마릿수가 적혀 있다. 경매가 시작됐다. 수협 판매과 직원이 바닥에 적힌 게의 숫자를 부르고 즉석에서 중매인들이 나무판에 가격을 제시한다. 수협 직원의 “10마리 8900원”이라는 소리에 어민의 희비가 엇갈린다. ‘10마리의 게가 마리당 8900원에 팔렸다’는 의미. 중매인이 낙찰 받은 후 수수료를 붙여 도매상에게 넘기고 도매상은 다시 이문을 붙여 소비자에게 파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 날 위판된 게는 총 676kg, 580만 원에 해당한다. 경매는 30여 분만에 끝나고 위판장을 가득 메웠던 게는 각기 새로운 주인을 찾아 자취를 감췄다. 이날, 울진 후포수협 관할 위판장인 기성면 구산리, 기성면 사동리를 합하면 총 4156kg, 3700만 원어치의 대게가 거래됐다. 하루 위판량이 많을 때는 5000만 원을 넘기도 한다는 게 수협 관계자의 귀띔이다. 임금님 수랏상까지 올라간 귀하신 몸
울진대게의 역사는 조선 성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국여지승람에 처음 기록된 울진대게는 임금에게 진상되기도 할 정도로 유명했다. 최근에는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울진대게’가 직접 거론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경북 이북의 동해안에 분포하는 대게는 북태평양의 오호츠크 해, 캄차카반도의 베링 해, 알래스카 해 등에서 잡힌다. 서식 수심은 200~800m의 모래바닥 또는 진흙인 곳에 주로 산다. 울진이 대게로 유명한 데는 울진만의 독특한 자연환경에 있다. 울진군 후포항에서 동쪽으로 2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왕돌초는 거대한 수중 암초로 동서 21km, 남북 54km로 남쪽으로 포항까지 뻗어 있다. 왕돌초는 수심·온도·뻘질 등이 대게가 서식하기 가장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게하면 영덕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울진대게가 일반인에게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울진에서 잡힌 대게가 1930년대 교통이 편리한 영덕을 통해 외부로 나가다보니 영덕이 대게의 명산지로 알려졌다. 이는 대게를 파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후포항에서 만난 한 상인은 “동해에서 잡은 대게가 울진으로 들어와 팔리면 울진대게, 영덕에서 팔리면 영덕대게가 아니냐”며 “맛은 같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울진군청 수산과 조태석 계장은 “전국 대게 생산량의 60~70%가 울진 지역에서 난다”며 “우리 것을 찾자는 움직임에 따라 지역브랜드로 알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울진대게라는 이름으로 팔리기 시작한 지는 고작 8년 정도”라고 덧붙였다. 울진대게의 원조마을인 평해읍 거일2리 마을이 후포항에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옛 이름이 ‘게알’이었다는 거일마을은 당시 울진에서 대게잡이를 가장 많이 한 마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지역에서 파는 게는 품질과 원산지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된다. 원산지에 따라 시베리아산, 북한산, 울진과 영덕산 등이다. 게의 종류에 따라서는 시베리아산 킹크랩, 북한산 게, 영덕·울진대게, 붉은 빛이 선연한 홍게 등으로 분류되고 살이 덜 차고 다리 안에 물이 많은 물게, 살이 꽉 차고 물이 적은 대게, 바닷가에서 가까운 곳에서 잡히는 갓바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 잠깐만 대게야, 대게야… ‘동국여지승람’에는 대게를 자해(紫蟹)라 표기하고 있고 평해와 울진의 특산물로 기록하고 있다. 대게라는 이름은 몸통에서 뻗어나간 다리의 모양이 대나무처럼 곧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어로는 죽해(竹蟹)로 표기한다. 대게는 보통 붉은 빛을 띠는 황색, 은백색, 분홍색, 홍색 등 색깔에 따라 4종류로 구분하는데 이 중 박달대게는 황금색을 띤다. 울진보다 영덕이 대게의 명산지로 알려진 것은 1930년대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 대도시에 해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교통이 편리한 영덕으로 집하돼 반출한 때문. 대게의 서식지는 수심 200~800m인 곳이며, 홍게는 200~2000m의 심해에 서식한다. 대게는 암컷과 수컷의 서식처가 다르다. 미성숙 개체와 암컷은 수심 200~300m의 대륙경사면에 주로 서식하고, 수컷 성체는 300m 이상의 수심에 주로 산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이 중 가장 비싸게 팔리는 명품 게는 영덕과 울진에서 주로 나는 박달대게다. 박달대게는 황금빛이 더 찬란하고 다리가 곧고 크며 껍질이 얇고 살이 꽉 차 있다. 게살은 쫄깃하고 담백하며 장이 노란색에 가깝고 단맛이 난다는 특징이 있다. 최상품인 박달대게는 100마리에 한두 마리가 잡힐 정도로 귀하다. 크고 살이 꽉 찬 최상품은 식당에서 마리당 20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대게를 맛보려면 영덕의 강구항이나 울진의 후포항으로 직접 찾아가는 것이 좋다. 박달대게에서부터 수입산 대게까지 다양해 싱싱한 대게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 상인들의 상술에 관광객이 속는 경우도 있다. 대게라고 속여 품질이 떨어지는 수입산 게를 판매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게를 구분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먹어보는 수밖에 없다. 영덕 강구항 영주성일수산의 장치덕 씨는 “러시아산과 북한산, 울진·영덕산 대게, 홍게를 같이 먹어보면 금방 그 차이를 알 수 있다”며 “고객을 속이는 일은 대게의 명성을 허무는 행동이기 때문에 상인들도 서로 감시하는 형편”이라 말했다. 먹어보기 전이라도 대게를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자망협회 등 어업인 단체에서 인증한 영덕대게나 울진대게라는 표식이 달린 게를 고르면 된다. 말하자면 ‘품질인증제’인 셈이다. 울진군에서는 대게의 생태보호와 어족자원 보존을 위해 어획금지기간을 설정했다. 대게의 주 산란기간인 6월부터 10월말까지로 정한 어획금지기간에는 어떤 대게도 잡을 수 없다. 대게가 산란하고 생육하는 충분한 시간을 주는 셈이다. 어민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지역 활기
어민들의 자발적인 노력도 힘을 더했다. 어민 자체적으로 11월 한 달간을 조업 금지기간에 포함시킨 것. 울진의 어업인 단체인 울진군자망연합회·후포자망협회·죽변자망협회·구산자망협회 등 네 어민단체가 힘을 모았다. 한 달 동안 대게잡이를 더 멈추고 자원보호에 나선 것이다. 이와 함께 왕돌초 부근 해역에 대한 청소도 함께 진행했다. 해저에 깔린 폐그물을 인양하는 등 어족자원 보호에 힘을 쏟았다. 자발적인 어민들의 노력 덕분에 대게 어획량도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2005년 생산량이 463톤에서 2006년 5월 657톤을 기록했다. 이런 추세라면 2006년 연말에는 총 1000톤이 생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후포수협 판매과 박필성 씨는 “최근 대게 생산량이 급격히 는 데는 어민들의 자율관리가 큰 역할을 했다”며 “등껍질이 9cm 이하인 어린 개체와 암컷은 잡는 즉시 방류하는 등 어족 자원보호에 어민들이 스스로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울진군의 이런 노력 덕분에 자유관리어업 우수공동체로 선정돼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지역축제로 승화시키기 위한 노력도 더해졌다. 해마다 4월이면 열리는 영덕과 울진 대게축제는 올해 8년째로 축제기간에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이 지역에 몰려 성황을 이뤘다. 대게축제는 대게잡이 체험행사, 대게 경매 참가, 무료 시식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광객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나는 동해대게. 지자체의 브랜드화 노력과 어민들의 자발적인 어족 자원보호, 품질인증제를 통한 명품화 등으로 지역 특산품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모범이 되고 있다. 지역이 특산품을 살리고 특산품이 지역을 살리는 선순환이 오늘도 울진과 영덕에서 계속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