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진일보?! 혹은 제 2의 후소샤 교과서!!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관한 논란은 지금껏 계속 되어 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임나일본부설에서부터 독도의 영유권 주장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역사왜곡의 실태는 실로 기가 막힐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뉴라이트 단체는 ‘한국 근현대사 바로보기 운동’을 표방하며 뉴라이트 교과서 시안을 발표하였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사색의 자유가 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이 어떤 특별한 사상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자체로 그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다. 물론 전적으로 다른 이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교과서는 많은 분야의 서적들 중에서도 특히 지식의 전달이 그 목적이기에 보다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만 한다. 잘못된 정보의 수록은 그것을 보는 이로 하여금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가 아닌 왜곡된 정보를 습득하게 만든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역사교과서 왜곡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의 왜곡,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문제다. 최근 국내에서도 뉴라이트 단체가 추진하고 있는 뉴라이트 교과서가 제 2의 후소샤(일본의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출판하는 출판사) 교과서라 불리며 도마 위에 올랐다.

뉴라이트(New-Right)운동은

뉴라이트 교과서에 대해 논하기 전에 먼저 뉴라이트가 무엇인지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라이트(Right)라는 단어에는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그 첫 번째가 ‘오른쪽’이요, 두 번째가 ‘바르다’이며, 마지막 세 번째가 ‘신념, 주장’이다. 이들 세 가지 뜻을 하나로 묶어 표현하자면 ‘오른편에 선 바른 주장, 혹은 바른 신념’이라는 뜻이 된다. 여기서 오른쪽은 우파, 혹은 보수주의를 뜻한다. 그래서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뉴라이트(New-Right)’는 신보수주의가 된다. 과거, 냉전을 형성했던 좌익과 우익이 있었다. 우익은 자유주의(자본주의)의 개념 아래 정부의 역할보다 시장의 역할을 중요시 했다. 좌익은 사회주의(공산주의) 개념 아래 시장의 역할보다 정부의 역할을 중요시 했다. 이들의 흐름은 냉전이 종식되며 러시아의 몰락과 함께 사회주의의 패배가 확실시 되었고, 이에 좌익은 세계 정치에서 그 존립 기반을 잃어 버렸다. 그러나 자본주의 역시 유토피아적 이론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시장경제의 자유만을 강조한 나머지 외부효과, 독과점 등 시장 실패의 문제점들이 하나 둘 드러났다. 이때 케인즈를 필두로 시장의 경제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정부의 개입도 인정하는 수정 자본주의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수정 자본주의 또한 지나친 복지의 결과 전체적으로 하향평준화 되고, 일을 하지 않아도 복지로 먹고 살 수 있다는 인식이 만연하게 되어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는, 이른바 ‘영국병’이라 일컬어지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제 다시 뉴라이트로 돌아가 보자. 뉴라이트(New-Right)는 1980년대에 등장하여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기조를 이룬 사상으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결합된 사상이다. 이 사상에서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제한적인 정부·자유시장이라는 전통적인 자유주의 가치로 구성되어 있고, 보수주의는 사회적·종교적·도덕적·보수주의에 기초한 사회적 질서와 권위의 확립을 강조한다. 뉴라이트는 케인즈주의의 복지국가론을 비판하면서 공공정책을 위한 시장기구의 부활과 시민권의 제한이라는 두 가지의 뚜렷한 주장을 담고 있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사상이 합쳐져 등장한 뉴라이트는 국가개입의 축소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시장기구를 옹호하고 지나치게 인위적인 평등을 배제하고 재산권을 다른 시민권보다 우위에 둔다. 이러한 뉴라이트는 신보수주의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불리는 신보수주의 ‘네오콘’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뉴라이트는 개혁적인 보수로서 특히, 온전한 시민의 권한을 유지하고, 권리를 침해받기를 원하지 않는 중도적 성향의 보수들에게 적용된다. 1980년대에 영국에서 활기를 보이면서 차츰 ‘대안있는 보수’로 떠오른 뉴라이트는 레이건 혁명의 기초가 된다고도 할 수 있다. 반면 네오콘은 강경 보수로, 국가 안보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유형의 보수다. 흔히 딕 체니 미국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대표적이라 일컬어진다. 따라서 뉴라이트와 네오콘은 같은 ‘보수’이긴 하지만, 뉴라이트가 조금 더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반면, 네오콘은 힘을 우위로 두는 일명 ‘무식한 안보 보수’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뉴라이트 운동에 대하여

국내에서 지난해 중반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 뉴라이트 운동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반응이 엇갈렸다. 어떤 이는 뉴라이트 운동을 가리켜 ‘찻잔 속의 태풍’이라 표현했고, 또 다른 이는 ‘태풍의 눈’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좌파에서 전향한 40대 사회운동가들이 중심이 된 자유주의연대가 2004년 가을 출범함으로써 시작된 뉴라이트 운동은 한국의 우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정치권의 우파가 연이은 대통령 선거 패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참신성과 추진력을 갖춘 뉴라이트는 우파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뉴라이트 운동의 활성화로 2005년 들어 교과서포럼·뉴라이트싱크넷·뉴라이트전국연합 등의 단체들이 잇달아 출범했고, 최근 전교조에 대응하기 위한 자유교원조합의 본격적인 활동도 불러일으켰다. 특히 국제적인 이슈로 떠오른 북한의 인권 문제를 우리 사회에서도 전면에 부각시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은 뉴라이트 운동의 두드러진 성과다. 이러한 뉴라이트 단체의 본격적인 등장은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과 각종 경제정책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훼손하고 있다는 우려 등 최근의 정치·경제상황과 깊은 연관이 있다. 국내 뉴라이트 단체의 등장을 2002년 대선 이후 보수층이 위기의식을 공유하면서 진보세력의 정치적 주도권 확보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긴 하다. 하지만 뉴라이트 운동은 현 집권층의 국가의 통합적 관리능력의 부족, 이념적 편향 우려, ‘수구꼴통’이라는 단어 같은 이분법적 편협성에서 기인했다 보는 면이 더 정확할 것이다. 또 궁극적으로는 시장주도형의 경제와 자유주의, 다원주의를 통해 미래를 찾고자 하는 의식에서 시작되었다 볼 수 있다. 뉴라이트 운동은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시장주의, 외교적 국제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뉴라이트 단체가 현 정부의 정책 노선을 ‘급진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이유는 현 정부의 정책 노선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집약되는 헌법가치와 충돌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단체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진보적 학계 인사들의 주장을 ‘자기비하적’역사관이라고 비판하고,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하여 적극적인 공세를 주문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인식을 밑바닥에 깔고 있는 것이다. 뉴라이트 운동의 대표적인 단체 중 하나인 자유주의연대, 자유교수협의회 등도 정치적으로는 북한체제에 비판적인 자유주의를 지향하며, 자유주의 전파에 초점을 두고 있다.

역사교과서 포럼, 문제의 역사교과서 시안

뉴라이트 진영의 교과서 포럼이 최근 발표한 ‘한국근현대사’교과서의 시안을 공개하자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뉴라이트 인사들이 현행 교과서가 이념적으로 ‘좌’에 편향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교과서 포럼이 공개한 대안교과서였다. 교과서에는 크게 국정교과서와 검인정교과서가 있다. 국정교과서는 국가(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도서로 기획에서 출판까지 국가의 책임 하에 만들어진다. 국어, 문법, 국사, 도덕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반명 검인정교과서는 국가(교육부)가 기준안을 제시하고 각 출판업자가 집필진을 구성하여 기준안에 따라 교과서를 만들어 교육부의 최후 검정을 받은 교과서를 말한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는 검인정교
▲ 뉴라이트 측 교과서포럼편 한국 현대사의 허구와 진실
과서로 6개의 출판사에서 만들어졌는데, 내용을 보면 4개의 대단원 속에서 큰제목, 중제목, 소제목까지 거의 비슷하다. 이는 국가 기준안이 그만큼 까다롭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뉴라이트 진영에서 교과서 포럼을 통해 공개한 역사교과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깔고 산업화 세력의 경제발전 역할을 강조하면서 민주화 세력을 폄하하는 등 보수적 시각에서 기술되었다. 이 교과서에 따르면 일제 식민지 시기는 ‘근대로의 이행과정’이다.‘일제가 한반도에 근대 문명을 강제로 이식, 전통과 주체적 결합을 해, 해방 후 한국은 이 문명을 발전시켰다’고 서술한 이번 시안에서는 북한에 대하여 ‘1946년 일제가 제정한 모든 법률·기구를 폐기해, 곧바로 문명의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다’고 서술하였다. ‘4·19’, ‘5·16’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에 대해서는 용어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4·19는 ‘혁명’에서‘학생운동’으로 의미를 축소시켰으며, ‘급속한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자는 국민적 염원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며 4·19에 대한 인식에서도 차이를 드러냈다. 반면 ‘5·16’은‘ 쿠데타’가 아닌 ‘혁명’으로 표기하고 ‘군부 엘리트가 주도한 산업화로 보기 드문 역동성을 과시했다’, ‘1960년대를 경제적 성장을 위한 회임적 시기’라고 규정하며 박정희 시대에 대하여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로 일관하였다. 박정희의 독재가‘박정희가 70년 초부터 안보 위기 극복, 1백억 달러 수출 달성 등 조국 근대화 작업의 도약을 의미하는 프로젝트를 본인이 관장하려는 강렬한 욕구’때문이라며 유신체제의 출범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5·18’은 ‘광주민주화항쟁’으로 표기하여 용어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으나 5·18의 원인과 결과, 해석에는 보수적인 시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5·18 항쟁의 원인을 ‘광주가 경제 발전과 중앙권력에서 소외된 데 대한 불만이 누적된 데다 그 지역 출신 김대중의 체포 소식이 분노를 야기했다’는 데서 찾았으며, 5·18의 결과를 두고 ‘이 사태에 미국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확산됨에 따라 이후 한국 사회에 반미급진주의를 확산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또한 이 시안은 한일협정에서 빠뜨린 대일청구권 문제와 독도문제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고 있으며, 우리가 일본 교과서에 대하여 그렇게 요구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뉴라이트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의 편향적 역사인식을 바로잡고 근현대사의 대안적 교재 제작을 목표로 하는 ‘교과서 포럼’은 지난 2005년 1월 25일에 출범하였다. 지난해 말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교과서 포럼 운영위원은 14명이다. 이중 9명은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고 국내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은 3명, 나머지 한명은 일본에서 학위를 받았다. 이들 중 역사학 전공자는 3명이고 이들은 모두 서양사 전공자들이다. 한국사 전공자는 단 한명도 없는 것이다. 웃기지 않는가? 우리나라의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데 한국사 전공자가 단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조금 더 살펴보자. 뉴라이트 재단 이사장으로 초대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현재 교과서 포럼 고문위원이자 포럼의 상징적인 존재다. 그는 문화일보에 기고한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과 선진화 전략’이라는 칼럼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후발적 사회적 능력은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일제 강점기 및 해방 후의 근대적 발전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즉 후발국가인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제 강점기의 공이 컸다는 ‘식민지근대화’이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포럼에서 공동대표와 운영위원을 동시에 맡고 있을 정도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사관은 더욱 점입가경이다. 그는 지난 2004년 9월에 열린 모 방송국의 토론 프로그램에 참석하여 “일본군 위안부를 상업적인 목적의 공창”이었다고 주장했다가 여론에 뭇매를 맞고 사과하기도 했다. 교과서 포럼의 또 다른 운영위원인 김광동 나라정책원 원장은 지난 2005년 11월 ‘친일음악가 시비,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 논란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성장가정에서업적을 이룬 사람의 명예를 빼앗고 자기 권력 강화를 위한 방편으로 펼치고 있을 뿐”이라며 친일파 논란에 대하여 반민족적, 반역사적인 행위라고 강력하게 비난하였다. 이렇게 소위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서울대 교수들이 가지고 있는 사관과 그 작태를 보면 ‘가관이다’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학습내용을 제시하고 이를 학생이 탐구해 나가도록 하며, 학생의 학습 동기를 유발시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내용은 보다 객관적이어야 하고 보다 정확해야 한다. 하지만 뉴라이트 진영에서 현행 교과서의 대안이라는 명분으로 제시한 교과서 포럼의 역사교과서 시안은 그 자격조차 검증되지 않은 학자들을 운영위원으로 내세워 검증되지 않은 왜곡된 그들의 사관을 마치 사실인양 결론지어 버렸다. 게다가 그 역사교과서를 통해 왜곡된 사관을 21세기의 꿈인 학생들에게 심어주려 한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 바로 보기 운동’에서 출발한 뉴라이트 진영의 교과서 포럼. 그들 스스로 학문의 진일보라 표현했던 역사교과서 시안의 실상은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제 2의 후소샤 교과서에 불과할 뿐이었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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