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호한 간첩의 경계

실로 오랜만에‘간첩’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단어 자체가 가지는 부정적 어감을 제외하더라도 간첩이라는 존재는 당분간 대중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낯선 대상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간첩이라 함은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 하지만 내 주위에는 없는 존재다. 남북관계가 이렇게나 발전했는데 요즘 세상에 무슨 간첩이 있을까. 간첩은 정말 퇴행하는 직업인가.


경찰이 2000년대 들어 최대 간첩사건이라고 밝힌 '일심회 사건'은 지난 해 10월 국정원에서 재미교포 장민호씨와 민주노동당 전 중앙위원 이정훈씨, 학원 운영자 손정목씨를 체포하고 수사에 들어가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21세기 최대 규모의 간첩단이다. 과거의 간첩은‘이중간첩 이수근 사건’과 같이 중앙정보부의 조작아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짝퉁간첩’이었다면, 지금의 간첩은 명석한 두뇌와 사상적 자유를 보장하라는 지식을 소유했고, 자신의 자율적 사고에 의해 행동한‘두뇌간첩’쯤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일심회’는 그 동안 적발된 간첩사건과 다른 여러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지령과 보고를 주고받는 수단으로 혐의포착이 어려운 인터넷이 적극 활용됐으며 북한 공작원과의 접촉 무대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이루어졌고, 일정량의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층에 속하며,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적 성향을 가진 386세대로 통한다는 점이다. 80년대 대학 운동권 출신들이 사업체, 정당 등에서 활동을 하면서 북한의 지령을 받고 조직적으로 간첩활동을 했다는 것이 검찰의‘일심회’에 대한 수사결과와 판단이다. 현재‘일심회’사건은 지난해 12월부터 여러 차례의 공판이 진행되고 있고, 공판이 열리는 날이면 법정의 질서를 와해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어서 우리사회의‘간첩단’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혐의를 부인하는 일심회 장민호씨

▲ 일심회 공판이 열리는 날 법정에 들어서려는 보수단체들과 법정 질서를 흐린다는 이유로 이를 저지하려는 관계자들 사이에서 혼란을 빚고 있다.
“한국계 미국 시민으로서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나 1950년대의 냉전적 대결의식에 기반해 모든 통일 운동의 본질이 왜곡당한 채 간첩으로 내몰렸다. 간첩이란 단어가 신중하게 씌여야 함에도 개인이나 집단을 매도하는데 쓰이기 쉽다는 걸 알았다. 대한민국의 퇴행적인 분단의식을 버려야 한다. 전문경영인이자 개인적으로는 민족경영인으로서 국가에 봉사한다는 사명감을 가졌고 십수년간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민족과 한국에 고마움도 느꼈다. 나는 간첩교육을 받아본 적도 그러한 목적의식을 가져본 적도 없다" 지난 해 12월 21일.‘일심회 사건’첫 공판에서 간첩혐의로 구속기소 된 장민호씨는 이같이 밝혔다. 첫 공판이었던 만큼 사회적으로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던‘일심회 사건’공판은 검찰과 변호인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시각을 보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김동오) 심리로 열린‘일심회 사건’첫 공판에서 검찰은 모두 진술을 통해“변호인이 수사과정의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매번 장민호씨 등을 접견하고 부당대우가 없었는지 일일이 가족처럼 챙기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면서도“이 사건은 장씨는 정점으로 다른 4명의 피고인들이 연루된 가운데 주한미군 재배치 등 국가기밀을 넘겨 대다수 국민이 망각했거나 애써 외면해온 남북대치 상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만든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검찰은“피고인들은 북한에 동조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남한에 대해 위협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이 남한에 대해 평화적 통일 의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결과적으로 남북이 다른 이념을 가지고 대치하며 평행선을 긋다가 우발적인 불행사태가 닥칠 수 있는 것이 한반도의 상황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검찰은“장씨는 학식이 풍부하고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인간적 매력이 풍부한 사람이지만 시대적 통찰력이 부족하고 객관적 시각을 결여한 사고로 편향돼 있다면 국가안보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장씨에게 남북이 전쟁을 벌인다면 어느 편에 서겠는가라고 물었을 때 대한민국 검사로서 내심‘남한을 돕겠다’는 답변을 기대했지만 그같은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부디 장씨가 탈북자 고문이나 북한의 기아 문제 등에 대해서도 객관적 시각을 가지길 바란다.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적용을 받는 현실을 인정하고 검찰이나 변호인 모두 객관적 실체의 발견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의 이와 같은 대사는 과거의 간첩단을 다루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우호적인 태도였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시각을 가진 것이었다. 두 번째 공판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검찰은“장민호씨가 실정법을 어기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된 행위를 자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 달 여 같이 조사와 취조를 하면서 장민호씨와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나도 모르고 있었던 우리나라 역사적 현실을 듣기도 했다. 좋은 나무에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인데 토양을 잘못 만난 것인지 결국 이런 결과를 낳게 되었지만 부디 그 본질을 잃지 않아서 좋은 토양에서 잘 자라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월의 흐름은 간첩에 대한 예우까지도 변하게 했다.

비밀 조직이 아니라 비공개 모임?

▲ 간첩 혐의로 구속된 강순정씨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의 동향이 담긴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서를 북한 공작원에게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0월 국정원 직원들에게 체포되면서 직장에서 해고됐고 자식들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됐으며 아내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앞으로 재판 과정을 통해 정당한 법적 판결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법적 절차와는 별도로 체포된 일련의 사태로 사실상 사회적 사형선고를 받았다. 무인서명도 하기 전에 김승규 전 국정원장이 언론에 공개함에 따라‘간첩단 사건’이 되었고, 국정원장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법에 보장된 인권이 침해됐다. 중세의 마녀재판처럼 일부 언론의 광기어린 보도로 사회적 사망선고를 받았다.” 장민호씨는 첫 번째 공판을 통해 우리 사회의 범법자와 그 처우에 대해 이와 같은 유감을 표시했다. 법원의 합법적인 판단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기소도 되기 전에 언론에 보도가 되어 피고인 장민호씨의 가족이나 자녀, 주변인에겐 이미 유죄판결이 내려진 것에 대해 장민호씨의 변호인단도 장민호씨와 같이 제 3자의 피해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다. 장씨와 함께 구속 기소된 손정목씨나 이정훈씨 또한 검찰의 모든 행위 고발에 반기를 들었다. 손정목씨는“구시대의 잔재이자 유물인 국보법이 21세기에 와서도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통분의 감정을 느낀다. 국보법으로 재판받는 것이 저희가 마지막이 되길 빈다”고 말했고, 이정훈씨는“이 사건은 사이비 간첩단 사건이자 공안기관이 명품을 모조해 만든‘짝퉁’간첩사건이다.‘일심회’라는 명칭은 국정원에서 처음 들었다”고 혐의사실을 부인했다. 이진강씨 역시“누구나 보고 듣고 인지할 수 있는 것들을 국가기밀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평화통일 헌법 정신에 역행하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단순히 자신들의 혐의를 부정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수사의 진행 과정이나 국가보안법과 같은 원천적인 헌법의 문제, 인권 문제 등 21세기 간첩단으로 오해(?)를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해나가고 있다. 검찰의 질문에 단어의 의미 개선과, 다른 단어로 바꾸어 줄 것을 요구했다.“피고인은 북경에서 손정목과의 만남을 가짐으로 해서 북한과 연계된 통일사업을 해보자라는 제의를 한 것이 맞는가?”라는 질문에 장씨는“아니다. 통일사업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문제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정정하는 식이었다.‘보고’가 아니라‘전달’이었고,‘비밀조직’이 아니라‘비공개 모임’이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사소한 듯 하지만 당사자들에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런 세밀한 표현들이 민감하게 작용되는 이유는 이번 간첩단의 자질이 그만큼 특이하다는 것이다. 한미FTA저지, 평택미군기지 이전, 미군환경오염 관련 반미 투쟁 통행과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중연대, 통일연대 등의 동향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각각의 비판과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는 것이 익숙한 그들이었다. 장씨 또한 탄핵 정국 시 국내 동향, 2004년 총선, 2006년 지방선거 동향, 북핵실험 이후 여론 등 국내 정세와 반미·반전을 위한 문건 투쟁의 일환으로 ‘민족의 운명을 가늠하는 미사일 정국의 본질’등의 제목의 글을 실천연대, 전국연합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이와 같이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공간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과 이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놓고 정체가 모호한 물밑활동을 펼칠 수 있는 것이 현재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국정원의 분석에 따르면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 공작과 남북공유 공간을 활용한 합법공작 등 그 활동양상이 더욱 은밀해 지고 있다. 또한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중남미 지역까지 우회침투 공작 거점을 확장, 해외 친북조직 활성화, 해외체류 아국인 포섭공작을 강화하는 등 간첩활동이 점차 국제화, 첨단화, 지능화 되고 있다고 밝혔다.

여전한 좌·우의 대립

지난 해 11월 30일 역시 간첩혐의로 구속 기소된 강순정씨도 21세기 간첩의 대표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강씨는 1996년 간첩죄로 징역 4년 6월을 선고받고 2년 남짓 복역하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 8·15특사로 출소했다. 출소 이후 조금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통일연대 같은 단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활동을 하면서 26차례에 걸쳐 북한의 지령을 받고 실행해 온 혐의를 받아 지난 달 9일 기소됐다. 강씨는 국내외 정치상황 등을 정리한 5백 여건의 문건과 사진 등을 북한에 보내고 맥아더 동상 철거운동과 대추리 주한미군기지 이전 반대시위 등에 참가했다. 강씨가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의 동향이 담긴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서를 북한 공작원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공안당국 관계자는“강씨가 인권침해 등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해 남한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을 유도하려는 북한의 지침을 받고 관련 자료를 수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씨는 범민련 남측본부 인사 등 10여 명과‘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연방통추)’를 조직해 북한식 연방제 통일방안을 연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지난 해 11월 인천지검에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김영승씨는 6·25때 국군 5명을 살해하고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던 인물로서 석방 이후 인터넷에“한국전쟁은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이다”라는 글을 계속 띄우다가 결국 검찰에 붙들렸다. 통일부는 이런 김씨가 제 작년 7월 범민련 관계자들과 금강산에‘통일기행’을 간다고 하자 국정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방북을 승인한 바가 있어 김영승씨의 기소 이후 여러 후문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정치적 활동이 좌파적 정신을 가진 일방적인 북한 해바라기식의 단순한 개인적 정치 신념인 것인지, 아니면 정말 우리사회가 우려하는‘간첩’의 그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법으로도 그 분명성이 결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을 변호하겠다고 나서는 변호사들만 수십명에 달하고 이들을 구속 기소한 것을 규탄하는 기자회견과 집회 및 시위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의 간첩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선처가 이렇게 크고 작은 간첩연루 사건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주장하는 극우파 사람들과, 간첩활동이 아니라 민주적 정치 활동이라고 외치는 또 다른 한 쪽의 대립은 오늘도 신문과 방송에서, 재판장에서, 시위 현장에서 끊임없이 부딪히고 대치하고 있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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