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 최경섭의 철학을 만나다

한 시대의 철학은 그 시대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의 가치관, 의식, 문화 등을 아우를 수 있는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을 주장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 철학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았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그것은 하나의 철학 그 자체로서 지금도 유효하다.


철학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삶에 대해‘왜?’라는 질문을 한다.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철학을 비롯해,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윤리론적인 철학이 생겨나기도 한다. 과거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비동시적으로 움직이고, 서로 다른 공간에서 생활함에 따라, 각각의 철학적 가치관이 서로 달랐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과 공간이 동시적으로 움직임에 따라, 세계인의 가치가 하나로 묶일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 맞는 철학은 어떠한 것일까? 대한민국의 가치가 세계인의 가치로 통할 수 있을까? 철학박사 최경섭은 철학에 대해 각 나라마다 철학이 있고, 같은 주제를 두고도 각 나라마다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흥미로운 학문이라고 말한다. 앨빈 토플러는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세계인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 얘기했지만, 최경섭은 각 나라의 철학은 서로 비동시적으로 일어나며, 각 나라마다 서로 다른 가치에 의해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현상학적 탐구와 신칸트학파적 탐구

고등학교 2학년 17세의 나이에 혼자 도미하여 단 1년 만에 미국 고교생들과의 입시경쟁을 뚫고 캘리포니아 대학에 입학, 대학 졸업 후 독일유학을 결심, 독일에서 철학수업 후 3년 만에 석사학위 취득, 그리고 약 1년 만에 재차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전후 독일 최단기/최연소(28세) 철학박사인 최경섭, 그를 여기까지 이끈 철학적 모티브와 정열, 그리고 그 결론은 무엇일까? 최경섭이 처음에 관심을 가진 철학은 서로 상반되거나, 다른 지역에서 각각 존재했던 철학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본질적이고, 원칙적이며, 근원적인 철학, 바로 20세기 초 독일의 철학이었다. 그는 서구사상의 전통적인 개념인 ‘본질’이 독일 20세기 초 현상학자들에 의해 어떻게 받아들여져 이해되고, 이 현상학적 본질개념이 당시 신칸트학파에 의해 어떻게 비판되고 수정되어 ‘원칙’이라는 개념으로 세련화되는가를 밝히는 데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본질적-원칙적인 철학, 다시 말해 ‘독일적인’ 철학에 대한 관심은 그가 석사학위를 취득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2000년 6월 미국에서 철학학사를 취득한 후 유럽유학을 결심하고 2001년 9월 독일에 도착하여 바이에른주 뷔르츠부르그대학 철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한 후 약 2년 반 만에 다시 2004년 10월에 논문을 제출, 2005년 2월 석사학위를 취득하게 된 것이다. “본질과 기능: 현상학적 ‘본질론’에 대한 카시러의 비판”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20세기 초 독일의 사상적 지도를 단편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는 석사논문을 바탕으로 “학문과의 대화: 후설과 카시러의 철학으로 비추어 보는 현상학적, 그리고 신칸트학파적 학문이해와 학문해석”이라는 제목의 박사논문을 작성했다. 이 논문은 우리가 보편적 진리라고 여기고 평생 매진하는 ‘학문’, 다시 말해 서양의 논리학과 수학, 자연과학, 그리고 정신과학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철학적으로 해명한다. 현상학의 아버지 후설과 신칸트학파의 거장 카시러, 이 두 철학자의 학문이해와 학문해석을 빌어 ‘학문’을 해명하고, 또한 후설과 카시러 전 생애에 걸쳐 진행된 그들의 학문이해의 변화를 추적한다. 그의 이런 논문은, 1996년 9월 미국 샌디에이고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한 뒤, 소위 보편적 ‘진리’가 무엇인가(보편적 진리란 서구-미주의 전유물인가)라는 질문에서 비롯하여 학부 1학년 2학기 째부터 철학과로 옮긴 후 최근까지의 유럽 철학수업의 마지막 결과물인 동시에, 그의 질문의 해답인 것이다.

학문론의 모든 귀결점은 문화론

최 박사는 1978년 3월에 서울에서 태어나 서라벌고 2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LA 몬트클레어 고등학교에서 3학년을 보내는 동안 이미 근세와 현대 유럽의 철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후설의 현상학적 철학과 카시러의 신칸트학파적 철학으로 ‘학문’을 계속 분석해 나아가면 필연적으로 그런 ‘학문’을 가능케 하는 더욱 근원적인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무엇이란 바로 인간의 문화라는 것이다. 현상학에선 인간문화를 ‘생활세계(Lebenswelt)’라 부르고, 신칸트학파에선 인간문화를 ‘상징체계(Symbolsystem)’라 부른다. ‘생활세계’와 ‘상징체계’는 결국 인간의 ‘문화’에 다름 아니며, 이 두 철학은 결국 ‘학문’의 근원이 인간 ‘문화’에 있음을 해명하고 있다. 그는 어떠한 ‘학문론’도 결국 필연적으로 ‘문화론’으로 귀결할 수밖에 없음을 자신의 논문을 통해서 밝히게 된 것이다. 독일에 ‘철학’이 있다면 미국엔 ‘팝문화’가 있고 한국엔 ‘단편문학’이 있으며 인도엔 ‘힌두’가 있다. 독일에 칸트, 헤겔이 있다면 미국엔 마크 트웨인과 휘트만이 있고 러시아에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끼, 한국엔 김동리, 김지하가 있다. 다시 말해 보편적 진리나 본질, 원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구체적인 문화들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현상학과 하이데거학회, 칸트학회에서도 활동할 계획이다”는 말을 한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 연구소나 대학 강단에서 지역학을 연구하거나 가르치고 싶다. 또 동유럽-러시아와 경제적, 문화적 교류에 관심을 갖고 협력 사업에 힘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는 단지 고매하고 철학적인 진리탐구에만 자신을 가두지 않고, 로컬하고 구체적이며 문화적-현실적인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의지이며, 바로 그의 박사논문의 결론이 호소하는 바 이기도 하다. 그는 철학논문 외에도 문학과 창작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문제를 다룬 소설 “안나: 한국에서의 어느 러시아 여인의 글 모음(Anna: Collected Writings of a Russian Prostitute in Korea)”이라는 영문 소설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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