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he economy, stupid!

우리 나라의 모든 언론이 모처럼 입을 모았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마치 새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모든 매체의 여론조사 결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싹쓸이로 1등을 했다. 만일 지금 당장 대선을 치른다면 이명박은 무조건 대통령이 될 것이다.

윤양래 전문기자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런 결과를 놓고 애써 태연한 척하며 신년의 여론지지율이 높은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다고 어깃장을 놓는다. 그러나 1992년 14대 대선이 있던 해에는 3당 합당으로 지지기반을 넓힌 여당의 김영삼 대권주자가 신년 여론조사에서 야당의 김대중 주자보다 여론조사에서 많은 폭으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고, 그는 그해 12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영특한 블도저

이명박의 젊은 시절의 신화는 우리들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여기서는 성큼 뛰어 건너 본다.현대건설 회장을 거쳐 1992년 정 회장의 정계 진출과 함께 현대를 떠난 이명박은 정 회장과 다른 길로 정치에 입문해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1998년에는 서울시장에 당선된다. 그리고 이제는 대통령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그가 눈부신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남이 할 수 없는 일,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포기해 버린 일들을 해냈기 때문이다.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정면 돌파했다. 운도 좋았겠지만 그는 무슨 일을 시켜도 해내고야 만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꼭 필요한 사람을 재빨리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그의 자서전‘신화는 없다’에서 이렇게 말한다.“세간에서는 나를 신화의 주인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신화는 밖에서 보는 사람에게만 신화일뿐, 안에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겹겹의 위기와 안팎의 도전으로 둘러싸인 냉혹한 현실이다. 시련이라는 험한 파도 앞에서 나는 우회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이 작은 용기를 사람들은 신화라고 부르는 것 같다.”덧붙여“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자신감 뿐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당신 편으로 만들어라. 작은 일에 매이지 말고 늘 남보다 멀리 내다봐라. 보다 큰 꿈을 꾸고 기꺼이 무모하게 덤벼들어라. 도전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

그에 대한 의혹들

현재 정치권과 시중에 돌고 있는 이 전시장과 관련된 의혹은 약 50가지 정도라고 한다. 이것이‘‘이명박 X 파일’이다. 자신의 군 면제 의혹, 아들의 병역 문제, 수천억원에 달한다는 재산형성 과정에 부정의 의혹이 있다는 것, 숨겨놓은 자식이 있다는 설에서 서울시장 재직 시 각종 이권 연루 의혹까지. 심지어 황제테니스 파트너와의 관계까지 온갖 루머로 가득 차 있다. 최근에는 그의 출생지 문제까지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그가 최근 자신의 각종 경력에 출생지를 삭제했던 사실이 인터넷 상에서 알려지면서 출생지인 오사카를 왜 숨겼느냐 친모가 일본 여자는 아니냐. 등등...50여개가 넘는 의혹들 중에서 7개만 간추려 본다.

1. 자신과 두 아들이 모두 군대에 안 갔다.
이명박의 호적 상 자식은 1남 3녀다. 자료에 따르면 이 전 시장은 1963년 8월 대학 3학년 때 논산훈련소에 자원입대했지만 훈련소 내에서 실시한 신체검사에서 질병이 발견돼 1차 귀향 조치됐다. 그 후 국가기관에서 2년간 2차례에 걸쳐 신체검사를 다시 받았으며, X-ray 정밀 판독 결과 폐 질병(고도기관지확장증) 등이 최종 확인됨에 따라 1965년 3월 징집면제 판정을 받았다. 아들 이 씨는 1999년 3월 현역으로 입대해 오뚜기부대에서 복무하고 2001년 5월 만기 전역했다. 이 전 시장측은 이와 관련해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네티즌 1명을 고소했고 그 사람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명예훼손) 죄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2 부정축재했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 당시 여당후보는 이명박을 맹렬하게 공격하면서도 그의 재산문제는 단 한 번도 공격한 적이 없다. 확인해 보니 문제가 없었던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의혹은 아직도 사그러 들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고무줄 재산신고를 했다’는 것인데 1993년 처음 도입됐던 공직자 재산공개 때 1차 신고액은 62억3000만원이었지만 2차 신고액은 278억원으로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2차 신고마감 보름 전, 서초동 일대 땅 470여평을 시세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처분했는데도 재산이 이렇게 늘어났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신고 기준시가 차이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석연치 않다’는 반응도 많았다. 2002년에는 엄청난 재산에도 불구하고 국민건강보험료를 월 2만여원 정도만 납부한 사실이 밝혀져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았다. 재산 형성과정에서의 문제는 그의 말을 전적으로 수용한다 해도 의료보험료문제는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재는 이러한 의혹에 대한 공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재단 설립 등의 형태로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3. 출세가도만 달려 온 인물이라서 서민의 아픔을 모를 것이다.
“이명박 시장은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만 국한시키는 것 같아요. 개인의 노력만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 모순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결국 사회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과 정신을 마취시켜버리게 되는 거죠”이동연 목사는 21일 <데일리 서프라이즈>와의 인터뷰에서 이 시장이 모든 문제를‘개인’의 문제로 국한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흔히들 나타나는 것인데 노무현 대통령도 비슷한 현상을 우리는 종종 보아 왔다.

4. 독선적이고 약자의 입장을 고려치 않는다
권력을 지닌 강자의 무지는 그대로 약자에게 폭력이 된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강자는 자신이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말을 약자에게 강요하며 살아간다. 약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관심 밖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시장은 취임이후에 버스개편, 시청 앞 잔디광장, 청계천등 굵직한 사업들을 연달아 추진했다. 결과적으로는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이 모든 사업의 추진과정은 순탄치 않았으며, 반대 목소리는 무시당했고, 이명박 시장의 생일이나 하이서울 축제 등 날짜에 맞추려고 서두른 관계로 혼란이 많았다. 애초 서울 광장은 빛의 광장이 될 예정이었다. 5월에 있었던 하이-서울 행사에 맞출 수 없다는 이유로 잔디밭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청계천의 상류지천 복원은 전문가들이 초기부터 지적한 사항이다. 하지만 서울시에서는‘그건 너무 이상적인 계획이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라고 일축했다. 서울시가 이런 입장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이명박시장의 임기 내에 복원하도록 설정‘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장기적인 도시계획의 틀 내에서 검토할 수 있는 조건들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다. 흔히 얘기하듯 정치적 일정에 따라가다 보니 다양한 대안이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절차적 정의를 필요에 따라 무시하곤 한다. 독선적 지도자는 때론 성공적일 수도 있지만, 위험성이 훨씬 크다. 그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데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 장애인들은 청계천에 접근할 수 없다는 문제제기도 있었으며, 버스체계도 그렇고 또 청계천 개발에 반대하여 2명의 상인이 목숨을 끊었다. 결국 그는 비민주적인’결과 중심주의자‘,’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성장개발 중심 주의자‘라는 것이다.

5. 종교적으로 편향되어 있다.
이명박은 지난 2004년5월 31일 새벽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청년·학생 연합기도회’에 참석,‘서울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봉헌서를 낭독했다. 서울 소망교회 장로인 그는 평소 종교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봉헌서를 통해“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도시이며, 서울의 시민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며“서울의 회복과 부흥을 꿈꾸고 기도하는 서울 기독청년들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다짐했다. 이 파문에 대해 그는“주최측에서 준비한 문구를 그대로 읽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후 동국대에서 열린 강연에서 한 학생이‘서울 봉헌’ 발언에 대해 질문을 하자“당시 장충체육관에서 대학생들이 서울시의 발전과 순결을 지킨다고 해서 새벽 5시 경 5분간 참석했다. 그 때 청년들이 만들어 놓은 문장을 읽었을 뿐이다. 교회에서는 매주 봉헌이라는 말을 한다”라고 밝혔다.

6. 숨겨 논 자식이 있다.
심지어는 DNA검사까지 다 해 놓았다고도 한다. 이것에 대해 이명박 측은 너무 고전적이면서도 유치한 흑색선전이라 대꾸할 가치도 없다“라고 하며“있다 있다 하면서 아직 실체가 없는데, 한번 데려왔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7. 숨겨 놓은 여인이 있다.
최근 정치권에 희한한 루머가 돌았다. 야당의 유력대권 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미모의 한국계 미국인 여성변호사와 술집에서 야릇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 여권에 입수됐다는 내용이다. 사진의 출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이라는 것. 그러나 남자가 술집에서 여자와 술 한 잔 마시는 게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는 우리의 사회의식으로 사그러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 여성 변호사 소문은 이 전 시장의 주변에서 여전히 어른거린다. 그 이유는 그녀가 바로 지난 2000년초 서울에 본사를 둔 어느 투자회사 대표로 있다가 거액을 횡령하고 미국으로 도주한 김모씨의 누이라는 설 때문이다. 이러한 갖가지 의혹에 대해 이 전시장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대응할 태세이다. 그를 지지하는 변호사 1백50여명이 역할을 분담해 의혹별로 대책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검찰 공안통과 특수통들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사안별로 팀을 구성해 이 전 시장을 자체적으로 철저히 검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待望論
이명박의 지지자들은 그의 이념보다는 그의 스타일에 매혹됐다. 그의 스타일은 일하는 스타일이다. 사람들은“그는 어쨌든 무엇이든 한다”라고 생각한다.‘일단 저지르고 보는’그의 스타일은 가시적 성과를 내면서 호응을 얻고 있다. 그는 정치인의 공허한 말에 지친 국민에게 청량제 같은 시원함을 선사했다.“입만으로 살아가려는 세상에서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모습”때문에 대중이 자신을 인정하는 이유라고 했다. 한 시민은“서울 봉헌 같은 막말이나 히딩크와 가족사진을 찍는 등의 한심한 짓도 청계천에 흐르는 물을 보면, 교통카드의 편리함을 생각하면 그런 것쯤이야 하고 용서가 된다”라고 말했다. 더구나 그는 미디어의 생리를 안다. 미디어 플레이를 통한 이미지 메이킹에 능하며 이념보다는 일의 결과로 평가받는다는 면에서 보수냐, 진보냐의 구분에서 한편으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이명박대망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1 그는 경제 전문가다.

중앙정부 지도자든 지방정부 지도자든 경제적 능력은 재정운용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데  이 전 시장이 재정운영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는 지하철 건설 부채 절감이다. 이 전 시장이 취임 당시 지하철 건설 부채는 4조8306억 원이었는데 그가 퇴임 때의 부채는 2조1051억 원으로 줄었다. 서울시의 경영합리화를 통한 예산절감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2002년 7월부터 2005년까지 3년 6개월 동안 인건비와 타 기관 전출금 등 경직성 예산을 제외한 총 28조 원 가운데 2조7408억 원을 절감했다.

2 종합행정의 경험이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국방·외교를 제외하고 거의 종합행정을 하는 자리다. 최근에는 자치단체도 나름대로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기도 한다. 따라서 광역자치단체장, 그것도 수도 서울의 단체장 경력은 국무총리급과 맞먹는다. 특히 광역자치단체장은 환경·노동·복지·세재 등 서로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가진 기초자치단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을 경험했다는 것은 곧 사회 각 분야의 조정능력을 키웠다는 소중한 체험이다

3. 지역기반이 넓다.
지역주의가 한국 정치를 지배해온 것은 불문가지다. 그는 오랫동안 우리 정치의 핵심 역할을 해온 영남 출신으로 현 야당의 기반이다. 게다가 지역구는 서울이다. 다른 사람과 달리 두 지역에서 함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인 것이다. 실제 이 전 시장의 지지기반을 보면 영남과 서울에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4. 고려대 출신이다.
해병대, 전남향우회 그리고 고대동문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단결력이 강한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동문들 사이에서 “이번에는 고대 출신 대통령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돌고 있을 정도로 이 전 시장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돕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고대 동문들이 특히 많다.

萬人之上의 길
레이건이 출사표를 던진 1980년의 미국사회는 요즘과는 정반대로 진보의 입김이 사회 곳곳에 적잖은 영향력을 미치던 시기였다.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반전운동, 기성 권위에 대한 저항, 히피문화, 여성해방, 흑인 민권운동 등의 여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건은 진보주의가 판치던 이런 상황에서 정반대로 나갔다. 그는 강력한 국방을 앞세우면서 공산주의에 대해 힘을 바탕으로 한 외교를 주창했다.“허약함이 아니라 강력함만이 평화를 유지해 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 때문에 공화당 내부에서도 레이건이 너무 우파여서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레이건이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 당선되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현재 그에게는 반면교사이다. 한마디로 국민들은 희대의 무능과 독선으로 무장한 현 정권에 의해 야기된 국가위기를 극복하고, 도탄에 빠진 민생을 이 전 시장이 반석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즉 현재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율 고공행진은 무능한 정권의 교체에 국한됨이 아닌. 국가위기를 극복하고, 민생을 살릴 수 있는 해결사로서 국민들에게 각인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대선주자가 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점은 이미지 개선이다. 많은 사람에게 불도저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듯이 독선적이고 친화력이 부족한 점이 부각되어 왔다. 내향적 사고형의 장점, 즉 개혁적이고 내면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지도자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화력이 있어야 한다. 정치란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기에 일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 앞으로 남은 10개월 여가 그에게는 혹독한 시련의 시절이 될 것이다. 신년에 발표된‘숫자’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혹독한 상대주자의 공격에 어떻게 견디어 이겨 내느냐가 관건이다. 월드컵성공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정몽준의 일구이언으로 인한 패착과 말 한마디로 당 전체를 혼란에 빠뜨린 정동영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번의 패착과 실수가 영원히 대권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국가는 경제를 살리고 기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서 국민들을 행복하게 할 책임이 있고 국가는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하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을 실천할 기회를 만드는 것 역시 그 자신이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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