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피플=백지은 기자] 기억의 저편으로 잊혀져간 추억의 만화방이 만화카페라는 이름을 달고 다시 태어났다. 밝고 쾌적한 인테리어와 다양한 식음료를 제공하는 세련된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난 만화카페는 젊은 층 사이에서 데이트 장소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불어난 만화카페의 성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고 소박한 원조 만화방의 모습을 간직한 곳도 종종 눈에 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소파에 기대 제일 좋아하는 만화책을 양옆으로 한 가득 쌓아두고 노닥일 수 있다는 것은 아이에서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낭만이자 행복이다.

◆ 만화방의 역사

서울 홍대 등 번화가를 중심으로 만화방들이 하나둘씩 상권을 늘려가고 있다. 책 보기마저 스마트폰으로 가능해진 시대에 종이로 된 단행본을 넘겨보는 만화방의 부활은 어찌 보면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만화방이 우리나라에 처음 생겨난 것은 1950년대다. 손바닥만 한 공간은 1980년대 <보물섬>, <챔프> 등 연재 잡지가 발간되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점점 규모를 늘려갔고, 마땅히 즐길 거리가 없던 80~90년대 청춘들의 놀이터로 자리 잡았다. 이후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만화방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책 대여점 형태로 바뀌기 시작했다. 15~20년 전, 그러니까 현재 2,30대 직장인들의 초등학생 시절만 해도 만화책 대여점은 늘 학생들로 붐볐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IT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인터넷 기술이 빠르게 향상되기 시작한 밀레니엄 이후부터는 책 대여점마저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언젠가 부터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사이에 그 당시 초등학생들은 대학에 가고 사회로 나와 그토록 멀게 만 느껴졌던 ‘어른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가끔씩 어린 시절의 추억을 희미하게 더듬어 그리워하는 젊은 직장인 세대 앞에 다시 나타난 만화방은 반갑기 그지없는 장소인 것이다. 책장 한 가득 빽빽이 꽂혀있는 만화책들을 보는 순간, 잠시나마 아주 작고 단순한 것에 행복을 느꼈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 만화카페: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재탄생

(사진='클럽보다만화' 페이스북)

최근 ‘아날로그붐’을 타고 우리 앞에 다시 등장한 만화방의 모습은 이전과는 새삼 다르다. 대여점이 등장하기 전 기존의 만화방들은 비좁고 폐쇄적이며 어두운 분위기가 강했다. 이 때문에 과거 만화방을 떠올리면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전전하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여전히 가지고 있는 이들도 상당수다. 그러나 ‘만화카페’라는 타이틀로 더 잘 알려진 오늘날의 만화방은 넓은 공간에 세련되고 깔끔한 인테리어가 누구라도 발걸음하고 싶은 휴식처로 재탄생했다.

서교동에 위치한 한 인기 만화카페는 천장의 조명이나 규모면에서 마치 대형 스튜디오같은 느낌을 준다. 밝고 쾌적한 분위기에 곳곳에 널찍한 소파가 놓여있어 편안한 자세로 만화를 볼 수 있다. 일명 ‘벌집룸’으로 불리는 육각형 모양의 공간은 그 안으로 들어가 벽면에 기대거나 누울 수도 있어 낮 시간대도 비어있는 칸이 없을 만큼 인기가 최고다. 대형 카페답게 만화책 구비목록도 폭넓다. 심지어는 아이패드를 이용한 책 검색 시스템까지 마련되어있어 커다란 책장을 일일이 거치지 않고도 원하는 책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카페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식음료도 내놓고 있어 친구끼리, 커플끼리 편안하게 놀다가기에 더없이 훌륭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블로그와 SNS에 만화카페에 대한 게시물이 늘어가면서 이제는 만화가 좋아서 오는 이들 뿐만 아니라 여느 카페를 찾듯 공간 자체에 만족해 오는 손님들도 많아졌다.

이처럼 개성과 분위기를 두루 갖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만화카페는 서울에만 이미 10곳이 넘게 운영중이며 어떤 곳은 체인점까지 생겨나고 있다. ‘카툰공감’은 만화와 브런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홍대1호점에서 시작해 신촌, 분당서현점을 오픈하고 창원 롯데백화점 내에도 입점했다. 만화책의 단짝은 과자나 불량식품이라는 기존 공식을 깨고 건강한 브런치 메뉴를 구성해 여성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메가박스 측에서 운영하는 ‘계단아래 만화방’은 2015년 8월부터 운영되고 있는 기획공간으로 이곳에서는 영화화 되었거나 영화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는 작품 위주로 선별된 약 3천 여권의 만화책을 만나볼 수 있다.

카페를 접목시킨 오늘날의 만화방은 담배연기 자욱하고 퀴퀴한 책 냄새로 가득한 기존의 불량한 이미지에서 완전히 탈피해 새로운 젊은이들의 놀이터를 창조해냈다. 그 덕에 매니아층 뿐 아니라 단행본을 손에 들고 한 장 씩 넘겨가며 보는 재미에 덜 익숙한 현재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세대들로부터 만화에 대한 보편적인 관심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시대의 흐름과 선입견에 묻혀 길을 잃고 사라져가던 만화방의 변신이 놀랍고도 반갑다.

◆ 동네 만화방: ‘어른이’들의 영원한 놀이터

만화카페가 보다 어린 세대들에게 호평을 받는다면 군데군데 눈에 띄는 작은 만화방들은 소싯적 만화에 열광했던 매니아층의 두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대학가 인근에서 성행하는 만화카페에 비하면 규모도 작고 자칫 유행에 뒤쳐진 듯한 투박한 느낌을 주지만 그때 그 시절 만화방이나 대여점이 주던 느낌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직장인들과 오랜 단골이 많이 찾는다. 물론 8~90년대 만화방처럼 음습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앞에 앉은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앉아야 하는 구조의 거친 소파와 벽 한 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책장이 세련되지는 않아도 정감 있다.

연남동에서 작은 만화방을 운영하는 젊은 여사장은 “더도 말고 그냥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동네 만화방”이라고 가게를 소개한다. ‘요즘 만화방이 떠오르고 있는데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것 없다”며 “대형 만화카페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동네 직장인들이 오다가다 들르는 그런 곳”이라는 조용한 대답이 돌아왔다. 만화를 워낙 좋아하던 부부가 홍대 인근에 술집이나 유흥주점은 많아도 편하게 만화 보는 공간은 찾지 못해 ‘우리가 한번 만들어볼까’ 하다가 시작하게 되었다고. 작고 아늑한 분위기의 공간에 두 사람이 함께 앉을 수 있는 크기의 소파 몇 개, 작은 테이블 몇 개가 놓여져 있다. 카운터 옆쪽으로는 맥주와 음료수들이 가득 채워진 냉장고와 과자들이 즐비하다.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금요일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0대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주문한 라면을 기다리며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꾸준히 잘 나가는 책은 ‘베르세르크’나 ‘슬램덩크’같은 클래식.

주인장에 의하면 이곳을 찾는 손님 중 의외로 10대들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만화책과 연재 잡지가 여전히 뜨거운 인기를 얻던 기자의 유년시절에는 만화 소비의 주축은 교복 입은 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이유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스마트폰을 받는다는 요즘 10대들은 만화책을 가까이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역시나 주 고객층은 만화책과 함께 자란 세대인 20대 후반에서 30대 직장인들이라고. 흥미롭게도 이들이 찾는 책은 신간이나 ‘요즘 만화’가 아닌 대부분 과거 학창시절 자신들이 좋아했던 바로 그 만화라고 한다.

기자도 어릴 적 저녁 먹으라는 어머니의 타박에도 손에서 놓지 못할 만큼 재미있게 읽었던 천계영 작가의 <오디션>을 이곳에서 찾아냈다. 이 책을 구하려 만화서점까지 찾았지만 출판사와 계약이 이미 오래전에 끝나 더 이상 단행본이 인쇄되지 않는다는 대답에 한참을 아쉬워했는데,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기분이었다.

비록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것은 트렌디한 요즘 세대의 취향에 맞춘 만화카페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추억의 만화방이 주는 그 포근한 느낌은 흉내 내기 어려울 것이다. 전국 곳곳에 적게나마 남아있는 작은 만화방들이 건재하길 바라는 것은 아마도 나이를 먹을수록 멀어져가는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사라져버리지 않았으면 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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