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한계를 넘어 고지를 향해 뛰다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 하락은 북핵실험 후 부터다. 그는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다. 막연하게 여성이면 약하지 않겠는가, 위기일 때는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국민들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다면서 국가를 위해서 지켜야 할 원칙과 소신을 흔들림 없이 지키는 것이 강한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윤양래 전문기자
1952년 서울 출신으로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79년 朴대통령 서거 후 조용히 지냈었다. 97년 대선 때 'IMF 경제난'으로 朴전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커지자 신한국당에서 그를 스카우트했다. 선대위 고문으로 영입된 朴대표는 98년 4월 보궐선거에서 대구 달성에 출마, 안기부 기조실장 출신의 엄삼탁씨를 눌렀다. 그 후 당내 민주화에 누구보다도 앞장서면서 정치적인 입지를 다졌다. 2002년 3월 이회창 전 총재의 1인 지배체제를 비판하며 탈당,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기도 했으며 한때 대선출마설까지 나왔으나 그해 11월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복당, 지난 대선에 이회창 전 총재를 도우며 정치적인 신념과 노선을 지켜왔다. 2004년 노대통령 탄핵으로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해 있던 그해 7월 19일에 한나라당 대표에 당선됨으로 해서 1965년 민중당 대표에 오른 박순천 여사 이래 39년 만에 경선에 의한 첫 여성 당수가 되었다.
한나라당을 합리적보수로 이끌다
박근혜의 장점
전술한‘원칙중시와 약속지키기’는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빛을 발했다. 그는 여의도 당사를 매각하고 천막 당사로 옮기며 당을 구조 조정했고, 당의 재정 상태가 열악했음에도 당 연수원을 약속대로 국가에 헌납했다. 이러한 그의 조치로 인해 한나라당은 차떼기 정당의 멍에를 벗어날 수 있었다. 박 전 대표의 한나라당에서는 정치권에서 흔히 듣는 '실세'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없었다. 박 전 대표가 자기 계파를 만들지 않고 당의 공조직에 권한과 책임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는 17대 총선 때 과거 야당의 돈줄로 악용돼온 비례대표에 전문성과 직능대표성을 지닌 사람들을 공천하도록 했고, 지방선거에서는 경선이 공천의 주된 방식으로 자리 잡도록 했다. 과거의 야당들이‘야당 탄압’운운하며 제 식구 감싸기를 했던 것과 달리 중진 의원의 비리도 검찰에 고발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것 때문에 국민들은 한나라당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거친 목소리로 다투면서 이뤄낸 것이 아니다.‘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얻어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그에게는 신체적인 장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데 그것은 품위 있고 우아한 자태, 그러면서도 서민에게 쉽게 다가가는 독특한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2004년 3월 29일자 문화일보는"그의 정치자산목록 1호는 이미지이다. 단아한 모습은‘청결과 청순’의 이미지로서‘부패’와 어울리지 않는‘깨끗함’을 느끼게 한다."라고 썼고, 한국일보(2004.8.23)는“부드럽지만 약하지 않고, 예절과 격식과 상식을 지키는 이 나라 맏딸의 이미지가 어필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의 장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제껏 그를 비판하는 주장 중에 대표적인‘이미지만 있을뿐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는 것과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 대해 똑같은 답변을 되풀이 하는 것을 빗댄‘100단어 공주’,‘수첩공주’에 대해 강준만교수는”박근혜 지지자들에게는 그것도 매력이 된다.“라며 입만 열면 거짓말하는 정치인보다는‘100단어 공주’가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 우월성이 있다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이재현은 여기서 더 나아가“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100단어 이내에서 모든 사태를 설명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평가하기까지 했다.
박근혜의 브레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운영중인 박근혜 전 대표의 개인사무실은 '포럼' '연구회' 등 딱히 호칭이 없다. 대표 시절부터 계파, 사조직을 멀리해 왔던 박 전 대표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주위 사람들과 그 규모는 다른 대권 주자들에 비해 아직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 있다. 하지만 그의 대권 행보가 활발해질수록 조금씩 그 실체가 알려지고 있다. 먼저 캠프 내. 외곽에는 열차페리, U자형 국토개발계획 등 박 전 대표의 정책 구상을 담당하고 있는 2∼3개 정도의 정책팀이 움직이고 있다. 여의도 연구소장을 지낸 유승민의원이 캠프 내에서 공식적으로 이끌고 있는 팀이 있다. KDI 원장 출신의 차동세 경희대 교수,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 등이 속해 있다. 이와 함께 순수 외곽 자문그룹도 있다. 주로 40대 중반에서 후반의 소장 학자들로 구성돼 있다. 이혜훈 의원의 남편인 김영세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최강식 연세대 교수,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 곽진영 건국대 교수 등이 포진해 있다. 이 그룹에는 전직 장·차관 출신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대표 시절부터 개인적으로 관리하는 학자들도 상당하기 때문에 외곽 자문그룹의 정확한 실체는 그만이 알고
대선전략
국민들은 보다 획기적인 변화를 갈망하고 있으며 장기적 경제활성도 좋지만 곧바로 서민들에게 가시적인 민생공감대를 인식 할 수 있는 안건이 만들어져야 한다. 민생대안 정책 중에서도 서민층을 위한 활성화 대책, 중소기업 육성정책, 복지정책 개편, 자주국방 강화 등 시급한 정책에 우선 역점을 두어야 한다. 박 전 대표를 '유신, 밀실, 수첩공주, 부모님 후광'등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런 이미지를 붙여왔다. 이젠 감성적인 정치에서 멀어져야 할 때이다. 한마디로 정치판은 강력한 남성 위주의 판도다. 이런 험한 정치판에서 여성이면서도 남성 못지않은 강인한 여전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교과서적인 정책제시나 위장된 쇼맨십으로는 선거에서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 시류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역대 그 어떤 대통령 선거전에서도 제시된 정책의 차이만으로 판가름 난 적은 없다. 그리고 당장의 지지율의 등락에 민감해서는 안된다. 이는 언제고 뒤집기가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
박 전 대표의 책사라는 유승민의원은 뉴스메이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박근혜에게는 20%의 고정지지자가 존재하니 앞으로 정국이 바뀌더라도 가장 안정적인 후보가 될 것이다.”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