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으로 떠오르는 재활용 패션과 친환경 패션

우리 삶을 지배하는 키워드 하나가 있다. 바로“패스트”다. 한 때 패스트푸드가 우리 식탁을 점령하더니, 이제는 패스트 패션이 의류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패스트 패션은 유행이나 계절에 맞춰 발 빠르게 저가의 옷을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공급해 파는 방식이다. 2~3년 전부터 패스트 패션이 유행하면서, 옷의 수명은 1년 이내로 짧아졌다. 옷을 싸게 산만큼 옷의 가치는 현저히 떨어졌고, 버려지는 옷들은 상당히 증가했다.


다다익선(多多益善)형: 패스트 패션의 가장 좋은 점은 값이 싸기 때문에 옷 한 벌 값으로 여러 벌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유행에 맞춰 입으면서도 옷을 다양하게 살 수 있어 직장인 박현주(25) 씨는 패스트 패션을 선호한다. 박 씨는 유행에 맞춰서 옷을 입는 것을 즐긴다. 그로 인해 안 입는 옷이 많아졌지만, 절대 버리지 않는 것이 박 씨의 철칙! 유행은 언젠가 다시 오고, 리폼해서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싼 게 비지떡 긍정형: 물건의 가격은 그 물건의 가치를 말해주곤 한다. 옷값이 싸진 만큼, 그 옷에 대한 가치와 기대치는 낮아지기 마련이다. 직장인 김주미(26) 씨는 패스트 패션의 빠른 유통 과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김 씨는 옷이 싸기 때문에 구매한 옷이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싼 값에 사서 낡아 버리게 되도 아깝지 않다고 한다. 김 씨는 안 입는 옷을 쌓아놨다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꺼번에 옷을 처리하고 있다.
싼 게 비지떡 부정형: 학생 김은영(25) 씨도 요즘 싼 값에 나오는 옷들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 옷이 싸기 때문에 그만큼 질이 떨어져 보여 거의 사지 않는다고 한다. 김 씨의 친구들은 인터넷으로 저렴한 옷을 자주 구매하지만, 김 씨는 거의 구매하지 않는다. 김 씨는“주변의 친구들을 봐도 한 번 입고 버리는 옷이 많은 것 같다”며,“한 번 입고 버릴 옷을 왜 사는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개성을 살리는 코디를 위해 단품 아이템 선호

▲ 사진 4, 사진 5-1, 사진 5-2 묶어서
: 콩 섬유는 대부분 중국의 원료를 활용해 염색 전까지 제작한 후, 국내로 들여와 염색부터 제품 생산까지 하게 된다
패스트 패션은 인터넷 쇼핑의 발달로 가속화되었다. 빠른 공정을 거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인터넷 쇼핑 문화는 패스트 패션을 유행시키는 강력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인터넷 쇼핑과 함께 패스트 패션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동대문 도매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동대문‘유어스’의 김영덕 운영위원은“패스트 패션은 옷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고달픈 일”이라며,“공정 과정이 굉장히 빨라졌기 때문에 하루를 쉬면, 일주일이 손해일 만큼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빠른 유통 과정을 쫒아 패스트 패션을 주도하는 세력은 대부분 20~30대 여성들이다. 김영덕 운영위원은“예전에는 남들과 똑같이 입으려고 했던 반면, 지금은 남들과 달리 입고 싶어한다”며,“2~3년 전부터 계속해서 레이어드 스타일이 유행하는 이유도 같은 옷을 가지고 연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느낌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년부터 칠부 원피스나 코트가 유행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로 인해 업계에서는 트렌치 코드 등의 매년 유행하는 아이템보다는 레깅스나 청바지와 함께 입을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의 미니원피스 등의 판매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렴하게 옷을 사서 다양하게 코디할 수 있다는 것이 패스트 패션의 매력이다. 업계에서도 옷이 완판 되었다면, 그 옷을 재생산하는 것보다 새로운 신상품을 개발해 빠르게 공급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더 효율적이다. 김영덕 운영위원은“옷을 재생산하게 되면, 재고 위험이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새로 만들어 판매하면 그런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패스트 패션은 옷을“패스트”하게 버린다는 뜻?

패스트 패션의 저렴한 옷은 인터넷에서 파는 1000원 짜리 티셔츠의 등장으로 절정에 달하고 있다. 1000원 짜리 티셔츠는 구제 옷이나 중고 또는 이월 상품을 세일해서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영덕 운영위원은“1000원 짜리 티셔츠는 작년 재고 상품을 처리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 상품의 질은 상당히 떨어질 뿐 아니라, 버려지는 옷들도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잘 입는가’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한 해 동안 버려지는 옷은 1인당 평균 30kg에 달했다.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가정에서 배출되는 헌 옷을 취급하는 현대자원은 하루에 7,8 톤 내지 10톤 정도의 옷을 수거한다. 이렇게 수거된 옷 중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옷은 동남아 쪽으로 수출하거나 선박회사로 보내져 기름을 닦는 일 등으로 활용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재활용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버려진 옷들의 대부분은 재활용되지 않고, 그냥 자체적으로 폐기처분되는 게 보통이다. 또 각 동네마다 설치되어 있는 의류함도 옷을 버리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김주미(26) 씨는“계절마다 옷을 처분하는데, 동네 의류함을 찾지 못해 그냥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린다”고 말한다. 버려진 옷들이 증가하면서, 재활용 패션이나 친환경 패션이 반대급부로 주목을 받기도 한다. 김영덕 운영위원도“옷이 쉽게 버려지는 것은 옷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가슴 아픈 일”이라며,“최근에는 패스트에 반대해 옷을 리폼해서 입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본다”고 말한다.

환경을 생각하고 의식 있는 소비자층이 늘어야

국내 최초 재활용 패션 브랜드인‘에코파티 메아리’의 조혜원 팀장은“사람들이 처음 우리 제품을 보고, 재활용품으로 만든 의류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재활용 제품이라고 설명을 해주면, 그때서야 알고 재미있어 한다”고 말한다. 에코파티 메아리는 아름다운 가게에 버려진 옷들을 소재로 활용하여 옷을 만든다. 소재를 종류에 따라 분류하여, 면 종류는 세탁하고 니트는 해체하는 식으로 정리한다. 한 제품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8일이다. 디자인과 제작에 걸리는 시간은 하루 정도 걸리지만, 원단을 만드는 데 약 일주일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옷이 된다. 조혜원 팀장은“디자인이 독특하고 예쁘다고 사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매출이 점점 오르고 있다”고 말한다. 에코파티 메아리 관계자에 따르면, 3월 1일에는 하루 매출 130만 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사실 재활용 패션은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더 먼저 시작되었다. 조 팀장은“3~4년 전에 스위스의 프라이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트럭덮개, 안전벨트를 활용하여 제품을 만든 것이 디자인 면에서 아주 훌륭했다”고 말한다. 독일 등의 유럽에서는 재활용 패션에 관한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청바지 끝에 벨트를 달아서 만든 제품을 공항 아트샵 같은 곳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조 팀장은“패스트 패션에 반대하여 의식 있는 스타일을 추구한다는 데 자부심이 있다”며,“스타일리쉬하면서도 환경을 중시하는 젊은 층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패션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재개발이 중요하다. 현재 콩이나 대나무 섬유를 원단으로 하여 옷을 만들어 공급하는 업체가 있기는 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상태는 아니다. 콩과 대나무 섬유를 원사로 만들고 있는 미두에프엔씨의 강동현 대표는“대부분 새로운 제품이 시장에 나와서 정착하려면 5~6년 정도 걸린다”며,“지금 콩 섬유가 2004년도에 나왔고, 지금 4년 정도 되었기 때문에, 내년이나 내후년이면 정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직 소비자들의 인식이 낮기 때문에 제품이 많이 유통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콩 섬유는 기저귀 등의 아기용품이나 등산복 등의 안감, 속옷, 양말 등으로 활용되면서, 일부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공급은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소량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콩 섬유는 캐시미어보다 가볍고 따뜻하면서, 수분 흡수도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콩 섬유로 만든 제품의 가격은 일반 제품에 비해 30% 정도 비싼 편이다. 이에 강 대표는“콩 섬유는 울 섬유와 가격이 비슷하다. 캐시미어에 비해 5분의 1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대응한다. 그는“친환경 의류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보편적으로 확산되어, 공급이 확대되면 충분히 가격이 낮아질 수 있다”고 덧붙인다.


친환경 웨딩드레스를 만든 그린디자이너 이경재
“지구생태환경과 친환경 제품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야”


2005년 11월 일산 킨텍스에서 제 1회 친환경 상품전이 열렸다. 그린 디자이너 이경재 씨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옥수수 원단으로 제작한 드레스를 선보였다. 이후 작년 9월에 개인 전시회를 열었고, 11월 코엑스에서 열린 친환경 상품 전시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지구의 생태와 환경문제를 고려하여 옷을 만드는 그에게 패스트 패션과 친환경 패션에 대해 물었다.

Q. 2~3년 동안 패스트 패션이 의류 업계 전반을 차지하고 있다.
- 패스트 패션은 18세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일이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에 따른 대량 폐기는 인과적인 관계에 있다. 패스트 패션으로 인한 환경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느 한 분야나 사람이 아닌 제조업체, 유통회사, 소비자 모두가 의류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지만, 사회 윤리적으로 올바른 디자인을 미리 제안하고 소개하는 것 또한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

Q. 친환경 패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 환경 친화적 신소재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진지하고 적극적이었다. 몇 번의 전시회를 통해 친환경 의류 제작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 옥수수로 만든 친환경 드레스
Q. 친환경 소재로 옷을 만들 때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 디자인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폐기에 이르기까지 전과적적인 환경성을 고려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무리 환경 친화적 소재를 사용한 작품(혹은 제품)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유통 과정이나 사용시 혹은 폐기시의 환경성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단순히 환경 친화적 소재를 사용했다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Q. 우리나라 원사 기술이나 친환경 의류가 보편화되려면 어떤 일이 필요할까?
-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유럽이나 일본 등에 비해 생태 환경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많이 부족한 상태다. 국내업체 담당자들은 국내 시장에서 환경 친화적 소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수요가 적으니 당연히 공급 또한 적어지고, 그에 대한 기술 투자 또한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앞으로 국민들이 지구생태 환경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친환경 제품에 대한 관심도 늘어난다면, 그에 따라 우리의 친환경 원사 기술 및 의류 제품 또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교 그린디자인 전공 이경재 www.ecodress.net

패스트 패션은 소비자에게는 최신 유행 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게 했고, 공급자에게는 재고 품목을 줄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저렴한 옷의 가격은 옷의 가치 또한 낮추었다. 옷이 원가보다 훨씬 부풀려져 비싸게 판매되는 것도 문제지만, 옷의 가치가 낮아져 버려지는 옷들이 증가하는 것도 문제다. 재활용이나 친환경 패션이 패스트 패션을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그로 인해 옷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조 팀장은“친환경 의류를 입으면서 버려지는 옷들을 줄일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며,“이런 인식이 전반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NP
저작권자 © 시사뉴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