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의 부재로 곪아가는 사회적 상처

지난 4월, 35년 간 불멸의 사랑과 불륜 사이에서 방황했던 영국 왕세자 찰스와 그의 연인 카밀라가 드디어 결혼에 골인했다.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 콘월 공작부인의 결혼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를 국가적 수치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불륜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잠재우고 결혼으로서 사랑을 완성시켰지만, 과연 이들의 모습에서 불륜이라는 이미지를 버리고 오로지 사랑하는 연인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신성아 기자

현대사회에서 불륜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근친상간, 동성애, 간통 등이 불륜에 속한다. 꼭 이것뿐만이 아니더라도 범위를 넓혀 보면 중의적 표현으로 쓰일 수가 있다. 우리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갖은 것을 의미한다. 물론 단순히 만남만 가지고 불륜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성관계를 갖는 관계, 진짜 사랑의 감정이 생길 때, 새로 생긴 그 사람으로 인해 현재의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때 등이 불륜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통한다. 불륜을 주제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가 쏟아져 나오고, 불륜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휴대폰 발신자 확인요청이 쇄도하는 일은 부도덕한 세태의 한 단면이다. 물론 이런 양상이 불륜이 어느 날 갑자기 부쩍 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둠속에서만 이루어지던 ‘불륜’에 대한 논의가 밝은 햇빛으로 이끌려 나오면서 파생되는 충격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가 현시대를 반영한다고 볼 때, 매스컴은 마치 불륜을 인기 있고 유행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한 풍속도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그것이 우리 주위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적인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요즘 불륜의 경험을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스스로 이야기하며, 애인이 없다면 왕따가 된다고들 하는 말까지 떠돌고 있을 정도이다. 이제 남성에게나 여성에게 불륜은 하나의 게임이나 놀이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 쌍의 엇갈린 불륜 영화 ‘외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 이란다. 참 못됐다. 아무리 불륜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자신이 하면 애틋한 사랑이 된다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이들에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불륜의 사랑이 통할 수 있을까? 영화 외출에서 수진과 경수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삼척으로 달려온 수진의 남편 인수(배용준)와 경수의 아내 서영(손예진)은, 수진과 경수가 불륜관계였음을 알게 된다. 의식불명의 아내와 남편을 돌보기 위해 병원 옆 같은 여관의 서로 다른 방을 잡은 인수와 서영은 이래저래 자주 마주치고, 점차 서로에게 끌린다. 불륜이란 게 육체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더구나 ‘외출’은 두 쌍의 불륜 스토리니 정사 신이 없을 수 없다. 수진과 경수 커플은 디지털 카메라 속에서, 인수와 서영은 호텔방에서 옷을 벗는다. 아내와 남편의 불륜 사실에 구토로 반응하고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랬냐고 내뱉던 인수와 서영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저지른 인간으로서 도저히 못할 반인륜적인 사랑을 똑같이 행함으로써 어쩔 수 없는 사랑으로 일반화시킨다. 의식을 회복한 인수의 아내는 왜 자신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느냐고 묻는다. 인수는 대답한다. 처음에는 궁금한 것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없다고. 남이 하던 불륜이 로맨스로 변모되는 순간이다. 인수와 서영은 배신한 아내와 남편 간병에 정성을 다하고, 자신들의 감정은 안으로 삭인다. 같은 병실에 누워 있는 아내의 남자와 남편의 여자를 잠깐 훔쳐보는 인수와 서영을 오늘의 평균 한국인이라 할 수 있을까?

드라마, 영화의 영원한 테마
수목드라마 ‘가을 소나기’는 식물인간이 된 여자와 그의 남편, 그리고 여자의 친구가 그리는 아픈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기본 설정에서는 통속적이고도 신파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두고 아내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는 상황 자체는 결국 불륜이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최진실 주연의 드라마 ‘장미빛인생’ 역시 남편의 불륜으로 인하여 이혼위기에 처한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어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다. 몇 년 전 종영한 드라마 ‘앞집여자’에서는 불륜을 코믹하게 그려나가며 불륜이 얼마나 보편적인가를 드러냈다. ‘앞집여자’에서 한 인물의 대사이다. “내 삶에서 불륜은 그저 비타민일 뿐이야! 가정은 내 나름대로 충실히 하고, 또 난 나대로 그저 비타민을 찾는 것뿐인데 뭐가 나쁘다는 거야? 바보처럼 마음이나 주고 그러지 않으면 되는 거야” 이 대사를 보면 정말 불륜은 그저 비타민일 뿐이고, 그리 비도덕적이지만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리고 흥행에 성공한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의 여주인공은 소개받은 남자와 하루 만에 잠자리를 같이하고, 계속 만남을 이어오지만, 조건이 완벽한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러나 그 소개받은 남자와의 성관계는 계속 되고, 그 여주인공은 사랑과 결혼은 별개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잘못을 느끼지 못한다. 여기서 두 인물을 비교해 보면 분명 차이가 있다. 드라마 ‘앞집여자’에서의 그 주인공은 불륜은 다른 사랑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써 삶을 풍요롭게 하는 수단에 불과하고,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의 여주인공은 정말 진정한 사랑을 위해 불륜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럼 둘 중에 무엇이 더 낫다고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그리고 이처럼 불륜이 왜 드라마나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테마로 자리 잡은 것일까? 아마도 불륜의 사랑은 정상적인 평범한 사랑보다 더욱 극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보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대리만족을 좀 더 부추기고 충족시켜 주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성인 남녀라면 상상으로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불륜의 사랑을 꿈꾸어 보았을 것이다. 비도덕적인 사랑을 현실 속에서는 이룰 수 없으므로 허구적인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함으로써 그와 같은 욕구를 충족시키리라 본다. 불륜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는 우선 사람들로 하여금 잠재되어 있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흥미롭게 하기 마련이다.

불륜에는 이유가 있다?
불륜은 왜 일어나는가?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사랑의 미소가 있고, 배신의 미소가 있다”라고 피력한 바 있지만, 한 때는 죽고 못 산다던 커플이 몇 해 지나면 냉랭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다가 불륜에 빠지거나 이혼에 이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륜의 원인을 해석하는 데는 과학도 일조할 수 있다. 과학이 풀어낸 불륜의 원인은 우선 인간의 본능에 있는 듯하다. 진화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의 성은 본능적으로 ‘더 나은 유전자(여성)’와 ‘더 많은 확산(남성)’을 추구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본래 한 명의 배우자에게 충실한 성질을 가지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사회현상으로 불륜은 금기를 위반하고픈 유혹이다. 유혹이 없었더라면 에덴동산은 영원했겠지만 인류 역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영원히 멈춘 권태로운 천국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얼마나 지겨웠을까? 그런데 이브가 뱀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됨으로써 사태는 한 순간에 뒤집혔다. 남자는 힘들여 땅을 갈고, 여자는 목숨 걸고 아이를 낳았다. 남자의 몸은 땀방울로 반짝거렸고, 여자의 눈은 생기로 떨렸다. 아이의 눈동자 속에 자신들의 기억을 남겨둔 채 그들은 죽을 수 있었다. 이브의 유혹으로 비로소 신성가족이 형성된 것이다. 이처럼 금기의 위반은 사태를 발생시키는 동인이 된다. 불륜의 유혹을 금하는 제도와 법은 개인의 삶에 질서와 안정을 가져다주지만 바로 그 때문에 권태와 삶의 화석화를 동반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는 안정과 조화와 질서에 대한 욕구만큼이나 반복과 권태와 예측 가능한 삶을 견딜 수 없어하는 모순적인 충동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흔히들 불륜의 사랑이란 사람이 정상적으로 밟아가야 할 길에서 벗어난 일이라고 한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정의가 있다. 그러나 어느 하나 틀린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명확하지는 않다.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오는 사랑처럼 말이다.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한 번이든 두 번이든 모든 남성들과 여성들은 기습적으로 찾아오는 사랑의 열병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과연 어느 누가 그때를 알 수 있는지, 결혼 전의 모든 남녀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찾아올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불륜의 사랑도 사랑은 사랑이다. 하지만 그 사랑에는 책임과 대가가 따르며, 어떤 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서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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