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예방을 위한 규제 요구 목소리 이어져

[시사뉴스피플=김은정기자] 고령화가 급속히 증가하는 가운데 최근 76세 운전자가 몰던 화물트럭의 폭발에 이은 화재로 8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하는 등 고령 운전자들의 교통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 다양한 정책적 방안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지적과 안전예방을 위한 규제 요구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창원터널 사고, 76세의 고령 운전자
지난 11월 2일 창원터널 앞 1km 지점에서 화물트럭 운전자에 의한 폭발·화재사고가 트럭 운전자 윤 모씨를 포함해 3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을 입었다. 유류통 196개를 싣고 가던 5톤 화물트럭이 내리막길에 미끄러져 펜스를 들이받고 폭발하면서 트럭에 실렸던 기름통이 반대편 차로로 날아가 대형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조사결과 사고를 낸 윤 씨는 화물운송자격증조차 취득하지 않은 데다 2015년에도 차량 화재 사고를 낸 전력 등 최근 2년간 교통사고 10번, 운수업에 종사한 것으로 알려진 2006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46건의 교통사고를 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입길에 오른 것은 당시 화물차 운전자가 76세의 고령 운전자라는 사실이었다. 11월 5일에는 부산의 한 도로에서 비슷한 나이대의 운전자가 의식을 잃어 차량이 도로 한복판에서 멈춰서는 아찔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8월 기준 총 인구 중 만65세 이상이 14%를 돌파해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이에 따라 고령화로 60대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는 크게 늘고 있다. 9월 7일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연령대별 교통사고 통계자료’에 따르면 60대 이상 면허 소지자는 2014년 372만4521명에서 2016년 451만4408명으로 21.2% 증가했다. 사고 중 고령 운전자 사고 비율은 지난해 11.1%로 처음 10%대에 진입했다.
이와 유사한 결과는 교통안전공단이 전국 40개 운수회사를 대상으로 특별교통안전진단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교통안전공단이 전국 40개 운수회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운수교통안전진단 결과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안전진단 대상으로 선정된 40개 운수회사는 여객ㆍ화물업종 자동차 20대 이상 보유한 회사이면서 교통안전도평가지수가 기준치를 초과했거나 교통안전점검 결과 중대한 위험요인이 있다고 인정된 회사들이다. 사고건수를 운전자 연령대별로 분석한 결과 50대 운전자가 11.3건으로 전체의 42%를 차지했으며 뒤이어 60대 이상 고령의 운전자가 10.9건을 차지, 전체 40.8%를 차지했다.
고령 운전자가 교통사고의 위험성이 높은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시력 청력 등 신체 기능이 감퇴할 뿐만 아니라 상황 인지 능력이나 신체 반응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전대 조작 실수나 브레이크와 가속기의 혼동 같은 아찔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세계 곳곳, 고령 운전자 사고 증가
급속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고령 운전자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는 곳은 물론 한국만이 아니다. 지난주 호주 멜버른의 한 병원 구내에서는 96세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노상 주차 차량을 들이받았다 건너편 건물에 부딪힌 뒤 멈춰 섰다. 영국에서는 브레이크 대신 가속기를 밟은 90세 남성 운전자 때문에 40대 여성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도 지난해 마일 당 자동차 사고를 조사한 결과 85세 이상 초고령 운전자의 사고율이 가장 높았다고 지적했다.
세계적 장수국가인 일본에서도 최근 수년간 고령 운전자에 의한 대형 사고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12일 일본 도쿄에서 83세 여성이 운전하던 승용차가 보도를 건너던 30대 남녀 2명을 치어 숨지게 한 뒤 앞으로 돌진해 콘크리트 벽을 들이받은 뒤에야 멈췄다. 지난 5월 70대 운전자의 차량이 병원 현관을 덮쳐 13명이 다쳤으며, 또 지난해 10월 87세 남성의 트럭이 초등학생들을 들이받아 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일본은 지난해 전체 교통사망 사고 중 75세 이상 운전자로 인한 것이 13.5%(459건)를 차지, 10년 전(2006년) 7.4%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주목할 점은 일본 정부가 최근 6개월 간 고령 운전자의 운전면허 갱신 과정에서 3만여 명의 치매 의심 사례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3월 12일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 이후 운전면허를 갱신하려는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 대해 치매 검사를 한 결과 9월 말까지 3만170명이 ‘치매 우려 있음’ 판정을 받았다고 NHK와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이는 검사 대상 고령자 111만7천876명의 2.7%에 해당하는 수치이며 37명 중 1명꼴로 치매가 우려된다는 판정이다. 개정법에 따라 ‘치매 우려’ 판정을 받은 고령자들이 면허 갱신을 원할 경우 의사 검진을 받아 결과에 따라 갱신 혹은 면허 취소나 정지로 이어진다.
일본은 운전면허 갱신 시 7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치매 검사 의무화 외에도 경찰청은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자동 브레이크 기능 등을 갖춘 ‘안전운전 지원 차량’만 운전할 수 있는 운전면허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운전 지역과 시간을 제한하는 운전면허 도입, 교통사고를 일으키거나 교통법규를 위반한 80세 이상 운전자에게 차량 운전 시험 의무를 부과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 중에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각국 정부는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으나 고령 운전자 사이에서는 운전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다며 고령 운전자에 대한 규제 요구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면허 자진 반납 어르신 늘어나
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고령 운전자 증가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0월 25일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 8월까지 최근 5년간 운전면허증을 자진반납한 사람은 총 9,104명이었고, 2013년에 538명이었다가 2016년에는 1,942명, 올해 8월까지만 1,800명으로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연령별 운전면허증 자진반납 현황을 보면, 70대 이상이 5,407명으로 전체의 80% 정도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운전면허 반납이 사고 감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소병훈 의원도 “고령층의 운전면허 자진반납 증가 추세는 타인의 안전에 대한 배려와 스스로의 안전의식이 이미 공감대가 확대되고 형성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운전면허를 스스로 반납하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희생하는 일인 만큼 그분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재정적·제도적·정책적 뒷받침이 선행되어야만 건강하게 운전면허 반납이 활성화되리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일본은 1998년부터 65세 이상 고령운전자 운전면허 반납제도를 시행하여 자진 반납하는 고령운전자들에게 교통요금 할인, 구매물품 무료배송 등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일본을 비추어 볼 때 아무런 제도적 혜택이 없는 국내 실정은 보완의 여지가 있다. 또한 생업을 위해 부득이 운전을 해야 하는 이들에 대한 당국의 배려도 요구된다. 창원터널 사고 운전자 윤 씨는 사고 3개월 전 대장암 1기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수술이 사고와는 무관하다는 게 보도됐지만 고령임에도 생계를 잇기 위해 운전대를 잡은 것으로 추측돼 노인들의 빈곤에 대해 많은 고민을 남긴다.
빈틈 있는 면허제도 개선 필요해
고령운전자 면허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이명수 의원이 지난 10월 26일 도로교통공단 국정감사에서 이와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이명수 의원은 “최근 5년간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가 급증하고 점유율도 상승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와 함께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또한 매년 급증하고 있다”며, “최근 5년간 고령운전자 정기 적성검사 불합격 현황도 살펴보면, 불합격자가 증가하고 있고, 수시적성검사의 불합격자 비율도 지난 2012년 5.1%에서 2016년 13.4%로 대폭 상승했다”고 짚었다. 또한 “고령운전자 교통사고의 특징이 법규위반보다 운전 시 순간적 판단착오 또는 실수에 의한 사고비율이 높다”며, “적성검사를 내실화하여, 고령자의 운전주행능력 유지 가능여부 평가 및 운전능력 미흡한 고령자에 대한 선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가속화되는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전국 고령운전자 수가 230만 명에 달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에 대한 안전정책은 미흡한 실정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1종·2종 면허 소지자는 5년 주기로 면허 갱신을 위해 적성검사를 받아야 한다. 적성검사를 받으면 치매 등 큰 결격사유가 없는 한 이후 5년간 차량 운행에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고 면허를 갱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65세 이전에 적성검사를 받아 면허를 갱신할 경우 10년간 적성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64세에 면허 갱신을 할 경우 74세까지 면허를 유지할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또한 질병 여부 보유자가 의도적으로 ‘질병 없음’에 표기할 경우 정확한 진단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나이가 들수록 집중력과 신체 반응 속도가 감소해 사고 위험이 증가하므로 기존 면허갱신 주기를 단축하고 적성검사의 내실화를 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면허 개선 요구가 ‘차별’이라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서는 이명수 의원은 “고령운전자 면허개선은 차별이 아닌 고령운전자 자신의 안전 및 국민안전 확보에 의의가 있는 것”이라며, “고령자 운전제한에 따른 대체교통수단 강구 및 고령운전자의 안전운전위한 교통환경 구축방안 마련할 것”이라고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사고 방지를 위한 각계의 노력 이어져
운전대를 놓겠다고 선언하는 어르신 외에도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교통 관련 단체들이 고령 운전자 사고 방지를 위해 갖가지 방안을 떠올리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은 지난 10월24일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교통안전교육 의무화 및 적성검사 주기를 현행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도 밝혔다. 같은 날 서울 종로구 광화문 북측 광장일대에서는 ‘2017 어르신 교통사고 ZERO 캠페인’이 진행됐다. 경찰청이 후원하는 이 행사에는 65세 이상 고령운전자는 인지기능‧지각 검사를 통해 자신의 운전능력과 유형을 진단한 뒤 안전운전을 위한 적절한 처방을 받아볼 수 있었다. 정순도 도로교통공단 이사장 직무대행은 “급속한 고령화 추세로 어르신 교통사고가 또 하나의 교통문제로 급부상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이번 캠페인을 통해 심각성을 환기시키고 배려하는 교통문화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서울 도봉운전면허시험장은 만65세 이상 운전자들을 위해 무료로 실시되는 교통안전 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교육 이수자에게는 2년간 자동차 보험료 5%의 할인 혜택도 있다. 또 만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들은 전반적 인지기능 검사, 집중력 및 기억력 검사, 운동 능력 검사 등을 통해 운전 능력을 진단해 볼 수 있는데 지난해 5월부터 현재까지 600여명이 참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17년 1월부터 10월까지 도봉면허시험장의 안전운전 컨설팅을 통해 면허증을 자진 반납한 운전자도 35명에 이른다. 도봉면허시험장은 면허증 반납에 따른 상실감을 해소하고자 전국 최초로 자동차 운전면허 졸업증을 만들기도 했다. 전주현 도봉시험장장은 “인지지각반응 검사 등 안전운전 컨설팅을 계기로 어르신 운전자에게 꼭 필요한 전문 상담을 제공해 고령자 교통사고를 줄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어르신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찾아가 이러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여 많은 분들이 교통안전에 관심을 갖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북구는 고령운전자들의 차량에 부착하는 ‘실버마크’를 제작해 동 주민센터를 통해 배부하고 있다. ‘실버마크’는 관제엽서와 비슷한 크기로 ‘천천히! 배려운전! 어르신 운전 중’이라는 글귀와 운전대를 잡고 있는 고령자의 그림을 넣었으며 야간에도 식별이 가능하도록 반사시트를 사용해 제작했다. ‘실버마크’ 배부 대상은 65세 이상 고령운전자로 주민센터를 방문해 주소지와 생년월일을 밝히고 수령하면 된다. 황재관 구청장은 “실버마크를 부착하면 일반 운전자들이 고령 운전자의 차량임을 인식할 수 있으므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운전문화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