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방황 속에 숨은 그의 순수한 열정을 만나다

말 만들기를 좋아하는 것이 언론이다. 서세원은 오랜 전부터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의식하지 못하는 틈에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한 채, 오해와 비난의 말로 그를 상처 입히고 있었다. 하지만 서세원은 더 이상의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제 그는 한 회사의 대표로서 앞으로 그가 쏟아야 할 열정이 무한하게 기다리고 있기에 어느 작은 부분이라도 아까운 시간을 쓰기에는 너무 바쁘다.

신성아 기자

청담동에 위치한 서세원의 사무실은 아담한 집 자체이다. 그리 넓지 않은 직사각형의 공간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 어떤 목적에, 사랑에 실패한 사람은 어깨에 힘이 빠지거나 씩씩하지 못하고, 힘차게 말하지 못한다. 이것이 실패자의 공통이다. 하지만 서세원의 어깨는 당당했고 표정은 밝았으며 말끝에는 힘이 묻어났다. 목재로 장식된 사무실 한 켠에는 빛바랜 레코드판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벽 중앙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었으며, 책상 옆 공간에는 기억 너머의 축음기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손짓을 하며 뒤를 돌아보라고 말한다. 돌아봐서 보니 장식장에 추억의 아톰과 다양한 미니어처들이 사이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주인의 성격을 닮은 자유분방함과 친근함이 흘러나온다.“사무실이 많이 지저분하죠?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갖다 놓은 거 에요.”이렇게 일상에서 마주하는 서세원은 여태까지 내가 생각했던 느낌이나 분위기를 벗어나게 했다.

“내가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정치에서 30년을 하면 대통령을 하고, 검사 30년 하면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을 한다고. 나도 연예계에서 30년 했으니까 이쪽 일을 해야 되지 않겠어요? 기존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와는 차별화 된, 조금은 넓은 의미의 내가 꿈에 그리던 회사를 하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했어요.”
엔터테인먼트 사업가로 본격 활동을 시작한 서세원. 서세원이란 사람은 기본적으로 솔직함과 즐거움이라는 날줄과 씨줄의 관계로 맺어져 있는 것 같다. 끊임없는 찬반양론이 오가는 중에도 은근한 고집 속에 그의 독특한 브랜드는 변함없이 단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하면 연예인이나 음반, 영화에만 국한되는 생각을 갖고 그렇게 운영되는 회사가 많다. 하지만 서세원은 실생활 속에 엔터테인먼트 자체가 생활이라는 생각의 전환을 바탕으로 생활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엔터테인먼트 사업화 할 계획이다. 기존의 단순한 영화, 드라마에 제작이 아닌 때에 따라서 스튜디오와 방송국이 같이 있는 아파트 같은 건설 분야라든가, 영화부문에서는 직접 만들고, 상영, 배급도 하는 등의 하나로 묶는 것을 전체적으로 다 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는 한류 열풍에 편승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도네시아, 인도, 말레이시아 등의 나라가 실은 황금어장이라고 하면서 현지 법인프로덕션이나 회사를 운영하여 동남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근 30년 연예계 생활에 꽃을 피우는 작업이 한창인 것이다.

“방송은 때가 되면 해야 하고, 물론 지금도 무지하게 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에요. 근데 지금은 회사일이 너무 많아서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보시다시피 너무 바빠서 그 환경이 안 되죠. 그런데도 하고는 싶고, 또 못할 이유도 없고요.”
매주 3~4일은 해외에 나가 사업을 진행시키고 있는 서세원은 이 달에 미국, 일본 북경 등 출장이 줄줄이 잡혀 있었다. 방송활동에 대한 얘기는 오가고 있지만, 바쁜 사업으로 인해 아직까지는 무리라며 회사가 안정이 되면 6개월에서 1년 정도 후에는 꼭 할 것이라는 방송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유치하다. 너무 오버 한다’탁월한 진행 솜씨, 넘치는 아이디어를 칭찬하는 내용만큼이나 그동안 서세원을 빼놓지 않고 따라다니는 수식어이다. 그는 이에 대해 대중 예술인의 숙명이라고 이해한다. 대통령이든 재벌이든 대중을 주로 상대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관심의 표적이 될 수 있으니 억울할 것도 지나치게 신경 쓸 것도 없단다. 그러나 서세원의 이러한 마음가짐은 최근 몇 년 사이에 흔들렸다. 원조교제, 해외원정도박, 부인 서정희는 정신질환에 시달린다더라 등의 근거 없는 악성 루머는 그의 인내심을 절정으로 치닫게 만들었다.“원조교제는 현행범인데, 만약 내가 했다면 아마 경찰에 잡혀가서 문제가 되지 않았겠느냐? 도박은 인터넷 고스톱도 안치는 나다. 처음에는 도박장에서 나를 봤다고 하는 사람들의 눈을 파고 싶을 정도로 용서가 안됐다. 제일 먼저 보도한 기자도 3시간 만에 아닌 것 같아서 기사를 내리고 나한테 미안하게 됐다고 말하더라”‘오해와 이해는 종이 한 장 차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오해를 하기도 하고, 또 이해를 하는 과정들을 되풀이 하지만 결국 오해라는 것도 이해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이제 오해라는 것 때문에 그가 고통 받아야 할 이유는 없어야 할 것이다.

“건강상태는 보시다시피 괜찮아요. 그때, 화병이 좀 났었죠. 하지만 화풀이 했쟎아! 경찰은 고소하고, 검찰은 고발조치하고. 나름대로 그 정도 했으면 다 된 거 아니겠어요.”
지난 7월 검찰 수사관들이 2002년 연예비리 사건 조사 중 자신의 매니저를 고문했다면서 이들을 고발한 바 있는 서세원은 이에 대해“우리 직원이 폭력과 고문당한 것은 사실이다. 검찰에서 잘 조사하리라 믿는다. 웬 조사가 이리도 오래 걸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 부분에 대해서 다들 미안하게 생각을 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일부 네티즌들도 고발조치 한 뒤, 잡아서 대면한 적이 있는데, 만나보면 모두 생각 없는 어린애들이 재미삼아 그런 것이었다.“뭐 잡아놓고 나면 나만 피곤해요. 뭐라고 할 거에요? 상대방이 미안하다고 그러는데. 때릴 거 에요?”이런 저런 사건으로 힘든 나날을 보낸 서세원은 점점 많이 안정돼가고 있다고 말한다. 아직도 매니저 폭행 고문은 계류 중인 사건이기에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판단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실체가 있는 사실이라면? 그 동안 국민에게는 군림했지만 자신들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감싸기로 일관했다는 냉정한 세평을 받고 있는 검찰이 스스로의 환부를 도려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서세원이라는 이름의 값어치는 시장원리로 천 억 이상은 된다고 자부해요. 아까와도 이야기 했듯이, 30년 공력이 있죠. 그리고 영화‘도마 안중근’은 30년 연예계 생활을 결산하는 기분으로‘이 바닥에서 번 돈은 이 바닥에 환원하자’라는 마음이 와 닿아서 만든 거 에요. 숫자에서는 20억 손해 본 실패한 영화지만, 이 영화를 작업하면서 안중근기념 사업회 이사장님과 하용조 목사님 등 많은 분들이 저를 인정하고 지켜봐주셨죠. 그런 분들의 사랑을 어떻게 20억에 비유할 수 있겠어요?”
해마다 수천편의 시나리오가 투자자를 찾고, 많은 작품이 제작 물망에 오르지만 정작 뜨는 영화는 열 손가락에 못 미치는 것이 우리 영화계의 현실이다.‘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만큼 본전 찾기 힘든 영화계에서 대박을 기대한다는 건 도박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영화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작년‘도마 안중근’을 감독한 서세원은 영화가 손해 볼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 전에 그가 만든‘긴급조치 911’을 기억하는지. 다들 망한 영화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서세원은“영화‘긴급조치 911’은 한국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영화입니다. 다시는 가수들이 그렇게 많이 모이는 영화는 안 나옵니다. 이젠 모일 수도 없고요. 다들 그 영화가 망했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손익분기점인 70만을 넘겼고, 투자도 잘 됐었죠. 또 그 부가조건도 좋았어요.”라고 하면서 영화‘도마 안중근’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안중근이나 애국지사들 얘기를 영화화 하게 되면 솔직히, 충무로에서는 흥행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거대한 영화사나 쉽게 말해서 재벌의 일진들이 그런 부분에 신경을 써줘야 하지만 시장, 자본의 원리는 돈이 돌아오지 않으면 안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영화‘도마 안중근’에 대해 언급할 때, 평론가 양현모 씨는 말했다.“서세원이 왜 안중근을 만들었는지 묻지 말고, 왜 서세원이가 안중근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를 물어봐라. 영화에 대해 열정을 가진 서세원이라는 극히 아마추어적인 감독이 안중근을 만들었을 때는 다른 의미가 있지 않았겠느냐. 그것을 공감해야지. 그 동안에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했던 일을 한 거 아니냐?.” 서세원이 나에게 묻는다.“안중근의사 순국일이 언제인지 아세요?” “아뇨.” “거사 일은요?”아무 대답도 못했다.“이런 것들을 경시하면 안 된다. 말만 안중근, 김구 그러지. 막상 피부로 느끼는 사람은 없다. 그런 부분에서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았다.”그는 흥행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DVD나 케이블방송 등을 통해 사람들이 본다면 그가 알리고자 했던 소정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앞으로 흥행영화는 철저한 흥행영화를 할 것이고, 민족적인 영화, 누군가 해야 할 일은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계속 할 계획이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누구도 내 삶을 막을 수 없고, 그 누구도 내가 가고자하는 길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은 남의 일에 너무 깊숙이 들어오는 문화는 이젠 없어졌으면 좋겠다. 이제는 그만 오해의 눈으로 나를 보지 말고, 그냥 연예계에서 더도 덜도 말고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내 인생을 돌아보면 굉장히 자랑스럽다.”
‘정직하다, 투명하다.’서세원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회사를 설립하게 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믿고 도우며 자기들이 가진 것을 던져 주는 것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서세원은 이런 큰 결실에 더 열심히, 정직하고 신중하게,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서세원지지층’에 대한 보답이라고 말한다.“어쩌면 힘든 일련의 내 사건으로 인해서 가족들이 서로 더 사랑하게 됐어요. 어려운 상황일수록 아내와 아이들이 아빠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보여준 것이 가장 큰 힘이 됐죠. 하나님께 아주 감사드려요.”서세원은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가족이 늘 그립고 애틋하다고 한다.
서세원은 현재 슬픈 노래가 아닌 즐거운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일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 거칠고 힘든 과거 뒤에 그가 거둘 수확이 더욱 달콤하길 바라며, 지금까지의 소신, 그 믿음을 잃지 않는다면 더 좋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낙관 섞인 축복을 보낸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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