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바다로 간 것은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의 변하지 않음을 말이다

이번 그의 소설의 제목 때문이었을까. 작가 윤대녕을 보면서 헤밍웨이의 소설<노인과 바다>가 생각났던 것은. 배위에서 엄청나게 큰 물고기와 하룻밤과 하루 낮을 꼬박 사투를 벌이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아직은 고뇌해야 할 시간이 더 많은 나이이지만, 그를 보면 왠지 모르게 바람에 맞서고 있는 지친 주름이 연상되고 만다.

임보연 기자/사진 김성택 기자

윤대녕의 실제 모습을 보았을 때 그 청년과도 같은 모습에 조금 놀랐지만 이야기를 나누어가며 그 뒤에 숨겨진 고뇌의 흔적, 그 주름들과 만났다. 약간 쉰 듯한 목소리로 그의 생각들을 차분하게 쏟아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그의 글쓰기가 쉽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윤대녕 작가는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라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그 안에 뭔가 다른 의미가 들어있지는 않을까라는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의 소설을 발표했다. 윤 작가는 최근 근2년 동안 제주도에 내려가서 글쓰기에 몰입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를 제주도라는 먼 공간까지 내려가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를 고민하게 만든 글쓰기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의 입을 통해 들어보고 싶었다.
이번 소설은 고친 횟수만 해도 무려 4번이란다. 그 스스로도 왜 고쳐야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고치고 또 고쳤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초고와 많이 달라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아마도 제주도에 내려갔다와서 발표하는 작품이니 만큼 신경이 더 쓰인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이야기 도중 그는 한 삽화 이야기를 꺼냈다.
“유명한 연극배우가 한 번은 무대 위에서 잠자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매일 매스컴에서 그의 연기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하루는 너무 피곤해서 자는 연기를 하는 도중에 진짜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언론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하루 사이에 연기가 그렇게 무너질 수 있느냐면서. 나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나 싶었다. 잘 쓰려다보니 지쳐서 잠들어 버린 듯하다. 소설과 정면 대결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올라와서 다시 읽어보고 정신을 차린 거다.(웃음)”
그는 말한다. 의식적으로 눈을 뜨고 소설과 정면 대결을 하려 했다고. 그가 깨어나서 했던 소설을 손보는 작업으로 줄거리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란다. 그저 문체나 표현 등이 달라졌을 뿐이라고 한다. 인터뷰가 진행된 날은 그가 소설을 출간한지 보름째 되는 날이었다. 그가 말했다.“안고치고 냈더라면 더 많이 변했다고들 하지 않았을까.”그는 아직도 고뇌하고 있는 것 같다. 변해야 할 것인지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그의 소설은 우리가 모르는 새에 끊임없이 변함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글을 읽으면서 그의 소설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는 어떤 묘한 여운을 흘려왔다. 그 여운에 우리들은 조금씩 끌려가고 있었다.

과연 윤대녕, 그의 호랑이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이런 표현을 하고 있었다. 저쪽에서 이쪽으로 건너왔다. 그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라고 묻기 전에 윤대녕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물어야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이 그의 소설을 설명하면서 종종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회귀’라는 단어이다. 한 바퀴를 돌아 본디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 회귀.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들 떠나고 모두들 돌아온다. 나란 무엇이고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항상 죽음과 맞닿아 이야기가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삶을 지속할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말한다.“내 존재가 무엇인가를 문득 깨닫는 영적 체험을 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몸은 현실에 있지만 마음은 멀리 돌아오는 찰나의 경험 말이다.”회귀라는 단어에서는 항상 떠남과 돌아옴이 한 쌍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떠남이라는 행위가 소설 속의 인물들에게 혹은 그 자신에게 어떠한 해답을 던져줄 수 있었던 것일까.“해답은 현실에서 찾는 거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마음과 현실의 비좁음, 그 사이에서 항상 갈등을 한다. 이번 소설에서는 특히나 더 그랬던 것 같다.”
윤대녕의 회귀, 그 모습은 어땠나. 그는 의식적으로 뛰어넘었던 시기에 대해서 이번에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데, 의식적으로 뛰어넘었던 부분을 이번에 다시 찾은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빌어 말해보자.“그 시점으로 다시 돌아온 거다. 80년대 손을 대지 않았던 현실들. 주인공의 상황과 처지. 90년대 글쓰기를 선택한 상황과 처지. 성수대교에서 만난 해연과 주인공과의 재회. 이런 것들이 연대기를 따라가지만 소설 안에서는 30년이라는 시간이 들어있는 것이다. 2,30년을 거쳐 현실로 돌아왔다는 의미이다. 내가 겪은 80~90년대를 소설로 써보고 싶었다. 더 시간이 지나서 쓰게 되면 뚜렷이 기억나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이 적당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지금 한 번 쓰고 가야했다. 건너지 않고 지나간 부분을 돌아가서 다시 건넌 것이다. 의식적인 변화라기보다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마음속의 요구였다. 자기 정신의 노력이 문학에서는 중요하다.”

제주도에서 낚시를 하다

그가 인터뷰 도중 유난히 자주 하던 말이 있다. 지금이 적당한 시기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건너지 않고 지나간 부분을 돌아가서 다시 건너야할 시기라고 말하던 그의 모습이 참으로 담담해 보인다. 되돌아가보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 시기는 우리에게 더욱 큰 불안이었을지도 모르겠으며 삶은 더욱 초조한 순간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차분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번 그와의 만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제주도에 대한 것이다. 제주도는 이전에도 글을 쓰기 위해서 다녀오던 장소라고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좀 지쳐버렸고 떨어져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려간 제주도, 그곳은 외국으로 가지 않는 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동시에 다른 문화를 가진 장소, 그래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그곳으로 내려간 것이다. 그는 제주도에 대하여 이런 말을 했다. 휴양지로들 알고 있지만 살아보니 실제적인 삶이 있는 장소였다. 제주 사람들의 의식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역사적인 피해의식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장소였단다. 즉 자발적인 유배지라는 것.
그는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제주도를 찾았으며 서울에서 만난 그는 변한 것 같기도 그리고 여전히 알고 있었던 윤대녕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는 제주도에서 호랑이를 이야기했다. 어떤 의미였을까? 그는 갑자기 책에 쓴 하나의 문장을 이야기 속으로 꺼내왔다.“가뭄이 들면 호랑이도 산을 떠나 강으로 간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호랑이는 상처받은 영혼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짐승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자발적인 유배지에서 영혼을 치유하려고 했다.”
그는 제주도에서 글쓰기 이외에 무엇을 하며 스스로의 영혼을 치유했을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평범한 일상들이었구나 싶을 정도였다. 산에 다니고 만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으므로 엄청난 양의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이런 정도였다. 그러나 평범하지 않았던 그의 소일거리, 낚시. 그는 제주도에서 낚시에 미쳐있었다. 낚시로 반, 소설로 반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그는 바다에 그리고 낚시에 미쳐있었던 것이다.“바다는 위험해서 매력이 있는 것이다. 바다에서 낚시를 하며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바다로 향하게 만들었다.”
그는 낚시를 하는 동안 안 잡아본 물고기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낚시꾼들이 자기 손으로 음식을 만들듯이 그도 직접 물고기 요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책에 쓰여진 물고기 요리법에서 그렇게 리얼리티가 느껴졌던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소설의 중간중간 소개하고 있는 물고기 요리법에 관한 것들은 그가 제주도에서 낚시를 하면서 그곳의 선장이나 어부들에게 전수받은 것이라고 했다. 혹 독자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는 부분이었는데 의외로 재미있어하더란다.
다시 제주도의 바다이야기로 넘어가본다. 기자가 느끼기에 실재의 바다라는 것이 상상과는 참으로 많이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안에 어떤 욕망의 꿈틀거림을 숨기고 있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항상 바다가 보이는 제주도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점점 대담해져서 밤에도 낚시를 하러 나가고 위험한 장소를 찾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튀어 나온 매혹적인 단어, 중독. 그는 낚시가 참으로 중독성이 강한 것이었다는 말을 했다. 빠져버리면 자제할 수 없는 매혹적인 소일거리였다. 스스로도 말하기를 글 쓰는 것 이외에 이렇게 미쳐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한다.

리얼리티와 허구,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경계인

그에게 물었다. 이 소설에 당신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인가? 소설 속 인물들의 경우 실제 주변 인물들의 이미지를 따오기는 했으나 그들을 직접적으로 형상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경우 자전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별로 반기는 눈치는 아닌 듯싶다. 그래서 3인칭을 사용하고 Y라는 인물을 등장시키고(Y는 이번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실재로 Y가 겪은 일과 영빈이 겪은 것 모두 윤대녕 자신이 겪은 일들이라고 한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자전적인데 자전적이지 않고 또 어쩔 수 없이 자전적이라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소설가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의식의 과잉이라는 함정에는 빠지지 않고 여태껏 버틸 수 있었나보다.
그의 소설에 등장 하는 실존 인물이 있다. 바로 사기사와 메구무라는 소설가. 그녀는 할머니가 한국인이었던 일본 소설가이다. 그야말로 경계인이었던 것이다. 경계인이라서 굉장히 불안했던 존재였을 거란다. 그녀의 죽음을 접했을 때 그 역시 광장한 혼란을 느꼈던 눈치이다. 그리고 그가 386세대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것이 해연과 히데코라는 인물을 통하여 구체화되고 있었던 것 같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히데코 역시 목숨을 끊는다. 작가가 이야기 하는 경계인, 그것은 현실에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머물 곳을 찾지 못하는 사람, 스스로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아서 영혼이 닳아 없어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윤대녕 작가는 그 리얼리티의 세계와 허구의 세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또 다른 의미의 경계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가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또 하나의 주제를 안주삼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바로 시대의 불안이라는 해결되지 않는 과제에 대해서 말이다. 간혹 그의 소설을 후일담 문학이라는 범주 안에 넣으려는 경우가 있는데 그가 생각하기에 그의 소설이 후일담 문학은 아니라는 것이다. 후일담이라는 것은 지난 세월의 청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윤대녕 작가는 청산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한다.“몸속에 남아있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80년대나 90년대나 지금이나 사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시대의 불안이라는 것도 80년대는 군사독재가 끝났겠거니 했는데 이어졌던 정치적인 불안, 90년대는 그 후유증, 그리고 성수대교의 붕괴나 삼풍 사건 등 붕괴가 이어지는 데서 오는 불안, 그것들이 공황처럼 나타났다. 지금도 여전히 불안하다. 성격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변한 것은 없다는 것을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소설의 운명은 따로 있더라

그에게 이번 제주도의 바다는 흐름과 변화였다. 끊임없이 흐르고 있어 이미 눈앞의 바다는 그가 좀 전에 보았던 같은 물빛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바다인 그런 존재. 눈 뜨고 나오면 바로 눈앞에 바다가 펼쳐지는 그런 광경을 보면서 그는 어떤 변화를 겪었던 것일까.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의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그의 소설을 보면 조금은 알 수 있다. 앞으로는 그동안의 억압감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 통달한 듯한 말투로“소설의 운명이 따로 있더라. 자기 몫이 있더라구요.”라는 말을 낮게 중얼거린다.
운명이라... 윤대녕이라는 작가의 입에서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단어였는데,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제주도의 바다에서 배워온 것이 또 이것이었을까? 운명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성숙함을 말이다. 그는 조금씩 틀을 깨고 변화하고 있었다. 물론 윤대녕이라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범주 안에서 말이다. 그의 마음속에서 언제 포효할지 모르는 채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와 함께 말이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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