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생활에 영향주려면, 2009년은 돼야

한, 미 양국은 4월 2일 오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Karan Bhatia) 미 USTR 부대표 및 양측 대표단이 참여한 고위급 협상에서 작년 2월에 개시한 한․미 FTA 협상을 타결하였다. 그러나 진짜 협상은 이제부터다. FTA가 최종 발효되기 위해서는 대선으로 인한 정치적 변수와 FTA 반대 움직임 등의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그로 인해 FTA가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려면, 2009년은 돼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다.


FTA 협정은 조약의 일종이기 때문에, 양국 정상이 시행에 앞서, 조약의 유효성을 확인하는 비준 절차를 거쳐야 한다. 비준을 위해서는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국회 동의를 얻기 전에, 양측의 법률가들이 협정 문안을 꼼꼼히 뜯어봐야 한다. 두 달 이상 걸리는 조문화 작업은 제 2의 협상이라고 할 만큼 힘든 과정이다. 6월 말 정도에 조문화 작업이 완성될 예정이며, 양국 정상이 협정문에 서명하면, 그때서야 국회에 들어가게 된다. 정부는 9월 정기국회에 비준 동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 경우, 국회는 소관상임위원회인 통일외교통상위의 심의를 거쳐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한다. 본회의에서는 일반 법률안과 마찬가지로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통과된다. 효력은 협정문에 적힌 날짜와 조건에 맞춰 발생한다. 그러나 FTA는 국회에 계류된 상태에서 국회의 임기가 만료되면, 자동 폐기된다.

국회 비준안 처리 평균 1년 걸려

▲ 9월 임시국회에 FTA협상안이 상정되면, 모든 공은 국회로 넘어간다. 국회는 또 한 번 시끄러울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4월 6일 한미FTA체결대책 특별위원회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김종훈 한미FTA수석대표가 배석한 담당 국, 실장들과 함께 의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습.
한, 미 모두 FTA를 협상하면서, 정부 임기 내에 국회 비준 동의안이 처리된 적은 없다. 늘 차기 정부로 넘어가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려서야 국회 비준을 받을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기 전에 한, 칠레 FTA에 서명했지만,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회 상정이 지연됐고, 농민단체의 반대 속에서 국회 비준 동의안 처리에만 1년이 걸렸다. 미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993년 미 행정부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했지만, 비준안 통과까지 1년이 걸렸다. 한미 FTA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반적인 예측이다.
정치적 변수도 만만치 않다. 한, 미 모두 각각 올해 말, 내년 초에 대선을 앞두고 있다. 대선을 의식한 나머지, 정치적인 이유 등을 들어 국회 비준이 연기될 공산이 크다. 차기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차기정부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 내년 4월 16일이 18대 국회의원 선거이기 때문에, 표를 의식한 국회의원들이 국회 비준 동의에 소극적일 가능성도 높다. 현재 한나라당, 열린 우리당, 통합신당 추진 모임의 경우 한미 FTA에 찬성하는 의원이 많은 반면, 민주노동당과 민생정치 모임의 경우, 반대 목소리가 크다.

통상절차법 없이 협상을 논하지 말라

국회의원들이 찬반여론이 뜨거운 가운데, 한미 FTA 협상을 진행하면서, 통상절차법 제정에 대해서는 찬반의원 측 모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미 FTA는 수차례에 걸쳐 협상을 진행하면서도 그 내용이 비공개되어 협상의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었다. 협정문은 조문화 과정을 거친 후 공개될 예정이다. 통상절차법을 발의한 민노당 권영길 의원은 통상절차법의 효과에 대해“현재와 같은 정보의 차단과 참여의 배제 구조에서 이해당사자들을 중심으로 한 국민들은 수많은 DDA 협상과 FTA 협정에 수세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부담을 지속적으로 안을 수밖에 없다”며,“이러한 상황에서 통상체결절차의 제도적 개혁은 절차적 민주성 확대에 따른 무리한 통상조약 추진에 대한 조정, 감독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다른 나라와 FTA 등의 협상을 하는 데 있어, 국회 역할에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없던 법을 새롭게 제정하는 것인 만큼, 국회 통과에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발등에 떨어진 불 끄려 고심

한미 FTA 협상 타결 이후, 국회가 비준안 처리와 통상절차법으로 고심하는 반면, 정부는 FTA에 따른 피해 보상책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한미 FTA로 피해를 입은 국내 업체를 지원하기 위한‘서비스 무역조정 지원법’대상이 제조업 관련 51개 업종에서 전 서비스업으로 확대된다. FTA로 연간 8700억 원의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농업 분야를 지원하기 위해 기존의‘119조원 농업 농촌 종합 대책’을 확대 보완할 예정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전에“정부는 FTA체결로 피해를 본 농, 어가에 소득 감소분의 80%를 지원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무역조정지원법은 지난 해 국회를 통과해 내달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터 향후 20년간 FTA로 피해를 입은 기업과 근로자를 지원할 예정이다.
한미 FTA의 대표적인 피해 업종으로 꼽히는 의약품과 방송 및 미디어 업종도 해외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와 인수합병 등으로 살 길을 모색하기에 바쁘다. 미국의 다국적 제약사 머크의 한국법인인 한국 MSD는 SK 케미칼과 MSD 백신 제품의 영업 마케팅에 관해 전략적 제휴를 했고, CJ 제약 사업본부도 일본의 LION사와 일반 의약품 부문에서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방송, 영화, 신문 등의 사업을 함께하는 복합 미디어 그룹 형태의 미국 업체와 경쟁해야 하는 국내 방송 및 미디어 업계도 복합 미디어 그룹 형태로 변모할 가능성이 짙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고 각종 업계들은 새로운 시장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시장의 모습과는 달리, FTA 발효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시간적인 괴리에서 오는 갈등을 잘 마무리하는 것만이 공들여 쌓은 FTA를 무너뜨리지 않는 방법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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