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퇴출’이 아닌 인사‘혁신’

공무원 사회를 흔히‘철밥통’이라고 부른다. 철밥통의 의미는 신분 보장이 되는 직업공무원제도를 말하기도 하지만, 무사안일에 빠진 관료 행정을 뜻하기도 한다. 공무원 퇴출제는 공무원의 철밥통 깨기로 무너지는 직업공무원제도와 경쟁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공무원 사회 만들기로 요약할 수 있다.


실업 및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공무원은 직업 선호도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 있는 직업군이 되었다. 그로 인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그러나 청주대 정정목 행정학 교수는“공무원 사회의 문제 중 하나가 경쟁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공무원 시험으로 처음 공무원이 되는 진입장벽만 높을 뿐, 공무원이 되고 나서는 제한적인 경쟁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 동안 공무원 사회는 능력보다 연공서열을 중요시하는 관행이 짙게 지배했다. 경기도 시흥시청 박건호 주사는“공무원 퇴출제는 과도한 신분보장과 관행적 온정주의로 인해 조직 내 매너리즘 현상과 개인주의를 타파하고, 조직 내 긴장감을 부여하고자 하는 이유로 추진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군수는“지금 같은 현상은 정권 말기면 어느 때나 있어 온 일”이라며,“열심히 일하는 공직계에 이런 무책임한 인기성 발상안을 도입해, 공직사회가 마치 문제가 엄청나게 많은 것처럼 여론몰이를 해 가는 것은 공직사회의 모독”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한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 81년과 97년에도 각각 하위직 10%, 20%의 공무원을 퇴출한 적이 있다.

공직사회에 필요한 건, 퇴출이 아닌 민주화

▲ 공무원 퇴출제의 시발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울산시에서 3월 26일부터 4일 간 지방공무원 응시원서 접수를 받은 결과 상반기 34명을 뽑는 이번 시험에 26일 첫날에만 302명이 원서를 접수해 높은 경쟁률을 예고하고 있다.
현행 공무원법으로도 직위해제, 직권면직을 통해 파면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무능력과 불성실을 이유로 파면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지난 2004년 13명, 2005년 12명, 작년 9명만이 무능력과 불성실을 이유로 파면되었다. 정정목 교수는“현행 공무원법으로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직위해제나 직권면직을 할 수 있지만, 무능하고 불성실하다는 게 매우 불명확하기 때문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현재 퇴출 공무원 제도는 무자비하고 무합리하게 진행되고 있어 공무원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며,“경쟁강화를 위해서 퇴출 공무원 제도가 적당한 방법인지 잘 모르겠다”고 덧붙인다. 30년 경력의 한 공무원도“현행 근무평정도 상당히 형식적이지만, 퇴출 공무원 제도도 모순”이라며,“공무원 업무는 가시적인 실적이 나타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퇴출 대상에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고 말한다. 공무원은 6개월에 한 번씩 근무평정을 받는다. 근무평정은 승진 등의 인사 점수로 활용된다.
전공노 최낙삼 대변인은“현재의 인사제도는 밀실에서 근무평정과 승진이 결정되는 철저한 비밀주의이기 때문에 줄서기와 인사비리의 근원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며,“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는 근무평정과 승진 등의 인사제도 전반에 하위직들도 공직사회의 파트너로서 참여를 보장하여 공개적으로 오픈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정부의 혁신이나 서울시의 창의시정이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공무원 마인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이상, 하위직 공무원을 파트너로 인정하는 공직사회 민주화는 필수적”이라고 덧붙인다.

보약을 써야 할 때, 극약을 처방한 꼴 일수도

각 지자체에서 공무원 퇴출제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지만, 일부 공무원 퇴출제를 반대하는 자치단체도 있다. 경남 창원 박완수 시장은“창원시는 어떠한 요구에도 응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하고, 경남 김해 김종간 시장도“김해 공무원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강제 퇴출은 있을 수 없다”라는 반응이다. 공무원 퇴출제를 반대하는 청주 시청도“기존 공무원법으로도 무능, 태만한 공무원들을 인사 쇄신할 수 있다”며,“조직을 관리하는 지도자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전에 남상우 청주 시장은 청주시 공무원들은 미안할 정도로 일을 열심히 해서 인위적인 퇴출 제도가 필요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충남도청 혁신정책기획관실 관계자는“어떤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도 그 자체보다 제도를 운용하는 묘를 살려야 효율적이지만, 현 제도는 성과중심의 행정을 위해서는 좀 더 보완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의 공무원 인사 제도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지만, 그 방법이 공무원 퇴출제가 적당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정목 교수는 “퇴출 공무원 제도는 어떻게 보면, 극약처방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보약을 써야 할 때에 극약을 쓰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그는“공무원 사회는 경쟁이 미약해 체질이 약한 조직”이라며,“체질이 약한 조직은 극약에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보약을 쓰면서 그 때도 안 따라오는 공무원이 있으면 제외하는 방법이 더 좋을 것 같다”고 덧붙인다.
전공노 최낙삼 대변인에 따르면, 그는 국민들 70%가 퇴출제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를 보고, 국민들의 삶이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는“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무원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았고, 기본급도 작다”며,“공무원들의 철밥통이 비난받아야 할 사항이 아니라, 비정규직이 60%나 되고, 이를 구조화시킨 정부정책이 비난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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