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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언론인 피살로 촉발된 피코정부의 몰락

[시사뉴스피플=진 태유 논설위원] 슬로바키아의 언론인 ‘얀 쿠치아크’ 기자가 세금 사기협의를 취재 중 그의 배우자와 함께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의 시신은 2월26일 월요일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 티 슬라바에서 65km 떨어진 그들의 자택에서 발견됐다.

얀 쿠치아크 기자는 가슴에, 그의 배우자는 머리에 각각 총상을 입고 살해당했다. 얀 쿠치아크의 어머니는 그들의 소식이 며칠간 단절되자 그들의 유고를 직감했었다고 한다.

지방당국은 그들의 사망날짜가 2월22일에서 25일 사이로 추정만 할뿐 정확한 날짜는 지정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경찰은 언론활동에 관련된 살인 사건으로 판단하고 있다.

27살의 젊은 기자인은 얀 쿠치아크는 특별히 긴장된 정치 상황 속에서 슬로바키아 뉴스 사이트(Aktuality.sk)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슬로바키아 언론은 2016년 3월 좌익 정파주의자 로버트 피코(Robert Fico)의 권력 복귀 이후, 정부와 관련된 여러 가지 부패 사건을 보도한 바 있다.

얀 쿠치아크 기자는 행정부 수장이 거주하는 부동산 복합단지 소유주인 라디슬라브 바스타낙과 관련된 세금사기혐의에 대한 조사를 보도했었다. 그는 지난 9월에 사업가인 마리안 코크너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쓴 바도 있다. 마리안 코크너는 이 건물의 이미 처분한 한 아파트의 소유주였다. 그 당시 그는 자신이 어떤 모종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자신의 페이스 북에 알렸다.

그는 슬로바키아 동부에 거점을 둔, 이탈리아 마피아에 의해 조직된 유럽구조기금에 대한 부패혐의를 죄근까지 조사·연구하고 있었던 걸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슬로바키아 로버트 피코 (Robert Fico)총리정부는 언론인들을 정기적으로 검열해 왔다. 피코총리는 얀 쿠치아크와 그의 배우자 살해범에 관한 정보제공자에게 백유로의 현상금을 걸고 자신의 책임과는 무관함을 애써 보였다.

페이스 북에서는 자발적 지지위원회가 만들어졌으며, 앞으로도 지지자위원회는 살해된 그들 부부를 위해 추모행사를 열고 부패에 항의하는 시위행진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피코총리는 슬로바키아 국민과 야당의 압력에 굴복하여 몇 가지 조건을 걸고 사임을 발표했다. 조기선거를 피하고 2016년에 구성된 그의 혼합연립정부를 구하기 위한 꼼수로 보인다.

사실, 그는 그의 연립정부에서 가장 소수정당인 신헝가리계 연합당(Most-Hid:중도우파, 헝가리 소수 민족에 가깝다)에게서 조기 선거를 받아들일 것을 재촉 받아 왔다. 이 정당은 파트너들이 위기를 종식시키기 위해 조기선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연합을 떠날 것이라고 위협했다.

신헝가리계 연합당 벨라 부가르 대표는 총리의 사퇴결정을 높이 평가하고 상황이 진정되길 기대했다.

이에 로버트 피코는 사임을 하면서 3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1. 키스카 (Kiska) 대통령은 2016년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존중할 것

2. 현 정부 수립을 허용했던 연립협정을 존중하고 보장할 것

3. 사회민주당 연립정당이 차기정부를 이끌 후계자를 제안하고 받아들일 것

그에 의하면, 현재 야당의 지도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혼란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언론에선, 로버트 피코(Robert Fico)의 후계자로 현 정부의 투자 담당 부총리인 페테르 펠레그리니(Peter Pellegrini, 42세)가 이미 거론됐다.

포커스 연구소(Focus Institute)가 최근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슬로바키아 인의 62%가 피코 대통령의 사임을 지지한다고 응답했으며 13%는 그의 총리직을 유지해야한다고 응답했다.

3월23일 금요일에는 수만 명의 슬로바키아 시민들이 전국에서 부패에 항의하고 피코의 사임을 요구하기 위해 시위를 벌렸다. 브라티슬라바에서는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공산주의를 몰락케 한 "벨벳 혁명" 이후,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대중 집회가 된 4만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나 총리 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위가 계속되었다. 피코 총리의 사임은 슬로바키아인들의 분노를 진정시키지 못했다. 조기총선을 요구하며 계속된 시위는 점차 격렬해졌다.

“정직한 슬로바키아를 위해” 운동단체는 얀 쿠치아크 살해에 대한 독립적 조사를 특별히 요구했다. 또한 슬로바키아 국내 34개 도시와 국외 25개 도시에서 시위를 펼쳐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피코 총리의 사임과 그와 같은 사회민주당 소속 부총리 페테르 펠레그리니를 그 자리에 앉히려는 시도는 비판적 여론을 약화시키지 못했다. 여론은 정직한 슬로바키아를 위해선 총리사임으론 불충분하고 정계은퇴를 요구했었다.

한편, 페테르 펠레그리니는 그의 소속당 사회민주당 이외에 초당적으로 신헝가리계연합당과 슬로바키아국민당이 참여해서 정부를 구성하자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결국 연립정부 파트너인 신헝가리계연합당(MOST-HID)과 슬로바키아국민당(SNS)은 키스카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펠레그리니 부총리를 총리로 지명됐다.

총리로 지명된 펠레그리니는 성명서를 통해 “나는 친 유럽 지향을 유지하는 정부가 될 것이라고 확신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나는 그것이 우리나라의 상황을 진정시킬 정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방측 분석가들에 따르면 페테르 펠레그리니가 로버트 피코를 대신해서 큰 변화를 가져 오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로버트 피코가 여전히 그의 당의 수장으로 있는 한, 총리직을 이어받은 페테르 펠레그리니를 배후에서 조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슬로바키아는 흑막의 정치사가 이어지느냐 아니면 젊고 능력 있는 새 총리기가 민심을 수습할하여 ‘정직한 슬로바키아’로 나아갈 것이지 운명의 귀로에 서 있다. 

진태유 논설위원  sartre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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