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피플=진태유 논설위원] 지난 3월4일 이탈리아의 총선거의 결과는 이탈리아를 불확실한 시대로 접어들게 했다. ‘반체제’주의를 자칭하는 오성운동당이 제1당으로 국회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몇 년 사이에 제1당이 된 오성운동당은 이탈리아와 유럽의 정치지형에 미확인 물체(UFO)와 같은 존재였다.

반면에 최근선거에서 오성운동당의 괄목할만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 만큼의 불신과 의혹도 뒤따랐다. 그러나 지속되는 이탈리아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에서 온 예상된 결과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오성운동당이 기존 정치계, 언론, 유럽기관들에게 보낸 경멸과 비난은 수만은 유권자들의 분노의 배출구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이를 통해 이탈리아 국민들은 속 시원한 카타르시즘을 느낀 듯 했다.

이탈리아 사회의 경제적 부의 대물림에 대한 저항의식이 오성운동의 부분적인 출발점이었다. 이에 20년 동안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다수당들이 저성장, 실업률상승(특히 청년실업)과 감당할 수 없는 국가채무에 책임이 있다는 국민여론이 결정적이었다. 게다가 마피아가 연루된 정치권과의 부패 추문들이 기존 정치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신망을 떨어뜨렸다.

오성운동의 창시자인 베페 그릴로는 오성운동은 삼적과 싸우는 일이라고 2014년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그에 따르면 삼적이란 특권계급과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서로 지켜주는 언론인들, 권력과 결탁하는 기업인들 그리고 매춘부와 다를 바 없는 정치인들을 지칭한다고 했다.

오성운동당이 2013년 국민투표에 처음 등장했을 때, 사회정치적 모든 비밀, 모든 음모, 모든 타협들을 국회에서 폭로할 것을 약속했다.

2005년 베페 글릴로가 처음 개설한 블로그는 4년 후 이탈리아의 제1당이 되게 한 사이버정치운동의 산실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지지자들의 참여를 용의하게 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오성운동당이 공들였던 정보처리도구의 체계화로 우선 설명된다. 즉, 각 선거후보자들과 대표들의 선택, 여러 사회적 문제들에 관련한 당의 입장 등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집약할 수 있다. 오성운동당은 그의 지지자들의 결정사안들에 더 큰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이버상의 토론원칙에 근거된 민주주의 개념을 약속한 바 있다. 인터넷 토론방을 매개로 시민들의 의견을 조직하는 디지털 방식의 이상향은 이미 정치적 행위를 바꾸어 놓았다. 이제부터 이탈리아 국민 각자는 어떤 당, 어떤 노동조합 혹은 어떤 언론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 혹은 자잘한 비난들을 여과 없이 표현할 수 있다.

오성운동당의 매력은 정치적 경험이 없는 일반시민이 직업이 다양한 전문정치인보다 더 정직하게 정치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오성운동당 지지자들이 거리에서 늘 외치는 “정직! 정직!”의 심벌구호에서도 이것을 엿볼 수 있다.

오성운동당의 두각은 보편적 최소수입을 창시하겠다는 약속과도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다. 그 최소금액이 얼마 되지 않을지라도 이 운동의 선거의 성과는 실업자 수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청년실업률이 유럽연합국가 중 가장 높은 이탈리아 남부지방에선, 오성운동당이 선거의 40%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또한 실업자들뿐만 아니라 노동자, 종업원, 주부와 학생들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다. 게다가 학교와 병원에 대한 예산증식, 퇴직수당 인상, 과세 인하 등과 같은 관대한 사회보장제도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다른 기존정당과 차별화하긴 부족했다. 기존정당들 역시 3월 선거에서 공공지출확대와 세금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당의 탈 이데올로기적 행보도 오성운동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미 설정된 노선 혹은 신념체계가 방해를 받지 않음에 따라서 오성운동당은 무한한 정책의 유연성을 보여주고 바람 부는 대로 당을 이끌 수 있는 장점 때문이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성향의 유권자도 그들과 합치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당의 홍보전략은 당연히 이러한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극단적 대중주의자인 베페 글릴로는 2013년 그의 블로그에 오성운동은 우파도 좌파도 아닌 시민의 편에 있다고 확신해 찬 글을 올렸다. 시민에게 좋은 법이라면 가결할 것이고 나쁜 법이라면 부결할 것이라는 의지도 표명했다. 이런 세계관 속에서, 파시즘과 공산주의 그리고 전통적 정치정당들 역시 역사의 죄인이라고 싸잡아 비판하기도 한다. 많은 이탈리아인들은 오성운동의 탈 이데올로기적 시각에 공감하고 이제는 ‘이데올로기’라는 용어 자체가 이탈리아에선 상스러운 말이 됐다.

하지만 오성운동당은 동성애 문제와 이민문제와 같은 미묘한 주제들에 대해선,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문제화된 주제들에 분명한 입장을 취하기보다는 직접민주주의 개념에 관련한 참여적 담론이 더 강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일반시민들에게 부패한 엘리트집단에 무조건적 반대만하는 흑백논리를 강요하게 되었다.

오성운동이 목표로 하는 주요 쟁점들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별’은 공공 수도, 인터넷 접속 권리, 지속 가능한 교통수단, 지속 가능한 개발, 생태주의를 나타낸다. 하지만 조금씩 그 의미가 사라졌다가 2011년과 2012년에 다시 부활했다.

특히 오성운동이 관심을 갖는 문제는 유럽연합에 관한 것이다. 2005년서부터 2013년 사이에 무시됐던 이 문제는 2014년 ‘유럽선거’를 앞두고 중요한 주제로 떠올랐다. 당시 오성운동당은 이탈리아의 ‘유로존’ 탈퇴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투쟁했다. 그러나 선거 후 이 주장과 투쟁은 번개처럼 사라졌다.

단기간 유리한 선거 전략에 따라 사이버상의 토론을 통해 정당화된 당의 노선의 변화들은 지속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오성운동당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일부의 유권자들을 불만족 시키는 위험을 무릅쓰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주제들에 분명한 입장을 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선거 입후보자들의 능력이나 경험보다 ‘정직성’에 따라 후보자를 선택한다는 원칙은 반드시 유리한 것만이 아니다.

오성운동당의 유권자들이 그들 국가의 상황을 두고 배심감과 실망을 느끼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이탈리아인만의 특별한 느낌은 아니다. 탈 이데올로기 정치집단들이 유럽 다른 나라에도 그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민주당들은 위축되고, 반면에 보수당들은 그들의 일부인 극우당을 향해 방향전환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역사적 양상 속에서, 모든 이데올로기를 공공연히 포기하는 것은 선거에 이기기 위한 중요한 관건이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6월5일 오성운동당과 반-EU기조가 강한 포플리즘 극우정당이 연정에 합의한 것은 특별히 놀랄만한 사건은 아니다. 동맹당은 반EU, 반이민을 핵심 메시지로 ‘이탈리안 퍼스트(Italian Firtst)’를 내세우며 동성애 반대, 외국인 범죄자 추방 등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로써 서유럽 사상 최초의 포플리즘(대중 영합주의) 정부가 공식 탄생했고 서유럽국가들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유로존에서 세 번째 경제규모를 가진 이탈리아가 재정위기나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되면 그리스 사태보다 더 큰 위기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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