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음악이 부대끼는 그녀의 인생

#. 한국무용부터 시작했다.
“원래는 한국무용을 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제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4개월 동안 석고 깁스를 하고 다녔어요. 다리와 몸이 좋지 않아 무용을 관둘 수밖에 없었죠. 무용이 매우 하고 싶어서 부모님을 졸라서 하게 된 건데, 막상 그만두니 너무 허전했어요. 그러다 중 2때 가야금 교습소 전단지를 우연히 보고 찾아 갔는데, 정말 재미있는 거 에요. 그때부터 열심히 준비해서 국립국악고에 들어갔어요.”
#. <상사몽> 앨범을 내다.
스스로 운이 대개 좋았다고 생각해요. 문화관광부가 지원하는 인 디레이블 육성지원 사업에 뽑혀서 공짜로 음반을 만든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사실, 대학교 시험은 바로 붙었지만, 콩쿠르나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 시험에는 계속 떨어졌거든요. 실기는 학교에서 항상 3위권 안에 들어서 장학금도 받았는데. 조금은 억울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자괴감에도 빠지고. 그동안 제 자신 안에 너무 갇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인디 사람들을 만나고 클럽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편협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트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사람 갈 길은 따로 있었나 봐요. <상사몽>의 첫 번째 트랙이 ‘무엇이 되어’라는 곡인데, 지하철에서 갑자기 뭔가 생각나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쉬지 않고 썼어요. 그리고 7번째 트랙 ‘바다일기’는 홍대 앞 Salon 바다비의 사장님이 직접 지은 시를 듣고 만든 곡이에요. <상사몽> 앨범은 제가 계속 공연하면서 차곡차곡 만든 곡으로 채워진 앨범이에요. 결코 앨범을 위해 만든 곡들이 아니란 얘기죠.
#. 홍대클럽에 가다.
무대공포증이 심해서 큰 무대에서는 잘 떠는 편이에요. 다행히 다양하고 많은 장소에서 공연하게 되니 습관화 되면서 요령도 익히고, 그 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지더라고요. 첫 클럽 무대는 준비를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해요. 국악교실처럼 설명도 해주면서 공연을 했죠. 클럽 뒤풀이 때는 술을 마시면서 굉장히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눠요. 서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고, 사진도 찍고. 남녀노소가 따로 없죠.
#. 소중한 팬, 고맙습니다.
바다비라는 클럽에서 공연할 때, 크게 감동을 받은 적이 있어요. 35살의 트럭 운전을 하시는 팬이 계시는데, 생전 처음으로 팬 카페라는 곳에 가입을 하고, 정모 때는 꼭 빠지지 않고 참석하시죠. 정모 때마다 정성가득 한 많은 안주를 직접 만들어서 가져 오세요. 제 음악이 자기 삶에 큰 의미를 선사했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눈빛을 바라보면서 전 정말 행복한 사람이 돼요.
#. 전하지 못한 이야기.
곡이 잘 안 씌어 질 때는, 글쎄요. 워낙 게을러서 저는 닥쳐야 일을 하는 스타일에요. 또, 행사보다는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새로운 장소에서 공연하는 것을 더 좋아해요. 그리고 정민아표 음악은 어쿠스틱하면서 장르로는 규정지을 수 없을 것이고, 근본은 내재적인 것을 찾아가는 음악,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그런 음악이 될 거 에요. 마지막으로, 늙어서 길거리에서 좌판을 하고 있더라도 저녁시간에는 어김없이 클럽에서 제 공연을 할 것이고. 저랑 부대끼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영원히 음악을 할 생각이에요. NP
신성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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