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경험 후 익힌 이론, 기술력 배가 시켜

[시사뉴스피플=박용준 기자] 정권이 바뀌어도 청년창업에 대해서는 정부의 관대한 지원이 따른다. 경기불황 탓 일까 올해는 30세 미만 신규 창업자는 전체 10%를 넘어서며 첫 두 자릿 수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청년층이 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한국 경제에 희소식이라고 평한다.

그러나 이들 기업들의 생존율을 보면 여전히 어둡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서 3년 이상 생존율은 38%, 5년 이상 생존율은 15.9%로 나타났다.
양산에 위치한 해동엔지니어링(최준호 대표이사)의 경우는 청년창업이 한국 경제의 희소식이라는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한다. 무턱대고 도전하기 보다는 충분한 검증을 거치고, 창업 후에는 보다 노력해야 한다는 경종을 울린 사례다.

남들보다 몇 배로 노력한 삶
“처음에는 먹고 살기 위해 일했고, 후에는 일이 재밌어서 마냥 즐겼다.” 해동엔지니어링 최준호 대표이사의 말로, 그에게는 일 자체가 삶이다.
최준호 대표이사의 사춘기 시절, 부친의 건강이 나빠 모친이 생계를 책임졌다. 밑으로 남동생과는 4살 차, 막내는 16살 차이다. 생활고 때문에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고교 졸업 후 첫 직장은 20평 남짓한 영세업체였다. 돈을 벌기 위해 불철주야 일했지만, 월급은 소위 말하는 ‘쥐꼬리’로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 군대도 갈 수 없었다. 결국 택한 것이 병역특례다. 제법 규모가 큰 회사였다. 그러나 누구 하나 기술을 가르쳐주는 일이 없었다. 고교에서 전기과를 나왔고, 하는 일도 관련 업무다 보니 일 욕심은 생겼지만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전기분야 만큼은 세계 최고의 기술자가 되겠다고.   

남들 잘 때 연구하고 조립도 해보고, 회로도 보고, 도면도 그렸다. 부족한 이론 부분은 전기관련 서적을 사서 독학했다. 이 같은 생활패턴이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데, 그에게는 하루 3시간 수면이면 충분했다.
업주들은 그의 일에 대한 열정에 매료 돼 월급도 3배 가까이 파격 인상됐고, 스카웃 제의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못다 푼 숙제가 있었다. 삶이 정체 돼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창업에 도전했다. 실패였다. 당시는 조선업이 하향 곡선을 그리던 시기라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100만원 뿐이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아내와 가족들은 큰 힘이 됐고, 다시 일어섰다. 대표 명함을 새롭게 만들고, 공구상자 하나들고 녹산공단을 돌아다녔다. 그에게는 실무경험 후에 익힌 이론, 기술력만큼은 단연 최고였기 때문에 승산이 있었다. 실제 모 업체에서 20만원에 납품 받는 자재를 10만원으로 만들어 주는 등 우수한 능력을 선보였고, 소사장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됐다.

원천기술이 중요
“외할아버지는 내게 애틋한 사람이다. 생전에 혹시 창업하게 되면, 자신의 이름을 딴 상호를 짓기를 원하셨다. 현재의 ‘해동’은 여기서 비롯됐다. 더 열심히 일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기술보증기금의 도움을 받아 공장도 짓게 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최 대표이사의 인생사는 굴곡진 인생 그 자체였다. 하지만 젊은 혈기에서 나오는 ‘도전’ 정신만큼은 남달랐다. 오늘의 해동엔지니어링이 있기까지 끝없는 노력을 이어왔고, 시행착오를 거친 경험이 자양분이 된 것.
최 대표이사는 “청년창업 분야를 보면 기술산업이 10%가 안된다. 원천기술이 없다보니 얼마 못가서 쓰러지는 것”이라며 “무턱되고 창업에 뛰어들기 보다는 내가 잘하는 분야에 대해 전문성을 갖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해동엔지니어링이 성장할 수 밖에 없던 비결이 바로 기술력이다. 대표이사부터가 전기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박식하고, 늘 새로움을 개선해 나가니 협력업체들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것은 당연한 셈이다.
현재는 현대로템, 대양전기공업의 2차 밴드 등 국내 유수의 기업들의 파트너사로 동참하고 있다. 주종목은 신재생에너지 시장을 개척하며 태양광과 전기공사, 지열 등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전력IT 기반 차세대 스마트그리드 전력기기 기술 확보와 신재생에너지, 그린에너지 개발 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계열사인 해동테크는 철도와 해상, 한전 등의 배전반을 만들고 있다. 현재 준비 중인 계열사로 해동건설이 있는데, 해양플랜트 부분을 도맡아 할 예정이다.
인터뷰가 끝날 때 중 최준호 대표이사가 한 마디 말을 던졌다. “국가의 원동력은 제조업이다. 문제는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 층이 없다는 부분이다. 여러 이유 중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기업문화를 들 수 있는데, 자기 회사의 기술이 독보적이라 생각해 협업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처럼 협업을 통해 신기술을 개발하고, 기술개발을 할 수 있도록 자금부분에서 도와주는 기업문화가 완성 돼야 한다. 대기업의 단가 횡포 대신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서로 윈윈하고, 곧 국가 부흥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진=해동엔지니어링 제공

 최연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 수상
엔지니어 출신이 경영하는 회사답게 해동엔지니어링은 내일이 더 기대되는 기술을 선보인다. 배전반에서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또 다른 먹거리를 찾아나서는 기업. 자연스레 연구개발에 매진한 결과 특허도 상당하다.
부산광역시 우수기업 인증, 부산벤처기업인 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지난 제51회 과학의 날에는 과학기술진흥유공자로 선정 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쾌거도 이뤘다. 역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 수상자 중 최연소다.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동남아 시장에도 진출하는 등 수출전선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최준호 대표이사는 회사 성장과 함께 사회환원에도 적극 나섰다. 대표적인 것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한 봉사다. 이외에도 대한적십자사와 사랑의 운동본부, 동부아동보호기간, 백혈병과 난치병 환우들을 위한 기부도 이어가고 있다. 매주 강서 복지재단을 찾아 어르신들을 위한 도시락배달 봉사도 손수 펼친다. 스스로 다짐도 했다. 매출액의 일정 부분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쓰겠다고.
투철한 봉사정신은 어린 시절 가난하게 살면서도 늘 봉사활동에 나섰던 모친의 영향이 컸다. 모친은 불편한 몸을 이끌면서도 현재까지 베품을 실천하고 있다.
최준호 대표이사는 “회사가 이 만큼 성장한 배경에는 어머니의 베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베품이 내게 복이 되어 돌아온 것”이라며 “어머니의 사랑을 이어 나 또한 늘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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