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향한 한나라당의 독주곡

누구의 양보였을까
박근혜 전 대표는 지난 2002년 한나라당 부총재 시절“대선 후보 경선에 국민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바 있었지만 당시 이회창 총재는 박 전 대표의 대선후보 선거인단 가운데 일반국민 참여비율 50%로 하자는 주장은 받아들였으나 대선 전 집단지도체제 도입, 총재직 폐지 등의 추가조건에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기에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을 탈당했었다. 복당 이후 박근혜 전 대표는 두 차례의 대선 패배 이유를 민심과의 괴리라고 판단하고 본격적인 경선 방식 수정에 돌입했다. 대의원과 당원, 국민과 여론조사 비율을 각각 50%씩으로 정하고 대의원과 당원은 2:3의 비율로, 국민과 여론조사는 3:2의 비율로 규정했다. 이는 2006년 지방선거까지 무리 없이 적용됐다. 하지만 2007 대선을 앞두고 국내 정치계에 완전국민경선제, 즉 오픈프라이머리 방식이 도입됐다. 이는 절반의 국민참여를 고수했던 열린우리당이 먼저 시작한 방안으로 결국 민심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다른 당들에도 영향을 끼쳤다. 결국 지난 3월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는‘8월 20일 이전에 20만 명이 참여하는 경선을 치른다’는 원칙에 합의했고, 선거인단은 대의원 4만명, 당원 6만 명, 국민 6만 명, 여론조사20%(4만 명)로 원안의‘대의원과 당원:국민과 여론조사=5:5’규칙에 구체성을 더했다. 여론조사 반영분은 총 투표수의 20%에 해당하고 대선 경선에서 실제 투표에 참여한 선거인단 수에 맞춰 여론조사 결과를 20%반영하면 된다는 것이 박 전 대표의 주장이었다. 이에 이명박 전 시장은 실제 투표율과 관계없이 20%, 전체 선거인단을 20만 명으로 할 경우 4만 표를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 여론조사 반영분을 높이고자 하는 주장을 했다. 기존의 한나라당 경선 룰에는 여론조사 경과를 선거인의 투표율에 연동해 후보들에게 표를 나눠줄 것인지, 여론조사 반영분 4만 표를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각 후보들에게 배분할 것인지에 관한 규정이 없었는데 이번에 바로 이 점이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다. 이에 지난 달 9일 발표한 강재섭 대표의 최종 중재안은 이런 것이었다. 선거인단 투표율이 낮을 경우엔 66.7%로 가정하고 여론조사 반영분을 각 후보에게 배분하는 방안이었다. 여론조사 반영분을 실제 선거인단의 투표율에 연동시키자는 박근혜 캠프의 안과 투표율을 100%로 가정한 이명박 캠프쪽 안의 중간 수치를 선택했다지만 원안에 비해 이명박 전 시장에 유리한 방안임은 인정해야 했다. 원칙을 중시하자면서 박 전 대표는 칩거에 들어갔고, 긴장감이 감도는 3일이 지난 후 이 전 시장이 문제가 되었던 여론조사 관련 제3항을 양보하면서 사태는 일단락 됐다.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양측 모두 득실이 있었다. 이 전 시장은 결단하고 양보하는‘리더십’을 선보였고, 박 전 대표는‘원칙의 승리’라는 뚝심으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 전 시장측은 경선 승리에 대한 확실성을 잃은 것이 사실이고, 박 전 대표 역시‘지도자’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또한 사태 마감 이후 보인 양측의 반응도 서로‘양보’를 주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집안싸움’이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검증인가, 네거티브인가
작지 않은 내홍을 겪고도 한나라당은 잠잠해지지 않고 있다. 예정된 수순으로 대선‘검증’문제가 본격적인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나라당 후보검증위원회와 선거관리위원회가 출범하고 후보 검증을 둘러싼 공식적인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이 검증위 구성을 놓고서도 양측은 공방을 벌였다. 검증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부터 양측은 달랐다. 원칙적으로 당이 주도하는 후보 검증에 찬성하면서도 검증 방식과 내용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 전 시장은“당에서 하는 대로 따를 것”이라면서도“음해성 검증은 해당(害黨)행위”라고 강조하면서“검증이라는 미명하에 확대하고 왜곡, 재생산하는 네거티브는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박 전 대표는“검증 자체에 대한 네거티브 인식이 문제이다”라며 검증의 필요성 자체를 논해야지 네거티브다 아니다 식의 논란은 맞지 않는다고 이 전 시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 같은 대립구도가 첨예하다 보니 당 지도부는 경선 룰 결정에 한숨을 돌릴 틈도 없이 또 다시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당 지도부는 검증위를 모두 외부 인사로 채우는 방침을 확정했고 위원장 인선을 마친 상태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검증은 말 그대로 국민의 시각에서, 국민이 주축이 돼 치르겠다”며 두 후보가 참견을 중지해 줄 것을 당부했다. 강 대표는“검증위원회에는 중립적이고 덕망 있는 외부 인사들을 위원장과 위원으로 대거 위촉해 후보 검증 방식과 범위를 확정하겠다”고 전했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인가, 억지 해석인가
경선 후보 검증을 둘러싸고 사태가 보다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는 경위에는 이명박 전 시장의‘실언’파급이 있다. 박근혜 전 대표측이 생각하고 있는 본격적인 검증 절차는 이 전 시장이 주장하는‘한반도 대운하’와‘사생활’문제였다. 하지만 본격적인 검증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 전 시장의 언행이 구설수에 오르고, 이에 민감해진 이 전 시장측에서 박 전 대표측의 언행에 꼬투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본의 아니게 검증과 네거티브 설전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 전 시장이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실언의 행로를 살펴보자.

이 전 시장의 이 같은 언행과 행동에 대해 열린우리당 최재성 대편인은“이 전 시장은 경박, 천박, 야박 삼박자를 골고루 갖춘 대권후보”라며“한 사람의 언어는 그 사람의 철학과 살아온 인생의 반영이다. 이 전 시장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리더십, 그분이 갖고 있던 평소의 생각, 출세지향주의, 이런 것이 전반적으로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고 논평했다. 민주당 김정현 부대변인도“참으로‘참을 수 없이 가벼운 입’이다. 지지율 1위를 달리면 세상이 그처럼 우습게 보이는가”라며“한나라당은 본선에서 발등을 찧지 말고 당 차원에서 이 전 시장의 후보 적격성 여부를 지금이라도 검증해보라”고 충고했다. 이 전 시장측은 현장의 분위기와 당시 상황은 배재된 채 단순히 대사와 찰나의 행동만을 가지고 정치권에서 억지 해석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식적인 검증 과정이 시작되기도 전에 불거진 이 전 시장의 실언 파문은 큰 폭의 차이를 두고 지지율 선두에 서 있는 입장에서 자칫 큰 타격이 될 수도 있을 전망이다. 1등의 오만함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 같은 발언들 속에서 이 전 시장은 이미 박 전 대표와의 네거티브 설전도 시작되었고, 여론조사를 둘러싼 또 다른 의견 다툼을 남겨둔 상황에서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그들만의 대선이 아니다
여론조사 방식을 둘러싸고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는 다시 한 번 충돌이 예상된다. 한나라당 내분사태가 종료된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두 후보 모두 상승곡선에는 이상이 없으나 지지율 정도가 여론조사 기관에 따라, 주최하는 언론에 따라 그 결과를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여론조사 기관들을 조사하겠다고 나섰고 정치권과 언론, 여론조사기관들의 비상체제가 돌입했다. 여론조사 기관에서 일반적으로 지지율 조사를 할 때‘누가 적임자라고 생각하느냐’,‘누구를 지지하느냐’,‘당장 오늘 투표한다면 누구에게 투표하겠느냐’고 묻는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 쪽으로 쏠리는‘밴드왜건 효과’도 여론조사 1위가 유리하다고 할 수 없고, 후보 지지도와 선호도, 적합도의 결과가 여론조사 기관에 따라 다르고 사람에 의한 전화면접조사와 기계음으로 인한 전화조사 결과가 또 다르며,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시간과 공간, 대상에 따라서도 그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여론조사 방식을 놓고 대선 후보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후보들 간의 여론조사 방식에 대한 의견 불일치는 국민들의 여론조사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것은 대선 정국을 뒤흔들 수 있는 중요 변수가 될 수도 있기에 여론조사 쟁점은 중요한 문제다.
경선에 대한 결과 승복도 약속한 상태에서 오는 8월 경선이 치러지는 그날까지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는 당 검증위원회를 통해 공식적인 검증 절차를 거치게 되고, 본격적인 당심과 민심 잡기에 돌입하게 된다. 이것은 분명 대선을 향한 그림이 아니다. 획기적인 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범여권도, 뚜렷한 대선 행보를 걷지 않고 있는 잠재적 대선 후보들도, 집안싸움에만 치중하는 언론도 모두 정상적인 대선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 NP
장인혜 기자
inhye@inewspeopl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