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이 부른 뼈아픈 대가

맞고 온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나섰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임무를 잊은 한 재벌회장의 문제는 한국에서만 가능할 것같은재벌=돈= 힘이라는 논리방식의 초법적 성격과 관련된 문제로 번졌다. 바로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를 드러내는 아픈 징후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현실이다. 한화그룹 김승현 회장이 자식 때문에 저지른 폭력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하더니 결국 구속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세간에는 한화파라는 말까지 떠돌며 재벌조직폭력배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이번 사건을 봐왔던 많은 아버지들은, 아버지로서 과연 사건 속에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대입 했었을까.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어떻게 해석되어야하고 이렇게까지 몰고 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번사태의 문제점을 되짚어 보자.

피해자와 피의자를 보는 관점
이 사건을 보면서 다시금 생각해 볼 것이 있다. 틀린 의견을 내 놓는 이들도 있지만 거의 모든 언론매체에서는 사건에 대한 해석이 대부분 대기업 총수의 횡포로 비추어 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해석해볼 필요성이 있다. 먼저 피해자로 거론되고 있는 사람들을 보자. 그들이 진정한 피해자들일까. 북창동 술집 종업원들이 정말로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이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사실 김 회장이 이번 사태를 부르기 전까지 그 종업원들은 젊은 대학생들의 얼굴을 열 바늘이나 꿰맬 정도로 집단폭행한 가해자 들이었다. 더구나 그들 역시 북창동 일대에서 활동하는 조직폭력배와의 연관성이 없으리라는 법도 없다. 만약 그들에게 폭행을 당한 사람이 김승현 회장의 아들이 아닌 일반 시민이었다면, 그들이 과연 피해자로 남아있었을까? 아마도 이 사회에 흔하게 만연되어 있는 폭력의 속성으로 볼 때 결코 피해자의 꼬리표를 달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럼 김승현 회장은 왜 이런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일까. 일단 여기서는 김회장의 다른 문제점들은 거론하지 않기로 한다. 사건을 조금 간단하게 보면 어느 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런 아들이 누군가에게 맞고 들어왔다. 그것도 얼굴을 열 바늘정도나 꿰맬 정도로 상처를 입고, 부모의 위치에서 볼 때 마음 안 아파할 사람 어디 있으랴. 그 누구라도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각자 방법론에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도 법에 호소하거나 또 다른 해결의 방안을 강구하고자 동분서주 할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만약 그 대상이 폭력배라면 어떻게 될까. 그에 대한 개인적 대응은 그리 간단치만은 않을 것이다. 낙담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사회적 병폐를 탓하며 어떤 식으로든 힘의 불균형으로 움츠려들 수 있으리라. 애초부터 그들이 피해자가 아니었음을 모두 알고 있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피해자의 구분이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치우친 점은 문제가 있었다. 이러함에 비록 그들이 피해자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사건의 내막을 따져 엄중한 죄 값이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김 회장의 잘못된 복수극

김승현 회장은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러나 해결방법에서 보았듯 그는 조폭영화에 서나 볼 수 있는 너무 유치하고 황당한 수법을 썼다. 사회적 위치를 생각할 때 그 답지 못한 행동에서 생각이 짧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엄연한 법치국가에서 사회의 지도층에 있는 재벌회장이 시정잡배들이나 할 복수를 직접 실행했으니, 더구나 맘보파니 범서방파니 하는 조폭해결사까지 동원하면서 난리를 피웠으니 말이다. 아버지로서의 그의 마음은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해결방법과 사후 조사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태도는 분명 실망스러웠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래서 한화파라는 말이 나오고 사건과는 전혀 별개인 한화불매운동까지 불거져 기업이미지에 막대한 손상을 가져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사건만 떼어놓고 보면, 자식을 아끼는 아버지의 감동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게 사회적 차원으로 옮겨 오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김승연 회장은 이런 미묘한 차원들 사이에 가로놓인 사회적적의미를 미처 생각지 못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다가가기가 힘들었다면 기업총수로써 좀 더 냉철하게 사태를 판단하고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버지의 행동을 옆에서 지켜본 아들은 지금쯤 과연 아버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해결방법)이 오히려 자식에게 씻지 못 할 충격을 안겨준 꼴이 되어 버렸다. 그도 나중, 자식의 불행에 아버지와 같은 방법을 답습하지 말란 법 없지 않는가. 잘못된 점을 스스로, 좀 더 일찍 인정하고 뉘우쳐야 했음이 마땅했다. 대기업회장이 아닌 한 아버지의 입장에서 한순간 돌발적으로 일어난 행동이었다고 왜 처음부터 말하고 용서를 구하지 못했는지 내심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한 일련의행동이 재벌이기에 앞서 아버지로서의 동정의 명분마저 잃고 말았다. 물론 솔직하게 사건의 본질을 털어놨어도 김 회장의 범법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 하지만 이미 감추어지기엔 너무 비대해진 사건의 형색을 볼 때 비겁하기까지 보이는 김회장과 아들의 모습이 국민들의 눈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재벌과 재벌자식의 광란으로 비처지게 된 것이다. 있는 사람이 힘으로 해결하는 사고의 전형, 이것을 국민들은 제일 싫어하는 것이다.

사건은폐가 부른 경찰의치욕

경찰은 이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청탁을 받고 경찰수뇌부가 조장한 수사은폐로 말미암아 경찰의 위상은 초토화직전이다. 어찌 보면 이번 사건에서 또 하나 가장 문제시 됐던 부분이 바로 경찰의 초동대처였다. 수사기밀인 압수수색 계획마저 유출 되었을 때 이미 증거인멸의 오점을 시사했다. 이택순 경찰청장은 이번사건에 대해 언론보도를 보고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애초부터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미 사건발생 한 달 전, 홍영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이 첩보를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홍 전 청장이 지휘라인을 무시 했다는 말이 되는데 재벌회장이 관련되어 폭력배까지 동원해 납치·감금·폭행한 사건을 경찰총수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설득력이 없었다. 사건이 불거지자 서울경찰청은 단순폭행사건으로 판단해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광역수사대의 첩보사항을 관할인 남대문경찰서에 넘겼다고 주장해왔었다. 그러나 첩보보고서 내용이 제목부터가‘납치·감금·폭행사건’으로 돼 있고 김 회장이 주 피의자이며 경호원 외에 폭력배 수십 명이 가세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음을 볼 때 수뇌부에 보고하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더구나 사건 경위가 청담동의 한 단란주점에서 청계산, 북창동으로 이어지는 이동과정이 기록돼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행위임을 알 수 있는데, 이를 경찰청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니 도대체 말이 되는가 말이다. 이택순 청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중립성을 가지고 엄정한 수사를 강조해왔다. 그런 그가 보고를 받고도 광역수사대가 아닌 관할경찰서에서 처리토록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면 그 책임은 결코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한 달이 넘도록 수사를 지지부진하게하고 방해했다면 직무유기고 직권남용이다. 경찰 수뇌부가 관련된 사안인데 어떻게 하부조직에서의 수사가 원만히 이루어지겠는가. 스스로 해결이 어려웠던 만큼 경찰총수의 책임은 크다. 경찰 내부조직에서조차 청장의 떠넘기기식 자기방어행태를 꼬집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한화고문으로 있다는 최기문 전 경찰청장의 외압에 대해서도 찜찜하긴 마찬가지다. 대한민국경찰총수로 몸담았던 사람이 재벌그룹의 고문으로 가서 하는 일이 대체 뭘까? 경찰수뇌부의 확고하지 못한 초동수사대처법은 국민들의 불신감만 더욱 커지게 했을 뿐이다. 직무에 충실한 대다수 경찰관들의 수고가 왜곡될까 안타깝다.

원칙과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

폭행을 당하고 폭행을 했던 김 회장의 차남은 재벌3세이다. 우리사회는 흔히 재벌이니 재벌의자식이니 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경향이 있다. 다수의 경제계 인사들은 이번 김승연 회장 사건에 대한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너무 지나치다며 우려했고 우리사회가 재벌에 대해 평균수준이상의 지나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발언도 했다고 한다. 맞다. 재벌이라 해서 도덕적으로 무조건 배타적인 눈초리를 받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이번 폭행사건에 대해 국민적관심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태가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간 자신들의 행적을 살펴본다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사건이 크게 문제화된 건 무엇보다도 재벌회장이 직접 폭력에 가담했다는 측면에서 다른 사건들과 전혀 다른 이슈를 야기했다는 점 때문이다. 김 회장이 폭력적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그것과 무관하게 폭력과 재벌회장이 서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은 조폭영화나 정치드라마 같은 허구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게 진짜 일어났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 회장 사건은 색안경을 끼고 재벌을 보는 한국인들의 궁금증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래서 막연히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국민들은 영화 속에서나 나오던 재벌의 폭력성에 대한 증거를 잡은 것이다. 평소에 재벌에 유리한 논조를 펼치던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당황한 건 이 때문이다. 이건 한국자본주의가 낳은 계층별 신분의 대상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것이다. 당초 김 회장이 매 맞은 아들을 대신해 직접 폭행에 나섰고 이에 따른 관련 의혹이 꼬리를 물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그 이유는 정황상 직접 폭행을 저질렀거나 폭행을 지시한 것으로 판단되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이 순간을 피하고 보자는 식의 ’모르쇠‘로 일관해온 치졸한 행동에 국민들은 더 분개했던 것이고, 법을 외면하고 금력으로 직접 제재를 가한 후“그런 적 없다”라고만 일관해온 그 오만한 행위가 미웠기 때문이다. 아비의 입장에서 순간적으로 저지른 명분론을 굳이 세운다면 솔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그에 합당한 죄 값을 구해야 했음이 순서에 맞지 않은가. 진의든 아니든 그는 마지막에서야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재벌들 스스로 원칙과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국민적 정서에 맞게 이끌어낼 때 비로소 그들이 사회에서 존경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어디로 가는가?
김 회장은 이번일로 자신의 인생에서 없어도 됐을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깊이 생각해보자. 대기업 총수마저 국가공권력에 맡기지 않고 폭력배를 동원하는 대한민국. 이쪽저쪽 눈치 보다 날 새는 우리 민중의 지팡이, 폭력을 행사하고 더 당당한 폭력자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은 이런 일로 우리 곁에서 점점 멀어져만 간다. 우리는 사건이 발생하면 불난 집 광고하듯 터트리기 바쁘고 잠잠해지면 예방책 없이 수면 아래로 사라져 버리기 일쑤다. 큰 이슈나 사건, 사고가 터지면 차분히 원인분석과 그것을 예방할 필요한 현실적 방법을 제시해야한다. 또 한 이번 사태를 사회적으로 반 기업정서로 몰고 가지말자. 이를 가진 자에 대한 저주와 이념 간, 계층 간 갈등 소지로 이용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지도층인사들에게 사회적 윤리의식(노블레스 오블리주)은 더욱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들이 이를 가벼이 여겨 내팽개친다면 이 나라는 정의가 상실된 삼류국가로 남을 수밖에 없다. 권력과 힘은 도덕과 윤리를 동반 할 때 진정한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고 더욱 빛나는 것이다.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 강도 높은 비난을 받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최근 공기업 감사들과 구청장들의 기막힌 명분(?)의 해외연수가 그렇고, 정부고위층 인사가 자식의 병력비리에 연루되어 또 한 번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포클랜드전쟁이 터지자 조국을 위해 기꺼이 앤드류왕자를 참전시킨 영국왕실, 자국병사의 안전을 이유로 무산됐지만 영국왕위계승 서열 3위 해리왕자를 이라크에 파병시킨다고 하지 않던가. 그들의 진정한‘노블레스 오블리주’정신이 부럽기만 하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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