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절모에 시가만 물고 있다면 영락없는 마파아의 대부같은 용모, 히딩크가 개구장이 같은 용모라면 코엘류와 본프레레는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같은 용모였다. 이에 비해 아드보카트는 몸 전체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한다. 과연 이 외관 상의 카리스마가 2002년의 영광을 재연해 낼 추진력으로 작용할 것인가

윤 양 래 기자

개운치 않은 출발, 그러나 여신의 손길이 미치다
UAE 신문 '칼리지타임스'와 '걸프뉴스'는 아드보카트의 한국행 확정을 놓고 보도에서 UAE 대표팀을 맡은 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아 한국팀으로 옮겨간 아드보카트 감독이 'UAE를 곤경에 빠뜨렸다', '갑작스런 한국행은 UAE에 충격을 안겨줬다'고 잇따라 보도했다. 칼리지타임스는 "아드보카트는 서둘러 두바이를 떠났다. 걸프뉴스는 아드보카트의 갑작스런 한국행은 UAE 축구협회와 미디어, 서포터스를 여러 이유로 화나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아드보카트가 호텔에 차 키를 맡긴 뒤 몰래 두바이공항을 빠져나갔다. 아드보카트는 출국에 대해 협회 관계자들에게 아무 언질도 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를 놓고 우리나라의 국감장에서는 한 야당의원이 “축구 감독 선임이 우리 소관은 아니라고 보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을 영입한 것은 결국 남의 나라 감독 빼오기 아닌가. 앞으로 UAE 축구협회가 국제무대에서 우리를 지지하겠는가. 국제사회에서 뭐라고 하겠나. 감독 빼오기가 국제 관례인가 ” 라고  지적할 정도였다. 더구나 누리꾼들의 반대의견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아드보카트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란 다름아닌 지난 유로2004 네덜란드-체코전 때. 아드보카트의  결정적인 실수를 말한다. 전반 초반부터 펄펄날며 2개의 어시스트를 했던 아르옌 로벤을 전반 후기에 빼면서 수비적인 자세를 취했다가 체코에게 카운터를 얻어맞았던 것이 바로 그것인데 네덜란드가 어이없게 침몰하자 아드보카트는 오렌지군단 팬들의 맹렬한 사이버 테러를 피할 수가 없었다. 물론 해외의 대부분 언론들도 아드보카트의 결정적인 실수를 대서특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또 한가지, 독일 분데스리가 팀인 Moenchengladbach (묀헨글라드바흐) 의 감독직에서 불과 6개월여만에 경질된 경력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어떤가? 이란전에서의 신승(辛勝)을 놓고 모든 매체가 입을 모아 독일 월드컵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이미 그에 관한 모든 안 좋은 기억들은 묻어 버린 지 오래다.

그는 누구인가
'열심히는 했지만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다'는 것이 그의 선수시절을 말할 때 흔히 하는 말이다. 그는 1967년부터 80년까지 네덜란드 ADO, FC 덴하그, 로다 JC, VVV, 미국 시카고 스팅에서 선수로 뛴 적도 있지만, 선수로선 그리 탁월하진 못했다. 결국 그는 네덜란드대표팀의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는 데는 실패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수비형 MF로 네덜란드 1부리그 451경기에 출전했다. 선수시절 그의 별명은 '황소'였다. 선수시절의 그를 기억하는 네덜란드 기자들은 '싸움소' 에드가 다비즈를 연상하면 된다고 말했다. 키는 작지만 당당한 체구에 엄청난 체력과 저돌적인 플레이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리고 그의 성격은 네덜란드 언론의 캐리커처를 보면 여실히 드러나는데 나폴레옹의 복장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작은 장군’이라는 그의 별명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나폴레옹의 저돌성과 다분히 다혈질적인 면모를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작은 장군’이라는 그의 별명은 요한 크루이프로 대변되는 네덜란드 축구의 대명사 ‘토털사커’의 창시자인 리누스 미셸 아래서 코치 수업을 전수받아 그의 수제자이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다. 그는 비판적인 여론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쓰는 스타일이며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금세 얼굴을 붉힌다. 또 선수들에게도 상당히 엄하게 대하는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뚜렷한 취미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직 축구만을 생각하며, 팀 운영에 전력을 다하는 스타일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전형적인 프로 지도자다. 그러나 이만큼 대화의 주제에 대한 다양성이나 융통성은 없는 편이란 게 네덜란드 현지의 평가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직선적인 성격과는 달리 상당히 안전위주의 팀 운영과 전술을 선호하는 편이다. 스타플레이어를 인정하고 그들을 중용한다. 젊은 유망주를 유심히 지켜보고, 대표팀에 뽑기는 하지만 그들을 곧바로 그라운드에 올려 시험하는 모험은 즐기지 않는다. 그리고 축구의 시작은 수비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전술적인 면에서도 아드보카트 감독은 수비를 먼저 챙기는 스타일이다. 수비를 강조한다고 해서 꼭 수비적인 축구를 한다는 뜻은 아니며, 훈련시 공격보다는 수비전술에 많은 신경을 쓰는 편이다.

명장을 명장답게 쓰려면
아드보카트 감독은 지난 유로2004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면서 4강까지 이끌었고, 지난 94년 미국월드컵에서도 네덜란드 대표팀을 8강까지 올리는 등 국가대표팀 조련에 잔뼈가 굵은 또 PSV 에인트호벤(네덜란드)과 레인저스 FC(스코틀랜드), 보루시아 MG(독일) 등 클럽축구의 사령탑으로서도 괄목할 만한 성적을 올렸다. 에인트호벤(1995-1998)을 이끌면서 1차례 리그 우승(1997)과 암스텔컵 우승(1996), 요한 크루이프컵 2차례 우승1996.1997)을 이끌었고, 레인저스(1998-2002)의 사령탑으로서 스코틀랜드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이끄는 등 감독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축구의 본고장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명장 중의 하나다.
모든 경기는 결과가 말한다. 특히 축구는 더 그렇다. 아무리 내용이 좋다 해도 골을 넣지 못하면 그 책임은 모두 감독에게 돌아간다. 전례만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더 심하다. 오래도록 기다리는 법이 없다. 만일 이번 이란 전에서 졌다면 아드보카트에 관한 평가는 어땠을까? 몹시도 시끄러웠을 것이다. 아니 극단적인 경우에는 ‘하차’ 를 점치는 기사도 나오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없다. 이미 우리는 선택을 했고 다행히 이란전에서 승리를 했기에 당분간은 아드보카트 감독이 자신의 역량을 펼칠 시간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아울러 아드보카트 감독의 당부처럼 온 국민과 매스컴이 하나 되어 열성적으로 지지하고 격려할 때이다. 이미 배는 항로에 접어 들었는데 선장을 불신하는 우(愚)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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