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소환법 발효로 지자체 바짝 긴장

지난 5월 25일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에 대해 주민들이 직접 정치적 책임을 묻는 ‘주민소환법’이 본격 발효됨에 따라 전국 지자체가 긴장하고 있다. 비리에 연루되거나 집단 외유 등으로 물의를 빚은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을 겨냥하여 해당 지역의 시민단체나 주민들이 주민소환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하남시의 광역화장장 유치반대 대책위원회는 지난 25일 주민소환법이 발효되자마자 화장장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하남시장에 대해 주민소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책위가 하남시 유권자의 15%인 1만5000명 서명을 받아 소환투표 공고가 나면 그때부터 시장 직무가 정지된다. 그 후 투표권자 3분의 1 이상이 참여한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면 시장은 쫓겨나게 된다. 하남시뿐만 아니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주민소환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제도가 시행된 지 불과 한 달 남짓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동안 지자체와 갈등을 빚어 온 사회단체,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주민들, 심지어 인사 불만을 가진 공무원들까지 단체장에 대한 주민 소환 투표에 나서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이 그 원인. 이는 부패·비리·무능 단체장을 퇴출시키겠다는 본래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봇물 터진 주민소환제, 지자체 행정 공백 우려
주민소환제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등 선거직 공무원에게 문제가 있을 때 임기 중 주민 투표를 통해 해임할 수 있는 제도다. 견제와 균형을 통해 풀뿌리민주주의를 정착, 발전시키기 위한 차원에서 도입됐다. 지난 2006년 5월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시행령’제정안이 의결됐다. 주민소환제는 ‘청구’와 ‘투표’ 등 2단계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다. 이 법률에서는 주민소환 투표 청구를 위한 서명인 수를 시·도지사의 경우 주민소환 투표권자 총수의 10%, 시장·군수·구청장은 15%, 지역구 지방의원은 20% 이상 되도록 했다. 또한 주민소환제 남용으로 야기될 수 있는 지방행정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민소환 투표 청구 제한 기간을 뒀다. 즉 임기 시작부터 1년이 경과하지 않은 때, 임기 만료일로부터 1년 미만일 때, 주민소환 투표를 실시한 날로부터 1년 이내인 때는 주민소환제 청구를 할 수 없게 규정했다. 또한 소환은 주민소환 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 투표와 유효투표의 과반수 찬성으로 확정된다. 주민소환제는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풀뿌리민주주의의 발전을 돕는 제도로, 지방행정에 새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한 번 뽑은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을 제재할 수단이 없었다. 하지만 주민소환제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의 독선적인 정책 집행, 무능력, 비리 등을 시정할 수 있게 됐다. 지역 주민의 정치참여 의식이 높아지고, 지방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주민소환제의 실효성과 오남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민소환이 너무 잦을 경우 지방행정이 악영향을 받고, 시간이나 비용면에서 적지 않은 낭비가 발생하는 등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주민소환 투표안이 공고되면 투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소환대상자의 모든 권한이 정지되기 때문에 지방행정 마비 등 적지 않은 출혈이 예상된다. 특히 주민투표의 경우 해임결정이 날 경우 해당 공직자는 대법원 소송이나 헌법소원 등과 같은 구제 수단을 사용할 수 없다.

주민소환제는 양날의 칼
서울 성북구청(구청장 서찬교)이 지난 2년간 실제는 출장을 가지 않았는데도 모든 직원들이 매달 12번씩 꼬박꼬박 출장을 간 것처럼 꾸며, 47억여 원의 혈세를 낭비했다가 지난 6월13일 적발됐다. 국가청렴위원회(위원장 정성진)가 성북구청이 초과근무 수당을 부당하게 지급했다는 감사원 지적에 따라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다. 이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주민과 시민단체들 사이에선 지난달 처음 도입된 주민소환제를 통해 성북구청장을 심판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기도 하남시의 ‘광역화장장 유치반대 대책위원회’는 지난 5월 주민소환법이 발효되자마자 화장장 유치를 추진 중인 김황식 시장에 대해 주민소환을 추진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하남시는 지난해 10월 광역화장장을 유치해 얻는 2천억 원의 인센티브로 지역발전을 20년 이상 앞당기겠다며 유치 추진을 발표했다. 하남시장에 대해 주민들은 오는 9월 주민소환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김황식 하남시장은 최근 가진 기자회견에서 “화장장 추진이 주민소환대상이 된다면 앞으로 어느 자치단체장이 소신을 갖고 임기 4년 동안 국가적인 업무를 추진할 수 있겠냐”며 “주민소환제가 정치적으로 악용할 경우 지방 행정이 마비되고, 주민간의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광역화장장유치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 김근래 공동대표는 “주민들이 화장장 건립 때문에 시장을 소환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지난 8개월 동안 겪어온 시장의 소양을 보며 도저히 대표자격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지역 이기주의라는 시각은 왜곡됐다고 항변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도입된 주민소환제는 지방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높아지게 되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한층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으나 하남시의 사례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처럼 소신 행정의 발목잡기용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주민소환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느냐 부작용만 키울 것이냐는 결국 주민에게 달린 셈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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