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가, 신경숙

다시 내 앞에 밀려드는 또다른 시간 속에선 사람을 대하는 일이든 글을 쓰는 일이든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보려고 한다. 그래보려고 한다. 수시로 나를 고독 속으로 잠식시켰던 내게 생기지 않는 일에 대한 꿈, 그로 인한 슬픔과 좌절, 그러고도 혹여 싶어 날마다 다시 솟아나던 희망을 내려놓으려고도 한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대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엔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 두 장의 사진을 더 찍어내보겠다.
-신경숙『리진』작가노트 中



1985년 중편소설『겨울우화』로 등단한 신경숙은 1993년 단편집『풍금이 있던 자리』를 출간해 주목을 받았으며, 장편소설 『깊은 슬픔』(1994),『외딴 방』(1995),『기차는 7시에 떠나네』(2000), 창작집『아름다운 그늘』(1995),『오래 전 집을 떠날 때』(1996),『딸기밭』(2000)등으로 대한민국 대표 국민작가로 올라섰다. 또한 한국일보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21세기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신경숙은 대중성뿐만 아니라 그 작품성 또한 검증받았다. 그러한 신경숙이 장편소설을 냈다. 실로 6년만의 일이다. 그 이름 세 글자만으로도 막강 파워를 뿜어내는 신경숙. 그녀는 첫 역사장편소설『리진』으로 다시 한 번 신경숙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리진에 대하여

등단 23년 만에 첫 역사소설을 쓴 신경숙. 이번 작품은 6년 만에 나온 장편소설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첫 역사소설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다. 그녀에게 있어서도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였을 터다. 신경숙은 “다른 소설을 마치고 난 후에는 허탈한 느낌이 많이 들었던 반면,『리진』을 끝내고 난 후에는 빨리 다른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너지가 샘솟는 느낌이었다”라며 “『리진』의 배경이 되었던 시대에 대한 특별한 식견이 없었기 때문에『리진』을 쓸 때 굉장히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작가가 일반 작품을 완성할 때보다 3배가 넘는 공력이 들었다는『리진』은 실존인물이었던 구한말 프랑스로 건너간 궁중무희 리진의 생애를 다룬 작품이다.

상해를 떠난 증기선 빌라 호는
이제 사이공을 지나 싱가포르 콜롬보 수에즈운하를 가로질러
남자의 나라 프랑스로 조선의 무희를 데려갈 것이다.

100년 전,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던 조선에 관한 책에서 A4용지 한 장 반 정도 분량의 내용의 기록을 본 후 리진에 빠져버리게 된 신경숙. 한 장 반 분량의 기록 이외의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던 그녀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자신만의 리진을 완성했다. “내가 해보지 않은 영역이었기 때문에 무사히 마쳤다는 사실에 스스로에 대한 기특함이 든다. 자료 수집을 할 때의 막막함과 어려움이 보상받는 느낌이다. 중도에 포기했더라면 얻지 못했을 감정들이다”라며 작품을 마친 소감에 대하여 털어놓았다.
『리진』은 역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소설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 않는다. 작가 스스로도『리진』을 두고 역사소설이 아닌 현대소설이라 말한다. 그녀는 “역사 속에서 크게 기록이 남아 있고 우리가 이미 일대기를 알고 있는 소재가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가 들춰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갈 수 있는 존재를 끌어왔다. 또 어려운 말들이나 꼭 써야 하는 말들은 쓰되, 앞뒤로 한 페이지씩만 읽으면 그것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있게 썼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새로운 시도에 대하여
또다시 역사소설을 쓰라는 제의를 받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지금으로서는 쓰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는 신경숙. 그녀는 “『리진』을 통해 나는 이전에는 걸어오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가보았다. 작품을 쓰다 보면 내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리진』은 특히 더했다”라며 “역사적인 배경이 튼튼한 힘이 되어준다는 사실이 의지가 된다. 창작의 기쁨은 텅 빈 상태에서 만들어낼 때가 더 크다. 하지만 그러한 의지가 되어주는 틀을 더더욱 찾게 되면 긴장감을 잃을 것 같다”고 말한다.

-너와는……
빛나는 눈으로 단호한 말씨를 사용하던 왕비가 말끝을 흐렸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둔 그런 인연이고 싶지 않다.


『리진』을 읽다 보면 명성황후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명성황후가 숨겨진 진짜 주인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힘들다. 지금껏 우리에게 알려진 명성황후는 지극히 정치적인 인물로만 부각이 되어 왔다. 그러나『리진』에서 그려진 명성황후는 그러한 정치적인 모습보다 한 여인으로서의 인간적인 모습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작품을 쓸 때마다 따라다니는 존재가 하나씩 있다. 이번에는 명성황후가 그러한 존재였다”라며 “그 누구도 명성황후의 내면에 대하여 말해주지 않는다. 이 작품을 읽고 사람들이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명성황후를 바라보기를 바란다”고 설명한다. 신경숙은 또 “명성황후에 관한 사실이 많이 은폐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명성황후에 대한 사실 은폐가 하나씩 하나씩 쌓이기 시작해 지금의 우리의 역사책에는 명성황후라는 존재의 죽음조차 명확하게 되어있지 않고, 사진이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으며 기록하는 사람마다 전부 다르게 기술하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가족에 대하여
신경숙의 작품은 끈끈한 가족애가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게 끈끈한 가족애의 뿌리는 과연 무엇일까. “나는 시골태생이다. 우리 가족은 현대가족으로서의 모습보다는 공동체적인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내가 우리 가족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매우 만족하고 있으며 행복하다. 나는 형제가 많은 집에서 서로 우애가 있게 자랐고 그러한 부분은 지금도 유지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배꽃일세, 배꽃일세, 우리 큰애기 얼굴이 배꽃일세……
바느질을 하는 서씨가 어르는 노랫가락을 들으며
진이는 반짇고리 옆에서 놀다가 잠들곤 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가족이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는 가족에 대한 느낌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현대 가족은 형태 자체가 이전의 가족형태에서 벗어나고 있다. 작가는 예전에는 혈연을 통한 관계만이 가족의 범위에 속했지만 이제는 가족이라는 구성원 자체가 많이 달라져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가족의 범위에 속한다고 말한다.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가정을 눈 여겨 보았다는 신경숙은 “안젤리나 졸리의 가족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녀가 세계적인 유명한 배우였기도 하겠지만 앞으로 그러한 가족의 형태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자리잡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족은 사회적 의미의 가족일 뿐이다”라며 “나에게 있어서 가족이라는 것은 뿌리 깊은 신뢰를 주는 근본이다. 그러한 가족이 때로는 덜 자유스럽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게 큰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고 했다. 작가의 경험과 생활에 어우러진 가족의 힘이 그녀의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져, 때때로 우리가 우리의 가족에서 느끼지 못했던 가족 간의 사랑과 우애에 대해 ‘이런게 가족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못 다한 이야기
신경숙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요가원을 다닌다. 하루 1시간씩 정해진 시간동안 요가를 한다는 작가. 작품을 쓰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어깨와 등에 무리가 와서 치료차원에서 시작했다고 말한다. 올해로 요가를 시작한지 2년 반이 되었다는 신경숙은 “요가를 하는 그 한 시간 동안 내 몸에 충실할 수 있어 즐겁다. 자기 몸에 대해 궁금증이 들면 요가를 권해볼만 하다”고 하며 “요가는 자기 몸을 아는 시간이며 나에게 잘해주는 시간인 것 같다”고 앞으로도 계속 요가를 하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못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일이
살아가는 일에 힘이 되어줄지 고난을 가져다줄지는 나중의 일이다.
살아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신경숙은『바이올렛』과『J이야기』를 시작으로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인세 나눔을 5년째 지속적으로 작품을 통한 기부를 하고 있다. 기부문화가 확산되기를 바란다는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봉사를 하려는 마음이 있지만 정작 그러한 기회를 접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쉽사리 사회봉사를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아름다운재단에서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했고, 내가 부담을 가질 정도로 요구를 하지도 않는다. 사회적으로 내가 받은 것이 많았기 때문에 나 개인이 아닌 다른 의미로 좋은 일들을 해보고 싶었지만 그동안은 마음만 앞설 뿐이었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할 수 있어 마음 한쪽에 있던 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며 자신의 그러한 활동에 대해 언급되자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지난 2006년 11월 한 일간지에 신경숙이 영화감독이 된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6mm 디지털 캠코더로 영화를 찍는다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신경숙은 “나의 일상을 짤막한 영상으로 담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모 인터뷰 기사에서 내가 상당히 열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은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소설 쓰는 것 이외에는 영 재능이 없다. 나와 완전히 다른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크게 흥미를 가지거나 열정을 느끼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여담이지만 올해 신경숙이 영화를 출품하기로 했던 영화제는 올해 6월에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누군가를 떠올리면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연상이 된다. 신경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차분함, 그리고 조용함이다. 하지만 그녀와 단 5분만 얘기를 해도 그녀가 얼마나 유쾌한 사람인지, 또 얼마나 애교가 많은 한 사람의 여성인지 느낄 수 있다. 글로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작가. 우리에게 순수한 슬픔과 사랑의 감정을 일깨워주는 작가 신경숙. 그녀에게 작은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담아 보낸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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