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드는 책]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김영하 지음 / 아트북스 펴냄

[사람을 만드는 책]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김영하 지음 / 아트북스 펴냄

이건 소설도 아니고, 사진첩도 아니여. 이건 에세이도 아니고, 기행문도 아니여. 정말 그렇다. 소설이 아닌 것 같은 소설이 있고, 작품사진은 아닌 것 같은 사진들이 있으며,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책. 김영하의 여행자는 그렇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아니 내가 부여하며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첫페이지에 나오는‘죽음을 생각하기에 좋은 곳은 바로 이런 곳입니다’는 구절을 눈여겨봤어야 했다. 그랬다면, 조금만 예민하게 굴었더라면 첫 번째 이야기가 소설인 것도 알아차렸을 테고, 그런 결말일 것도 조금 알았겠지 싶다. 작가는‘결국 그랬었던 거였군’하는 힌트를 지나치게 마지막 줄에 배치한 경향이 있다. 지금까지는 소설 이야기다. 다음은 사진이다. 작가 김영하가 직접 찍은 사진이 인쇄되어 공식적으로 출판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카메라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그가 애지중지하는 콘탁스G1과 G28밀리미터 렌즈가 와닿기 보다는 그가 찍은 수십장의 사진들에게 더 호감이 갈 것 같다. 그 전문가스럽지 못한 사진이라니. 본래 사진에 대해서는 수준급의 실력이라고 알려진 김영하 작가는 이번 하이델베르크에서는 초점이 나간 사진도, 의도를 알 수 없는 사진도 책에 담았다. 멋내지 않고, 잘난척 하지 않는 그의 사진들은 하이델베르크를 솔직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부러 멋진 장소에 가서 최고의 순간을 담아내는 수고를 하지 않고, 그 도시의 가장 평범하고 진실된 모습을 담아냈다. 사진 하나하나에 굳이 설명을 붙이지 않았음에 박수를 보낸다. 여기까지가 사진 이야기다. 다음은 에세이다. 도시에 대해서도 잠시 말했다가, 이번 하이델베르크에서 함께했다는 콘탁스 G1과 G28밀리미터 렌즈에 대해서도 말했다가, 보들레르와 잠깐 마주쳤다는 자랑으로 마무리한 에세이다. 여행서이지만 여행지에 대한 여행자를 위한 정보가 없다. 과잉 친절이 혹여 여행의 참맛을 해칠까 염려되었다는 작가의 변에 고마워해야할까.
김영하의 여행자는 시리즈다. 하이델베르크는 그 시리즈의 첫 번째고, 두 번째 도시는 도쿄가 될 예정이란다. 그는 첫 번째 여행지 하이델베르크를 포함해 여덟 개의 도시를 여덟 개의 카메라에 담을 계획이다. 여덟 개 도시의 선정 기준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지만 작가 개인의 추억이 있는 흔치 않은 도시가 되길 바란다. 가본 곳에 또 가는 것이 진정한 여행의 묘미라고 그가 가르쳐주었지만 가본 곳보다 안 가본 곳이 더 많은 독자 입장에서 여행을 위한 여행지를 추천받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평범한 현대인에게 가본 곳을 또 간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또 다른 가볼 곳을 포기하는 용기 말이다. 그 용기는 분명히 여유를 가져다 줄 것이다. 나이를 먹은 데에 따른 경제적 여유일 수도 있고, 익숙함에 따른 시간의 여유일 수도 있고, 지루함에 따른 마음의 여유일 수도 있다. 호흡이 길고,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김영하의 여행자는 1시간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그리고 자주자주 그 1시간을 내주고 싶은 책이다. 이건 소설도, 사진집도, 에세이도 아니니까. NP


『 가설을 위한 망상 』 박경리 지음 / 나남 펴냄
박경리 작가가‘토지’완간 이후 1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박경리 작가는 한국 현대 소설사의 거대한 산맥으로 추앙받는다. ‘토지’이후 문학과 삶에 대한 생각들을 담은 이번 산문집은 장편소설‘나비야 청산가자’를 비롯해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와 가졌던 두 번의 인터뷰를 한데 엮었다. 2003년 4월호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했던 소설‘나비야 청산가자’는 여든에 가까운 나이가 견대내기에는 버거운 정신적 압박으로 인해 작가가 연재를 중단한‘미완의 완성’작품으로 남게 됐다. 비록 미완이지만 광복 이후 50년의 한국 현대사를 그릴 예정이었던‘나비야 청산가자’에는 이념 갈등이나 환경, 속도에 관한 작가의 섬세하고 깊은 성찰이 녹아있다. 25년간 세상과의 끈을 놓고 절대고독의 자유 속에서 오로지‘토지’하나에 매달렸던 그가 세상으로 나오게 된 것은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무너져가는 환경 때문이었다. 그는 산문집을 통해 곳곳에 비치는 삶의 근원, 생명의 근원에 대한 궁구를 표현했다.

『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 성석제 지음 / 하늘연못 펴냄
재기발랄한 문장, 풍요로운 재담, 경쾌한 해학과 위트의 작가 성석제가 새로운 산문집으로 독자를 찾아간다. 이번 신작은 앎의 뒤를 좇는, 앎에 관한 숭모와 편력, 그 문학적 성찰의 기록이다. 세상 곳곳을 주유하며 살아 있는 것들에 관한, 살아 있음에 관한, 이야기로 작가는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이들 이야기 속에 세상 이치와 진실, 삶의 모순과 오류, 나아가 자연과 문명과 인간과 인간다움에 관한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려낼 수 있는 모든 것들에 관한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세계를 책 속에 옮겨놓았다. 다종다양한 박물들에 관한 색다른 궁리와 접근의 산물이자 그것들과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밀접하게 연관된 우리 삶의 비의를 정연하게 밝혀놓은 문학적 기록. 매 단락마다 빛을 발하는 정연한 논리와 성찰, 궁리와 질문으로 가득한 사유의 세계가 사람과 세상과 삶을 향해 한층 가까이 다가서 있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 속에 돋보인다.

『 목수 김씨의 나무 작업실 』 김진송 지음 / 시골생활 펴냄
목수 작가 김진송이 지난 십 년동안 목수 일을 하면서부터 나무와 목수 일, 그리고 목물들에 대해 기록해온 일기와 스케치, 작품 사진을 한데 모아 펴냈다. 유행하는 단순 조립 식의 목공일이 아니라 나무를 구하는 데서부터 목물이 탄생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책은 아주 희귀하다. 생계수단으로써 목수일의 즐거움과 어려움 등을 일기 형식으로 솔직히 토로하여 마치 현장에 있는 듯 공감과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그동안 저자가 만든 목물은 800여점에 이르고, 여섯 차례의‘목수김씨전’을 열었다. 2001년에 나온‘목수일기’의 개정판인 이번 신작에는 새로운 작업장 짓기, 나무로 만든 책벌레 이야기 등을 추가하였다. 나무에 관한 책은 많지만 목리에 대해 기록한 책은 드물고 흔한 나무일수록 그 기록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작가는 무너진 옛집의 나무, 야산이나 길에 쓰러져 죽은 나무 등 주변에 널려 있는 흔한 나무의 목리와 그 품성들을 목수의 눈으로 직접 살피고 기록했다.

『 돈주앙의 잃어버린 일기 』 더글라스 에이브람스 지음 /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남자들은 동경하고 여자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 돈주앙의 이야기다. 무려 천 명의 여자를 품었던 세계 최고의 호색한이요, 바람둥이이자 희대의 반항아였던 돈 주앙. 그가 16세기 황금도시였던 세비야를 무대로 펼치는 다양한 애정 편력과 특별한 유혹의 기술, 사랑이야기가 펼쳐져있다. 출간되기도 전에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중국 등 25개국에 판권이 팔린 작품이다. 저자는 400년 만에 발견된 일기를 토대로 16세기 스페인 황금도시 세비야에 살았던 돈 주앙의 삶을 소설로 풀어냈다. 일기 속에는 돈 주앙의 출생의 비밀부터 그가 여자에게 집착하게 된 이유와 특별한 유혹의 기술, 그리고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단 한 번의 비밀스러운 사랑이 숨겨져 있다. 돈 주앙을 다룬 여타의 예술작품과 달리 일기를 소재로 했기 때문에, 이 작품은 돈 주앙 자신의 시점에서 본인의 연애행각에 대해 말하고 있어 돈 주앙이라는 인물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 파리로 가다 1 』 아사다 지로 지음 / 양윤옥 옮김 / 대교베텔스만 펴냄
재미있는 소설을 쓰기로 유명한 아사다 지로의 작품이 옷을 바꿔입고 다시 나왔다. 파리 보쥬 광장에 가면 세계의 여행 애호가들을 사로잡는 호텔을 볼 수 있다. 아사다 지로는 그 호텔을 ‘샤토 드 라 레느Chateau de la Reine’ 즉 여왕이 머물던 성이라고 설정한 후, 이 성은 루이 14세가 그의 여인 디아느를 위해 직접 감독한 곳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설에는 17세기 '왕비관'을 둘러싼 인물들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두 여행팀은 파리에서 현지 안내인에게서 프랑스의 태양 왕 루이 14세와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 디아느 그리고 그 두 사람의 아들 프티 루이의 사연을 듣게 된다. 이 사연으로 소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아사다 지로는 이별과 만남, 부재와 존재의 확인을 통해 독자들에게 유쾌한 웃음 안겨준 후, 감동까지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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