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전 대통령 자크 시라크가 별세했다[사진= TV화면캡쳐]

 [시사뉴스피플=진태유 논설위원] 프랑스 보수정치인의 상징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9월 27일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자크 사라크 전 대통령은 1932년 9월 29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남서부 꼬레즈(corréze) 출신인 그의 조부모는 초등학교 교사였고 그의 부친은 은행원으로 근무하다 항공사 경영인이 되었다. 유일한 형제인 누나는 시라크 전 대통령이 태어나기 전에 사망했다.

그는 줄곧 파리에서 학업을 이어갔으며 1951년 정치학교를 나왔고 철저하게 공산당에 반대하여 투쟁했다. 정치대학을 졸업한 후엔, 알제리에서 군복무(1956-57)를 했다.

1960년대 초, 조이지 퐁피두 수상 내각에서 그는 임무수행을 하면서 정치계에 입문했고 1967년 4월, 사회부에서 정무차관으로 근무했다.

60년대의 시라크 전 대통령은 생트-페레올 시의원, 꼬레즈 국회의원, 꼬레즈 도의원을 거치면서 주로 지방에서 정치활동을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중앙정부 관직에 오르는 노력을 했다. 마침내 1972년 그는 농업 및 농촌 개발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74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를 총리로 지명한 발레리 지스까르 데스뗑를 지지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만의 신념이 강한 시라크 전 대통령은 1976년 정부정책에 반대하며 총리자리를 사임하게 된다. 결국 같은 해에 ‘공화국 연합’(RPR), 신당을 창당한다. 1977년 파리시장이 되어 1995년까지 18년 동안 재직하게 된다.

사실, 그가 파리시장에 재직하면서 두 번의 대선(1981년, 1988년)에서 프랑스와 미테랑에게 패배의 쓴 잔을 마신 경험이 있었다. 성공과 좌절이 뒤섞인 그의 정치행로는 마침내 1995년 5월 17일, 22대 프랑스공화국 대통령이 되면서 더 화려한 정치도정을 그리게 됐다. 2002년 대선에서도 극우주의자 장 마리 르뺑을 물리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위기도 있었다. 2002년 7월 14일, 군사 퍼레이드 중에 극우주의 투사인 막심 브루 나리가 이끄는 암살 시도를 모면하기도 했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원시예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2006년에 개관 한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및 아메리카의 문명 박물관을 창립했다. 2016년 6월 개관 10주년에. 박물관은 Musée du quai Branly-Jacques Chirac 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2007년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후보가 되지 않을 것이고 니콜라 사르코치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마침내 2007년 5월 6일 대선에서 사르코치가 대통령이 되었다. 2008년 6월 이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시라크 재단 운영에만 몰두했다.

2005년 뇌졸중이 발병하여 그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2007년 정치활동과 2010년 헌법위원회를 그만두었다. 2014년 11월 그는 공식 행사에서 마지막 공개 모습을 보였다. 그 이후로 여러 차례 입원 한 그는 2016년 9월에 폐 감염으로 현저하게 건강이 약화되었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1956년 3월 16일, 정치대학 학생시절에 드 꾸르셀 여사와 처음 만났고 이후 결혼까지 했다. 그들 사이에는 1958년 생 로랑스와 1962 생 끄로드의 두 딸을 두었다. 또한 1979년에 안 다오 트랙 셀을 입양했다. 큰 딸인 로랑스는 심장병으로 58세의 나이로 아버지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엠마누엘 마크롱 대통령은 9월 30일을 국가애도일로 선언했다. 고 시라크 전 대통령은 몽빠르나스 공동묘지에서 딸 로렌스 옆에 안장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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