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경영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환경을 사랑하는 기업인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한계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한계를 극복하고 또다시 새로운 한계점을 만들어 극복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사람들. 그래서 결국 그들의 경쟁자는 자신뿐이게 된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것이 그들을 유지시키는 힘이 된다.

조명진 기자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년의 기질을 가슴 속에 품은 채 또 다른 도전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 (주)피죤의 이윤재 회장.‘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누구나 좋은 상태에서 그대로 머물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꼬집어 말하는 그이다. 그러나 “위대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가차 없이 현재의 좋은 틀을 걷어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단호함이 오늘날의 피죤을 존재하게 만든 이유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빨래엔 피죤 ~
피죤의 티잉 그라운드(Teeing Ground)

사람들에게 ‘빨래엔 피죤’이라는 문장을 읽어보라고 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광고에서 사용하는 음과 리듬을 넣어서 읽을 것이다. 이는 뇌리 깊숙이 박혀있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어쩌면 피죤이라는 기업이 가지고 있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주부들이 빨래를 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피죤의 제품들,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갔을 때 조금 더 비싸더라도 선택을 하게 되는 당연함. 언제부터인가 피죤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피죤이라는 거대한 존재 안에는 이윤재라는 사람이 있었다. 1978년 생활용품전문회사인 주식회사 피죤은 설립된 이래 오늘날까지 부동의 시장점유율 1위를 고수하면서 브랜드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이 회사는 실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 중반 사람들에게 생소하기만 했던 섬유유연제라는 제품을 들고 나와 냉담한 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변화에 변화를 거듭 오늘날에 이르지 않았던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과정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을테지만 이 회장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창조해낸 유에서 또 다른 유를 창조해내는 거듭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죤의 창업자인 이윤재 회장은 이미 전문경영인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시기에 섬유유연제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는 현재에 안주하려는 안이한 자세와는 거리가 멀었던 이회장의 성격도 크게 작용하였으리라 보고 있다. 20여 년간 화학회사에 근무하면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사업에 기회를 노리던 시기에 갔던 외국출장에서 그는 처음으로 섬유유연제를 접하게 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된 제품이었을지 모르겠으나, 7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제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날이 생활수준이 향상되어가는 시기였기에 그는 우리나라에도 섬유유연제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했던 것이다. 이회장의 예측이 맞아떨어진 것인가. 오늘날 섬유유연제 없이 빨래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게 되었다.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추진력이 돋보이는 선택으로 오늘날의 피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깨끗하고 아름다운 생활문화 창조’라는 기치를 내걸고 말이다. 더불어 (주)피죤의 이윤재 회장도 함께. 티잉 그라운드, 골프에서 플레이할 홀의 출발 장소를 일컫는 용어이다. 이윤재 회장의 티잉 그라운드는 바로 여기 (주)피죤이다.

그렇다면 이윤재 회장, 그는 어떤 길을 걸었던 것일까

그는 53학번이다. 고려대 특차 전형에 응시하여 상학과 53학번이 된 것이다. 그 시기는 전쟁의 참혹한 결과만이 눈앞의 현실이 되던 그런 시기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당시 월급 1만환(그 당시 잘나간다는 대졸 사원들이 2만~3만 환을 받았었다)을 받고 A.I.메리트 앤 컴퍼니라는 무역회사에 입사를 했다. 신입사원의 위치이지만 정식업무보다는 말단사원으로서 회사의 온갖 허드렛일들을 처리하는 것이 무역회사에서의 그의 첫 업무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입사한 뒤 시간이 조금 흐르면서 그의 눈에도 회사의 돌아가는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타자치는 법을, 그리고 나서는 업무관련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배워나갔다. 생소하기만 했던 무역 영어도 의외로 간단해서 매뉴얼을 작성하여 외웠으며 무역실무를 독학으로 공부하기에 이르렀다. 준비한 사람에게 찾아온 기회는 그냥 지나쳐 가지 않는다. 타자수의 업무를 대신 하기에 이르고( 때문에 타자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다음에는 무역 세일즈 업무(물론 세일즈맨도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신용장 업무에 이르기까지 그는 모두 섭렵했으며 이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회사의 직원 세 명을 해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입사 1년이 채 못 되었던 식, 그의 월급은 1만환에서 5만환으로 비약적인 증가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화학약품을 주로 다루던 무역상인 그 회사에서 그는 결정적으로 능력을 인정받는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달러의 유통은 오직 중앙은행의 입찰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마치 건설업계의 수주경쟁이나 경매의 가격입찰 방식으로 제일 높은 가격을 써낸 사람에게 달러가 배정되는 것이었다. 입찰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조금이라도 낮은 가격에 낙찰을 받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으며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모두들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회장의 열의를 알고 있던 회사의 사장은 그에게 달러의 입찰을 맡겼다. 그리고 전쟁 직후 외화가 절대 부족했던 시기 회사 역사상 가장 낮은 입찰가로 달러를 배정받는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입찰 후에 쓰러져서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지만 말이다. 그는 포기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열심히 뛰는 젊은이였다.

시련과 극복의 끊임없는 반복

그렇게 무역업무가 그의 손에 익어가고 안정적인 회사 생활로 접어들었을 때 그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시련이 찾아들었던 것이다. 5.16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회사의 오너였던 신동기 사장과 그의 아들이 미국으로 출국을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졸지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해버린 그였다. 하지만 그동안의 이력을 본다면 여기서 멈출 그가 아니지 않았는가. 화학계통의 원자재를 수입하는 일을 하던 자형이 자신이 경영하던 무역업체인 흥일산업과 제조업체인 동남합성의 입사를 권유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윤재 회장은 거래상의 주요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맨몸으로 뛰는 열의를 보였다. 열심히 뛰었던 만큼 그에 대한 신뢰가 쌓여갔고 그를‘믿을만한 젊은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던 것이다. 그는 정말로 믿을만한 젊은이였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국가간 외상거래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그이다. 그에게는 젊은 패기와 열정과 끈기라는 큰 재산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재산이 제대로 빛을 발한 사건이 있었다. 이 일화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를 설명하는 하나의방법이 되고 있다. 거래선의 하나였던‘미츠이 상사’에서 국내에 반입할 물품을 외상으로 선적하였다가 제주도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하면서 상품이 소실된 적이 있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외국을 오가는 무역선의 경우는 해상보험을 들어야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러나 외상 선적이었기에 미츠이 측에서 해상 보험을 들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상태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임의로 보험을 들어두었던 이 회장은 사고 후 곧바로 재무부로 달려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개인적으로 들어두었던 해상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함이었는데(물론 손실의 보상을 위해서는 달러로 돈을 송금해야 했다) 당연히 재무부에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그는 다시 설득의 자세를 취하고 상대방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그의 논리와 설득 끝에 우리나라 최초로 8만 달러의 해상보험금 보상 인가 결정이 났던 것이다. 그의 설득의 요지는 한국의 국제적인 신의와 관련한 것으로 사상 유례가 없던 일이라며 난색을 표현하던 담당자를 설득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던 미츠이 상사는 이러한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우리나라를 그리고 이윤재 회장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

70년의 동안물산에서 그의 새로운 도전이 또 시작되고 있었다. ‘동안물산’이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해 가발의 제조와 수출을 꾀하고 있었다. 우리의 손으로 만들지만 세계인이 사용할 것이라면 그들의 입맛에 맞아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으로 그는 영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를 부른 곳은 한군데도 없었던 것이다. 스스로가 길을 개척하여 판로를 뚫어야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가발의 품질이었다. 45일간의 여정에서 계약서 한 건도 성립시키지 못했지만 그에게 그 시간들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이른바‘품질경영’이라는 경영화두를 일깨우는 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세우게 된 또 하나의 경영원칙.“세계적인 품질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절대 시장에 내놓지 않겠다”는 것. 비록 계약은 단 한건도 성사시키지 못했던 여정이었지만 그에게는 그 이상의 경영 철학을 일깨워준 시간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이윤재 회장에게 의미 없는 시간이란 없다. 무역회사의 말단 직원이었던 시간도 실업자로 전락하여 보내던 시간에도 그리고 계약 한 건 성사시키지 못했던 해외출장의 시간 역시 그에게는 준비의 과정이고 배움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간들의 모임이 오늘날의 피죤을 만들어지게 한 밑바탕에 깔려가고 있었다.

44세, 세상사에 미혹함이 없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피죤을 탄생시켰다.

동남합성에 근무하면서 그는 계면활성제(각종 화학물질의 경계면에 닿아서 그 성질을 활성화시켜주는 것)제품을 접하게 되었다. 그 당시 하이론K라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던 동남합성은 공업유연제로 여러 방적 업체에서 호평을 받고 있었던 터였다. 섬유유연제는 바로 이 제품을 섬유에 적용시킨 제품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지켜보던 이 회장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았다. 모든 일에는 적당한 시기가 있다. 시대를 너무 앞지르는 사람은 시대와 동화되지 못하고 사라져가지만, 시대를 조금만 앞서는 사람은 그 시대를 이끄는 주역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섬유유연제의 출시는 그 시기가 참으로 잘 맞아 떨어졌다고 평가되고 있다. 세탁기 문화가 발달한 구미를 중심으로 유통이 본격화되었던 섬유유연제를 우리나라로 들여온 것이 70년대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손빨래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니 세탁기의 보급이 언제 보편화 될 것인지 장담할 수 없던 시기에 그는 미래를 예측하는 탁월한 능력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출시 당시에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현재는 피죤을 대표하는 상품이 되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이 모든 과정에서는 철저한 연구와 실험이 계속되었다. 엄격한 테스트 과정을 거친 제품들을 연구원들의 아내들이 직접 테스트 해보고 다시 제품에 반영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바로‘피죤’이다. 이름에 어떤 의미가 들어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특별한 뜻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품의 분위기가 이름 안에 녹아있다. 그리고 주력상품의 이름 그대로 주식회사 피죤이라는 기업이 탄생하기에 이른 것이다.
세상의 미혹에도 굴하지 않는 불혹의 나이에 그는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하여 피죤이라는 기업을 만든 것이다. 어떠한 흔들림이나 초조함 없이 올곧게 정면을 응시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품은 친근하지만 품질은 특별하다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섬유유연제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최근 조사된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의 60% 이상이 피죤을 떠올린다고 했다. 피죤은 섬유유연제라는 등식이 성립하고 있는 것이다. 타 회사의 제품들 중에도 섬유유연제는 많이 있지만 이미 피죤은 섬유유연제의 또 다른 이름처럼 고유명사화 되었다. 이것을 깨는 것은 아마도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제품의 친근한 이미지와는 달리 품질은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 최고의 품질은 그들에게 가격 프리미엄이라는 특혜를 주고 있다. 경쟁 제품보다 Kg당 20% 정도의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5년 동안 시장점유율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10원이라도 아끼려는 알뜰한 주부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는 힘은 바로 피죤이 가지는 품질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고여 있는 물은 언젠가는 썩는다. 반면에 흐르는 물은 스스로 자정하여 맑은 상태를 유지한다. 피죤은 고여 있기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소비자들이 피죤이라는 브랜드에 대하여 형성한 강력한 믿음은 다른 브랜드의 확장에 기반을 제공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섬유유연제로 출발하여 브랜드 라인을 성공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섬유탈취제, 제습제, 표백제, 세탁세제, 다림보조제, 주방세제, 살균세정제, 바디케어, 헤어케어, 락스류, 치약과 칫솔, 그리고 유아용품에 이르기까지 다 열거하기조차 숨이 찰 정도이다. 피죤이라는 브랜드는 하나이지만 그것이 구축한 라인은 징키스칸의 영토 확장이 무색할 만큼 뻗어나가고 있다.

사람과 약속이 기본이 되는 경영철학
그리고 미래를 향하는 피죤의 오늘

이윤재 회장은 사람과의 약속을 참으로 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기업이라는 것 역시 사람과 사람이 모여 만들어낸 집단이며 그들의 약속이 그 집단을 유지시키는 힘이 된다. 바탕에 깔려있는 믿음과 신용이라는 것이 오늘날의 피죤을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일례로 K마트의S.하워드 슐러와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지금은 월마트에 밀려 파산하고 말았지만 70~80년대만 하더라도 세계 최대의 유통 업체였다. 그러한 K마트와 거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성공의 보증 수표가 되었던 시기였다고나 할까. 그 시기 K마트는 미국 내에 무려 2,800개의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구매담당 수석부사장이었던 하워드 슐러는 성격이 거칠다는 소문으로 사람들이 대하기 불편해했다. 이 회장 역시 그와의 거래를 트고 싶었지만 좀처럼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찾아온 기회를 이 회장은 확실하게 잡았다. 이미 이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에게는 패기와 열정과 끈기라는 큰 재산이 있지 않았던가. 가발 무역을 위하여 해외시장으로 떠났다가 돌아왔던 직후 그를 만났던 것이다. 그리고 슐러 부사장에게 가발 구매의 개런티를 부탁했다. 그는 “가격이 맞는다면 할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이에 이 회장은 전략적인 제안을 하여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다른 벤더를 배제하고 직접 거래를 하면 소비자 가격을 낮춰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고 말이다. 서울 공장에서 전 미국 매장에 그대로 진열해 팔 수 있도록 개별 박스에다 소매가격까지 붙여서 납품을 하겠다고 제안을 한 것이다. K마트는 이를 통해서 소매 진열을 위한 재포장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이 회장의 회사는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니 두 회사에게 모두 이익이 되는 윈-윈인 셈이었다. 이러한 제시를 합리적인 슐려 부사장이 거절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거래는 무려 15년 동안 지속되었다. 15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단 한 번의 클레임도 없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철저하게 고품질로 납기 기한을 한번도 어김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윤재 회장이 평가하는 슐러 부사장은 분명히 엄한 사람이지만 틀림없는 사람을 더 신뢰하는 전형적인 사업가라는 것이다. 필자가 평가하는 이윤재 회장은 그러한 신뢰를 받을만한 충분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다. 자신의 의견을 전략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그래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사업가적인 집요함이 공존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물러남이 없는 패기가 열정이 살아 숨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또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진심이라는 것이다. 철저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성격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어리석은 기업인으로 평가하는 우를 범할지도 모르겠으나 어쩌면 피죤을 오늘날까지 최고의 기업으로 유지시켜 준 것은 또 이러한 그의 경영 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이야기한다.“모든 것은 성의를 다할 때 그 진심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고,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그를 통해서 우리는 미래를 보아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철저하게 미래지향적인 경영을 해왔다. 손빨래가 대부분이었던 70년대에 섬유유연제를 도입했으며 경제의 발전에 급급했을 때 그는 환경을 생각했다. 그에게 남은 앞으로의 과제는 친환경제품이다. 피죤 제품의 개발 원칙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 바로 자연주의라는 것을 고려해보았을 때 그는 이미 (주)피죤의 시작에서 오늘날의 화두를 읽어낸 것이다.‘자연으로 돌아갈 제품은 자연과 가까워야 한다’는 것이 이윤재 회장의 오랜 신념이라고 잔해지고 있다. 또한 피죤의 슬로건인‘깨끗하고 아름다운 생활문화 창조’라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때문에 일찌감치 환경설비 투자에 공을 들여왔다. 피죤을 생산하는 공장에는 폐수 장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덕분에 공업용수임에도 불구하고 붕어를 풀어놓아도 될 정도로 수질이 맑다는 것이다.

자랑스런 CEO 한국대상 수상
30여년간 정직한 품질과 고객 신뢰의 결실

이윤재(李允宰) 회장은“제품의 품질 면에서 피죤은 섬유유연제 부문 세계 최고”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주와 월단위로 끊임없이 이뤄지는 소비자 조사와 이에 따른 연구개발을 통해 경쟁 상대인 다국적기업 제품이 따라올 수 없는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 그 동안의 경험으로‘히트상품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개발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모든 제품들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항상 소비자들을 대할 때‘신뢰와 감동’이라는 측면을 강조한다. 창립 초기부터 소비자 불만 접수 시 3시간 이내 대응하는 고객만족 서비스 체제를 통해 빠르게 소비자불만을 해소하며 클래임 사항은 연구소 구매 생산 품질 영업 마케팅 등 모든 부서가 유기적으로 함께 대처해 철저하게 원인 규정과 재발 방지에 힘쓰고 있다. 이 같이 그의 노력에 대한 칭찬이었을까. 30여 년간 정직한 품질과 고객중심 신뢰의 경영이 최근 자랑스런 CEO한국대상 수상을 하게 했다.  

노사라는 것 역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다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
이 회장의 말에 따르면 인재는 천재성이나 뛰어난 경영 자질보다는 자신에게 알맞게 배정된 자리에서 최선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상품 하나하나에 혼이 들어 갈 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론에 따라 창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인사 청탁도 받아들이지 않고 공채를 통한 인재등용을 고집하고 있다. 이러한 투명한 인재 선발 시스템에 기초를 두고 근로자를 존중하는 경영과 경영을 이해하는 근로자 문화가 노사 화합의 파트너십이 정착해 있다. 또한 윤리경영의 실천을 위해 지난 2001년 1월에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클린 피죤 위원회를 설립하고 클린피죤 강령을 제정해 윤리경영 추진방향을 노사가 함께 연구하고 윤리경영교육을 전 사원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고 있으며 윤리경영 실천 제도를 구축해 금품수수신고제, 인사고과윤리평가 반영, 윤리경영사례선포식, 윤리경영 홈페이지 운영을 하고 있다. 노사간 열린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호프데이와 캔미팅을 진행하며 월별 경영현황을 노사가 공유해 주인의식의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임원들이 순번을 정해 매월 2회 이상 정기적으로 주말에 생산과 영업현장을 방문해 현장과 매장에서 직접 직원들을 격려, 그들의 고충을 듣고 그 자리에서 처리할 뿐만 아니라 팀원들과의 1일회 맨투맨 상담을 통해 공적이나 사적인 이슈에 관해 조언을 하고 있다. 재미있는 직장을 위해서 월별 이벤트 활성화와 분기별 우수 사원 및 팀에게 여행권을 지급하고 있으며 여성 우수사원은 별도로 포상하고 있으며 매년 간부 승격자 부부 동반 만찬과 분기별로 교양강좌를 개설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밖에도 현장 체험, 사내미니MBA과정개설, 직원 경영전문가 육성 등 전문화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불필요한 회의를 지양하고 전자문서 활성화를 하고 있으며 사내 그룹웨어를 통한 개인아이디어를 모집하는 등 전반적인 직원 교육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이와 같은 피죤의 모범적인 노사문화 사례는 올해 노동부에서 선정한 노사문화우수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경영과 인생은 골프와 닮아 있었다
‘행복한 삶을 창조하는 최상의 생활문화 파트너’라는 기업 슬로건과 같이 (주)피죤은 단순히 생활용품을 파는 것이 아닌 고객의 행복과 가치를 전달하는 기업으로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생활용품 전문 회사답게 고객들의 잠재욕구를 파악하여 우리생활에 필요한 제품들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이 같은 노력으로 올해 출시한 대표적인 제품이 액체세제 ‘액츠’를 개발하고 연간 3,100억원 규모의 세탁 세제 시장에 뛰어 들었는데 이번 세제 시장 진출은 지난 28년간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섬유유연제 피죤을 연구 개발하면서 얻게 된 액체 세제에 관한 축적된 기술력이 바탕이 된 것이다. 액체세제 액츠는 가루세제의 문제점(용해도의 문제점, 세제찌꺼기, 가루날림 등)을 해결함과 동시에 단순한 액체세제가 아니라 고농축으로 경제성과 세척력이 보장되고 색바램 방지, 제균력, 빨래냄새의 제거는 물론 헹굼력 강화로 보다 친환경적이고 고기능의 High-tech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가루 세탁 세제 시장에서 진일보한 프리미엄 액체 세제 액츠로 향후 1년 매출 목표를 450억원 시장 점유율 15%달성을 계획하여 앞으로 3년 안에 세탁 세제 시장에서 액체 세제 점유율을 40%까지 확대해 1,000억원 매출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회장은 그가 내놓은 제품으로 새로운 미래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윤재 회장은 평소 골프를 즐긴다고 한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는 그만의 철학이 존재한다. 그리고 골프라는 운동에도 역시 철학이 존재한다. 골프는 게임의 규칙에 따라 1개의 볼을 티잉 그라운드에서 홀에 넣을 때까지 스트로크나 연속적인 스트로크로 플레이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운동이다. 홀까지 오지 못하는 것은 골프의 룰에 어긋난다. 시작과 끝이라는 분명한 경계가 있는 운동. 타인과의 겨룸이지만 철저하게 스스로 싸워야 하는 시간이다. 악천후라는 것 자체만으로는 경기의 중단 사유가 되지 못하는 냉엄함이 존재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골프는 경영과 닮아있다. 인생과 닮아있다. 골프를 즐긴다고 말하는 이윤재 회장은 그러한 사실을 무의식중에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마도 한 게임을 마치고 나서도 그는 또 다른 게임을 준비할 것이다. 그의 여유로움 속에 보이는 패기 있는 젊은이의 모습이‘이제 또 다시 시작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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