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피플 김준현 대기자/칼럼니스트 

[시사뉴스피플=김준현 기자] 미식가인 나는 매주 금요일이 기다려진다. 시장 골목 국밥집부터 동네 빵집을 거쳐 고급 레스토랑의 일류 요리까지 우리 일상 생활공간 구석구석 숨어 있는 ‘맛’의 향연으로 초대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감칠맛 나는 스토리 전개로 굳이 ‘맛집’을 찾지 않아도 강력한 침샘 자극을 경험하곤 한다. 일상에서 사람이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묻어나는 곳이 음식점이라 할 수 있다. 하루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의 안식처를 찾고자 퇴근 무렵이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향하는 곳이 ‘맛집’이다. 맛있는 음식들로 채워진 밥상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맛집’ 은 단순히 우리의 먹거리와 조리만을 소개하는 게 아니다. 한 끼 식사로서 음식은 일상이지만, 사회와 문화로서 음식은 우리 삶 그 자체다. ‘네가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를 내게 말해주면, 나는 네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듯이 음식은 그 도시 내 공존하는 철학, 역사, 문화, 사회적 기능과 상징 등 광범위한 분야와 관계를 맺고 있다.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 지역 언어와 일상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하지만, 지역민 의식구조와 삶의 방식을 담은 음식문화를 파악하는 것도 필수다. 사회구성원으로서 개인이 먹는 음식에는 그 사회의 판단기준과 그 지역의 정체성을 내재하기 때문이다. 먹는 행위는 사회적 활동이며, 또한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사회의 동질감을 형성해 사회구성원 간 결속력을 다져준다. 친분을 맺거나, 우의를 다지는 방법으로 “식사 한번 하시죠”라고 말을 건네는 것도 모두 이러한 맥락인 듯싶다.
 
흔히 음식점 역사의 본격적인 시작은 조선 왕조의 몰락으로 궁에서 일하던 전문조리사들이 음식점을 열고, 수라를 수발했던 상궁들이 궁중음식을 민간에 전수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명월관 등 여러 음식점이 한때 성황을 이뤘으나 서구의 과학적 사고방식이 유입되면서 전통음식에 대한 편견이 생기고 달콤한 조미료의 도입으로 전통적인 맛을 점차 잃었다. 이어 획일화된 입맛의 외식산업 등장으로 전통의 음식점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그나마 전국 몇몇 음식점만이 그 역사성을 이어갈 뿐이다.
 
몇 해 전부터 광풍처럼 불기 시작한 ‘음식’ 예찬은 이른바 ‘맛집’찾기로 이어졌다. 대중매체도 덩달아 ‘음식기행’이나 ‘먹방투어’에 열을 올린다. 처음엔 국내 맛집을 대상으로 하더니 이젠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그 나라와 도시의 진미를 찾아내는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시청자를 유혹한다. 그런 유행 탓인지 대중매체에 한 번 노출돼 ‘맛집’으로 소문나는 순간부터 그 집은 끝없는 대기 행렬로 기분 좋은 몸살을 앓는다. 비바람이 불어도, 한여름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에도 애오라지 ‘맛집’을 향한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지만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식객에게 음식맛만 전달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음식으로 배만 채우고, 정서적인 것을 공유하는 ‘멋’을 전달하지 못함에 아쉬운 생각이 든다. ‘맛집’의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음식의 정체성을 사회적 맥락에서 고민하면서 ‘맛집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거기다 ‘맛집’의 서비스 정신도 한몫 필요하다. 음식 맛은 음식을 담는 정성스러운 손길과 손님에게 전해주는 조력자들의 따스한 손길 속에서 배가된다. 요리사의 손에서 손님의 입으로 전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이 정성과 여유로움으로 이어져야 그 맛집의 고유한 ‘맛’과 ‘멋’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요리사는 요리로 손님에게 직관적이며 감동적인 경험과 문화를 선사하고, 요리 조력자들은 손님에게 무언의 미소와 정성을 제공해야 ‘맛집’으로 거듭날 것이다.
 
한 가지 음식은 먹는 이에 따라 백 가지 맛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문화와 역사를 더한다면 수천 가지 맛으로 느껴질 것이다. 음식은 사유의 대상이며, 맛집은 사유의 철학적 공간이 된다. 음식은 오랜 추억과 그리움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으로 만나는 사유 속에서 즐겨야 그 여운이 오래 간다. 그 여운 속에 함축된 맛집의 진정한 ‘맛’과 ‘멋’을 제대로 느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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